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진짜로 왜 하는거야?
시간은 참 쉽게 흐르는 법이라 돌아보니 어느새라고 할 만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어느새의 시간과 맞바꾸어 길게 한 고민, 차분한 생각, 계속된 작은 삶의 실험들을 거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생겼습니다. 다만 먼지 만큼이나 가벼운 글입니다.
하나. 사업에 관하여
사업준비를 하노라고 워낙 여러 지인들을 찾아가 괴롭혔던 탓에 계속해서 질문을 받습니다. "준비는 잘 되가니?" 그럴때마다 공통된 대답은 "몸이 별로 좋지 않고, 사업의 의미를 못 찾고 있습니다."였습니다. 지겹도록 가시지 않는 온 어깨, 무릎, 골반 등의 통증은 우선 제쳐놓고 저 '의미'라는 것에 대해서 좀 이야기 할까 싶습니다.
대략 10년 정도 전에 여행을 떠난적이 있습니다. 꽤 길었던 여행동안 사업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채로 홀리듯이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속에 나를 묶었던 것 같습니다만 정말로 그 이후로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내 삶의 명제로서 그 단어가 크게 작용해왔습니다. 벤처동아리, 스타트업에서의 생활, 회계사로의 방향 전환, 스타트업들의 자문 역할, 그리고 스스로 사업을 준비하기까지 그 10년은 참 쉬지 않고 달려왔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고객은 누구인가, 풀어야 할 문제와 서비스는 어떤식이고 자금은 어떻게, 영업은 어떻게, 멤버는 누구와 할것인가 산적해 있는 이런 문제들보다 훨씬 큰 고민이자 해소되지 않았던 문제는 이것을 통하여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또 가야하는 방향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던 차에 워렌버핏이라는 아저씨가 얘기하셨다는 방법을 한 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아마 난 하고 싶은게 없다는 고민과 반대편에 있지만 같은 뜻이지 않을까요) 먼저 하고 싶은 일 20여개를 주욱 나열한 후 그 중에 5개를 골라라. 그러면 나머지 15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 해야하는 일은 그 5개와 함께 놓치고 싶지 않은 나머지 15개도 잘하려고 노력하는게 아니라 그 5개를 성공하기 전까지 그 15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는 지난번 불안과 비움에 대한 글의 연장선상이자, 아주 좋아하는 책들인 'the one thing', '단' 과 같은 책들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 관심있는 것들을 주루룩 나열해 보았습니다. 주로 관심이 있었던 사업이나 회계, 음악과 같은 분야들 뿐 아니라 건축이나 언어, 미술, 공연, 글과 공예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에서 30여가지 목록들이 나왔습니다. 거기서 다섯가지를 추려내려고 하다 문득 두 가지 항목을 추가해 보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것' 옆에 '그것을 하면 얻게될 결과물의 형태'와 '그 결과물을 통하여 내가 얻게될 궁극적인 목적이자 왜 나는 그것을 하려하는가'를 써보기로 한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회계지식을 잘 정리하여 교육과정을 만들거나 책을 써보기' -> '좋은 강사가 되는 것, 많은 이들이 쉽게 회계지식을 갖게 되는것, 교육과정으로 수익을 얻는것' -> '뇌가 좀 섹시하게 보이고 불특정다수에게 지식을 남기는 멋진 사람이 되는것인가..?'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문제는 그 30여가지들에 대해서 '왜'라는 항목을 쓰려는 순간에 나타났습니다. 당황스러웠던 것이 위의 예에서도 물음표를 달아놓았듯 대체 정말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에게 묻자 아차, '모르겠더라'는 겁니다.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하게 쓰는 대답에서까지 흔히 여러 회사의 비전에서 등장하듯 '탁월함을 추구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고 고객만족을 제공하여 조국의 안녕에 이바지하고 세계를 정복하여 인류의 행복과 우주의 평화와 에라 모르겠다 사실은 회장님과 비선실새님과 주주님의 통장잔고를 불려드리고 어쩌고 등등등...'하는 식의 수식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서 그랬던 걸까요. 나에게 있어 지난 10년 동안의 당위였던 '지식을 쌓아서 창업한 이들을 돕고 나도 사업을 시작한다'라는 의지가 그 자체로서 동력이 되어 정신없이 나의 경험을 쌓게 해준 이유가 되었을지 몰라도 실은 그것을 통해서 내가 정말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몰랐다는 고백같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 고민의 무렵에 알게된 한 명의 여자분을 마주하며 생각해보니 '어? 나는 결국에는 이런저런 성취를 이뤄냄으로서 저 여자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이런 사업을 벌이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아주 낭만적인 이야기이긴한데 안타깝게도 그 여자분에게는 전혀 멋있게 보이지 못하였습니다..ㅜ) 아무튼 그 모든 목록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포장할 필요없는 솔직한 나의 내면을 마주본 결과는 냉혹하게도 참담했습니다.
