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랩탑과 사원증 반납하시고,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랩탑과 사원증을 반납하고,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볼펜 끝에서 서각서각 소리가 났습니다.
“다 된 건가요?”
“네.”
“다른 체크해야 할 건 없고요?”
“네, 생각보다 별 것 없죠?”
“그러네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출근 마지막 날, 회사 디바이스를 관리하는 담당자분의 친절한 배웅을 받으며 회사를 나섰습니다. 어디에서든 행복한 날들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넉넉한 덕담이 뒤따랐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4년의 시간이 그렇게 간단하게, 수월하게, 큰 문제도 별 탈도 없이 조용하게 끝이 났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날이 몹시 추웠고, 버스는 올 기미가 없었습니다. 전광판에 17분이라는 숫자가 무심하게 띄워져 있었습니다. 나는 가방을 끌어안은 채 벤치에 앉았습니다. 늘 어깨를 짓누르던 출근 가방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텅 비어있었습니다. 뭐랄까, 비현실적 일정도로 가벼웠습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소한 허전함이었습니다.
4년의 시간, 견고하던 소속감,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매일 되묻던 의문들, 더 잘 해내야 한다며 자신을 코너로 몰아넣던 압박감. 그것들로부터 해방되면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나니 시원함보다는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이 휑한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헛헛한 기분과 함께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음의 소리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다시 전광판을 보았습니다. 12분.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한두 정거장을 걷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점차 멀어지는 회사 건물을 돌아보았습니다. 평소보다 묘하게 높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테헤란로의 빌딩들은 대개 그런 식입니다. 밖에서 보면 분명한 용건이나 친분 없이는 발을 들일 수 없을 것 같은 배타적인 아우라를 내뿜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 안에서 밥벌이를 하다 보면, 결국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사무실이 있고, 화장실이 있고, 점심시간을 5분 정도 단축해 주는 은밀한 지름길이 있는 공간. 이제 나에게 그 건물은 화장실이 급할 때 잠시 들르거나, 고급스런 카페가 있는 평범한 빌딩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마 그 커피를 굳이 마시러 갈 일은 거의 없겠습니다만.
입사 첫날 웰컴 키트를 열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랩탑, 티셔츠, 텀블러, 우산, 노트, 사원증 카드를 넣을 수 있는 가죽 케이스. 모든 것에 회사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 꾸러미를 열어보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묵직해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던 5월의 초여름, 첫 출근일. 그 눈부신 날씨는 공부와 인터뷰, 이력서 사이를 방황하던 나의 캄캄했던 시간들에 대한 근사한 보상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든 게 서툴던 시간, 선배에게 슬쩍 물었었습니다.
“퇴근은 몇 시쯤 하는 게 좋을까요?”
“불 꺼지면 퇴근해.”
선배는 짧게 답했고, 나는 더 되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회사의 불이 밤 11시 반이 되어야 꺼진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나머지 공부를 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동료들과 간식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불이 꺼지면 비로소 퇴근했습니다. 조금 미련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딱히 퇴근 후에 할 일도 없던 내게 그런 생활은 썩 나쁘지 않은 리듬이었습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휩쓸던 시기에는 모두가 흩어져 집에서 일했습니다. 나는 스마트 전구를 사서 밤 11시 반이면 자동으로 불이 꺼지도록 설정해 두었습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고양이를 실컷 만지면서 일하는 건 꽤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그러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케이스에 봉착하면 사내 메신저를 훑어보았습니다. 늘 밤늦도록 메신저 불을 밝히고 있는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등대라 부르며 농담을 주고받았고, 각자의 바구니에 담긴 고민들을 테이블 위에 쏟아놓고 함께 머리를 맞댔습니다.
날이 밝으면 시작되고,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멈추던 업무 루틴.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매일매일이 꽤 거대한 챌린지였던 날들. 두 번 다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 수는 없을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비로소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한두 정거장만 걸으려던 계획은 빗나갔습니다. 터벅터벅 걷다 보니 버스를 타기엔 너무 가깝고, 계속 걷기엔 조금 먼 지점까지 와버린 것입니다. 찬바람을 너무 오래 쐰 탓인지 으슬으슬 한기가 돌고 이마가 뜨끈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걸어서 퇴근하는 건 처음이니까,라는 고집이 나를 계속 걷게 했습니다.
집에서 2km 정도 남았을 때,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습니다. ‘이러다 감기에 걸리는 게 아닐까.’ 그리고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마는 걸까요? 어찌어찌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참았던 재채기를 터뜨렸습니다. 엣-취
그 후로 열흘 동안, 나는 지독한 감기 몸살에 시달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독감도 코로나도 아닌, 그저 조금 독한 감기일 뿐이란 진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내가 ‘퇴사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퇴사 몸살이라니, 그게 대체 뭐냐고 내가 묻자, 가족들은 그동안 회사에서 몸속 깊숙이 쌓인 독소(?) 같은 것이 빠져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그게 아니라, 찬 바람을 맞으면서 1시간을 걸어서 그렇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20년을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한 달 넘게 기침을 달고 살았던 엄마가 꽤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기에, 어쩌면 정말 퇴사 몸살이라는 병이 있을 거란 생각이 스쳤습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감기라는 이름을 빌려 한꺼번에 느슨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어찌 됐건 재수 없게 감기에 걸려 편히 쉬지도 못하고 끙끙 앓는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나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며 눈을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