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않인 Aug 02. 2020

시티 로맨틱 레볼루션!

Citizens!



Citizens! (앨범: <Here We Are>, <European Soul>)



https://youtu.be/wA0lYaekxxk

'Reptile' mv.


위 뮤직비디오를 봤다면, 중간, 보컬이 카메라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노래하는 씬들을 기억할 것이다. 정면을 바라보며, 눈은 약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까딱까딱 흔든다. 손가락을 튕길 때도 있다. 평범하게 리듬을 타는 듯한 그 동작에, 뭔가 있다. 무심하고, 가볍고, 건조하고, 인형 같기도 하다. 보고 있으면 최면에 걸린 듯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Citizens!라는 흔하고 괴상한 네이밍에 끌려 무심코 플레이버튼을 눌렀다면, 고개가 바로 딱 그렇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면, 이미 늦었다. 멈출 수 없다.


MGMT가 떠오르는 멜로디. 리듬이 통통 튀어 다닌다. 보컬도 라이트하고 쿨하다. 청자와 거리를 두는 듯하다. 목소리를 여러 겹 얹으면, 메아리처럼 멀고 아득해진다. 얼핏 기술이나 가창력이 딱히 필요한 스타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살피면, 소리를 쓰는 방식이 상당히 다듬어져 있다. 다시 그런데, 그 형태가 특이하다. 한 예로 ‘My Kind of Girl’에 배경음처럼 삽입된 째는 내지름이 있다. 깊은 곳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목의 가장 위쪽만 쥐어짜서 내는 소리 같다. ‘Reptile’과 ‘Lighten Up’에서도 희미하게 들린다.


언어를 입으로 내보내는 방식 또한, 특이한 형태로 다듬어져 있다. ‘Only Mine’을 비롯한  몇 곡에서는 올드 발라드 느낌으로 ‘감미롭게’ 두드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드러날 때 보다 ‘묻힐’ 때, 더 인상적이다. 그냥 듣다 보면 가끔 악기들과 뒤섞여 버리곤 하는데, 가사를 보며 들으면 단어 하나하나를 그대로 발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존재를 과시하지 않고 리듬과 일체가 된다.


이 특이함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보컬 Tom Burke의 음색. 모던하게 신비롭다. 섹슈얼리티가 삭제된 것 같으면서도 또 모든 섹슈얼리티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허클베리핀 이소영의 보컬을 처음 들었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은 틀렸다는 사고가 조금씩 보편화되고 있는 시대, ‘중성적인’도 이젠 한물 간 표현이다. 그러나 ‘그런’ 가치관과 감수성을 익힌 세대인 탓에, 목소리를 듣고 무의식중에, 남자 혹은 여자로 인식하게 된다. 헌데 이 목소리에는, 둘 다 있었고, 없었다. 톤이 다는 아니다. ‘She Said’나 ‘Reptile’의 경우 벌스와 코러스의 톤이 아예 다른데, 역시 각각, 있고, 없다.  


https://youtu.be/_NACXUxdhXU

'She Said'


둘 다 있는 것은, 트랜디와 클래식이다. 보컬에도, 곡 구성에도 있다. <Here We Are>의 ‘Let’s Go All the Way’가 전주에서 일렉트로닉스러운 빠른 리듬을 사용한 후, 풍부하고 낮은 보컬을 얹었다면, ‘I Wouldn’t Want To’는 느리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로, ‘Know Yourself’는 어쿠스틱한 기타 사운드로 시작해, 간주 혹은 후렴에서, 여전한 일렉트로니카 리듬을 넣는다. 이런 구성은, <European Soul>에서 더 분명히 들린다. 첫 곡 ‘Lighten Up’은 무겁고 느린 피아노 음에, 역시 무겁고 느리고 풍부한 보컬로 시작하지만,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며 금방 리듬이 빨라진다. ‘Only Mine’은, 짜 하게 울리는 건반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보컬 방식이나 멜로디가 상당히 클래식하다는 생각을 할 무렵, 후렴의 가성과 예의 건반음이 어우러진다. 브릿지는 목소리가 쌓여 올드하다. ‘I Remember’의 경우, 분명 기본 리듬은 빠르고, 장르를 구분한다면 일렉트로닉 댄스 팝일 텐데, 묘하게 묻어나는 블루스가 있다. 약간 우울하게 내리꽂다가, 중간의 “We sing!”에서는 완전 레트로스럽게 흥이 난다. ‘Xmas Japan’ 코러스의 “HA! HA! HA!”는 또 어떤가. ‘Are You Ready’도 마찬가지다. 아주 모던 댄스 팝으로 흐르는가 싶은데, “Are you ready?”하고 묻는 구절의 마무리 음이 묘하게 늘어진다. 세대와 정서를 이중적으로 오간다.


