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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njinn Aug 24. 2016

#6. 퇴사 네달째. 질문에 답하기

그 누구보다 나에게


퇴사한지 어느새 네 달이 지났습니다.

한 주에 한 차례씩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듬기로 하였고, 잠시간 슬럼프가 찾아왔던 이후로 꽤 긴 시간 글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는 글으로 남기기기보다 고민을 더 깊게 하여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둘째로는 이번의 글은 스스로에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쉽게 쓰고 싶지 않았기도 하고, 셋째로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바쁘게 지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뭐하고 지내냐는 질문을 자주 들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놀고 있어요"라는 한마디로 지금을 정의내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간 네 달 동안 자주 들어온 질문들이자 동시에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지금의 순간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1. 그래서 요즘은 뭐하고 지내고 있어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주 여행을 다니면서, 짧게 몇 군데의 회사 일을 도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매일 좋아하는 피아노 곡을 즐기고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욕심의 얼룩에 가려져버린 사람도 조금씩 구별해 낼 수 있게 되었고, 연봉이 아닌 형태로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한계, 그 대가로 환산되는 가치와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마음에 새기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무엇에 조급해하는지, 그래서 오히려 그것을 버텨내고 느긋해질 수 있는지를 재단해가면서 "삶에서의 나의 속도"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무엇을 하건 일단 빠르게 저질러 놓고 그 행동하는 속도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일부러라도 속도를 내기 보다는 충분한 '나의 호흡'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나에게 속도가 필요할 때, 내가 얼마만큼 빨라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를 믿고 여유롭게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을 길게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단편적으로 무엇을 할지 보다 그것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세상의 방향이 어디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방향이 내 개인에만 머무르지 않게 하려면, 올바른 방향을 향하기 위해서 목표를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지 더 깊이 고민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2. 앞으로 뭐하고 지낼건가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하여 지금은 하나의 기준만을 세워둔 상태입니다. "그 일을 함으로서 내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짧은 기간 동안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도 금새 몸이 나빠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 나를 추스르는 동안에 금새 목과 어깨가 굳어버리기 십상이고, 어떤 의미로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는가를 떠올리며 마음이 굳어버리기도 십상입니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하건 간에 몸과 마음이 모두 0에서 (+)인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고 행여 최소한 (-)로는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다시금 다짐하였습니다. 올해 말까지는 건강한 체력을 더 키우는 것을 제일 우선으로 하려고 합니다.



3. 안정적이지 않은것, 커리어가 끊기는 것이 걱정되지 않나요?

여러 책이나 기사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을 자주 듣곤 합니다. "무엇인가에 통달하기 위해서는 바짝 일만시간동안 파 봐야 뭐가 좀 나올걸?" 이라는 법칙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것은 꼭 한가지 일만 일만 시간 동안 해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점입니다. 분야가 달라도 일을 하는 방식이 매우 유사함을 알게 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지고자 하는 커리어는 무슨 명함을 갖자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한 다음 협력을 통하여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툴을 사용하건 분야가 어떻건 업무형태가 다르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만시간 동안의 노력이 세상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의 본질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나아갔느냐에 답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안정적이지 않다거나 어느 한 분야에서의 커리어가 끊겨 보이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엄한 욕심에 눈이 멀어 본질적이지 아니한 데에 집중하게 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걱정이 훨씬 큽니다. 선한 마음으로 나를 내세우지 않고 즐겁게 몰입하면 무엇이건 커리어가 될 수 있고, 쉽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4. 지금이야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결혼하고 애를 낳고 하면 어쩔셈인가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은 지인들로부터 "어쩔 수 없이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인생 끝이야"라는 우스갯소리를 포함하여)", "참고 견디는 것이 의무 혹은 책임감이다"거나 "결혼 전에 너 하고싶은 거 다 해봐라" 같은 얘기를 들을 때가 아주 많습니다.

결혼이나 연애관 육아와 관련한 나의 관점은 아직 명확하지 않은 편이지만, 지겨우리만치 자주 듣는 결혼과 육아, 가정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돌이켜 한 가지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하고 싶지 않게 될 일이라면 지금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역으로 내가 정말로 해야하는 일이라면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고 하지 않을 이유도 못할리도 없을 일이겠지요.

