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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r 01. 2020

그 때, 그 곳, 그 사람.

<1917>(2019)


<1917>(2019, 감독: 샘 맨데스)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17년의 전장]

<1917>(2019). IMDB 이미지.


작품의 제목이 ‘미션임파서블’ 따위가 아닌 ‘1917’인 데에는 다 까닭이 있다. 클리셰가 없진 않았으나, ‘왜 또, 세계대전 영화를 만드는가’에 대한 답은 충분했다. 원테이크 편집은 이제 아주 드문 연출법은 아니게 됐지만, 포인트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있었다.

스코필드와 함께 호흡하며 전장을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꽉 찬 병사들을 헤치며 좁은 기지를 지날 때는 답답했고, 너머에 적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방어벽을 뛰어 넘을 때는 두근거렸다. ‘이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은 쾌보다는 불쾌에 분명히 가까웠다. 샘 맨데스의 할아버지가 겪은 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각본을 썼다던데, 단순히 참전 실화를 ‘재현’한 드라마가 아니라, 카메라가 진짜 전장을 들이미는 것 같았다. 인물을 비롯해 모든 것을 관찰하는 듯한 거리감은 그 리얼함의 의도를 분명히 했다. 풀밭에 기대 눈을 감은 창백하고 차분한 스코필드의 얼굴에서 출발해 그를 좇는 카메라는, 부러 효율적이지 않았다. 지나는 길의 동물과 사람의 시체, 그 주위를 맴도는 파리, 남겨진 사진, 흩날리는 꽃잎 등 모든 잔해, 공간 자체를 담았다.

<1917>(2019). IMDB 이미지.


전쟁, 아니 전장. 아무 일 없다 갑자기 옆사람이 죽고, 아주 의미 있어 보였던 것들이 한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곳. 스코필드가 싸우는 대상은 바로 그 공허한 전장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을 쏘는 독일군은 ‘적’보다는 ‘장애물’로 보였다. 엄살 많고 생각 없어 보이던 블레이크 덕에 목숨을 구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스코필드는, ‘왜 나를 골랐냐’며 잠시 적나라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후, 몇 초 차이로 그는 블레이크를 구해 주지 못한다. 뭘 잘하고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1917년의 여기는, 그런 곳이라고, 작품은 말하는 듯 했다. 그는 이제, 동료의 죽음을 짊어지고, 꼭 살아남아, 터무니없이 중요하고 위험해 보이는 임무를 성공시켜야만 하게 됐다.


블레이크의 죽음과 함께, 관객은 더욱 스코필드에 이입하고, 그가 제때 무사히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돌격하는 군인들을 가로질러, 부딪히고 넘어지며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습은, 이상한 방향으로 영웅적이다. 그렇게 겨우 ‘성공’하고, 맥켄지가 공격 중단 명령을 내림과 함께, 순간적으로 마음이 놓인다. 그 ‘관람자’ 입장의 카타르시스는, 바로 다음 찾아오는 허무함을 키운다. 수많은 목숨을 구했으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 산 이들 중 일부는 다음 주에 죽을 것이다. 임무를 완수한 ‘영웅’에게 남은 것은 나가라는 차가운 말과, ‘당신을 살리러 가는 길에 당신의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또 다른 임무다.  

겨우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동생의 죽음을 전한 스코필드는, 홀로 나무에 기대 앉는다. 첫 장면과 비슷한 빛, 비슷한 자세, 겨우 하루 남짓이 지났다. 달라진 것은, 어찌 보면 별로 없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죽었고, 스코필드의 얼굴빛은 다르다, 감정을 숨길 힘이 남지 않았다,고 해야 맞겠다. 그제야 가족사진을 꺼내, 뒤에 적힌 글귀 ‘살아 돌아와’를 보며 운다. 그러고 보니 그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집에 가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1917>(2019). IMDB 이미지.


어떤 장교는 “Some man just want to fight.” 라고 했으나, 다른 장교는, 다음 주면 새벽에 진군하라는 명령이 내려올 것이라며, ‘이 전쟁은 마지막 남은 사람까지 죽어야 끝난다’고 말한다. 글쎄, 스코필드가 목숨 걸고 전달한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형 목숨이 달렸으니 제 목숨을 걸겠지 하는 심보로)고작 일병 둘에게 천육백의 목숨을 넘겨놓고, 자기는 폼 잡고 멋진 말이나 읊어대며 합리화하는 지체 높은 장군, 아니 그보다도 더 높은 님네들이 굴리는 전쟁에서 죽어나가는 건, 스코필드, 블레이크, 블레이크의 형 같은 일반 군인 들이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만난 여성, 그녀가 돌보는 부모 모를 아이는, 언뜻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 따위를 상징하는 듯 했다. 허나 엔딩을 보고 나니, 결국 아무도 지키지 못할 또 하나의 무고한 생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이미 과거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냥, 다 살았으면 했다. 그 여성과 아이 뿐 아니라, 스코필드도, 블레이크도, 맥켄지도, 그냥 어느 쪽이든 모두 다 싸우기를 멈추고 집으로 도망갔으면 좋겠다고.