전주는 곡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첫인상을 유지하며 끝까지 이어갈 수도 있지만, 비틀거나 반전시킬 수도 있다. 창작자의 재량이고, 성공/실패 따위의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경우에 따라 어수선하게 들릴 위험도 있다. 시티즌스!의 경우, 많은 곡의 분위기가 부분적으로 꺾여 흘러가는데, 조화롭고 독특하다. 음색, 소리와 언어의 형태를 내보내는 방식, 멜로디와 곡 구성 각각만 놓고 보면, 아주 독보적이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요소들이 만나 어우러진 모양은,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얼터너티브!라고.


이런 흐름에서 또 하나 느낄! 수 있는 건, ‘Citizens!’의 ‘!’는 괜한 장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분위기와 가사가 얼마나 우울하고 쳐지든,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 모먼트는 언제나, 어느 곡에서든, 준비되어 있다. 물론, ‘Citizens!’의 ‘citizens’도 괜한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곡과 참 잘 어울리는 그룹이다. 도시적이고 로맨틱하다.

“도시적이고 로맨틱하다.” 까딱거리던 고개가 갸웃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요소가 있어서다. 그 말을 더 이해하려면, 가사를 들여다봐야만 한다.



물론 ‘Reptile’부터. 화자가 사는, 청자가 도착한 이 도시는, ‘쉽게 용서해주지 않는 곳, cold hearts차가운 심장을 가진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화자는 조언한다, “Don’t let your blood run cold네 피가 차게 식도록 두지 마”.



Don’t let your blood run cold

네 피가 차게 식도록 두지 마

I’m turning into a reptile / Sitting alone on park bench

난 파충류로 변하고 있어 /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서

Just like a reptile / Closer than I’ve ever dreamt

딱 파충류처럼 / 내가 꿈꿨던 것과 똑같아

-‘Reptile’



이어지는 벌스는 “I’m not afraid of losing my mind정신이 나가는 건 두렵지 않아”로 시작해, reptile이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한국어의 ‘냉혈한’처럼 ‘cold blood’나 ‘reptile’은 비유적 표현으로도 사용하는 말이지만, 그보단 원래 의미, ‘차가운 피를 지닌’ 생물종, ‘파충류’로 해석하는 것이 곡의 흐름에 맞다. ‘말 그대로literally’라서 시적이고, 그 의미가 이중적으로 다가온다. 처음엔 reptile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 심장과 피를 따스하게 ‘인간적으로’ 유지하라는 조언인가 싶었는데, 후렴의 문장들은, 가만히 혼자, 고요하게 앉아있는 도마뱀을 떠올리게 한다. 무감각하게 쓸쓸하고, 왠지 평온한 그림이다.



https://youtu.be/redKXHsOt6s

'Love You More'


You're paying money / Take off your shirt

넌 돈을 내고 / 셔츠를 벗지

Close your eyes and tell 'em where it hurts

눈을 감고 그들에게 어디가 아픈지 말해

They are the sickness / I am the cure, yes

그들이 병이고 / 내가 치유야, 그래

I will love you more / I will love you more

난 널 더 많이 사랑할거야

-‘Love You More’



