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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l 16. 2020

캐나다 로키 여행 3

2020년에 돌아보는 2009년 여행

밴쿠버 공항에서 나오면서

공항에서 빠져나오면서 얼핏 본 캐나다는 미국의 여느 도시와 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흡사했다. 하긴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지. 굳이 한 가지 풍경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신호등이다. 미국에서는 신호등이 빨강, 파랑, 노란색 불만 달랑 있는데 여기 밴쿠버에는 그 둘레를 노란색 통이 마치 박스처럼 감싸고 있다는 것. 미국의 신호등보다 더 잘 눈에 띄어서 좋다.


거리의 공기는 약간 서늘하지만 우려했던 정도는 아니다. 6월 13일 캐나다, 낮에는 반팔에 긴바지 차림이 가장 알맞다. 첫 목적지는 2010년 동계올림픽 스키 경기가 열리는 휘슬러다. 휘슬러는 밴쿠버에서 약 2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온다. 99번 하이웨이- 일명 sea to sky highway - 를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우회전 좌회전을 반복하다 보면 나오는 스키리조트다. 이름 한번 잘 지었다. 바다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고속도로라... 왼쪽은 태평양 바다, 오른쪽은 고산준령이 버티고 있는 길이다. 사전에 교통정보를 보니 동계올림픽 준비로 곳곳의 길을 단장하고 있는 터라 막힐 것을 각오하라고 했는데,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라 공사를 안 하는 것 같다. 공사장비와 도로 공사표시는 곳곳에 있지만 공사를 안 하니 길은 안 막힌다. 다행이다.


가는 길에 배가 출출해서 아침 겸 점심으로 뭔가를 먹으려고 샤핑센터에 들렀다. 눈에 익은 맥도널드 앞에 차를 세워놓고 막 들어가려는데 소피가 옆에 다른 음식점이 있는데 사람이 그곳에 더 많다고 한다. 그래, 음식은 사람 많은 곳이 잘하는 집이지. 들어가서 보니 맥도널드와 다를 것이 없는 곳인데도 사람은 더 붐볐다. '팀 앤 홀튼'이라고 하는 곳으로 처음 보는 곳이지만 간판을 맥도널드, 또는 버거킹으로 바꿔달아도 모를 정도로 맥도널드와 흡사하다. 


아침 세트메뉴로 커피와 함께 간단히 먹고 근처에서 물을 한 박스 산 후 다시 휘슬러로 향했다. 아직도 내가 미국에 있는지 캐나다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흡사하다. 단지 다른 건 미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상점들이 있다는 것. 하와이의 롱스 드럭스 대신 런던 드럭스가 있고, 푸드랜드 대신 다른 이름의 슈퍼마켓이 있다는 것뿐. 이름표만 바꿔달았지 그놈이 그놈이다. 같은 것이 필요한 사람들, 유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곡예운전 끝에 휘슬러에 도착했다. 휘슬러의 첫인상은 '아기자기 잘 꾸며진 세트장'이다. 부띠크 호텔이 곳곳에 있고, 이름난 브랜드 상점,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눈이 살짝 덮여있다. 겨울에는 이곳이 스키인파로 북적북적한다고 한다. 관광책자에도 한여름과 스키시즌에는 차를 가지고 들어가지 말라고 쓰여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peak to peak 곤돌라를 타고 높이 올라가 경치를 구경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곤돌라와 가까운 파킹장을 찾아 주차할 곳을 찾긴 찾았는데 너무 멀다. 갈 곳도 먼데 언제 곤돌라 타러 갔다 와서 언제 오늘 숙박 예정지인 캠룹 (kamroop)으로 갈까... 통과하자. 세라가 혹시 섭섭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연한 모습이다. 의연하다기보다는 곤돌라 타러 한참 걸어가야 하는 것 같으니 제 딴에는 걱정을 했나 보다. 그냥 휘슬러 타운만 둘러보고 가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이 결정은 참 잘 내린 것이다. 왜냐하면 휘슬러에서 캠룹까지 거리가 예상보다 멀었고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밤 9시를 넘은 시각이었다. 이곳은 여름에 해가 10시 20분쯤 지는 곳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하와이처럼 7시 정도에 해가 진다면 고생깨나 했을 듯싶다. 어둑어둑한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호텔 찾아야지, 밥 먹어야지, 쉬어야지...


호텔은 GPS덕분에 쉽게 찾았다. 하이웨이 근방에 있고 건물 덩치가 큰 '할러데이 인'이라 찾기가 좋았다. 인근 슈퍼에서 필요한 것 몇 가지 사고 맥주 몇 개 샀다. 호텔은 깨끗하고 시설이 괜찮았다.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자쿠지에 들어갔다가 찬물에 들어갔다가 반복하며 피로를 풀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세라가 기간 중이라 수영을 못했고, 소피도 세라가 못하는데 우리만 할 수 없다며 수영을 포기해서 결국 나 혼자 그 넓은 수영장을 독차지하며 밤 11시까지 수영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라가 아빠보다 엄마를 더 따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세라를 위해서 자신의 불편함을 많이 감수하고 아이 위주로 일처리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는 아이, 나는 나라는 생각이다. 아빠이긴 하지만 나는 나대로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시간 보내는 방식, 그런 것들이 있다. 모든 것을 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엄마인 소피가 중간에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도 항상 고집을 내세워 내 주장만 펴지는 않는다. 세 식구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하고 누군가가 반대하면 안 하려 한다. 

또한 세라가 너무 자신의 주장대로만 하게 된다면 나중에 커서도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자신의 인생이 있듯이 아빠 엄마에게도 우리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어떤 때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모두 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해주지 않을 때도 있다. 내 생각, 너무 개인주의적인가?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한국에서 키우는 것과 다른 점이 많다. 그중 하나는 아이들의 자립심이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한국에서는 얼른 일으켜주고 달래준다. 미국의 부모는 잘 일으켜주지 않는다. 스스로 일어나도록 기다린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한국에서는 일방적으로 야단을 치거나 감정적으로 대한다. 미국의 부모는 아이가 알아듣게끔 설명하고 설득한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미국 부모처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아이를 한국식으로 키우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결혼이나 직장 때문에 분가를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성인이 된 자녀들과 한 지붕 아래 사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보통 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해서 나간다. 부모도 아이가 18살이 넘으면 성인으로 대해줘야 한다. 자유로운 대신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정이 많은 사회이고, 미국은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회다. 한국은 주변 사람이나 사회의 속박에 묶여있는 사회라면, 미국은 개인의 자유가 철저히 지켜지는 곳이다.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는 한마디로 단정 짓기 참 어렵다. 부모가 한국 문화권이고, 자녀가 미국 문화권에서 성장한 한인 이민가정은 이런 점에서 자녀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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