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 Wilde
애플뮤직 뉴록 믹스를 무심코 틀었다. 삼십초만 듣고 별 감흥 없이 넘기기를 수 트랙,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순식간에 귀에 꽂혀 뇌를 흔들어댄, 그 목소리의 주인은 솔로 뮤지션 JJ Wilde. 이 아티스트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몇 분 동안 고민했다. 그냥 인디 록? 모르겠으니까 얼터너티브? 아니면 컨트리? 컨트리 록이라고 하나?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JJ Wilde의 음악, 아니 더 정확히는 JJ Wilde의 보컬에, 장르 구분은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바로 그 자체가 장르니까 말이다.
단순하고 곧게 잘 짜인 멜로디와 솔직한 가사. 이 모두를 둘도 없는 특징이 되게 만드는 요인은 팔할이 음색이다. 단순히 ‘허스키하다’로 설명할 수 없다. 약간 쉰 채 내는 무겁고 풍부한 저음. 세상을 다 알아버려 끝까지 지친 것 같기도, 만사 귀찮은 것 같기도 하다. 내지를 때는 한껏 걸걸하게 갈라진다. ‘와일드’하다. 한껏 울고 난 후 잘 나오지 않는 것을 짜내는 소리가 떠오르는데, 차이점은, 제이제이의 발성은 잘 나옴을 넘어 하늘을 찌른다는 것. 이 보컬의 매력 한 면에 발성과 음색이 있다면, 그 옆 면에는 발음spit이 있다. 주로 라임을 맞춘 가사를, 귀에 쩍 붙게 뱉는다. 그 형태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Wired’에서 something의 some을 쭈욱 늘이는 것이 한 예다.
2019년 EP <Wilde Eyes, Steady Hands> 이후, 필모그래피에 하나 둘 싱글을 더하더니, 순식간에 멋진 첫 정규 앨범을 완성해 버린 제이제이. 앨범의 제목은 ‘Ruthless무자비한, 냉혹한’. 수식하는 대상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가사를 통해 대충 세상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엿 같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생활을 잇기 위해 포잡을 뛰어야 하는’(‘Wired’),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Knees’), ‘요즘 들어서 지울 수 없는 실수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드는’(‘Cold Shoulder’) 곳. 혹은 그것에 치여 아예 스스로가 Ruthless 해지고싶다는/해지겠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Wanna be reckless, wanna be ready
무모해지고 싶어, 준비된 상태이고 싶어
-‘Cold Shoulder’
“십 대에 기타를 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이십대 초반 프로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수없이 거절당했다. 2018년, 쓰리잡을 뛰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유지해야 할지 기로에 섰다. 조금 길게 보기로 결정함과 거의 동시에,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게 됐다. 그가 이제까지 쓴 곡은 말 그대로 수백 곡.”
[by Timothy Monger, allmusic.com]
제이제이의 가사에는 스스로가 겪은 Ruthless한 삶이, 경험 자체보다는 그에 치인 본인의 상태가 주로 담겨 있다. 드문 소재는 아니나,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그만의 색깔이 묻어난다.
Yeah, wake up, same clothes, off I go to hell again
깨어나, 같은 옷을 입은 채, 다시 지옥으로 내려가
Making money, sinking when I’m trying to swim
돈을 벌고, 헤엄치려고 애쓰는 동안 가라앉지
I’m tired but I know a guy that has a cure for that
지쳤는데 치료법을 가진 남자를 알아
I’m wired, that’s the only way that I stay golden
난 (약에)취했어, 그게 내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야
There’s something better than this
이거보다 나은 게 있을 거야
I crack my teeth, bite down and grab it
내 이빨을 깼어, 깨물고 쥐었지
Need something better than this
이거보다 나은 게 필요해
Break through the prison of my habits
내 습관의 감옥을 부술 무언가가
-‘Wired’
이렇듯, <Ruthless>의 화자는 항상 뭔가 잘못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주 문제에 휘말려 패닉하고 무너지며, 스스로를 탓하고 혐오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요약하면 대강 그렇다. 결국 다 잘될 거다, 힘내자, 따위 결론은 없다. 깊게 다운된 그대로 끝나버린다. 뭐 어떤가. 이건 망할 예술이지 무슨 자기개발/계발서나 힐링에세이가 아니다. 그런 가사를, 좀 귀찮은 듯 툭툭 뱉다가 목이 째지게 쭉 질러낸다. 그래서일까, 우울함에 허우적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어두운 기운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나도 이러니까, 너도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어깨를 툭 쳐주는 기분도 든다.
Hold on to the promise of better days, it’s been dark to long
In the backseat of my mind, I find all the perfect ways of killin’ time
더 나은 날들을 위한 약속에 매달리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어두웠어.
