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tron
Ladytron
(Members: Helen Marnie, Mira Aroyo, Daniel Hunt, Reuben Wu)
Ladytron을 듣게 된 경로는, 이랬다. ‘Playgirl’이 어떤 영화의 삽입곡 리스트에 있어, 몇 번 듣게 됐다. 어쩌다 본 그룹명이 피할 수 없이 낯익어 검색을 했다. Roxy Music의 ‘Ladytron’에서 따온 것이(맞)다,는 포털 사이트의 설명을 별 감흥 없이 훑었다. 앨범 커버가 좀 취향이어서 무심코 <604>를 돌렸다. 첫 플레이에 귀에 꽂히는 종류의 사운드는 아니었다. 종종 귀가 찾길래 듣고, 듣고, 듣다가, 가사가 익숙해질 무렵 별안간, 머리에 ‘어 바로 이거야’ 라는 문장이 스치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록시뮤직을 사랑하고, 가끔 불쾌해하면서도 꾸준히 듣지만- 어쨌든 ‘Ladytron’의 중심은 lady,일 리가 없다. ‘그녀가 찾을 lover’, 남성인 화자 자신의 감정과 욕망이다. 그 속에서 여성은, 앨범 커버의 모델들처럼, 오로지 신체의 이미지나 사랑의 대상이 될 뿐이다. 록시뮤직의 Ladytron에서 이름을 따온 레이디트론은, 바로 그 묵음처리 됐던 ‘lady’의 목소리를 불러낸다. 단순히 여성이 보컬이고 프론트퍼슨이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레이디’라고 드러내는 게 아니라, ‘레이디’에서 ‘레이디스러움’을 없앰으로써, 대상에서 사고하는 존재로 만든 다음, 다시, 그 상태에서 각기 다른 레이디 하나하나로서의 서사를 불어넣는다.
사실, 이를 뒷받침할 논리적인 근거가, 거의 없다. ‘Seventeen’이나 ‘Ghost’의 가사를 인용해 의미를 끼워 맞추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대신 내 선에서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고백하겠다. 메시지가 가사와 에스테틱에 분명히 드러나는 BONES UK와 같은 그룹과는 다른, ‘느낌의’ 이해가 필요하므로. 레이디트론의 음악에는, ‘레이디’의 ‘느낌’이 없고, 섹슈얼리티가 삭제된 ‘느낌’이 있다. Citizens! 보컬의 음색을 묘사할 때 썼던 표현이다. 마니와 미라, 두 보컬의 음색은 분명히 ‘여성적’인데, 전혀 ‘여성스럽’지는 않다. 건조하다. 가사에 드러나는 화자에게는, ‘he’, ‘she’, ‘girl’, ‘boy’ 어떤 성별이 지정된 단어를 사용하건 상관 없이, 전통적인 성별 분류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 종 자체, 외계인, 안드로이드의 뉘앙스가 풍긴다.
"Q : 당시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여성 보컬이 드물어서, 일부러 여성이 리드보컬을 맡기로 한 거야?
우리는 다른 걸-프론트 팝 그룹이랑 같아, 낸시 시나트라, 프랜코이즈 하디, 바비 젠트리, 스티비 닉스, 블론디, 아바, 등등등! 그치만 그런 면도 있었지; 헬렌이랑 나는 분명히 여자였고, 각자 매우 뚜렷하고 다른데 서로 잘 어울리는 보컬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걸 이용한거지."
-Mira Aroyo, interview by. Chi Ming Lai [electricityclub.co.uk]
‘각자 매우 뚜렷하고 다른데 서로 잘 어울리는 보컬’. 이들은 그 조합을 정말로 잘, 이용, 했다. 헬렌 마니의 보컬은 청량하고, 기교가 거의 없다. 건조한데 목소리 자체에 묻어나는 처연함이 있다. 가장 또렷하게 들리는 음을 주로 사용하는데, 깔끔하면서도 다듬어져 있지는 않다. 음색이 아주 독보적이진 않으나, 대담하고 담담하게 뱉는 방식 때문에 귀에 남는다. 감정이 거의 묻어나지 않는 보이스, 정직한 발음. 깔끔하게 마디마디 정확한 음을 뱉기도 하고, 공기를 많이 섞어 가성을 내기도 한다. 미라 아로요의 보컬은 보다 저음이고, 울림이 좀 더 섞였는데, 역시 깔끔하다. 발음은 투박한 편이다. 극과 극은 아니나, 들으면 쉽게 구분된다. 주로 멜로디 없이 리듬으로만 노래하거나, 본인이 쓰며 자란 언어인 불가리아어로 멈블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들으면 약간, 이륙하는 비행기가 떠오른다.