내게는 실상 별 목적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것을 이뤄낸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도취되거나 인정받고자 하는 정도 밖에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사실이, 나는 그래도 삶의 목적을 자신의 부유함이나 안락함에 두지 않는다는 것에나 자존심을 느낀다는 사실이 온통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움에 휩싸인 채로 그 목록들을 살펴보다가 그제서야 한 번 더 아차, 순서가 반대방향이구나 깨달았습니다. 내 삶의 순서가 '하고 싶은것' -> '결과물' -> '그것을 통한 목적'이 아니라 '이루고자하는 목적' -> '그 수단으로서의 결과물' -> '그래서 내가 하여야 하는 것'으로 역순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입니다.
지금도 구상하던 사업에 대해서는 한 번쯤 도전해 볼만한 재미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여전히 '그것을 통하여 진정으로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모르겠다'인 상태이고, 사업이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당장에 그럴듯해보이는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행위 보다는 진정으로 이루어야 하는 목적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 모든 것들을 솔직히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사업은 잘되가니?"에 대한 답으로 "몸이 안좋아서 그냥 쉬어요" 라고 얘기하고는 합니다. 아, 어쩌면 몸이 이렇게도 계속 아픈것은 지난 10년간 나를 지탱해왔던 명제가 사라졌기 때문이거나 진실로 목적을 찾는 행위 자체가 버겁기 떄문이거나 혹은 그 행위에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면서 흔들릴 때 오는 스트레스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둘. 균형에 관하여
진정으로 목적하는 바를 찾고 있는 나의 여정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할까 합니다. 종종 이런 얘기를 듣거나 보거나 합니다. '퇴사를 했으면(준비중이라면) 세계여행(또는 전문성을 어떻게하고 평판은 어떻게하고 이직준비는 어떻게 하고 이걸해야하고 저걸해야하고 등등등…)을 해야해'라는 얘기들 말입니다.
아니 대체 실컷 어렵게 들어간 회사 퇴사까지 한(하려는) 마당에 모범 답안 같은 게 어디있겠습니까. 게다가 내 통장잔고가 언제 바닥날까, 선배들이 얘기하던 내 커리어가 어떻게 되는걸까 벌벌 떠는데에, 혹은 나를 위하는 듯 자기 생각만 가득한 이들의 과시와 오지랖에 휘둘리는데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언뜻 멋져보이는 저 여행가의 체크리스트를 저장해 놓았다가 어느새 또 다른 사업가의 체크리스트를 찾기를 반복하는 것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퇴사(또는 준비)를 하기에 해야하는 일은 일방적으로 세계여행을 하는 것, 노마드가 되는 것, 창업을 하는 것, 1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것, 비용을 줄이고 돈을 모으는 것, 더 그럴듯 해 보이고 더 많은 이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등등등등…. 뭐가 되었든 그 모든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그런 것들 모든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앞서 단 한 가지, '내'가 찾은 방식으로 해야한다는 원칙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하여 비록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식으로 그 누가 왜 그런 방식으로 삶을 사느냐 해도 어쩔 수 없는 '나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찾거나 그 목적을 실천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 균형의 주체는 온전한 나 자신이어야 할 것이겠지요.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내 삶의 균형감각을 유지할지 찾기 위해서 그 원칙인 '내'가 찾고자 하는 방식을 이렇게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말이 행동보다 백배는 더 쉽습니다ㅜ)
첫번째, 특정(혹은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하지 않는다.