내 마음의 뒷구석에서, 시간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을 죄다 찾아버렸지.
-‘State Of Mind’
It’s getting harder to see / The forest from the trees
점점 더 보기 힘들어져 / 나무에서 숲을 말이야
Covering up little problems / So we don’t have to solve’em
작은 문제들을 덮어버리지 / 풀지 않아도 되게 말이야
-‘Breakfast In Bed’
가사에 몇 가지 꽂힘 포인트가 있다.
Eatin’ my breakfast in bed with no shirt
셔츠를 안 입은 채 침대에서 아침을 먹으며
Makin’ excuses so no one gets hurt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변명을 하지
-’Breakfast in Bed’
Woke up this morning in panic
패닉인 채 오늘 아침 일어났어
I had my red dress on again
또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네
-‘The Rush’
‘레드 드레스’는 ‘패닉상태’와, ‘침대에서의 아침’은 ‘아무도 다치지 않게 변명을 하지’, 라는 가사와 이어진다. 추상적인 감정이, 구체적이고 때로 일상적인 이미지와 연결돼,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전달된다.
이어지는 가사는 이렇다.
Last night I came out, I was so damn manic
어젯밤 came out 했어, 완전 manic 이었지
I don’t even know where I went wrong
But I went wrong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르겠는데, 난 잘못됐어.
-‘The Rush’
이처럼 화자는 본인이 어딘가 ‘잘못됐다’, ‘망가졌다’는 것을 매번 ‘어필’하는데, ‘문제’와‘ ’해결‘의 전개로 가는 뉘앙스는 아니다.
Something’s so sweet about seein’ things through a broken lens
I know I fuck it up / But it’s what I need in the end
망가진 렌즈를 통해 사물을 보는 것의 sweet 한 점이 있거든
내가 망칠 거란 걸 알아 / 근데 결국엔 그게 필요했던 거야
-‘State Of Mind’
Never catch me cause I’m out of my mind
날 절대로 못 잡을 걸 난 정신이 나갔으니까
-‘Home’
Baby I’m trouble, you know I’ll be your favorire mistake
베이비, 난 트러블이야, 내가 네가 가장 좋아하는 실수일 거란 거 알지
-‘Trouble’
never catch me의 까닭은 I’m out of my mind고, fuck up한다는 걸 알지만 결국 필요한 게 바로 그거였단다. broken과 sweet, favourite과 mistake 등, -그러니까 ‘부정적’인 표현으로 묘사됐던 특징이, 그대로 ‘긍정적’인 성격으로 뒤집히거나, 주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단어와 ‘긍정적’으로 쓰이는 단어를 한 문장 내 대립되지 않는 위치에 배열한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은 몰론, 문장의 매력도 더한다.
‘Trouble’을 좀 더 살펴보면, 본격적으로 ‘엉망의 개성’을 긍정하는 문장들을 찾을 수 있다. 화자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있지’ 라고 말문을 연다. 그는 ‘너무 높이 날아 타버리더라도 계속 해를 향해 가고’, ‘거짓말을 하면 오는 특정 스릴’을 즐긴다. 상대방을 끌어들이고 마음을 뺏고, 버리고, 문제로 끌어들일 거라고, ‘내가 한 일들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I will swallow you whole, and spit you out because I love the taste of trouble널 통째로 삼켜서, 뱉어버릴거야 왜냐면 난 트러블의 맛을 사랑하거든” 이라고. 거친 대로, 구겨진 채로 내버려둔다. 아니 이번엔, 그래도 괜찮아, 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냥 다 같이 망하자고 끌고 내려간다. 그럼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주고 후련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곡이 다듬지 않은 상태를 거세게 드러내지만, 뉘앙스는 조금씩 다르다. 보컬의 가능성이 여기저기로 뻗쳐나간다. ‘The Rush’나 ‘Wired’ 같은 곡은 좀 펑키하고, ‘Home’도 마찬가지인데 더 리듬이 강해져 멜로디를 빼고 박자로만 뱉기도 한다. ‘Cold Shoulder’는 클래식 록 느낌인데 감정이 많이 잡히고, ‘Trouble’은 약간 재지하게 시작해 후렴에선 아주 록이 돼버린다. ‘Knees’, ‘Breakfast In Bed’, ‘State Of Mind’는 부드럽게 리드미컬한데, 조금씩 또 다르다. ‘Knees’는 벌스 리듬의 구성과 후렴의 지르는 방식 때문에 컨트리 색이 강하고, 나머지 두 곡은 얼터너티브나 팝 쪽인가 싶다가도, 보컬 때문인지 올드함이 묻어난다. ‘Gave It All’에서는 나직한 가성도 들리는데, 후반부 클라이맥스로 가면 목소리가 또다시 째지고 울부짖으며 무너져내린다. ‘Feelings’에서도 가성이, 이번에는 전체적으로 쓰인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곡은 ‘Funeral For A Lover’. 아주 찢어지면서 블루스 느낌도 나는 트랙이다. 화자는 연인에 대해 말한다. “그의 아름다운 마음이 두렵다. 가끔 그 눈을 들여다보면 악마가 보인다.” ‘내가 그가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내 사랑이 그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나를 절대 아프게 하지 않을 것, 일부러 멍들게 하거나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나를 아프게 한다.“
