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본 2011년 캠퍼스 투어
보스턴-뉴욕 여행 8박 9일, 오늘이 떠나는 날이다. 항공편은 토요일 오후 1시 호놀룰루 공항을 출발해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경유해 다음날 오전 5시 48분 뉴저지 뉴왁공항에 도착하는 스케줄이다. 소피는 공항에서 먹을 점심으로 김밥을 싸느라 일찍 일어났다. 나도 잠이 일찍 깼다. 지난 몇 주 동안 준비한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어서인지 잠도 일찍 깬다. 소피가 점심으로 싼 김밥의 나머지를 아침으로 해결했다. 세라도 깨워서 가방을 마저 정리하고, 물도 잠그고, 불도 확인하고, 화초에 물 주고, 자동차 시동 한 번 걸어놓고... 겨우 9일간 집을 비우는데도 할 일이 참 많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 참 많구나, 새삼 느낀다.
11시 10분 전 택시를 불렀다. 집에서 11시에 나오는데도 시간이 빠듯했다. 만약 새벽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더라면 과연 우리가 제대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을까? 택시로 공항까지는 한 10분~ 15분 정도 거리다. 우리가 탈 예정인 유나이티드항공은 호놀룰루 공항 맨 마지막에 있었다. 키오스크에서 탑승 check-in을 하고, 가방을 하나만 부쳤다. 나머지 작은 가방 두 개는 핸드캐리다. 세 개를 다 부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나는 항공기 내로 갖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을 넣어야 하니 할 수 없다. 가방 한 개 부치는데 25달러라고 했는데 웬일인지 25달러를 내라는 사람도 없고, 기계도 없다. 유나이티드는 첫 가방을 부칠 때 무료인가. 체크인하고 시큐리티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는데 시간이 10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탑승하려면 1시간도 넘게 남았다.
1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시간은 이번 여행에서 아주 짧은 시간이다. 나중에 무진장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냈기 때문에 1시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앰트랙을 기다리며, 기차를 기다리며, 지하철을 기다리며, 버스를 기다리며... 사람 사는 것이 결국 기다림의 연속 아닌가.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지만, 막상 그 기다림의 대상이 왔을 때는 기다리며 겪었던 고통스러운 또는 지루했던 시간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기다림의 고통이 가장 크고, 그 기다림이 끝났을 때의 보상이 가장 큰 것은 뭘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세라의 아이비리그 칼리지 투어다. 룰론 관광도 겸해야 하겠지만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혹시 세라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것 아닐까. 세라에게 염불이란 칼리지 투어이고 잿밥이란 호텔에서 자는 것, 먹는 것, 구경 다니는 것, 쇼핑하는 것이다. 하긴 여행을 다니면서는 그런 재미도 있어야 한다. 칼리지 투어만 강행군할 생각은 나도 없다. 하지만 목적은 잊지 말아야 한다. 주와 부가 바뀌어서는 곤란하다.
일정은 먼저 뉴왁공항으로 도착해서 보스턴까지 앰트랙으로 이동한 후 보스턴에서 3박이다. 다시 뉴왁으로 와서 차를 빌려 필라델피아로 가서 소피 전 직장동료를 만난다. 나이아가라까지 가느냐 마느냐는 결정하지 못했다. 나이아가라까지 가려면 차로 7시간 운전해서 줄기차게 가야 한다. 중간에 잠깐 쉬어가면 실제로는 9시간, 10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장거리다. 도착해서도 하루 숙박한 이후 새벽에 다시 뉴욕으로 떠나 7시간(또는 9~ 10시간)을 되돌아오는 무지막지한 길이다. 육체적으로 부담이 가는 빡빡한 일정이다. 나이아가라를 일정에서 빼고 싶은데 세라는 가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너무 멀고 힘들 거라며 세라에게 포기할 것을 은근히 주입하지만, 세라는 듣는 척도 안 한다. 자기는 차에서 잠자는 게 제일 좋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나이아가라에 가지 않으면 필라델피아에서 뉴욕 쪽으로 차로 올라가면서 중간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을 들러 캠퍼스 투어를 하고 여유 있게 뉴욕으로 들어오면 하루 만에 차를 반납할 수 있다. 일정도 여유 있고 차를 하루만 쓰면 되니까 비용도 절약된다.
뉴욕에 일찍 들어오면 뮤지컬을 하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세라에게는 누설하지 않았다. 뮤지컬과 나이아가라의 선택을 놓고 세라와 딜할 생각은 없다. 세라도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본 적이 없으니 만약 딜하려고 했다가 세라가 나이아가라를 선택해버리면 허무해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나이아가라에 가려면 너무 힘들다는 사실을 세라에게 설득시키고 난 후에 나중에 뉴욕에 가서 뮤지컬을 선물로 슬쩍 내놓는 방식이 좋을 것이다. 세라는 이런 사실을 모를 것이다. 15살 된 딸과의 거래에도 이렇게 머리를 굴려야 하다니.
우리를 태우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유나이티드 항공기가 제시간에 도착했다. 우리는 예정된 시간에 탑승했다. 항공기는 좀 낡은 듯했다. 그래도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까지 우리를 무사히 데려다주겠지. 헤드폰과 등받이용 목베개를 꺼내놓고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장거리 여행을 준비했다.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나이아가라에 가지 못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동부에 간 적이 있지만 몬트리올까지는 차로 갔다 왔는데도 나이아가라 쪽으로는 안 갔다. 나이아가라에 가는 방법은 비행기를 타고 버펄로-나이아가라 공항까지 바로 가거나, 뉴욕 쪽에서 앰트랙을 타거나, 장거리 버스나 관광버스, 또는 뉴욕이나 보스턴에서 차를 운전해서 가는 방법 등이 있다. 비행기를 타든 자동차를 운전하든 최소한 1박은 해야 무리가 없다. 1박만 하고 그냥 오는 것도 아쉽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가 아직도 못 간 것이다. 동부 쪽으로는 나이아가라 폴, 캐나다의 퀘벡, 그리고 메인주의 아카디아 국립공원에도 가봐야 한다. 부지런히 다녀야 가볼 수 있다. 인생은 짧고 갈 곳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