아주 많은 강연 같은데 나오는 라캉이라는 아저씨가 하셨다는 그 '타자가 욕망하는걸 욕망한다' 였던가 아무튼 그 얘기입니다. 특정 행위에 대하여 (실은 엄마가 오구오구 하니까, 샘이 쓰담쓰담 하니까, 학교 후배들이 우와우와 하니까, 여친이 하트하트 하니까, 직장 선배들이 이열이열 하니까 무려 먼친척, 엄마 친구, -중략-, 저기 어디 모르는 듀오 아줌마나 아만다 점수나 불특정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도 좋아라 해주니까 그게 좋아서이지만 그것은 덮어두고) 나는 그 행위를 진짜로 좋아하는거야라고 나에게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 여자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 나의 안락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자존심 또한 실상 더 큰 인정을 받기 위함은 아닐까'하는 부끄러움이 나를 사로 잡히게 만듭니다. 그 행위 속의 진실한 목적은 진짜로 그 행위 자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다'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두번째, 남이 만든 이미지에서 발생한 것인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 착각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회계 일을 시작하는 동기들이나 후배들께(선배들께는 못 물어봤지만 감히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추정합니다) 앞으로 뭐가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음 경력쌓아서 (유명한) IB나 외국계 같은데 갔다가 (또한 유명한) 사모펀드에 갔다가 (또한 유명한) CFO가 되는거예요"라는 똑같은 대답을 들을 때가 아주아주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직장명이나 직함, 표면적인 직무만 그야말로 난무하고 그 길에서 무엇을 왜 할지에 대한 대답은 "그게 돈을 제일 많이 벌 수 있을 거니까요" 외에는 예외없이 "몰라요" 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앞서 그 질문을 내게 대입했을 때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이런 현상이 어째서 생겨난걸까 생각해보니 '이미지'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가도 싶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나 네이버 일면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멋지게 등장하거나 대학때 선망하던 선배에게 늘 들어왔거나 근사한 헐리웃 영화에 나온 배우가 오버랩되거나 한 그런 '이미지'들 말입니다. 사실 내가 적었던 30여 가지 목록들의 많은 것들 속에는 공통된 '이미지'로서 '쇼생크탈출'이라는 영화의 팀로빈스 역할이 등장하고는 합니다. 20년 전 쯤 우연히 봤던 그 영화 속 주인공의 '이미지'가 나에게는 너무 강해서 조용히 혼자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행위가 좋고 어떤 종류의 환경이나 불합리한 인식에 갇히는게 견딜 수 없는 성격 조차도 그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행위를 할때는 나도 그 '이미지' 속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니까요.
세번째, 편하게 조합된 일을 하지 않는다.
종종 무슨일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상황에서 나오는 결론이 나의 과거를 적당히 조합해서 나오는 것인데 그 결론이 나름 그럴싸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나는 1. 일본어를 할 줄 알고, 2. 스타트업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하기 좋아하고 3. 회계사니까 이걸 조합해서 나를 '한국-일본 스타트업 전문 회계사다'라고 하고서는 이것이 마치 내가 정말 해야하는 일인 듯 믿게되는 일 입니다. 이런 조합은 내가 관심있거나 한 번쯤 발담궜거나 하는 모든 데에서 무궁무진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조합을 하면 할 수록 왠지 내가 좀 으쓱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급기야 조합하는 것 자체에 가치를 느끼면서 고민없이 일사천리로 믿어버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깊이 있는 고민과 시도를 하지 않은 채 "야 이 아이템 대박이니까 돈만 있으면(니가 좀 구해주면) 돼"하고 손쉽게 얘기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혹은 내가 그러하고 싶을 때 느껴지는 당혹스러움도 이 '편하게 조합'하려는 데에서 나타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네번째, 1차적인 욕망이나 남의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다.
