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Bird Sep 10. 2022

졸업

하와이 사는 이야기 7

2002.11.08


오늘, 한 가지 과제를 끝냈다. 그 과제는 참 오랫동안 추진해오던 일이라 성취감이 적지 않다. 그러니까 여기서 공부를 시작한 게 98년 8월이니까 벌써 4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남들은 2년 반이면 끝낼 수 있는 석사를 정말 오래도 끌었다. 물론 그 사이에 1년 쉬기도 했고, 힘들 때는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한적도 참 많았다.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로 공부한다는 거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고, 직장 다니랴, 눈치 보며 학교 가랴 쉽지가 않았다. 미국 학생들 앞에서 발표라도 할 때는 한풀 기가 꺾이기도 했고, 토론시간에는 알면서도 내가 아는 것의 절반만큼도 표현 못해서 속으로만 쓴웃음을 삼키기도 했다. 


"한국말로 했으면 너희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고" 

"너희는 한국말 알기나 해?" 
"한글로 리포트를 한 줄이라도 쓸 줄 아냐고?" 


영어가 자신 없을 땐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끝났다. 오늘 논문 디펜스를 통과했고, 교수님들이 지적한 것들을 모두 고쳐놨으니 이제 제출만 하면 끝이다. 석사학위를 가졌다는 자부심보다는 한번 시작한 것을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끝마친 성취감이 더 크다. 그래서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에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021.03.01 


내가 미국에 온건 대학원 유학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7년 하다가 온 것이라 쉽지는 않았다. 유학을 가고 싶다고 처음 생각을 한 것은 아주 오래되었다. 하지만 유학을 가고 싶다고 쉽게 떠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일단 유학을 가려면 학비와 생활비가 있어야 하는데 집안이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꿈에 불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모은 돈이 조금 생기자 유학 가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언제까지나 직장을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것도 한몫을 했다. 유학을 통해 학위를 따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교수직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떠났다. 24년 전에.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부만큼 어려운 것은 생활이었다. 당장 수입이 없으니 많지 않은 돈으로 아껴 써야 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결혼해 와이프와 1실짜리 아이가 함께 왔으니 더욱 그랬다. 경제적으로는 어렵게 살면서도 하와이 생활은 마음에 들었다. 혹시 원하는 학위를 따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하와이에 몇 년간 살다가 돌아간다고 해도 후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 보았고, 하와이에 사는 동안 누리는 환경이 그만큼 마음을 자유롭게 해 줬다. 

그러다가 직장을 갖게 됐고, 회사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석사과정 졸업을 하고 본토에 가서 박사과정을 시작해야 했는데, 나는 영주권 때문에 일을 더해야 했다. 영주권 나오고 나서 공부를 더 해야지 생각했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공부에 대한 계획은 접고 말았다. 가끔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갔으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큰 미련은 없다. 가보지 않은 길이 이따금 궁금했을 뿐이다.       



이전 06화 할로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