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하순부터 지금(7월 하순)까지 같은 장소에서 아침에 해가 뜨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매일 촬영하는게 목표이지만 실상은 이틀 걸러 하루 정도는 이런 저런 이유로 촬영을 못하고 있다. 매일 같은 행위를 빠짐없이 반복하는 일상이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일인지를 절감한다.
이 작업을 시작한 동기는 아주 단순했다. 새벽에 일찍 잠을 깬 어느 날, 주방쪽 베란다 너머로 떠 오르는 해가 보였고, 수 없이 찍었던 일출 장면을 또 한 번 찍다가, 이걸 매일 반복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궁금해졌다.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음 날, 첫 촬영을 위해 침대에서 나와 보니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생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루하루 변하는 날씨를 기록하는 것인가?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나는 계절의 변화인가? 주제는 무엇인가? 태양인가? 구름인가? 건물인가? 촬영하는 시간은 언제로 해야 할까? 일출시간? 태양이 건물 위로 솟아오르는 순간? 아니면 매일 같은 시각(예: 5:30am)? 노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셔터속도와 조리개와 감도를 일정한 값으로 정해놓고 매일 달라지는 밝기를 보여줄 것인가? 그날 그날의 상태에 따라 적정 노출로 조절할 것인가? 조건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게 어떤 결과가 될 것인지는 잘 예상되지 않았다.
모르겠다. 일단 시작하고 보자.
며칠동안 시험 촬영을 했다. 사진들을 모아 놓고 보니 한 가지 문제가 보였다. 어떤 날은 구름을 찍었고 어떤 날은 태양을 찍었다. 프레임에 일관성이 없으니 '매일 찍는다'는 것의 의미, 즉 사진의 연속성이 확보되지 않았다. 렌즈(화각)를 하나로 고정하고, 화면 안에서 촬영의 기준점을 정했다. 기준점에 화면의 정중앙을 맞추고 파인더 안에서 수평을 맞추면 매일 거의 동일한 구도로 촬영할 수 있었다. 135mm 화각을 선택했으니 손떨림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느 정도 빠른 셔터속도가 필요했다. 1/250초로 고정. 화면 안의 모든 물체들은 충분히 멀리 있기 때문에 초점이나 심도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최대한 선명한 이미지를 얻고 싶었다. 조리개는 f/8.0으로 고정. 이 상태에서 태양 주변의 구름에 노출을 맞추어 보니 ISO 800 정도가 적당한 감도가 되었다. 감도도 고정. 이제 남은 조건은 하나다. 언제 찍을 것인가?
기상청이 제공하는 박명 시간에? 건물에 가려서 별로 볼 게 없다. 아파트 지붕 위로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으니 매일 아침에 창가에서 기다려야 한다. 박명시간이나 해가 올라오는 시간 모두 매일 시간이 바뀌니 나의 아침 루틴을 고정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그럼 매일 같은 시간? 한 달 정도는 별 문제 없겠지만 만약 1년 정도로 이 프로젝트를 길게 끌고 간다면 말이 안된다. 하지에는 5:03분, 동지에는 7:39분에 해가 뜬다. 중간인 6:20분 정도에 촬영한다고 하면 여름 몇 달은 완전히 훤한 낮이고 겨울 몇 달은 완전이 깜깜한 밤이다. 촬영 시간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그날 그날 사정에 맞춰 일단 찍어 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 이것만큼 객관적인 주제가 있을 수 있을까? 촬영 대상물에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으니 나는 그저 관찰자로서 찍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막상 찍으려 하니 앞에서 말한 조건들 하나하나에 따라서 결과물은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기록이란 어떻게 하더라도 객관적 팩트가 아니라 기록하는 자의 주관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은 객관적 사실을 재현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빛과 렌즈와 필름(센서) 사이의 물리-화학적 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물리-화학적 작용이 벌어지는 환경을 결정하는 것은 촬영자의 주관이다. 따라서 사진도 다른 매체와 다름 없이 주관적이다. 대상은 객관적이나 기록은 주관적이다.
한 달 동안 미니 프로젝트를 진행해 봤다. 그 결과가 이 글의 표지에 있는 사진이다. 아직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장마철 기간동안 구름의 변화가 표현된 것 같다. 8월부터는 촬영시간도 일정한 기준에 맞추어 촬영해 보려고 한다. 박명시각으로부터 약 15분 후에 아파트 지붕 위로 해가 올라오는 것 같으니 박명+15분에 촬영하려 한다. 화각과 노출은 이전과 동일하다. 내가 주관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정했다. 이제부터는 내 주관이 만들어낼 객관적 결과만 남아있다. 앞으로 한 달, 두 달, 반 년, 일 년... 얼마나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주관적 객관을 쌓아가 보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 주관적 객관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하나의 결과를 얻기 위해 시간을 쌓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