맴버들이 자비를 들여 녹음했다는 첫 번째 스투디오 앨범 <604>와 다음 해 나온 두 번째 앨범 <Light & Magic>은, 전체적으로 유사하다. 시크하고 쿨한 무채색인데, 무시할 수 없는 블루blue가 묻어나는-약간 사이버펑크틱- 아우라는 소리와 영상, 가사에서 일관되게 흐른다. 듣다 보면 어쩐지 머리가 차가워지고 표정이 굳고 몸에 힘이 빠지며, 마니가 하듯, 기계적으로 대충 어깨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정도나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지만 멜로디와 보컬의 구성에 몇 가지 패턴이 있는데, 설명을 위한 단편적인 분류일 뿐이니 그냥 읽고 흘려보내면 된다. 어쨌거나 하나같이-‘신스팝 밴드’라기보단 ‘신스를 연주하는 밴드’-‘레이디트론’표 트랙들이다.
<Light & Magic>의 ‘Blue Jeans’는 거의 마니의 높은 보컬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소리를 멀고 울리게 만드는 효과를 넣어 꿈꾸는 듯한 기분을 준다. 건반 사운드도 일관된 분위기다. ‘Black Plastic’의 경우, 배경음은 빠른 템포의 전형적인 일렉트로닉 댄스 팝 필인데, 거기에 얹은 마니의 보컬이 너무나 ‘마니’여서, 묘하다. <604>의 ‘Playgirl’, <Light & Magic>의 ‘Seventeen’은 마니의 보컬이 중심이 되고, 미라가 낮은 톤으로 똑같이 겹쳐 중얼거리는 구성이다. 반면 <604>의, ‘I’m With the Pilots’, ‘He Took Her to a Movie’나, <Light & Magic>의 ‘Flicking Your Switch’, ‘Cracked LCD’의 경우, 미라의 잉글리시 멈블링이 중심이 되고, 마니의 높은 가성이 배경에 겹친다. <604>의 ‘Discotraxx’ 에서는 사이사이에 불가리안 멈블링을 들을 수 있고, ‘Commodore Rock’은 아예 불가리안 멈블링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Light & Magic>의 ‘True Mathematics’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604>의 ‘Mu-Tron’이나 ‘CSKA Sofia’, ‘Zmeyka’, <Light & Magic>의 ‘Turn It On’ 같은 곡들은 보컬이 아예 없다. -‘Turn It On’의 경우, 반복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잘 들어보면, ‘Turn it on’이라고 사람 목소리로 녹음한 후, 효과를 쌓고 또 쌓아서, 기계음으로 거의 발음의 실루엣만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첫 앨범의 마지막 곡 ‘Skools Out…’을 들으면 저녁 어스름에 천천히 교문을 닫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긋나게 겹치는 보컬, 뒤로 갈수록 짜 하고 넓게 퍼지는 사운드.
"우리는 신스 악기들을 엄청나게 모았어, 벼룩시장이나 스투디오들에서. 요새처럼 비싸지도 않았고, 아무데서나 구할 수도 없었어. 우린 그 악기들이 내는 사운드가, 이루는 모습이, 주는 촉감이 좋았어. 게다가 당시에 우리 중 셋은 디제잉을 하고 있었는데, 특정한 타입의 음악을 플레이하고 싶었거든, 근데 그런 음악이 별로 없어서, 우리가 만들기 시작했던 거지."
