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간식으로 조미 오징어채를 전자레인지에 구워서 먹었습니다. 오징어를 말리기 전에 껍질을 제거하고 결대로 찢어낸 녀석입니다. 반찬으로도 자주 쓰이고, 진미채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이 녀석을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고 전자레인지에서 30초 정도 돌려 수분을 조금 날리면 고소함과 바삭함이 살아납니다. 간식으로 제법 괜찮습니다.
자꾸 손이 간다는 점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계속해서 떠오른다는 점 말고는 별 생각이 없어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밀린 드라마나 유튜브를 흥청망청 틀어놓고 한 개, 두 개 집어 먹다 보면 어느새 접시가 비어있는 그런 종류의 간식입니다. 그래서 오징어채를 간식으로 먹을 때는 약간의 자제력이 필요합니다. 한 접시로 끝내기에는 늘 아쉽고, 두 접시째에 접어들면 맥주는 더욱 간절해지고 턱이 슬슬 저려옵니다. 그쯤에서 의식적으로 접시를 치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멍하니 오징어채를 우물거리다 보면, 쓸데없는 감상을 줄일수록 사는 것의 무게가 덜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이런 말을? 조금 웃길 수도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의 사유란 대개 이런 하찮은 순간에 생겨나곤 합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마른 오징어처럼 지내는 쪽을 택해왔습니다. 수분이 빠진 상태가 오래 버티기에는 유리하다고, 꽤 건조한 논리를 세워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바짝 마른 오징어보다는 반건조 오징어가 턱도 덜 아프고, 무엇보다 더 맛있는 편입니다. 오징어채를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잔인하게 오래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30초 정도. 약간의 수분감을 머금고 있지만 분명 촉촉하다고 할 수는 없는, 그런 상태여야 두 접시를 먹는 내내 만족감이 유지됩니다.
만족이라는 감정은 대체로 무언가 부족한 자리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결핍은 불편하지만, 모자란 상태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크게 반응하는 법이니까요. 삶에 있어서 약간의 결핍은 가성비 좋은 만족을 얻는 데 꽤 도움이 됩니다. 완전히 마르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젖지도 않은 상태. 바삭함이 사라지기 직전의 오징어채처럼 말입니다. 다만 나는 그보다는 조금 더 바짝 마른 쪽으로 살아온 것 같긴 합니다만.
조금 더 먹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는 상태로 접시를 치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내가 종종 느끼는 결핍이란, 실제로 무언가 모자란 상태라기 보다는 더 이상 먹지 말자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져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러니까, 맥주는 늘 손 닿는 곳에 있었습니다만, 나는 그 앞에서 번번이 멈춰 서 있었던 셈입니다. 실컷 즐기는 것에 대해 어떤 종류의 죄책감이 작동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늘 100%를 즐기지 않고 약간 모자란 상태에서 자제력을 발휘하여 원하는 것들을 참아온 순간들이 모여 만성적인 결핍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대신, 보리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내가 필요했던 것은 갈증을 단숨에 날려줄 가득 찬 맥주 한 잔이 아니라,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