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Elvis Depressedly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y)’는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엘비스 디프레시들리(Elvis Depressedly)’는?
말장난인가 싶기도 한 이 이름은 한 인디 록 밴드 의 것이다. 프론트맨(frontman) Mathew Lee Cothran과 인스트러멘탈리스트(instrumentalist) Delaney Mills로 구성되어 있으며, ”록의 황제”와의 연관은 딱히 없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우울한 자장가 같다고 생각했다. 멜로디는 자장가처럼 편안하다. 그러나 가사에 귀 기울이면 ‘kill’ 이나 ‘suicide’ 같은 단어들이 들려온다. 가사와 멜로디의 아이러니, 편안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 포인트다. 서서히 죽음으로 잠기는 음악 같기도 하다. 깔끔하지 않은 사운드가 그러한 느낌을 배로 만든다.
2011년 9월에 낸 (아마도 첫)앨범 ‘Save The Planet Kill yourself’ 는 전체적으로 서서히 파괴하는 느낌을 준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음악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후 한 달 간격으로 낸 미니 앨범들에는 잔잔한 느낌이 더 많이 묻어난다.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엘비스 디프레시들리만의 슈게이징 록을 접할 수 있다. 보컬이 악기 사운드에 포함된 것 같았던 ‘Save The-‘ 에 비해 보컬도 확실히 분리되고 그 비중도 늘어난다.
이들은 잔잔한 반주에 다듬어지지 않은 보컬을 섞어 독특함을 만들어내는데, 다양한 악기나 효과를 사용한다. 아주 초기 곡인 ‘I’m Never Going to Understand’에는 드럼스틱을 부딪히는 소리 혹은 캐스터네츠 소리 같은 탁 탁 소리가 내내 삽입되어 있으며, ‘Crazier With You’나 ‘Kill Me Mickey’에서는 탬버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첫 앨범에서 주로 썼던 파괴적인 사운드를 가끔 곡의 일부분에 쓰기도 하며(‘A Bible in a Bath of Bleech’), 아예 보컬 전체에 울리는 효과를 넣기도 한다.(‘My Lai’, ‘Warm Wolves’)
초기 곡들에는 유독 ‘자살’이나 ‘죽음’ 같은 어두운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디즈니의 캐릭터 ‘미키’ 라는 유년기의 상징을 자주 등장시키기도 한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 두 요소-죽음과 미키-를 섞은 결과물은 놀랍다.
I ain't love my father since I can't remember when
I don't know if I ever love him
(난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아,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도 않아.
앞으로도 그를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Mickey’s Dead’ 중에서.
불안정한 유년기의 정서, 미키라는 밝고 희망찬 상징에게 갖는 의존감과 배신감. 엘비스 디프레시들리의 음악은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기억이나 죽음에 대한 욕구를 비유적으로, 그러나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Mickey you're a fuck up
tied down to your death bed
I know you're afraid of
all the secrets in your head
I'm so tired of you
(미키 넌 망했어.
네가 죽을 침대에 묶여있지.
난 네가 머릿속 모든 비밀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어.
네게 너무 지쳤어.)
-‘Mickey Yr A Fuck Up’ 중에서.
‘Kill Me Mickey’에는 죽음과 삶, 그리고 미키가 버무려진 가사가 직접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https://youtu.be/vEIkkRsZHJ0
Kill me Mickey I don't wanna die
(믹키 날 죽여, 난 죽고 싶지 않아.)
-‘Kill Me Mickey’ 중에서.
말 그대로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은 살고 싶다는 말인 게다. 이런 가사에는, 죽음과 삶에 대한 욕구가 혼재한다는, 그들만의 특징이 담겨있다.
‘미키’는 2015년 앨범인 ‘New Alhambra’ 부터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매튜 리 코헨은 2017년 12월에 코마 시네마의 마지막 앨범을 발표하고, 본명으로 두 해 연속 앨범을 낸다. 음악적 자아에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이후부터는 가사 자체에서도 긍정적인 냄새가 묻어난다.
https://youtu.be/RmpazNmUHvI
No more sad songs
No pain, no separation
(슬픈 노래는 이제 그만
고통도, 이별도 그만)
-‘N.M.S.S. (No More Sad Songs) 중에서.
그러나 마냥 밝은 분위기만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 앨범의 첫 곡인 ‘Thou Shall Not Murder’의 뮤직비디오는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색감이지만, 뒤로감기 기술을 사용해 어딘지 괴기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어른의 품에 안긴 아이의 모습에서부터, 달리는 아이를 따라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간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뮤비를 보면 알겠지만, 결코 아름답지는 않다.
https://youtu.be/Zr71ZNmpgU0
‘Thou Shall Not Murder’의 가사를 살펴보면,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촌스럽거나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 까닭은, 인용구 부분에서 마치 악마가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리는 신선한 효과를 사용해 귀를 지루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느낌의 가사와 효과는 ‘Big Break’ 에서도 이어진다. ‘New Heaven, New Earth’ 에서는 통통 튀는 느낌의 타악기와 여리게 떨리는 보컬을 사용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비스 디프레시들리의 음악은 밴드 이름처럼 우울을 담고 있다. 내면의 두려움과 우울을 솔직하게 담은 가사를 편안한 사운드로 풀어냄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는 동시에 관객을 위로한다. 매튜 리 코헨은 그들 음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듣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실을 잊게 해주는 “멋진” 음악을 들으며 취할 수도 있지만, 가끔 자신의 속내를 건드리고 위로해주는 음악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그는 말한다.
엘비스 디프레시들리의 음악을 수식하는 말 중 하나는 ‘로우파이 뮤직’이다. 이들은 비싼 돈을 들여 로우파이 느낌이 나도록 부러 만드는 음악가들이, 특권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들은 가능하면 깨끗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싶어 공연 수익으로 장비를 업그레이드 중이라면서. ‘의도치 않은’ 리얼 로우파이 뮤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에는, 얼핏 단순하고 익숙한 것 같은 느낌이 있으면서도, 어떤 틀에 가둘 수 없는 이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묻어난다.
‘Elvis Depressedly' 라는 이름처럼 말이다.
*참고 인터뷰
http://www.guncontrolnoise.com/2017/06/16/hifi-poptimism-with-elvis-depresse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