-Mira Aroyo, interview by. Chi Ming Lai [electricityclub.co.uk]
I saw you face on a black-and-white screen
흑백 스크린에서 네 얼굴을 봤어
I knew your name from the checkout machine
체크아웃 머신 속 네 이름을 알고 있었어
You don’t have to spend, you just have to pretend
쓸 필요는 없어, 그런 척만 하면 돼
-‘Paco!’, <604>
가사는 실험적이라고 할 만하다. 독특하고 시적이다. 완결된 서사라기보다는, 흐르는 이미지 같다. 관념적인 감정이나 사고의 표현보다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행위의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구절들이 모여 그리는 그림은 추상적이다. 정의 내릴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현실적이다. ‘Paco!’의 가사는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있는 물건들을 그냥 늘어놓는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멜로디로, 천진난만한 톤으로, 읊고, 반복한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다가도, 의식의 흐름을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듯한데, 그 배치가 절묘해 일종의 주문 같다. 멜로디와 가사에서 자주 사용하는 ‘반복’도 그렇다. 무작정 한 말을 또 하는 게 아니라, 타이밍과 횟수가 ‘정확’하다.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고 중독 시킨다.
‘내일의 세계에서 잔다’(‘Playgirl’) 던지 ‘기억 속에 벌레가 살고 있다’(‘Blue Jeans’) 던지. 몽환적이고 독보적이고 생소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느낌적 느낌’을 부여하면서,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게 한다. 해석해서 규정하려 들거나, 지레짐작하기 힘든. 그러면서도 자꾸 상상하게 만드는.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자꾸 반복해서 되뇌고 있는 이상한 가사들. 그나마 ‘평범한’ 가사도, 표현법이 독특하다. 단어 자체는 자주 쓰이는 것들인데, 그 조합이 낯설다. 내 페이버릿 중 하나인 ‘He Took Her to a Movie’부터 들여다본다.
He met her in the fall, he took her to a movie
And when they’d done it all, he took her to a movie
And from the hospital, he took her to a movie
But so did I
And when her heart was sad, he took her to a movie
She’s all he’s ever had, he took her to a movie
And should their love turn bad, he took her to a movie
But so did I
I think she’s been alone, he took her to a movie
When they cut off the phone, he took her to a movie
And when her cover’s blown, he took her to a movie
But so did I
There’s nothing on TV, he took her to a movie
But she’s the one for me, he took her to a movie
We’re at number three, he took her to a movie
But so did I
-‘He Took Her to a Movie’, <604>
문장 끝마다 들어가는, ‘he took her to a movie’는, 처음에는 ‘영화관에 데려간다’는 평범한 행위로 다가왔다가, 반복될수록 다른 뉘앙스를 입으며 곡의 이미지가 된다. 단어와 문장이 맞물려 완전한 그림을 이룬다. 사이사이의 ‘and’은 군더더기가 아니다. 되풀이되는 구절과 구조에, ‘he’와 ‘she’와 ‘I’ 각자의, 그들 사이의 상태와 감정을 숨겨 놓는다. 이 트릭 때문에, 시크하게 아련하다. 도입부가 펑키한 ‘I’m With the Pilots’와 보컬 배치가 비슷한데, 메인 사운드가 청량한 건반음이라, 분위기는 다르다. 미라는 거의 리듬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듯 노래한다. 쓸쓸하고 담담한- 아니 그런지조차 알 수 없는- 톤으로 문장들을 툭 뱉는다.
그는 그녀를 영화관에 데려갔다, 가을에 만나기 시작했을 때도, 그걸 다 했을 때도, 병원에서도,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슬펐을 때도. 그 사이에, ‘But so did I’가 섞여 있다. 남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화자는, 불친절하다. 그와 그녀의 관계를 지켜봤던, 그리고 (아마도) 그녀를 사랑하는 제 삼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내 생각에 그녀는 항상 혼자였던 것 같아’, ‘그녀의 가면이 벗겨졌을 때’, ‘그녀가 바로 그가 가진 전부였어’, ‘근데 그녀가 바로 내 운명이었단 말이야’ 같은 표현들은, 관계와 상황을 상상하고 짐작하게 하나, 속속들이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바로 뒤에 따라붙는 예의 ‘he took her to a movie’는, 더 깊게 파고들기를 차단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 그 차단은, ‘Another Breakfast With You’에서도 들린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고 노래함으로써, 무언가를 느끼게 만든다. 평화롭고, 서늘하다.