‘Love You More’에는 다른 종류의 이중적인 뉘앙스가 있다. 배경은 아마 같은 도시, ‘them그들’은 ‘Reptile’의 ‘cold hearts’와 통한다. ‘너’는 라디오 쇼에, ‘그들’에게 영혼을 팔아버렸다. 화자는 ‘넌’ ‘그들’에게 이끌리다 결국 버려질 거라고 한다. ‘그들’로 인해 병든 ‘너’를 치유하는 건, ‘나’다. 제목 ‘love you more’은 이 때 등장한다. 맥락으로 보면, ‘널’ 더 많이 사랑함으로써 치유해 주겠다는 뜻에 가깝겠다. 헌데 그 이어짐이 확실하지는 않아, 삐딱하게 곁가지를 치게 된다. 병든 ‘너’를, 나’만’이, 내 사랑‘만’이 치유해 줄 수 있다는, 그것이 널 더 사랑하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는, 소유욕. 연인이라고 가정했던 화자는, 그러고 보니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전지적 존재 같기도 하다.


가끔 시티즌스!는 도시인들을 저 위에서 내려다보다, 고개를 저으며 귓가에 충고를 속삭이는 전지자 같다. 물론 그 도시인엔 자신들도 포함 된다.(‘Nobody’s Fool’) 다음 순간엔, 그 전지자에게 관찰 당하는 도시인간, 연인의 입장이 되어,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가보자’고  손을 내민다.(‘Let’s Go All The Way’)



You better save something to remember who you used to be

네가 누구였는지 기억할 만한 뭔갈 남겨 놓는 게 좋을 거야

You better save something to remember how it used to feel

네가 어떻게 느꼈는지 기억할 만한 뭔갈 남겨 놓는 게 좋을 거야

To be used

Nobody’s fool and nobody’s friend

아무의 fool도 되지 않기, 아무의 친구도 되지 않기

Uh, until your own rules break you in the end

아, 너 스스로의 규칙이 결국 널 부숴 버릴 때까지

-‘Nobody’s Fool’



Let’s go all the way / Even if we have to pay

끝까지 가보자 / 대가를 치러야 한대도

Never let a heart get away / Never let it hesitate

절대 심장이 도망치게 두지 말자 / 망설이게 두지 말자

One day you’ll be sure / One day you’ll be out the door

언젠간 확신하게 될 거야 / 언젠간 문을 나서게 될 거야

Never let your heart get bored

절대 심장이 지루함을 느끼도록 두지 말자

Even when your two and two do not make four no more

너희 둘과 너희 둘이 더 이상 넷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Let’s Go All the Way’



‘Let’s Go All the Way’의 브릿지에서 화자는, ‘어느 날 밤, 신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들은 우리가 왕이라도 되는 듯, 우리의 죄와 대가를 나열하고 있었다’, “They were cruel as you like그들은 너처럼 잔인했지만, but we laughed anyway우린 어쨌든 웃었다”라고. 라이트함을 유지하면서도 웅장한 멜로디가, 가사와 어울린다. 비장하게 로맨틱하다.


 https://youtu.be/QN39FBFwWOM

‘Let’s Go All the Way’



물론 로맨틱과 로맨스는 다르다. 시티즌스!의 모든 곡은 로맨틱하고, 그 중 몇에는 클리셰적 로맨스가 포함되어 있다. ‘(I’m In Love With Your) Girlfriend’는 막장드라마스러운 가사를 상쾌한 음으로 내보내며 시작한다. 후반부에는 내지르듯 한 구절을 반복하는데, 깔끔하고 시원하다. 그 흔한 문장, “I always want what I can’t have”가, 이 곡을 특별하게 만든다. 기본 멜로디는 유지하며, 매번 스타일을 바꿔 뱉기 때문이다. 리드미컬하고 가볍게 던지다가, 뒤로 갈수록 하드하게 내지른다. 박자를 늘이거나, 타이트하게 좁히기도 하고, 강조점을 바꾸기도 한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다르게 내보내면, 그 의미는 희미해지고 언어의 모양과 소리만 선명해진다. 이 곡이 영화라면, 로맨틱코미디보다는 실험영화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똑같이 되풀이함으로써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곡도 있다. ‘Caroline’은, 그냥, 친구였다가, 어떤 연애 감정이 생겼다가, 잘 될 뻔 했다가 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We started making sense / We never made any sense”를 반복하다, 결국 “We stopped making sense”로 끝난다.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담담하고 명랑한 톤이라서 더 쓸쓸하다. ‘make sense’라는 표현이, 닳아빠진 로맨스를 로맨틱하게! 살려낸다. 시티즌스!는, 언어를 효과적으로, 자기 식대로, 사용할 줄 안다.