<1917>(2019). IMDB 이미지.



[2019년의 윌리엄 스코필드]

<1917>(2019). IMDB 이미지.


인물과 거리를 두는, 주연이 주인공이 아니도록 담는 연출 방식은 <덩케르크>(2017)를 떠오르게 하나, 전해지는 뉘앙스는 <고지전>(2011)의 허무함에 가깝다. 아무도 묻지 않는 내 취향을 TMI하면, 감정과 클리셰가 덜하고, 화려한 액션도 희망의 메시지도 없는 <1917>을 선호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선호의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인공 아닌 주연이었다.


윌리엄 스코필드는,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담은 작품에서, 관객의 호감도를 거의 최고로 얻을 종류의 주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장을 와인하고 바꿨다’며, ‘목이 말랐거든’이라고 짧게 답하는 그는 오히려, 믿음직스럽고 솔직한, 능숙하나 허세는 없는 인물로 다가온다. 말을 아끼고, 유능하고, 상황 판단이 빠르고, 항상 동료보다 앞장서고, 명예보단 실리를 챙긴다. 고지식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진실 되고 신중하다. 블레이크가 ‘나 죽는 거냐’고 묻자, 망설이다 ‘응’ 이라고 답하며, 예쁘고 빈 말을 늘어놓는 대신 가는 길을 똑똑히 읊는 방법으로 안심시킨다. 나중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만나자 망설임 없이 먹을 것이며 우유를 다 넘겨주기도 한다. 전체 맥락에서 보면 장면의 중심 의도는 스코필드의 인물됨을 전하는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그가 평균적으로 ‘괜찮은 인간’ 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전장을 담는 눈이, 적당히 ‘괜찮은’ 군인이자 사람이라는 점은 꽤 중요하다. 괜히 심리나 됨됨이를 헷갈리게 만들어 인물에게 시선이 가는 것을 막고, ‘임무의 성공’에서 오는 기쁨도, 이후의 결말에서 오는 공허감도 극대화시킨다.


<1917>(2019). IMDB 이미지.


인물을 중심에 두지 않았던 연출 의도에 어울리게, 본인이 돋보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화면에 녹아들었던, 조지 맥케이. 내가 본 까닭이기도 했던 그의 연기는 적절했고, 사실 훌륭했다.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는 동시에, 캐릭터 나름의 깊이도 놓지 않았다. 이제까지 맡아왔던 유형에서 아주 벗어나는 역할은 아니었기에, 엄청나게 새로운 연기를 펼칠 기회는 없었으나,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잘 살렸다- 아니 ‘잘’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고 싶지 않은 표정들을 보여줬다. 그의 집중력 높은 연기 덕에, 장면장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빨리 출발해야 하는 상황, 블레이크의 시체를 떠나지 못할 때. 차를 얻어 탄 후 다들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데,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을 때. 물살과 시체를 누르고 겨우 강을 건넌 후 엎어져 흐느껴 울 때. 나무에 멍하니 기대 앉아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로 홀린 듯 노래를 들을 때와 같이 -오히려 큰 소리로 절규하고 필사적으로 달리는 등 폭발적으로 분출할 때보다, 원테이크 편집 내에서 길게 잡힌, 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려 멍하고 말없이 있는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눈 속의 텅 빈 공간은 곧 주제였다.  


<1917>(2019). IMDB 이미지.



+ 그리하여 덕질적 관람포인트는 내 눈물샘 폭격기인 조지 맥케이,

<1917>(2019). IMDB 이미지.


그와(1) 2014년도 <런던 프라이드>를 함께한 앤드류 스캇의 왠지 데자뷰 같은 투(+@)샷.

<1917>(2019). IMDB 이미지.
<런던 프라이드>(2014). 저기 어정쩡하게 모 줍고 있는 애가 조지 맥케이다.


그와(2) 내 하트브레이킹 전문가 리처드 매든의 투샷. (그래서 가슴 부여잡고 줄줄 울었음)

<1917>(2019). IMDB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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