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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욱 Mar 14. 2024

[잡상] 공익과 사익, 그리고 권력의 엄정함

박용진과 조국, 두 정치인에 대한 소회

내가 소셜 미디어에서는 정치색을 감추지 않는 편이지만 실상 그다지 정치적인 인간은 아니다. 사실 정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그저 내 생각에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방향과 합치되면 지지하고 반대되면 비판하는 것 뿐이다. 정치사상에 대한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고, 정치인을 면전에서 본 적도 거의 없다. 심지어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공무원도 아는 사람 하나 없다. 이런 내가 같은 공간에서 말을 섞어 본 적이 있는 정치인이 딱 두 명 있다. 박용진과 조국이다.


[박용진]

우선 박용진. 박용진과는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더 나아가 6학년때 같은 반 친구였다. 더 나아가 내가 1학기 반장, 용진이가 2학기 반장이었다. 당시 나는 공부 잘하는 전형적인 모범생 반장이었는데 용진이는 좀 달랐다. 용진이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지만 최상급의 성적은 아니었다. 초등학교라서 전교 석차를 내지는 않았지만 매번 시험을 보고 나면 금방 ‘몇 반 누구는 몇 개 틀렸대.. 몇 반 누구는 올백이래’ 소문이 돌아서 전교 최상위권이 누군지는 뻔히 알았다. 나는 그 중에 언급되는 아이였고 용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용진이는 말과 행동에 어떤 힘이 있었다.


71년생 돼지띠. 한 해 1백만 명이 넘게 태어나던 시기이다. 그리고 나라는 여전히 가난했었다. 학교는 모자르고 학급은 과밀이었다. 나와 용진이가 다녔던 화계초등학교의 1983년 6학년은 한 반에 70명 가까이 있었고, 그런 반이 23개가 있었다. 그렇게 많은 반, 많은 학생 중에서 용진이가 2학기 전교 회장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용진이를 멋있게 기억하는 지점은 다른 데 있다. 가을에 전교생을 청군 백군으로 갈라 대운동회를 했는데, 대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차전놀이였다. 우리 반이 청군이었는지 백군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각 반에서 체격 좋고 힘 좋은 아이들을 뽑아서 구성된 차전놀이팀에서 용진이가 대장으로 뽑혔고, 용진이의 지휘로 우리 편이 이겼었다. 그 때 동채 위 가장 높은 곳에 올라타 있던 용진이가 정말 멋져 보였다. 용진이에게는 어떤 아우라같은, 돋보이는 존재감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집이 서울의 거의 반대편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후 용진이를 본 적은 없다. 나는 아는 친구 하나 없는 중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수원, 대전으로 학교를 다니며 초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다. 용진이는 그 동네에 계속 살면서 중학교, 고등학교도 같은 동네에서 쭉 다녔다. 대학시절에 알럽스쿨의 유행으로 초등학교 친구들과 다시 연결이 됐지만 동창회에서 용진이를 보지는 못했다. 용진이는 대학에서 운동권에 몸담았고, 총학생회장이 되었고, 수배가 되었고, 결국 수감되었다. 6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몇몇이 용진이 면회가자고 연락을 했었는데 다른 일정과 겹쳐서 면회를 가지 못했다. 그 이후로 용진이와 직접 연결이 닿은 적이 없다. (페북에서 페친맺으면서 서로 기억하냐고 반갑다고 댓글을 주고 받은 것이 유일한 연락이었다.)


용진이가 민노당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내가 정말 정치에 아무 관심이 없을 때라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나중에 민주당으로 옮겨서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 시원시원하게 말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용진이의 모습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 저 사람이 내 친구라고. 같은 반에서 1, 2학기 반장을 나눠서 했던 친구라고. 2016년, 용진이가 고생 끝에 드디어 국회의원이 됐다. 지역구가 달라 내가 한 표 줄 수도 없었지만 선거 과정에서 응원했고 당선되어서 기뻐했다. 유치원 3법으로 활약할 때에는 ‘저 친구 차세대 리더야. 대통령감이야’라며 주위에 홍보도 했었다.


초선 시절의 활약은 훌륭했다 하겠다. 그 덕에 무난히 재선이 되었다. 그리고 용진이가 달라지는게 보였다. 언행에 욕심이 보였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 공익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사익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보였다. 국회에서의 활약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TV에서 보이는 용진이의 얼굴이 욕심사납게 변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에서 차전놀이 동채 위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던 용진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공천에서 결국 탈락했다.


공천 탈락에 승복하지 않고 재심을 신청했다 한다. 나는 패착이라 생각한다. 나는 용진이가 촉망받던 정치인에서 짧은 기간만에 퇴출대상이 된 이유가 지나친 욕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재심을 신청한 것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본다. 용진이는 아마도 욕심을 내려놓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친구의 앞날이 기대되지 않는다.


