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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y 20. 2020

Viva Cineasta!

<색정남녀>(1996)


<색정남녀>(1996, 감독: 이동승) (영제는 ‘Viva Erotica’.)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가 좀비물 타이틀의 ‘영화 만드는 영화’라면, 20년쯤 전의 <색정남녀>(1996)는 에로 타이틀의 ‘영화 만드는 영화’였다. 시작은 약간 당황스러운 섹스신. 일부러 과하다. 마치, ‘이건 에로 영화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음악이 심상치 않더라니,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이게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더니, 갑자기 현실을 들이밀고, ‘돈 못 버는’ 영화인의 고민을 재치 있게 늘어놓는다. 장르를 분류하자면 코미디인데, 가끔 맴도는 블랙의 맛과, 아슬아슬하게 사차원을 넘나드는 전개가 취향이었다. 화재로 다 망하고 사장과 싸우는 결말은, 두 특징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현실적인 데가 있었다. ‘이동승’이 실험 영화를 찍는 배우들 옆에서 함께 달리다 뛰어내리는 장면은, 죄송하지만 진짜로 최고였다(물론 영화적으로). 이런 식 블랙코미디를 좋아하기도 해서, 이동승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색정남녀>(1996)


아성이 빠지는 상상들도 하나하나 전부 흥미롭고 귀여웠다. 첫 장면부터 시작해, 공익광고, 축구장, 친구들과의 술자리, 포르노 촬영장 등의 씬 모두 다, 성공적으로 웃겼고, 아성의 심리와 의미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직관적이면서, 촌스럽게 직설적이지는 않아서, B급으로 깔끔한 느낌이 있었다.


장국영 때문에 봤고, 역시 장국영이었지만,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있었다. 아성의 약간 찌질한 면마저 사랑스러웠다. 여자가 어쩌구 하는 말을 한 두 번 하기는 하나, 본심은 아닌 것 같고, 시대를 감안하면 봐줄 수 있는 정도. 작품이 맘에 들든 그렇지 않든 제대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배우와 스태프를 존중하는 태도는 멋졌다. 몽교와 상대 배우에게서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대화하는 장면에서, 감독으로서 그의 방식이 새삼 드러났다.  


<색정남녀>(1996)



여성 캐릭터들도, 어느 정도 전형적이기는 했으나,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봤더니 나름 괜찮았다. 메이와 아성의 엄마가 카페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살짝 놀랐다. 이제까지의 전개에서, 아성의 엄마는 그냥 대상화된 ‘모성’, 메이는 상대적으로 매력은 있으나 여전히 예상 가능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주인공 남성의 여자친구’였다. 주제가 ‘남성과의 연애’로만 그쳤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는 하나, 그 대화로 두 캐릭터, 그들 사이, 영화 자체 모두 흥미로워졌다. 메이가 아성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아성의 엄마는 ‘네가 힘들면 헤어지라’며,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진심으로 말한다. 아들의 여자친구나 미래의 며느리가 아니라, 아끼는 친구에게 하는 조언이었다. 그러고 보면 몇 장면 나오지 않는 그녀가, 작품 속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완전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항상 아성과 메이 각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영향을 최대한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이야기한다.


<색정남녀>(1996)


다른 하나는 메이가, 아성이 몽교에게 끌리고 있음을 알아챈 다음의 장면이었다. 상당히 클리셰였는데도, 메이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점을 살린 수사 시트콤 같은 연출과, 이후 ‘히스테릭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납득할 수 있게 감정을 설명하는 메이의 대사 덕에, 감수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정남녀>(1996)


그러나 다시, 작품에 감수성이 있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는데, 원인은 몽교를 그리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연기는 대충 하면서 사장 빽만 믿고 설치는 무개념’으로 등장했다가, 사연과 매력을 끼워넣더니, 결국엔 배우를 그만둔다는 서사다. 몽교는 ‘남들한테 몸을 보여 주느니 남편한테만 보여 주는 게 낫겠다’ 싶어 결혼을 했다고 말한다. 여성 배우들의 현실을 가볍게 풍자한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이 작품도 그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다. 전화 박스 촬영 씬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터치와 노출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는데도, 정당한 항의를 이제까지 보인 ‘제멋대로’ 태도와 동일한 톤으로 다뤄, 그녀가 당한 폭력이 놀림거리로 단순화되는 뉘앙스가 생겨 상당히 불편했다. 카메라가 몽교를 ‘피해자답지 않은 피해자’로 소비했다는 점을, 이후의 ‘화해’가 해소해 주지는 않는다. 따지면 애초에 영화에 참여한 것부터 자의가 아니었으나 아성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렇다 치자.


서기의 몸을 대상화해 담는 분량과 횟수도 지나치게 많아 보였다. 포르노 씬이 대놓고 나온다는 자체는 별 상관이 없다. 문제는 필요성이다. 뭐, 이 영화가 뭔지 헷갈리게 만드는 게 감독의 의도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아니, 첫 장면은 혼란을 주지 않았다. 매우 필요했다. 훌륭한 오프닝이었다. 섹스신이라고 다 야한 건 아니고, 야하지 않다 해서 자극적이지 않은 건 아니고, 자극적이어야 야한 것도 아니며, 자극적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내가 느끼기에 가장 야한 장면은, 소리를 따라 아파트 복도로 나온 아성이 몽교와의 만남을 상상하는 부분이었는데, 서사보단 스타일적으로(?) 필요한 야함이었다고 본다. 씬의 포인트는 흰 천을 덮은 서기의 몸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만지는 장국영의 눈빛과 손길이었다.


<색정남녀>(1996)



그러니까 감독은, 잘 팔려서 욕 먹는 영화와 안 팔려서 욕 먹는 영화 모두에 대한 존중과, 영화인들의 고충과, 결국 영화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나보다. 아성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마지막은 약간 군더더기 같기도 했으나, 장국영이 귀여워서 지루하지 않았다. 잘하든 못하든 어쨌거나 다함께 영화를 한다!는 결론인가. 좀 더 블랙으로 갔어도 괜찮았을 듯한 코미디였다. 불편하거나 불필요한 점이 보이기는 했으나, 장국영이 최고여서 볼 만 했고, 장국영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나도 집중할 수 있었고, 그러니까 결국 장국영이라는 것이다.

Viva Cineasta, Viva Leslie Cheung(만세 영화인, 만세 장국영).


<색정남녀>(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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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이 왕가위의 <중경삼림>(1994)을 거절하고 이걸 찍었다며 슬퍼하시는 팬들이 계시던데, 개인적으로는 장국영님 이런 걸 찍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랄까. 글을 쓴 후 <씨네21> 홈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하고 혼자 재미있어하였다.  


“자신과 친한 임경륭 감독과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아이디어와 패러디가 빛나는 풍자극이다. 주로 현대적 감각의 도시풍 컨셉트 영화를 만드는 이동승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허안화와 왕가위라고 한다./ 영화감독사전, 1999”


이미지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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