‘I Remember’의 경우, 가사만 보면, 뭐야 싶을 수도 있다. “I still think about you, dream about you난 아직 널 생각해, 너에 대한 꿈을 꿔”, “I remember loving you널 사랑했던 날들을 기억해”라는 뻔한 내용이다. 그러나, 멜로디와 보컬은 중독적이다. 아예 옛날 노래 느낌이 나서, 세련됐다. 앞에서 언급한 “We sing!”이 포인트다. 눈을 감고, 감상에 젖기보단 몸을 마구 흔들게 된다. 사랑에만 죽고 사는 스토리는 진부해도, 꽂히는 포인트가 있는, 촌스럽게 스타일리시한 정통 멜로 같다.


그렇다면 ‘European Girl’은, 시대를 담고 있는 리얼리즘 멜로다. ‘네 영혼을 원해’라는 말은 약간 크리피하게 들릴 수 있지만, 아마 ‘body’가 아닌 ‘soul’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러피안 걸’은 화자와 영혼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 “It's hard to be the children of someone else's revolution다른 누군가의 혁명이 낳은 아이들이 되는 건 힘든 일이지”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겠다. 단순히 로맨스 대상이 아니고, 어쩌면 단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화자-아마도 유러피안 보이-와 같은 위치로 같은 시기를 지나는 같은 세대의 모든 시티즌일지도 모르겠다. 화자는 대상에게 ‘이 세상에 겁먹지 말라’며 위로를 건네는 듯, 유혹하는 듯, 노래한다.


<European Soul> 커버.


위 두 곡이 속한 <European Soul>은, 사랑하는 연인, ‘유러피안 소울’에게 보내는 편지 묶음 같은 앨범이다. 하지만 그중 러브레터만 있는 것은 아니며, 봉투의 색도, 핑크빛은 아니다. 온갖 물감이 섞여 알록달록한 앨범 커버. 딱 그런 색이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로맨틱한 곡은, 하트 모양이지만 핑크빛은 묻어나지 않는, ‘Lighten Up’이다. 첫 벌스에서 화자는 ‘my love’에게, 약속의 땅으로 리드해 주겠으니 손을 잡으라,고 한다. 둘은 날아갈 것이다, 다만 ‘높이high’가 아니라, ‘낮게low’.



Hold it down make yourself sick / We’ve been living like lunatics

참고 참아 스스로를 병들게 만들지 / 우린 미친사람들처럼 살아왔어

Don’t let the rhythm slip / They tell me it’s all in the hips

리듬이 끊어지게 두지 마 / 다 엉덩이에 있다고들 하잖아

Get back to work / those watching eyes

And teach you how to judge

일터로 돌아가 / 저 눈들. 네게 평가하는 법을 가르치겠지

One they you’ll know / how low you can go

언젠가 알게 될 거야 / 얼마나 낮게 내려갈 수 있는지

-‘Lighten Up’



이들이 의도한 해석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늘어놓아 본다. 화자가 연인을 이끄는 곳은, work(: 남들을 평가하는 법만 터득하게 되는 곳)와는 거리가 멀다. 아마 참아서 병이 나지 않아도 되는, 리듬에 맞춰 신나게 흔들 수 있는 어딘가일 테다. 왜 ‘how’다음 오는 단어가 ‘high’가 아니라 ‘low’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가사의 ’low’는 보편적인 의미처럼 ‘지양’해야 할 방향이 아니라 ‘지향’하는 바에 가깝다. 그러나 부정적인 뉘앙스가 남아 있어, 왠지 누아르noir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https://youtu.be/VTcXFZIdeyk