1차적인 욕망을 돈(차, 집, 사랑, 인정, 명예, 맛있는것, 멋진것, 뭐든 내게 결핍된 것)을 갖고 싶다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그 수단으로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하는 그 얘기가 늘 달갑지가 않습니다. 왜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겁니까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어야지. (아 물론 사랑을 받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나도 사랑할 수 있고 그렇긴 하겠습니다마는) '야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러는거지'라고 편한 결론을 내려버리거나 '1차적인 욕망에 솔직한 것 자체가 쿨한거야'라고 여기는 것을 항상 경계하고 남들이 하나 둘 셋 그렇게 얘기하기에 나의 가치가 정립되지 아니한채로 그것에 휩쓸리고 싶지는 정말 않습니다.
다섯째, 안전장치 없이 뛰어들지 않고 동시에 안전장치에만 매달려 살지도 않는다.
7년 전 언젠가 회계를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무렵,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 어느정도는 나의 안전장치가 되어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하는 일들이란 것이 회계법인에서 일하던 당시와 겹치는 부분이 꽤 있기는 하지만 사실 회계사라는 자격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 대부분입니다. 후세에 거슬러 지금을 돌아보면 산업혁명에 준하는 혁명적인 시기로 불리게 될지도 모를만큼 산업의 모든 부분에서 패러다임이 흔들흔들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자격증으로 제한해 놓은 일의 형태에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일이고 자격증으로 제한해 놓는 일 자체를 지키기 위해 법이나 정치에만 기대어 밥그릇에 부둥켜 매달리는 것에 대해선 굳이 말로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물론 법으로 회계사의 고유업무로 제한된 밥그릇이 있다는 것이 안전장치가 되지 않는다거나 그 법의 취지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분야나 당연히 그러하듯 가장 큰 안전장치는 내가 어떤 자격증을 가졌느냐에서가 아니라 능력으로서 내가 어떤 자격이 있느냐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당연히 나는 그 후자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완전히 가만히 내버려둔다.
지난 많았던 여행에서 자주 멍하게 날 내버려 두었을 때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봤더니 조용히 혼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즐기는 것이 좋은 사람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여행지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굳이 찾아서 하지는 않는 편이라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왠 사람이 와서 "야 게스트하우스에 왔으면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늦게까지 술도 먹고 하는거야"라는 말을 했을 때 정말 '이 자식이'라는 말이 불쑥 입 밖으로 나올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무슨 되도 않은 규칙이 그렇게도 많다는 것인지. 아무튼 퇴사를 한 이후에 그렇게 "뭐도 해야 되고 하는거야"하는 규칙 따위 하나도 없는 상태로,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기에 오히려 무엇을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간이 주어지니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별 상관없고 뭔가 다 귀찮기도 하고 멍하던 시간을 거치며 또한 알게된 사실이 있다면 별반 다를바 없이 나는 여전히 글을 더 쓰고 그림을 더 그리고 음악을 더 즐기는 사람이고 또한 그것들을 '더욱 잘 & 자주' 하기를 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여섯가지 원칙들로 나를 필터링 해가다보면 그 진짜 목적을 찾고자 하는 험난한 여정이 그야말로 만신창이 되곤 합니다. 그 하나하나에 필터링 되지 않고 안주하여 잘 사는 것이 뭐 어때서 스스로 반문해 보아도 아무래도 나의 행복은 그 어딘가의 지점에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어딘가의 지점에서 온전한 행복을 느끼는 다른 이들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 필터들은 '나의 균형'을 찾기 위한 방편이니까요. 그래서 여전히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적하느냐 하는 대답은 '잘 모르겠다'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글과 그림, 음악을 대하는 그 순간 목적 자체를 생각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목적하는 바는 알 수 없으나 외려 그 어떤 목적을 의식하지 않고 그 시간을 즐기는 때도 있더라는 사실 속에 중요한 열쇠가 숨어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셋. 자유에 관하여
