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도넛

'내일의 도넛'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by 욘킴

목요일 오전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크리스피 크림이라던지, 노티드와 같이 내가 좋아하는 가게의 도넛을 사치스러울 정도로 잔뜩 주문하는 것. 그리고 양손에 쥔 채로 마치 '내일의 도넛'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먹어 치우는 것입니다.

갓 구워낸 옅은 갈색의 도넛들이 질서 정연하게 누워 있는 상자(나의 선택은 언제나 크리스피 크림입니다) 나는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아무 장식 없는 도넛 한 개를 꺼내 들어 한 입 크게 베어 뭅니다. 사치스러운 달콤함이 혀 위에 사르르 녹아내리다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다음으로는 까슬까슬한 설탕 옷이 입혀진 도넛, 이 역시 금세 사라집니다. 다음은 진한 밀크초콜릿을 입혀 스프링클을 뿌린 도넛...

입안이 어지러울 지경으로 달아질 때쯤, 쌉싸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는 것도 잊어선 안됩니다. 차가운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입안 가득하던 달콤함을 파도처럼 씻어냅니다. 푸하, 하는 개운한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마지막 도넛까지 기어이 해치운 뒤 손가락 끝을 쪽쪽 핥아 먹다 보면, 나는 잠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문득 나라는 사람이 일생 동안 찾을 수 있는 최선의 행복은 의외로 크리스피 크림 박스 안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물론 그 행복에는 꽤나 비싼 통행료를 치러야 하겠지만요. 사악한 칼로리와 건강에 대한 죄책감, 지퍼가 빠듯하게 잠기게 된 청바지, 야속하게도 앞자리가 바뀌어버린 체중계의 숫자 같은 것들.

믈론 세상에는 더 우아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를테면 보송하게 잘 말려 착착 접어둔 이불 커버를 바꾼다거나, 창가에 앉아 건너편 집 나무에 앉은 멧비둘기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우아하고 정적인 위로만으로는 도저히 메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고된 일주일의 허리가 비로소 꺾이는 목요일 오전과 같은 순간 말이죠.

주말은 아직 멀었지만, 월요일만큼 아득하게 느껴지진 않는 묘한 시점. 이번 한 주도 어떻게든 살아냈다는 안도감 뒤에, 대체 언제쯤 이 생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은 막연함이 안개처럼 찾아옵니다. 그런 종류의 감정에는 대놓고 달달한 위로가 제격입니다. 그런 날의 도넛은 언제나 기대한 것 이상으로 달콤하고, 녹진하고 부드럽습니다. 마치 나라는 사람의 영혼을 통째로 설탕물에 담갔다가 꺼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먹은 만큼을 덜어내려면 러닝머신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시간은 달려야 할 것입니다. 무료함을 견디는 것은 덤이고요. 이런 식의 탐닉 뒤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어차피 하기 싫고 고단한 일들과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일들의 굴곡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사는 것이 생의 본질입니다. 가끔은 뒷일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도넛 한 상자를 흥청망청 비워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운 날도 있는 법이지요.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손가락 끝에 남은 달콤한 여운을 충분히 음미하는 일입니다.

자, 이제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스템 속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낑낑거리며 지퍼를 올려야 하는 청바지라던지, 바닥에 조금 흘린 스프링클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니다. 다시는 없을 오늘의 도넛을 충분히 만끽했으니까요. 뭐 우선은, 그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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