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여행 3

2020년에 돌아본 2011년 캠퍼스 투어

by Blue Bird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5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항공여행. 그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항공기에서 제공하는 영화를 보는 사람, 가져온 책을 읽는 사람, 크로스워드나 수도쿠를 하는 사람, 수다를 떠는 사람, 눈 딱 감고 자는 사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러 가지다. 주변을 둘러보니 샌프란시스코행 항공기에는 거의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 같다.


나는 일단 영화를 보기로 했다. 제목이 '리오'였던가? 애니메이션인데 브라질 출신의 새가 사냥꾼에 잡혀서 미국으로 와 애완용이 됐다가 자신이 뿌리(?)를 찾아 주인과 함께 브라질로 가는 내용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시간 때우기용 영화로는 나쁘지 않았다. 영화가 다 끝나고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려니 두 시간 정도 남았다. 가져간 책을 한 챕터 읽기도 하고 눈이 피곤해 잠을 청하기도 하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항공기에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5시간 반이 그냥 훌쩍 지나가는데 좁은 기내에서 가만히 앉아 그 시간을 보내려니 쉽지 않다. 꼭 시간을 때울 뭔가를 찾아서 해야만 할 것 같다는 강박관념.


샌프란시스코는 약간 쌀쌀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세라가 벼르고 별렀던 클램 차우더를 먹었다. 몇 년 전 피어 39에서 먹었던 그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라는 행복해한다. 음식은 아무리 맛이 좋든, 없든, 싸든, 비싸든 먹으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시간 정도 다음 항공기를 기다리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제시간에 뉴왁행 유나이티드에 올랐다.


스튜어디스들은 항공기 밖에서 볼 때는 멋져 보인다. 깔끔한 유니폼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항공기 안에서는 별로다. 하는 일이 음료수 가져다주고, 햄버거 팔고, 결국 하는 일이 그거다. 이건 스튜어디스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비슷할 것이다. 여러 나라, 여러 장소를 무료로 간다는 것은 좋겠지만 가는 중에 물 갖다 주고, 밥 갖다 주고 하는 것이 싫을 것 같다. 하긴 비행기 내에서 뷔페식으로 차려놓고 승객이 가져다먹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뉴욕행 기내에서는 앞좌석 등받이에 부착된 스크린으로 영화를 봤다. 영화 제목은 Source Code,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미군 헬기 조종사가 다른 사람으로 환생해 열차 폭파범을 찾아내야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내용, 실패할 경우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고... 요즘 영화가 이런 식이다.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 영화니까 가능한 일. 항공기는 오전 5시 48분에 뉴왁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조종사가 급한 일이 있는지 한 30분 정도 일찍 도작했다.


짐을 찾고, 뉴왁공항에서 보스턴으로 연결되는 앰트랙을 타기 위해 에어 트레인으로 갔다. 6년 전 와본 곳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다. 이제 또 한두 시간 기다렸다가 앰트랙을 타야 한다. 보스턴까지의 시간은 또 5시간 정도. 왜 보스턴으로 직접 가지 않고 이런 일정을 짰느냐 하면 1. 다시 뉴욕으로 올 것이며 2. 앰트랙도 처음으로 타보고 3. 호놀룰루-보스턴-뉴욕-호놀룰루 식으로 항공권을 사는 것보다 호놀룰루-뉴욕 왕복으로 항공권을 사는 게 훨씬 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뉴왁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앰트랙 시간이 하와이에서 뉴왁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만큼 걸릴 줄은 누가 알았으랴. 그 사연은 다음 편에서.




이때까지만 해도 호놀룰루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직항 항공편이 없었다. 직항노선은 2019년 4월 처음 열렸다. 하와이안 항공이 운항하는 미국 내 최장거리 노선이며, 11시간 40분 걸린다. 직항이 생겨서 편해진 점도 있지만, 시간이 이 정도 걸리는 항공여행이라면 직항을 타야 할지 원스탑 노선을 타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다. 피곤하더라도 한 번에 빨리 가고 싶다면 당연히 직항이 낫다. 하지만 거의 12시간을 항공기 내에서 꼼짝없이 있어야 하는 것보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중간에 내려서 쉬면서 두 시간 정도 몸을 추스른 후에 다시 타는 거다. 이러면 몸의 부담을 훨씬 덜어줄 수 있다.


나는 전에는 직항이 있는 경우 무조건 그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차츰 장거리 노선을 탈 때는 중간에 일부러 쉬어가는 방법을 택하곤 하게 됐다. 한 번은 보스턴에서 호놀룰루로 올 때 시카고에서 3박, 라스베이거스에서 1박 한 후 호놀룰루로 온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장거리 여행의 피곤함을 거의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라스베이거스는 어딘가 여행 갔다가 올 때 자주 들르는 코스가 됐다. 카지노에 가고, 한식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호텔 구경도 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하루정도 푹 쉬기에는 라스베이거스가 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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