목적을 상실한 채 보냈던 지난 8개월 정도의 시간동안 '나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총 8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사업을 하지 않고 특정 회계법인이나 기업체, 기관에 소속되지도 않고 독립한 회계사들의 전형적인 업무인 기장이나 세무신고, 감사 또는 딜의 주체가 되지도 않고 출퇴근 없이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고 동시에 재활운동, 음악, 인생의 목적 찾기를 병행할 수 있을 것. 이 조건들을 다 만족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그럭저럭 조건을 만족하면서도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일들이었냐 하면, '나에게는 첫사랑 같은 스타트업이자 이 지상 최고의 여행 플랫폼인 스투비플래너에서의 모바일 기획 작업(7~8월) / 하청으로 참여했던 밸류에이션 작업들(8~9월) / 좋아하는 형님이 계신 해외운용사의 국내 펀드설립 제안서 작업(11월) / 멋진 후배의 수입업체 원가 정리작업(8월) / 최고의 바이아웃 PE(가 곧 될 것이 틀림없는) 운용사의 M&A건 IM작업(12~3월) / 정말 똘똘한 역직구 스타트업의 IR 자료 작업(11월) / 또한 너무 똘똘한 O2O 스타트업의 연결 작업(2월)' 이런 식이었습니다. 아, 그 사이에 어깨 부상으로 꼼짝 못하고 한 달간 침대 신세를 진것(10월)도 있네요ㅜ
언뜻 두서없는 이런 일들이 '나의 균형'이나 글이나 그림, 음악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딱딱하고 형식이 정해진 보고서이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데 서사적인 요소, 시각적인 요소들은 반드시 포함되는 법이고 그것을 버무려 만들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글과 그림이 가득한 (음악은 별로 아니더라도)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즐거움을 주는 때가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재미를 주는 일들 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내가 무슨무슨 전문가도 아니고 프리랜서 1인 기업가도 아니고 어떤 기업의 자문역도 사모펀드의 운용역도 아닙니다. 내가 알고 있는 티끌만한 지식으로 내가 대한민국 1호 뭐라는 둥, 처음 들어본 무슨 전문가인 누구고 어쩌고 포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은 치장에 불과한 일입니다. 나는 단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고 조금도 더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그렇게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한 번도 저 일들을 위하여 일부러 영업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과의 대화에만 충실하기 위해서 많은 모임과 관계들을 일부러라도 줄인 채 당분간 가능한 많은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고 조용히 지내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로 인해 끊어진 관계들에게 미안합니다.) 또한 저 일들은 회계사라는 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극히 일부 부분을 제외하고는 굳이 자격증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일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회계사로서 굳은 시야나 편견이 완성도에 저해가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술로 잘 영업 따오면 실무는 누가 나 대신 해주고 어떻게든 포맷 맞춰서 도장찍으면 끝날 일이 아니라 가장 높은 내적인 완성도를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일이 계속 지속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록 지금 월급이 없는 상태이지만 그에 아랑곳하지않고 돈을 얼마를 받건 아니면 받지 않더라도 별로 상관없이 단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하는가만 생각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하자면 돈에 대한 나의 관점은 당신과 비교하기(또는 비교당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무작정으로 많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아, 물론 이것도 말이 행동보다 백배는 쉽습니다ㅜ) 일부러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겠지만 주변에 비교하고 싶고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인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굳이 얼마를 버는지 써야할 까닭은 없습니다만, 이전 연봉에 훨씬 못미칠 지언정 그래도 내 삶의 균형을 맞추는데 