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Bird Jul 17. 2020

캐나다 로키 여행 4

2020년에 돌아보는 2009년 여행

캠룹 할러데이 인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사실 캠룹은 우리가 일부러 들른 곳은 아니다. 밴쿠버에서 로키의 밴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요, 교통의 요지다. 이곳에 들른 이유는 오로지 이 도시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밴쿠버에서 휘슬러에 들렀다가 밴프로 가는 길을 하루 만에 가기는 무리다. 12시간 이상 계속 운전만 해야 한다. 그래서 들른 곳이 캠룹이다. 하지만 캠룹은 캐나다에서 37번째,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시간이 많다면 이곳을 둘러보는 데에도 하루 이상 걸릴 것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 우리는 로키로 가는 중이니까. 


캠룹 할러데이 인 숙박요금(캐나다 달러로 세금 포함 130달러 정도)에는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아침식사가 포함된 대부분의 호텔이 그렇듯이 우리는 아침을 주는 것만도 감사했지,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대부분 컨티넨탈 블랙퍼스트로 토스트나 머핀, 시리얼, 커피와 주스, 과일 한 두 종류가 전부다. 그런데 캠룹 할러데이 인의 아침에는 스크램블 에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가. 적어도 두세 개씩 먹었다. 같은 시간 식당에 모인 숙박객들 - 우리만 빼고 95% 서양인 - 도 스크램블 에그를 좋아하는지 서빙하는 직원이 가져다 놓기 무섭게 동난다. 그러면 그 직원은 또 가져온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이제 다시 로키로 출발이다. 오늘은 밴프로 들어가야 한다. 하이 컨트리 인이라는 호텔을 이미 이틀간 예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운전거리상으로는 6시간 정도니 중간에 크게 시간만 낭비하지 않는다면 무리 없는 일정이다. 그래도 도중에 들러야 하는 곳이 만만치 않아서 저녁 8시는 넘어야 할 듯싶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글래시어 국립공원 (Glacier National Park). 여기서 높이 올라가면 눈이 있을 거란 생각에 차로 갈 수 있는 꼭대기까지 가기로 했다. 공원 입구에서 로키 산 입장료를 내야 했다.


참고로 로키에는 곳곳이 국립공원인데 들어갈 때마다 입장료를 받는다. 국립공원이 작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산이 통째로 속해 있으니 가고 싶거나 지나가고 싶거나 어차피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장료는 한 번 들어가는 입장료를 낼 수도 있고 며칠간 머물 것인가를 계산해서 한꺼번에 낼 수 도 있다. 머무는 날이 길어질수록 하루당 입장료는 낮아지니까 한 번에 내는 것이 낫다. 우리도 이틀 머물 것을 계산해서 어른 둘, 청소년 한 명 그렇게 총 60여 캐나다 달러를 냈다. 입장료를 내니 영수증을 주면서 차 앞쪽 유리에 붙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니면 어느 국립공원에서건 무사통과라고 알려준다.  


입장료를 낸 곳에서 굽이굽이 돌아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니 눈이 조금 있기는 했다. 걸어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위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눈이 점점 많아진다고 한다. 세라가 보고 싶어 하는 눈을 드디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라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줌이 마려운데 화장실이 안 보인다. 정 급하면, 그리고 사내애라면 그냥 대충 아무 곳에서 실례하라고 하고 싶은데 절대 화장실이 아니면 오줌을 누지 않겠다는 아이. 저러다 오줌 싸는 거 아닐까. 정말 못 참으면 그래도 어딘가로 뛰어가서 처리하지 않을까... 실험을 한 번 해볼까... 보고 싶던 눈도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사진 한 두장 찍고 얼른 내려왔다. 올라가는 도중에 봐 두었던 화장실 비슷하게 보이는 곳에 들러봤더니 맞았다. 다행이다. 시원하겠다.  


점심때쯤 글레시어 팍 랏지 (Glacier National Park Lodge)에 도착했다. 배가 고픈데 식당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먹을 것이라곤 샌드위치와 햄버거, 샐러드, 수프뿐이었다. 하긴 이거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겠나. 벌써부터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그립다. 그게 아니라면 따끈한 우동이나 스시, 라면도 좋은데... 여기는 그런 것들이 없는 곳이다. 소피와 세라는 샌드위치를 나는 햄버거와 샐러드를 시켰다. 앞뒤로 보이는 산 꼭대기가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눈이 아니라 눈이 오래 쌓여 축적된 글래시어겠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그냥 눈이다.              

말은 안 했지만, 어제 휘슬러에서 캠룹까지 오는 길에 무진 고생을 했는데 오늘 길은 양반이다. 어제 고생을 한 것은 휘슬러에서 캠룹가는 길이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 길이라 만약 도중에 어두워지거나 개스가 떨어지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너 시간을 운전한 것이다. 그에 비해 오늘 길은 보통의 하이웨이다. 볼 것도 많고 경치도 좋고 그래서 다행이다. 식당 근방에서 사람을 별로 피하는 기색 없이 돌아다니는 칩멍크가 참 귀엽다. 세라가 카메라 셔터를 연속으로 눌러댄다.    


캠룹에서 만난 칩멍크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로드 트립을 하다 보면 다양한 경치를 만나게 된다. 경치 좋은 곳에서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하는 맛이 난다. 하지만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곳을 지날 때면 어깨가 움츠러든다. 사막처럼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주변에는 나무도, 숲도, 건물도, 집도 없다. 어쩌다가 한 번씩 마주오는 차의 불빛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만약에 이런 곳에서 차가 갑자기 고장이라도 나면 큰 낭패다. 캐나다 휘슬러에서 캠룹으로 가는 도중에 이런 길을 운전했다. 평지도 아니고 높은 고개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반복하는 길인데 주변은 황량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가도 가도 아무것도 안 나올 것 같은 길을 오직 GPS에만 의지해 달린 것이다. 게다가 주변이 서서히 어두워지기까지 했다. 

이런 길을 운전할 때는 마음 졸이며 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마음 푹 놓고 가는 게 좋다. '자연에 나를 맡긴다' 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게 좋다. 산에서 비가 오면 젖을까봐 걱정하기보다는 아예 비에 나를 푹 적셔보자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걷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다. 그러다 반짝 개는 하늘이 유난히 예뻐 보이는 것처럼, 황량한 땅을 운전하다 갑자기 마을이 나타나면 그 마을이 무척이나 멋져 보인다. 아름다움 속에 있으면 그 가치를 모른다. 밖으로 나갈 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 로키 여행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