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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노 Jun 25. 2016

돔구장과 미식축구, 그리고 미국

조지아 돔(Georgia Dome) in ATL

조지아 돔(Georgia Dome)은 애틀랜타에 있는 돔 구장으로, NFL 소속 애틀랜타 팔콘스(Atlanta Falcons) 구단의 홈구장이다. 애틀랜타 다운타운에서 조금만 서남쪽으로 가면 도착한다. 월드 오브 코카콜라, 조지아 아쿠아리움, CNN 본사가 있는 올림픽 파크에서 직선거리로 약 1km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필자가 본 경기는 NFL 정규 시즌 개막을 일주일 앞둔 시범경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석은 거의 만원이었고, 거리에 풍기는 기대감은 강렬했다. 입장하기 전부터 경기장 주변은 비시즌 기간 동안 기다려온 설렘과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흥겨운 음악과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퍼지면서 분위기는 극대화됐다.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영화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을 보면 미식축구 경기장 내에서 싸움을 일으킨 기록으로 출입 불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주인공이,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 밖에서 다른 팬들과 맥주를 마시며 축제를 벌이는 씬이 있다.

흡사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하는 장면에 ‘정말 저렇게 놀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범경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규 시즌에는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조지아 돔 입장 규정 중, 반입 가능한 물품에 대한 조항은 상당히 까다롭다. (그리고 미국 내 대부분의 경기장이나 박물관들이 다 그렇다)

반입 가능한 가방의 최대 크기는 12”x6”x12”(약 30x15x30cm)였고, 일정 크기의 로고는 인정되지만 투명해서 내부가 보여야 했다. 아마존에는 이를 노려서 반입 가능한 최대 크기의 투명한 가방이라는 포인트를 어필하면서 가방을 파는 셀러도 있다.

물론 안전 상의 문제가 최우선이겠지만, 구단 측에서 이렇게 입장을 강하게 규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음식 반입을 통제해서 구장 내 음식의 수익을 올리려는 의도도 있다. 물 정도는 들고 들어갈 수 있지만, 나머지 음식들은 모두 사 먹어야 했고, 음식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사실 경기 자체보다는 돔 구장과 미식축구의 분위기를 체험해보고 싶어서 간 것이었기 때문에 필자와 일행은 돔 구장 꼭대기 즈음에 자리를 잡았다. 시범경기였음에도 좌석 가격은 상당했다.

 

온전히 경기에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미식축구에서 공격은 쿼터백을 중심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이때 누가 공을 가지고 있는지 상대편에게 들키지 않도록 눈속임과 페이크 동작은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당연히 건물 4~5층 높이에서 보면 당최 공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사진에서 보듯 해당 위치에 앉아 필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야구로 치면 외야 좌석에 앉아서 투구를 보고 스트라이크-볼을 판별해내는 것과 같았다. 당연히 집중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함께 간 8명 중, 미식축구 규칙을 아는 사람이 필자 한 명뿐이어서 계속해서 좌우로 룰을 설명하느라 바빴다. 왜 경기가 멈추는지, 왜 공격과 수비 팀이 따로 있는지, 왜 공격을 하고 또 공격을 하는지 설명해주느라 경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미식축구는 규칙에 익숙하지 않으면 계속 보고 있기가 힘들다. 미식축구는 우리에게 익숙한 축구와 야구 두 종목들의 성격이 모두 들어가 있는데,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면 복잡한 땅따먹기다.

공격 팀은 한 번의 공격에 총 네 번의 기회를 가지고, 네 번의 기회 동안 10야드(9.14m)를 전진하면 다시 공격권을 획득한다. 네 번의 공격은 정해진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10야드를 빼앗아야 한다는 것은 90분이라는 시간 내에 진행되는 축구의 특성이 담겨있고, 경기 흐름의 단위가 한 번 한 번의 공격이 된다는 것은 그 흐름이 각각의 투구가 되는 야구의 특성이 담겨있다. 10야드를 빼앗지 못하거나 상대에게 공을 빼앗기는 경우 공격권을 잃는다. 계속 앞으로 전진해서 터치다운 라인을 통과하면 6점을 얻고, 추가적으로 키커의 슛으로 1점을 더 얻을 수 있다. 터치다운을 포기하고 아예 필드골을 노리고 킥으로만 3점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세부 규칙과 작전이 있다.

각각의 공격 시간은 짧고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얼핏 보면 플레이 시간보다 작전을 짜고 공수를 교대하는 시간이 더 길어 보이기도 한다.

 

또 한 팀에 무려 50명이 넘는 선수가 등록되어 있고, 공격/수비/스페셜 팀으로 나뉘며, 상황이 바뀔 때마다 팀도 계속해서 바뀐다. 왜 한 팀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어야 하냐고, 왜 공격과 수비를 계속 바꿔서 경기 흐름을 끊냐고, 그러면서 돈은 많이 받는 게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냐고 불평을 쏟던 친구의 질문이 충분히 이해는 된다. 축구와 럭비에 익숙한 유럽인들이 미식축구를 야구와 더불어 ‘게으르게 경기하면서 돈은 많이 받는 스포츠’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유럽인들에게는 미식축구가 효율적이지 못하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종목으로 보일 것이다.

미식축구와 럭비는 팀으로 뭉쳐서 상대팀의 수비를 넘어 땅을 차지하면서 전진해나간다는 기본 개념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장비나 포메이션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결정적으로, 럭비는 시도 때도 없이 팀을 바꾸지 않는다.

지루해 보이는 이 종목이 미국 내에서만 유독 인기가 많은 이유는, 미식축구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 아닐까. 북아메리카 대륙 동부에서 시작해서 서부까지 개척해나갔던 그들의 선조처럼, 가로막는 장애물을 헤쳐가며 터치다운 라인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나가는 모습에서 미국인들은 희열을 느낀다.

 

그 인기를 반증하듯 미국 영화들 중에는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다.

으레 스포츠 소재 영화들이 그렇듯, 대부분의 영화들이 인간 승리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식 플롯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스포츠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때 그 감동이 배가 된다.

인종 차별을 극복하는 70년대 고교 풋볼 팀의 이야기를 다룬 [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 역시 70년대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 빈스 퍼팔리(Vince Papele)의 성공 신화를 다룬 [인빈서블](Invincible), 비행청소년들로 미식축구 팀을 구성해나가는 [그리다이언 갱](Gridiron Gang),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오어(Michael Ohe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등이 있다.

실화는 아니지만 미식축구 관련 영화 중 유명한 작품은 대표적으로 톰 크루즈 주연의 [제리 맥과이어](Jerry Majuire)가 있다. 제리 맥과이어에서는 선수가 아닌 에이전트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또 아담 샌들러 주연의 유쾌한 영화 [롱기스트 야드](TheLongest Yard. 1974년 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가 있고 국내의 [과속 스캔들]의 할리우드판 리메이크 [게임 플랜](The Game Plan)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미식축구 하면 생각나는 작품은 일본의 코믹 만화 [아이실드 21]이다. 센스 있는 웃음코드를 유지하면서 소년만화와 스포츠만화의 장점을 가져온 스토리를 갖추고 있어서 내내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시각적인 설명과 특징만을 강조한 만화다운 작화 덕에 경기 규칙이나 작전을 이해하기에도 쉬웠다.



스포츠 한 종목에 재미를 붙이려면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만큼 고작 한 경기를 본 걸로 미식축구를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미식축구에 열광하는지 언뜻 들여다볼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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