I didn’t feel a thing when you told me that
You didn’t feel a thing when I told you that
I didn’t feel a thing
Another breakfast with you
네가 그걸 말했을 때, 난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어
내가 그걸 말했을 때, 넌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어
난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어, 또 한 번, 너와 함께한 아침.
-‘Another Breakfast With You’, <604>
You’ve been tryin’ to protect me
An insect living in your memory
Don’t, blue jeans won’t cut at the seams
Like you want them to
당신은 날 보호하려 노력해 왔지
당신의 기억 속엔 벌레가 살아
그러지 마, 청바지는 원하는 대로 잘리지 않으니까
-‘Blue Jeans’, <Light & Magic>
뮤지션들이 가사를 쓰는 스타일은 각자 다 다르다. 감정을 어떤 독특한 비유들로 풀어내기도 하고, 본인의 경험에 기반해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진한 날것의 감정을 그냥 담기도 하고, 어떤 컨셉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포커스를 두기도 한다. 레이디트론의 방식은, 글쎄. 평범한 것 같은데 희한하게 독특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는 것. 깔끔한데,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후렴구만 보면 ‘blue jeans’는 단순히 청바지, 화자가 암시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수단인 듯하다. 허나 다른 문장들에서 ‘blue jeans’는, 꼭 화자가 말을 거는 대상의 이름이 있을 법한 위치에 있다. 레이디트론의 가사를 정독하다 보면, 사실 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Playgirl, why are you sleeping in tomorrow’s world?
플레이걸, 왜 내일의 세계에서 자고 있는 거야?
Playgirl, why are you dancing when you could be alone?
플레이걸, 왜 혼자일 수 있을 때, 춤을 추는 거야?
-‘Playgirl’, <604>
사운드와 가사의 이러한 에스테틱은, 뮤직비디오와도 일치한다. ‘Playgirl’ 뮤비의 톤은 대부분 흑백, 입술과 눈꺼풀만 여닫는 마니의 숄더샷이, 이런 저런 각도에서 잡히고, 겹치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다른 맴버들이 가만히 건반을 누르거나 화면을 응시하는 모습이나, 마니가 지하철을 탄 장면 등이 잡힌다. 중간중간 들어간 추상적 도형은, 꼭 이들의 음악이 만드는 파동을 단순하게 이미지화한 것 같다. ‘Blue Jeans’의 경우, 그냥 이들의 스투디오 라이브 영상을 찍어 놓은 것 같은데, 굉장히 낮은 화질의 흑백 화면 때문에 묘한 공기가 맴돈다. 마니는 이번엔 음악에 맞춰 고개를 대강 까딱거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노래한다. 검고 진한 눈화장 때문에 큰 눈이 훨씬 두드러지고, 관객은 거기서 눈을 뗄 수가 없게 된다. 그 영상과 등등과 노래와 무언가에 홀린 듯이.
‘Seventeen’은, 조금 다르다. 분위기는 유지하면서, 서사를 입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비유적으로 전달한다. 폐쇄된 공간, 꼭 취조실처럼 일방향 투시 유리로 된 창문이 있다. 칙칙한 빛깔의 스쿨룩 유니폼을 입고 머리를 틀어올린 여성들이 춤을 춘다. 관리자로 보이는 나이 든 사람은, 이들을 감시하듯 지켜보다, 한명씩 문 밖으로 내보낸다. 레이디트론 맴버들은, 문 밖에서 신스를 연주한다. 마니와 미라는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건조하게 입술을 움직인다. 결국 방에는 오직 한 사람만 남는다. 다음에 대한 답을, 대강 알려 주는, 이야기다.
"수 년 동안, 사람들은 추측했다, 이 가사는 모델 산업에 대한 풍자, 텅 빈 ‘팝 아이돌’ 문화에 대한 공격인 걸까, 아니면 단순히 어린 여자들을 부적절하게 따라다니는 나이 든 남자들에 대한 걸까."