다만 걱정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나는 과연 티끌만큼도 가족을 핑계로 마지못해 종속되는 순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결혼전에 누리는 자유라는 명목으로 사실은 방종을 누리고 싶어하지는 않는가 오히려 그런 것들이 경계해야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5. 그럼 나는 또는 당신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 나의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 화두가 있다면 소유하는 삶보다 생산해내는 삶, 그것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생산해 낼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엇인가를 잘 생산해낸 결과물로서 보상을 얻게 됩니다. 단순하게는 돈에서부터 인정을 받는 것, 인기를 얻는 것, 부러움을 사는 것, 명예를 얻는 것 등과 같이 미묘하게 다른 다양한 형태의 보상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생산해내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보상이 제일 큰 것을 생산하거나 혹은 보상으로 얻게될 집이나 차나 과시할 무엇인가들을 우선 먼저 집착하게 되는데서 발생합니다.

퇴사 이후에 놀랍도록 많은 이들에게서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돈'이란 대답을 들었습니다. 정확한 사정은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궁핍함에 돈이 절박한 이들이 아니었음에도 왜 돈이 필요한지, 얼마가 필요한지, 돈이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어보면 (어쩌면 진심을 얘기해주지 않는 것일수도 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 몇십억쯤 있으면, 연봉이 몇억쯤 되면 좋겠다. 그래서 생각없이 편하게 살고 싶다. 그것보다 더 벌면 남들도 도우면서 살고 싶다" 대략 이정도의 대답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추구해야하는 목표가 (매개로서 돈을 번 다음) "생각없이 사는것"이란 건지, 혹은 몇십억이 없으면 타인을 도울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어집니다.

대학 진학때나, 직장을 구할때나 할때를 돌아보면 90% 이상의 확률로 "뭘해야할지 잘 모르겠어"가 대답이었던, 그리하여 수능점수나 학점이나 토익점수에만 목을 매달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채로 돈 액수, 집 평수, 브랜드에 목을 매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문제말이지요.

다시금 생산이라는 문제로 돌이켜서 보자면 생산하고자 하는 목적물은 생산의 목적 그 자체여야하지 보상에 대한 1차원적인 소유 혹은 그 소유 밑에 숨은 욕망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키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너무도 많은 이들이 조직에서 혹은 삶에서 생산하여야하는 것의 목적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는 비전만 부르짖으며 허공에 노를 젓는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혹은 기저의 욕망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쿨한것인양 스웩이라고 포장하거나 아니면 그냥 1차원적인 욕심 단계에서 허덕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나 자신도 그러고 있지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욕심이 매우매우 큰 사람입니다. 생산해 내어야 하는 것의 본질적인 목적을 찾고 싶은데에서요. 점점 외적인 차원에서의 소유나 욕구가 관심이 없어지고, 사랑받고 싶어서 안달내기 보다는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만 싶은 상태가 되는것을 희망합니다.

예뻐보이고, 있어보이고, 인기있고,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고, 가지고 싶고, 내 가치를 어떻게하면 극대화할까, 이력서를 어떻게 채워 넣을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이런 에고들로 가득차서 비교해서 줄 세우고 하나라도 나보다 뒤에선 이를 무시하거나, 내아이에게 너도 악착같이 올라가라는 교육을 시키거나.. 나와 당신이 그런 생각의 어딘가에서 헤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누구는 주식이 대박이 났거나 그래서 타워팰리스에 살거나 연예인 같은 여자를 만나거나 그런 것들이 점점 부럽지도 원하지도 않기를 원합니다.

더욱더 근원의 나를 찾고 그 근원의 가져야하는 의미와 재미 그리고 뜻을 찾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당분간은 그럴듯한 직함을 갖거나, 거창한 회사를 만들거나, 그럴싸한 껍데기에 나를 포장해 낼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그냥 '나'로서 '나'이기 때문에 쓸데없이 관계에 집착하지도 상처받지도 말고 나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내가 느끼면서 말으로서 끝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온전한 하나의 우주를 지향하며, 정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무리 작아보이더라도 혹은 실제로 정말 작은 것에서라도 완벽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에 대가 없이 진심으로 임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가치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해내지 못하면서, 그로써 내가 더 나은 인간으로 살지 못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만 늘어놓기는 정말로 싫습니다.

퇴사 네달째. 그 동안 내가 나에게 질문, 그리고 대답은 여기까지 입니다.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쉬어야 하는 때는 정말로 몰입하여 쉬고, 쓸데 없는데에 에너지를 쓰거나 무의미하게 아침을 맞이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제서야 나답게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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