‘Lighten Up’


You and I, we are so high / Within, no no

But we might fall, one day / Within, no no

우리는 각각 정말 높이 있어 / 함께는, 그럴 수 없어

언젠가 추락할 수도 있겠지 / 함께는, 그렇지 않을 거야  

-‘Lighten Up’



각각 이대로 산다면 세상이 원하는 대로 ‘높이’ 올라갈 수 있지만, 언젠가 추락할 수도 있다. 함께 한다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낮게 낮게 영원히 날아갈 수 있다. 화자는 반복해서, 연인에게 묻는다, “How low can you go, my love얼마나 낮게 내려갈 수 있어, 내 사랑?” 분위기도 가사 내용도 표면적으로는 다르지만, <Here We Are>‘True Romance’가 떠오른다.


앞의 곡들처럼 영화에 대입해 본다. ‘True Romance’는 예쁘장한 미장셴으로 시선을 끌었다가, 현실적인 전개로 마음을 찢어 놓는 판타지 멜로가 어울린다. 뮤직비디오는, 정말 ‘영화 같다’. 연인들은 공사장 먼지 속에 파묻혀서, 손목에 수갑을 찬 채 경찰차 위에서, 강도들이 총질하고 있는 마트에서, 달리는 차 안에서, 시위대와 특공대가 뛰어다니는 도로에 누워서, 고층 빌딩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서, 둘만의 세계에 빠져 키스하고 계속 키스한다. 상큼한 톤의 멜로디/ 극적인 배경/ 격정적인 키스/ 도무지 들어맞지 않는 세 요소가 어우러져 독특한 방향으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곡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https://youtu.be/OrxxHlRs85U

‘True Romance’ mv.



시티즌스!가 노래하는 ‘we’나 ‘romance’의 의미는, 생각보다 넓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진짜 로맨스’의 척도라는 게 있다면, ‘함께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가 아니라, ‘함께 얼마나 낮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가’에 가깝지 않을까.(‘Lighten Up’) “Never knowing where you came from or where you go네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True Romance’). 중요한 건, 올라가든 내려가든, “within함께”(‘Lighten Up’) 있다는 것, “Here we are여기 우리가 있다”(‘True Romance’)는 사실이니까.


클리셰 치얼업 송인가 했는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거리가 느껴진다. 근데 자꾸 듣다 보니 그 쿨함이, 희한하게 위로가 된다. 도시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상하게 낯이 익어 살펴봤더니 나를 똑 닮았다는, 출처 모를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티즌스!는 삭막한 도시의 골목에서 마주치는 동시대 동세대 시티즌스에게, 로맨틱한 음악을 쿨하게 건네며 속삭인다, European soul(s), here we are.




+

이 글의 시티즌스!는, 정규 1, 2집 <Here We Are>과 <European Girl>까지만 해당된다. 최근의 앨범들, <Fear>과 <Waking Up to Never Die>의 장르는, 락으로 분류될 듯하다. 전의 곡들과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이모셔널하게 내면으로 파고든다. 보컬도 보다 허스키해졌다. 기술적으로는 더 다듬어진 듯 하지만, 그 대가로 독특한 라이트함과 로맨틱함을 지운 듯해 아쉽다. 나는 기본적으로 락을 좋아해서, 취향을 따지면 이쪽에 가까울 수도 있겠는데, 이들의 전 앨범을 들은 후 비교하니, 특색이 옅어진 느낌이다. 뭐, 각자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드는 거다. 앞에서 말했듯 뮤지션의 재량이다. 듣고 말고는 청자의 재량이고. 더 이상 고개가 자동으로 까딱거리지 않아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아니 물론 좋다. 리스펙한다. 앞으로도 시티즌스!는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전의 두 앨범과 후의 두 앨범을, 다른 날 다른 기분으로 듣게 될 듯싶다.


+

역시, 목소리의 매력은 종종 커버에서 두드러진다. 베사메무쵸라니, 완벽한 선곡이다.


https://youtu.be/kfq5pmEBxgk







매거진의 이전글 엉망으로, 멋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