전혀 어려움은 없으니 굳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일에서든 플랫폼으로 만드려는 욕구를 가지곤 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지렛대 삼아서 고정요소를 투입하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명히 의미가 있기도 하고 효율적이기도 생산적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행한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이윤를 추구하려고 하는 욕심을 낳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섵불리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지렛대 삼고싶은 마음을 먹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독점이든 경제학에서 나오는 지대인가? 하는 개념이든 야 내가 그래도 연봉을 이정도는 받아야지하는 마음이든 고정비를 요만큼 투입하면 이따만큼의 이익이 돌아올거야하는 계획이든 간에 비슷하게 '욕심'이 발생합니다. 그 욕심의 영역은 무조건 많으면 좋은 곳이 절대 아니라 스스로에게 엄격히 경계해야 하는 곳이고, 그 욕심의 영역에 접어들기 전이나 후에는 반드시 '그것으로 진짜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꼭 솔직한 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진짜로 자유롭고 싶습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내 얕은 욕구로부터, 플랫폼을 만들어내어 투입보다 너무 많은 이윤을 갖고자하는 욕심으로부터, 목적을 모른채(안다고 착각한채) 마구잡이로 내달리는 거짓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든 핑계는 끝이 없고 나에게도 핑계대고 싶은 일은 끝이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워짐으로서 나에게 얽매여 있는 중요하지 않은 그 수많은 것들을 비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 당부드리자면
길게 나의 이야기를 실컷 풀어서 써봤습니다. 프리랜서나 재택근무 그런 단어 하나로 규정될 것이 아닌 자고 싶을때 자고 떠나고 싶을때 떠나고 일이 있을때 일하고 하는 '자연'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찾고 있는 지금 시간들에 대하여 자주 부럽다는 말을 듣습니다. 꼭 그렇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이러한 나의 삶이 결코 독특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충분히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순간에 모든 요소로부터 자유를 찾고 싶지만 그렇다 하여 무슨 영화에 나올법한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것인양 '저녀석은 원래 도인같은 그런 놈이야' 그런 말이 갖는 선입견과 같은 생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 자유로우려면 일단 돈이 많아야지' 하는 그런 단순한 논리에도 맞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옳다고 세상에 그것을 주입하고 싶어 안달내는 삶을 살지도 않으려고 합니다.(오히려 애당초 내가 옳은 방향을 갈 수나 있을까 하는 쪽이니까요)
그렇기에 행여 바라건데 혹 누군가가 나의 궤적을 보며 저런 삶의 형태도 있구나 구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의 핑계에 맞서는 데에 도움 삼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대는 지금과 같은 하나의 획일화된 삶의 패턴을 강요하지 않고 '님아 건물주가 그냥짱임' 하는 사회에서 살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니 부디 귀찮더라도 "넌 아직 결혼을 안해봐서, 애가 없어서, 대출이 없어서, 뭐가 어때서 그래도 넌 뭐는 있어서 그런거고 저래서 저런거고 등등등 그래서 그런거야" 하며 인터넷댓글 마냥 빠르게 결론을 내어버리지 마시고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한계와 불안함을 곱씹어서 그에 무릎 꿇지 않는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물론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대출이 얼마가 되어도 '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비록 시간은 오래 걸릴지언정 핑계에 숨지는 절대 않을 작정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P.S 이런저런 생각을 거치면서 여전히 나에게 부끄러운 이 삶을 그래도 담담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직 고민의 연속이지만 머지 않은 시점에 나에게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올 것이라는 직감이 듭니다. 그리고 그보다는 조금 더 걸릴지 모르지만 내 삶의 목적을 찾게 될 것이란 직감 또한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하다면 기쁘게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