-Steve Gray, [electiricityclub.co.uk]
They only want you when you’re seventeen
When you’re twenty-one, you’re no fun
They take a Polaroid and let you go
Say they’ll let you know, so come on
그들은 오로지 열일곱 일때만, 널 원해
네가 스물 하나가 되면, 재미가 없다면서
그들은 폴라로이드를 한 장 찍고 널 내보내
나중에 연락한다면서, 거봐
-‘Seventeen’, <Light & Magic>
I wrote a protest song about you
너에게 저항하는 노래를 썼어
Set off on the long march without you
너 없이 기나긴 행진을 시작했어
I set myself on fire without you
너 없이 내 몸에 불을 질렀어
-‘Burnig Up’, <Velocifero>
<Velocifero>부터, 이들의 화법은 조금씩 달라진다.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던 화자는, 이렇듯-비유적이지만-직접적인 스스로의 행위를 묘사한다. 전체적으로 저항한다거나(‘Burnig Up’) 도망간다거나(‘Runaway’) 벗어난다거나(‘Predict the Day’) 하는 표현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구체적이고, 생소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Versus’는, 보통은 대비되는 급부가 아닌 단어들을 ‘versus’로 이어 나열한다. “거리 대 시간, 가사verse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기, 초점 대 눈물 대 내가 어떻게 여기로 왔는지 대 네 눈에 담긴 저주, 여기서 시작된 불이 있는데, 두려워 할 것 없어 대 외로움 대 안전” -아니 이렇게 나열하다 보면, 애초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versus’가 통상적으로 쓰이는 의미가 맞기는 한지 감을 잡을 수 없게 된다. 내 영어가 짧은 탓 만은 아니리라. 이해할 수는 없으나, 느낌적 느낌은 온다.
(Doesn’t make sense at all, but make my senses feel something.)
There’s a ghost in me
Who wants to say I’m sorry
Doesn’t mean I’m sorry
내 안에 유령이 있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그게 내가 미안하다는 뜻은 아니야
-‘Ghost’, <Velocifero>
이 앨범을 애플 뮤직에서 ‘록’으로 분류했길래, 뜬금없다고 여겼는데, 들어보니 어쩐지 그럴 만 하다. 배경 사운드는 풍부해졌고, 들리는 악기들도 ‘록’ 스럽다. 가사도 곡들의 분위기도 일관된 편이다. 보컬 구성은 거의 마니 단독인데, 저음을 좀 더 사용하고 살짝 울림이 들어간다. 몇 곡을 간단히 살펴보면, ‘Predict the Day’는 줄곧 나오는 배경음과, 물을 마시고 입맛을 다시는 듯한 숨소리가 의미심장하고 핫하다. 겹겹이 쌓은 마니의 목소리가 이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다. ‘Black Cat’ 과 ‘Kletva’는 둘 다 불가리아어로 미라가 부르는데, 느낌은 다르다. 전자는 록, 후자는 민요 분위기다.
그렇게, 이들의 음악은, 레이디트론을 레이디트론이도록 하는 중심을 유지하며, 일관성 있는 흐름으로 변화해왔다. <Velocifero>가 록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더 강하고 가득한 사운드와 감정을 만든다 싶었다면, 2011년 앨범 <Gravity the Seducer>에서는 제목과 커버처럼, 장르를 벗어나, 가사와 사운드 모두에서, 자연의 힘, 거대하고 넓은 것들이 연상된다. 온도, 얼음, 고도, 달, 코끼리, 백금 따위 단어들은 일관된 이미지를 그린다. 배경음은 꽉 차게 웅장해졌다. ‘Ambulances’에서는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고음의 날카로운 가성이 등장한다. 다음 곡 ‘Melting Ice’에서처럼, 겹겹이 쌓고 멀리 들리게 하는 효과를 자주 넣기도 한다. 목소리의 디테일이 눌리며 배경음과 섞인다. 보컬을 악기처럼, 앨범, 곡 전체에 대응되는 거대한 힘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이 흐름은 7년만의 앨범 <Ladytron>으로 이어진다. ‘The Island’나 ‘I Hide’에서 들리는, 마니 목소리에 들어간 공기의 울림이나, ‘The Mountain’의 코러스 같은 건 이십 년 전엔 잘 없던 종류의 것이다. 사운드는 여전히 깔끔하지만, 덜 명확하고, 더 풍부하다. ‘Paper Highways’ 같은 곡은, 희한하게도 약간, 댄스 팝과 함께, 펑크가 아른거리기도 한다. 가사들은 거대하게 파괴적인데, 마음을 무너뜨렸다가 다시 메꿔준다.