지난 2-3년 동안 박용진의 행보에 불만이 많이 있었지만 대놓고 박용진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같은 반 친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교도소에 있을 때 친구들이 면회가자고 했을 때 같이 가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모진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모진 말이 필요 없어진 것 같다. 용진아, 네가 정치인으로서 다시 살아나려면 재심을 신청할 것이 아니라 승복을 했어야 했다. 너를 꺾고 후보가 된 정봉주의 손을 치켜들어 줬어야 했다. 그와 함께 지역구 곳곳을 찾아다니며 ‘이제는 정봉주를 밀어주세요’ 외쳤어야 했다. 너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너의 불꽃은 이제 사그라든 것 같다…


[조국]

다음으로 조국. 대학교수로 있던 시절의 조국은 잘 모른다. 나는 노무현을 사랑했고, 노무현이 세상을 떠났을 때 슬펐다. 아직까지 해마다 한두 번 봉하에 간다. 처음에는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이제는 많이 덤덤해졌다. 그래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가끔씩 띄워주는 노무현의 영상을 보게 되면 여전히 울컥하다.


“문재인의 친구”였던 노무현, 그 노무현의 친구였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조국은 문재인의 민정수석비서관이 되어 정치인으로 등장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검찰개혁이었다. 정치화된 검찰의 폐해를 너무도 뚜렷히 보아 왔기에 검찰개혁의 대의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그 임무를 맡은 조국이라는 사람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법이나 제도, 그리고 정치의 다이나믹스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어떤 일이 특정 집단에 이익이 될 것인지 공동체 전체에게 이로울 것인지에 대해 대체로 어림잡을 뿐이다. 조국이 추진했던 일들 하나하나를 세세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옳은 방향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의 행보를 지지했다. 그리고 조국은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윤석열과 검찰이라는 들개떼에게 그와, 그의 아내와, 그의 딸은 사지를 물어 뜯겼다.


나는 화가 났다. 조국을 지지하는 시위에도 여러 번 나갔다. 하지만 조국과 문재인에게도 화가 났다. 어째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산하의 한 청에 불과한 검찰에게 이토록 휘둘리는가. 드라마 <환혼>의 한 대사는 정확히 나의 마음과 같았다.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이후 조국은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나 야인이 되었다. 아니, 그냥 야인이 아니라 피의자가 되어 재판을 받았고, 1심과 2심에서는 유죄를 선고받은 죄인이 되었다. 그 사이에 그는 책을 썼다. <디케의 눈물>. 그리고 그는 북토크라는 형식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리고 강남의 한 서점에서 드디어 나도 그를 만났다. 다른 일정과 겹쳤었지만 만사 제치고 조국을 만나러 갔다.


첫 번째 목적은 조국을 위로해 주는 것이었다. 먼 발치에서 봤을 때 조국과 그의 가족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도 괴로웠다. 기회가 된다면 손 한 번 잡고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고 싶었다. 그의 뜻을 지지했으므로 그가 겪은 고통은 나를 대신해서 겪은 것이라 느껴졌다. 그런데 위로는 필요없었다. 조국은 나같은 필부 따위와는 견줄 수 없이 단단한 사람이었다.


두 번째 목적은 따지고 묻기 위함이었다. 왜 대통령의 의지를 위임받은 법무부 장관이 검찰 하나를 통제하지 못했느냐고. 조국은 인정했다.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그리고 법무부 장관으로서 잘못한 것이 많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검찰 세력에게 권력의 엄정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나는 조국이 그저 고고한 선비인줄로만 알았는데, 그의 입에서 ‘권력의 엄정함’이라는 엄정한 말이 나왔다. 얼굴과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래서 더 힘이 느껴졌다. 힘이 느껴져서 안심이 되었다. 오히려 내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


서점에서 만났을 때에는 출마인지 창당인지 등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은 더 이상 학자로 살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뭔가 일을 준비하고 있구나, 이런 사람이 일을 저지르면 제대로 단단히 저지르겠다 싶었다. 믿고, 기다렸다. 그리고 <조국혁신당>이 만들어졌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정당이라는 곳에 가입을 했다.


조국. 내 눈에는 그가 마치 완수하지 못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시 전선으로 발길을 옮기는 부상당했던 병사같이 보인다. 짠한 마음이 한구석에 있다.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 않는다.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있으니까. 22대 국회에서 조국과 그의 사람들이 권.력.의.엄.정.함.을 온 세상에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만약 쓰임새가 있다면, 나의 미약한 힘도 보탤 것이다. 나의 마음은 이미 그에게 가 있다.


[인생의 浮… 沈…]

뜰 부, 잠길 침. 누구나 살아가면서 좋은 시절과 힘든 시절을 겪는다. 박용진은 운동권 시절을 힘들게 보냈으나 초선 시절에 화려하게 꽃피웠다. 그 이후 박용진이 보인 행보에 따라서 어쩌면 지금 훨씬 더 큰 정치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분명 그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고, 다시 가라앉고 있다. 아마도 다시 떠오르기 힘들 것이다. 조국은 명망있는 법학자로 탄탄한 길을 걷다가 정치의 길에 들어서서 바닥없는 고통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떠오르고 있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가 선명히 내세우고 있는 검찰개혁에는, 그가 겪은 개인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어찌 사사로운 감정이 전혀 없겠는가마는, 그래도 공익을 위한 대의명분이 중심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음이 느껴진다. 세상의 거친 파도를 이겨내는 힘은, 결국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높은 이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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