Well, you know that it breaks my heart
있지, 그게 내 맘을 찢어놓는 거 알잖아
Now I’m up on the phone I’m not with you to check you’re still breathing
지금 난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 네 옆에 없어, 네가 아직 숨 쉬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
And it hurts, yeah it hurts my heart
아파, 그래 그게 내 맘을 아프게 해
It has nothing to do with me can’t make you wanna keep breathing
그건 내게 아무 소용이 없어, 네가 계속 숨 쉬고 싶게 만들 수가 없잖아
-‘Funeral For A Lover’
표현법이 상당히 조심스러운 곡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구 표출해도, 대상이 타인이 되면 그렇지 않다. 감히 ‘고치거나’ 위로하려 들지 못하고 아프고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그 정서가 매우 슬프게 아름답다. “Breaks my heart”라고 째지게 내지르면, 마음이 와장창 깨진다.
(TMI: 그래서 요새 Radiohead의 ‘Exit Music’과 이 곡을 이어 듣곤 한다.)
마지막 곡 ‘Feelings’는, 어떤 곡과도 다르다. 앨범을 정리하는 분위기다. 가사는 화자에게 어떤 ‘필’을 주는,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을, 단어 형식의 일관성조차 없이 늘어놓은 것 같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 의식의 흐름이 이미지적으로 이해 된다. “불은 나가고, 집에는 아무도 없고, 친구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지붕에서 잠들고, 네 모든 전화가 그리워” “어쩌면 이게 내가 원했던 전부인가봐, 세면대의 거울, 내가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충분한, 이런 기분 약간 좋은 거 같애.” “잠이 안 와. 뜬 눈. 내가 뭘 찾게 될지 두려워. 테이블 탑, 뭔가를 세고. 날 내 이름으로 부르고call me by my name”
시적이다. 사운드도 그렇다. 잔잔한 기타, 화음과 어우러지는 보컬이 아련하고 멀다. 꿈꾸는 듯 한 차분함이 일관되게 이어져, 몽환적이고 약간 사이키델릭하다. 막바지에 가성으로 내는 ‘아아아’ 이후, 곡이 끝난 듯 정적이 흐르다, 희미하던 반주가 고조되며 보컬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이 특별한 목소리의 또 다른 가능성이 들리고,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가 자란다.
갑자기, JJ Wilde를 다시 검색했다. 프로필 사진 속 그는, 약간 뚱하게 입을 다문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약간 사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Wired’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그 얼굴 그대로 묵묵히 노래한다. 갑자기, 앨범 커버도 들여다봤다. 장미꽃, 립스틱, 넘어진 술병, 담배꽁초, 라이터, 잡지, 화분, 선글라스, 차키, 귀걸이, 가죽 장갑, 구겨진 사진. 엉망으로 아름다웠고, 뒤죽박죽 조화로웠다.
제이제이의 가사는 솔직하고 개인적이다. 막 늘어놓은 듯 한데 맥락이 있는 스토리텔링은, 감정을 딱 맞는 언어로 비유해 낸다. 그와 단순한 멜로디가, 독보적인 보컬을 만나면, 신세계가 열린다. 요소들이 맞물려 특정한 상태에 대한 공감을 탁월하게 이끌어 낸다. 그것을 노리고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아니 뭐 내가 아티스트의 마음속을 알 수는 없으니 정정하면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거나 위로 받을 것을 강요하지 않아 깊이 와닿는다. 날 것 그대로 뱉는다. 섬세하게 거칠다. 강렬하게 연약delicate하다. 멋지지 않은가, 뒤엉킨 속마음을 이토록 굉장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 형태가 타인의 마음을 온통 울린다는 것이.
+ 제이제이는 유투브에 종종 ‘Coffee & A Cover’ 라는 타이틀로 어쿠스틱 커버를 올린다. 그의 목소리에 홀린 팬들에겐 이 시리즈의 ‘정주행’이 필요하다. 아 누가 감히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커버할 수 있으리: JJ Wilde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