There’s no wrong, there’s no God
There’s no harm, there’s no love
We are more like you, then the ones that you knew
잘못된 것도 없고, 신도 없어
해도 없고, 사랑도 없어
우리는 좀 더 너와 같아, 네가 알았던 이들보다
-‘The Animals’, <Ladytron>
We’re sirens of the apocalypse
We are savages, given your poison lips
우리는 아포칼립스의 사이렌들이야
우리는 야수들이야, 독이 든 입맞춤을 건네는
-‘The Island’, <Ladytron>
You are not my savior
넌 내 구원자가 아니야
My resistance is your weakness
내 저항이 네 약점이야
-‘Deadzone’, <Ladytron>
주로 맴버들의 사진을 이러저러하게 편집해 만들었던 이전의 커버들과 달리, <Gravity the Seducer>부터는 압도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특히 이번 커버는 그 자체로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번지는 산불이다. 이어 도로에 삐딱하게 정지해 있는 차가, 두 사람의 형상이 들어온다. 불을 피해 도망가는 게 아니라, 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NPR 뉴스 Leah Mandel의 말을 빌리면, “A Hopeful Apocalyptic Message.희망적인 지구종말스러운 메시지.” 뭐 이런 말장난인가 싶을 테지만, 들어 보면 무슨 말인지 감이 올 것이다.
느닷없는 변신이 아니라, 꾸준한 시도, 시대와의 상호작용에 따른 변화다. 그리고 중심은, 그대로다. 그를 증명하듯 앨범 제목은 ‘Ladytron’. 밴드가 자신들의 이름으로 앨범을 내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런데 레이디트론은, 데뷔 약 20년 차에 낸, 7년만의 앨범 제목을, ‘레이디트론’으로 정했다. 이 아웃풋에 대한 이야기를, 음, 맴버들의 목소리로 들어봐야 겠다.
"Q: 밴드 사운드의 진화에 대해 -이게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야, 아니면 현재 세상에 영향을 받아 형태를 이룬 거 같아?
헬렌 마니: 둘 다인 거 같아. 따로 떨어져 시간을 보낸 건 좋았어, 각자 다른 것들에 집중했고, 각기 다른 영감들로 이어졌어. 우리가 다시 함께했을 때에, 세상은 약간 혼란의 시기에 있었고, 그게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
루벤 우: 우리는 한동안 버블 속에 있었고, 그 후엔 버블을 벗어났지. 아주 많은 경험을 더 했다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고 다행히도, 우린 지금 좀 더 현명해졌어.
다니엘 헌트: 세계관은 변해. 우리 모두 다 삶에 있어 전에 없던 경험들을 했고, 그러니까 이건 단지 속한 시기와 분위기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개인적인 무언가이기도 하다는 거지."
-interview by. Andy Reilly [snackmag.co.uk]
"우리는 특히 ‘80년대’ 음악에 빠져 있지 않고, 우릴 그렇게 규정 하는 데에 질렸어. 모든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지만, 핵심적으론 우리 본연의 음악을 만들고 스스로의 소리를 찾고 싶었어. 뭘 재창조하거나 패티쉬화 하는 데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근데 사람들이 당시 팝에, 아주 드물게 사용된 신스만 듣고, 그냥 ‘80년대’라고 가정해 버린 거지. 지금은, 신스는 메인스트림 여기저기서 다 쓰이니까, 사람들은 그 사운드를 ‘현대’로 여기는 거야, ‘80년대’의 반대급부처럼."
-Mira Aroyo, interview by. Chi Ming Lai [electricityclub.co.uk]
서늘하고 건조한 허공을 향해 서서히 발을 내딛던 이들은, 이제 꽉 채워 뜨겁게 타오르며, “불이 갈망이 될 때까지”(‘Until the Fire’) 함께 심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자고 말한다. ‘절망적인 희망’을 건네며, 여전히 레이디트론인 채, 레이디트론스럽게, 노래한다,
We are Ladytron, and “this is our sound”(‘This Is Our Sound’).
* 참고 인터뷰
http://www.electricityclub.co.uk/ladytron-interview/
https://snackmag.co.uk/interview-ladyt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