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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작가 Oct 29. 2020

우리 가족의 모든 평범한 일상은 그날 멈췄다.

어느 날 늑막염 인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어머니는 폐암 진단을 받았다.





"왜 이렇게 옆구리가 아프노"라는 어머니의 말을 자주 하셨다.


나는 무심코 흘려들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검사를 받아봐야겠다는 말을 했다.

.

.


검사 당일,

당시 가족들은 전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름 각자의 일상에서 말이다.


(모두 알겠지만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기고 그러다 보면 부모님에 대한 관심과 신경이 약간 무뎌진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

.

검사를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생각이 나서 아무 생각 없이 문자를 보냈다.

"결과는 아직 안 나왔어?"

.

.

당시에는 몰랐지만, 답장이 많이 늦게 온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답장을 보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혼자 그 충격을 감당하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정말 그날의 나를 아직도 용서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답장이 왔다.

"폐암이란다. 빨리 큰 병원 가라 하더라."


그 답장으로, 우리 가족 모두의 일상은 멈췄었다.


그리고,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없었다.


평범했던 그 날 화요일은 우리 가족의 마지막 평범한 날이 된 것이다.




당시 어머니의 문자...


"폐암이란다. 빨리 큰 병원 가라 하더라."


병원에서 의사한테 폐암 진단을 받고 어머니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어머니의 감정은 어땠을까?


당시 나는,

어머니의 감정을 생각하기보다 나는 내 감정을 먼저 생각했다.




나는 다짜고짜 전화기를 들고 어머니한테 바로 전화를 했다.


한참 뒤에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많은 질문과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확실한 거야?"

"정확히 머라고 한 거야?"

"원인은 머야."

"요즘 의학이 발전돼서 암 치료도 가능할꺼야."

"빨리 서울에 올라와서 큰 병원에 가자."

"친한 의사 친구한테 연락해볼게."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래, 알겠다..."



나는 그날 어떤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어떤 의사가 유명한지를 알아본다고 정신없이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XXX병원 XXX교수가 유명하다고 해. 거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받고 수술하자."


어머니는 대답했다.


"알겠다...."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나는 대답했다.

"수술하면 되니깐 걱정하지마. 빨리 수술하자."

.

.

.

"알겠다..."




나는 그때를 돌이켜보고 생각하면 참 바보 같았다고 생각된다.


나 스스로 똑똑하고 영리하다고 생각했고, 누구보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내 결정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바보 같았다...


어머니의 감정은 어땠을까?


이런 작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

.



과거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제 큰 걱정이 없어진 것 같다.  젊을 때 고생은 많이 했지만 너희도 결혼시키고 손자들도 잘 자라고 있고."

"이제 손자 결혼식까지만 살면 걱정이 없을 거 같다."


나는 대답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기본적으로 100세까지 사니깐 증손자도 볼 수 있으니 걱정도 하지 마라"라고 말이다.


그리고 서로 우리는 웃었다.

.

.




이제 조금 살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암이라는 진단으로 인한 감정과 충격을 당시에 말했었던 것 같다.


나는 몰랐지만 말이다.

.

.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온 걸까?"

"담배도 피우지 않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원인은 뭘까?"

수도 없이 질문하고 곱씹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나에게 한 이 말이 어머니의 감정과 충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

.

.



그날 저녁 주변 친한 의사에서부터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조언과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병원 교수, 원장....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전화해봤다.


그리고 마지막에 3년 전 어머니를 폐암으로 떠나보낸 친한 동생의 말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형, 저희 어머니 S대병원에서 수술하고 항암 치료했잖아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수술은 권한 게 잘한 일인지 그리고 만약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선택을 다시 강요할 것인지 모르겠어요. "

"고통 속에서 가신 거 같아요."

.

.



나는 일단 두 가지면에서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


어머니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았고, 수술을 그냥 강요했다는 점이다.


당사자가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수술과 항암치료가 가져올 이런저런 많은 요소들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암에 걸렸다면 수술을 선택할 수 있는가?

 

나는 일단 지금 상태가 괜찮다면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하며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변화하기 싫고 자신의 상태가 아직 견딜만한다면 말이다.


아마도 누구나 이런 선택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수술을 하더라도 재발할 위험과 각종 합병증을 비롯해서 항암치료의 고통이 무섭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수명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른 한편으로는 수술을 받고 암을 제거한 후 몸을 잘 관리하면 된다고도 생각했다.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가 암에 걸렸다면 수술을 선택할 수 있는가?


어떤 선택이 맞는지 사실 알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말이다.


왜냐하면 신이 아닌 이상 결국 결과론적인 이야기만 할 수 있을 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다른 선택에 대해 상상만 할 뿐이다.


어쩌면,

암 진단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 불러오고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암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더 좋았을 수도 있다.

.

.

.

정답은 없다.

.

.

.

"빨리 병원 가서 수술받자."에 대한,


"알겠다.."라는 어머니의 대답은 수긍의 대답이 아니다.


어쩌면 삶의 대한 포기, 절망의 대답이자 간절함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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