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녀노 Jul 16. 2016

메이저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는 야구장

터너 필드(Turner Field) in ATL

터너 필드(Turner Field)는 MLB 소속 애틀랜타 브레이브스(Atlanta Braves) 구단의 홈구장이다.

이곳은 1996년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의 주 경기장으로 건설되었지만, 올림픽 종료 이후 야구장으로 개조되었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20년간 사용해왔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메이저리그 초창기부터 존재해 온 몇 안 되는 팀들 중에 하나다. 다른 유서 깊은 구단들이 그렇듯이 브레이브스 역시 팀명과 지역 연고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애틀랜타에 정착한 것은 50년이 조금 넘었다.

 

2016 시즌을 기점으로 많은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브레이브스 소속 선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져 있는데, 2009년 WBC에서 ‘의사 봉중근’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봉중근 선수(현 LG 트윈스)가 02~03 시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브레이브스는 90년대 후반 이후 상당히 오랫동안 암흑기를 걷고 있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알아주는 강팀 중 하나였고 이들에게 포스트 시즌 진출은 너무나 당연했으며 문제는 우승을 하느냐 마느냐였지만,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하며 언젠가 다시 돌아올 전성기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야구팬으로서 드디어 본토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게 된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뭔가 웅대하고 장엄한 인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막상 터너 필드에 들어서서 받은 첫인상은, 상당히 고즈넉하다는 것이었다.

표 검사 이후 바로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당이라고 할까, 입구와 경기장 사이에 널찍한 공간이 있었고 양 옆으로는 음식점들과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었다.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전형적인 남부 느낌이었다. 카우보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막을 지나다가 마을을 발견하고 바에 들어갔을 때 볼 수 있는 모습이랄까. 목재 건물들과 네온사인, 그리고 바비큐 냄새가 그랬다.

또 경기장 자체는, 작았다.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무조건 넓을 것이라고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시절부터 잠실 야구장만 가보았던 필자에게는 비교 대상이 잠실 구장밖에 없었다. 잠실보다도 확실히 작은 느낌이어서 나중에 펜스까지의 거리를 찾아보았는데, 터너필드의 좌/우/중앙 펜스 거리는 모두 122m였다. 좌/우 거리는 오히려 잠실 야구장보다 2m가량 길고, 중앙 펜스는 3m가량 짧았다. 수치상으로는 비슷비슷한 크기였지만 첫인상 때문이었을까. 육안으로는 아담한 느낌이었고, 다시 사진을 보아도 그렇다.


잠실구장 외야를 보면 한쪽에는 두산, 다른 한쪽에는 LG의 광고가 크게 걸려있다. 터너 필드에는 델타항공과 코카콜라의 광고가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자신들의 시그니처 보틀 모양으로, 델타는 로고로. 


놀랐던 또 다른 점은, 경기장에 관중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색이 메이저리그인데, KBO의 평일 경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구단 성적이 오랫동안 침체기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브레이브스 구단이 홈구장을 옮기는 이유 중 하나도 성적과 흥행 모두에서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야구장에서는 보는 것만큼이나 먹는 것도 중요하다. 경기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가 더 기억에 남는 경우도 많다. 필자가 선택한 메뉴는 칙필레(Chick-Fil-A)였다. 칙필레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동남부에 지점이 집중되어있는 닭고기 전문 패스트푸드점이다. 창업자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성경의 교리를 따라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데도 매장 당 매출액은 미국 패스트푸드 브랜드 중 1위를 기록하는 브랜드다. 서비스와 고객 만족도 역시 최상위권이다. 필자가 선택한 스파이시 치킨 샌드위치는, 글쎄. 맛은 있었지만 아쉽게도 특출난 맛은 아니었다.

경기는 지루했다. 긴장감 넘치는 명품 투수전이 펼쳐진 것도 아니고, 홈런이 펑펑 터지는 타격전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상대팀은 일찌감치 점수를 벌리며 승기를 잡았고, 브레이브스는 몇 점 따라가기는 했지만 역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이기는 게임이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야구장에 가면 지고 있더라도 응원을 하면서 즐길 수는 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는 이런 단체 응원 문화가 없다 보니 경기가 루즈해지면 관객들까지 함께 루즈해진다. 같이 간 유럽 친구들은 미식축구에 이어 야구에도 정을 붙이지 못한 채 경기보다는 기념품과 먹는 것에 더 관심을 쏟았다.



사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터너필드에서 경기를 펼치는 것은 이번 2016 시즌이 마지막이다.

애초에 올림픽 이후 20년 계약으로 터너필드를 임대하고 있던 브레이브스 구단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새로운 경기장 건설을 결정한다. 주 이유는 현재 터너필드가 들어선 애틀랜타 남부에는 실제 야구장을 찾는 백인들의 거주 비율이 낮아 이들이 구장을 찾는데에 불편함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애틀랜타는 남/북으로 각각 흑인/백인의 거주 비율이 높다. 흑인들은 주로 그 옆에 있는 조지아 돔에 미식축구를 보러 간다) 그래서 백인 거주 비율이 높은 애틀랜타 동북부 외곽에 현재 썬트러스트 파크(SunTrust Park)가 건설 마무리 단계에 있고, 내년이면 새로운 야구장에서 경기가 열린다.

이에 대해 만들어진지 20년밖에 되지 않은, 아직 충분히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구장을 두고 새로운 구장을 짓는 건 지나친 자본 낭비라는 의견과 팬들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려력이 있는지 판단할 입장은 아니지만, 신 구장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메이저리그는 스폰서 기업이 대부분의 건설 자금을 출자한다. 또 미국 야구는 한국과는 다르게 대기업의 이미지 관리, 혹은 사회 공헌 관점에서 운영되는 단체가 아니라 실제로 수익을 창출하는 하나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오히려 논점이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다. 

기존 구장을 아예 허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대학 야구팀이 사용할 예정이다) 사회 인프라 확장이라는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즉 구단 측에서 말하는 것처럼, 비즈니스로서의 야구단이 돈을 더 벌기 위해 많은 수요와 소비자들이 있는 지역으로 가서 사업을 펼치겠다는 간단한 논리가 힘을 가진다. 이 과정에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부가적인 지역 경제의 이익이 생기고 팬들에게는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반대할 명분은 약해진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한 구단의 팬이 되는 데에는 지역 연고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미국에서 채 일 년도 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집이 그곳에 있었다는 느낌 때문일까. 한국에 돌아온 지금에도 브레이브스의 소식을 챙겨보는 편이다. 

브레이브스가 하루빨리 암흑기에서 벗어나 다시 이름을 날리는 시기가 오길 바라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번 시즌도 역시 전망이 어둡다. 7월 16일 기준으로 브레이브스가 속해있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5개 팀 중 5위, 승패 차는 -28, 승률은 0.344이다. 

새로운 구장에 가서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는 코믹콘만 있는 게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