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fashion, contemporary, apocalyptic.
I DONT KNOW HOW BUT THEY FOUND ME, 2020, <Razzmatazz>
Members: Dallon Weekes & Ryan Seaman
딱 2년쯤 전이었다, 유튜브 자동 추천에 걸린 ‘Nobody Likes the Opening Band’ 라는 어쩐지 낯익고 신선한 제목의 영상을 무심코 클릭한 것이. 3분 후부터, 내 음악인생은 이 저화질 비디오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시 이 밴드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음원은 싱글 서넛이 다였으나,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 누가 페이버릿 밴드를 묻는다면 고민 없이, 더듬지 않고, 긴 영어 이름을 술술 뱉을 것임을.I DONT KNOW HOW BUT THEY FOUND ME.
iDKHOW의 스투디오 ‘데뷔’ 앨범 <Razzmatazz>는, 발매 전에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 온 탓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던 무언가였고, 발매 후에는 내가 정말 ‘안 쓸 수 없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손이 키보드를 두드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됐다. 트랙리스트가 미리 공개됐을 때, 3번에 적힌 ‘Nobody Likes the Opening Band’를 보곤 심장이 찌릿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도 살짝 의아했다. 그동안 수많은 팬들이 그토록 음원 발매를 염원했으나 EP엔 들어가지 않았고 싱글로도 내지 않았던 이 곡이, 왜, 여기에, 이제야, 들어갔는가, 하고. 물론, 따로 이유가 있겠지만, 풀 트랙이 공개된 지금, 팬의 감으로 대강 음악적 맥락을 알 것 같다.
<1984 Extended Play>의 타이트한 트랙들 사이에는 이 멜로디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이거만 들려줄게! 하는 느낌으로 (인트로마저!) 삐리릭 던져놓은, (iDKHOW의 표현을 빌려)‘neat’하고 시크하고 차가운 EP였다. <Razzmatazz>는 넣고 싶은 걸 다양하게 넣어봤으나 여전히 neat하게 풍부한 앨범이다. 제목대로 ‘흥’이 나는데, 살짝 어둡고 우울하고 절제된 종류이며, 다채로운 감정이 그 사이로 오락가락한다.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여전히 iDKHOW스러운 무언가다.
곡들을 굳이, 사운드와 가사 기반의 단편적 분류를 하자면, 두 스타일이 되겠다. 먼저, ‘Leave Me Alone’, ‘Mad IQs’, ‘New Invention’, ‘Sugar Pills’, ‘Lights Go Down’, ‘Razzmatazz’. EP와 느낌이 통하며, 얼터너티브 록 스러운 그룹사운드가 포함된 곡들이다. 날카로운 신스 사운드나 빠르고 강한 드럼이 들리기도 하고, 보컬은 지르거나 툭툭 끊어낼 때가 많다. 가사는 주로 관찰자나 전지자의 입장에서 세상이나 대상을 관찰하는 방향이다. 일인칭 ‘주인공’ 입장으로 이야기하더라도, 감정보다는 구체적인 사물, 상황 서술을 이용한 비유로 풀어낸다.
다음은, ‘Nobody Likes the Opening Band’, ‘From the Gallows’, ‘Clusterhug’, ‘Kiss Goodnight’, ‘Need You Here’, ‘Door’. 멜로디에 클래식 올드 발라드나 부드러운 팝 스러운 요소가 들어간 곡들이다. 건반이나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해 기본 선율을 두드러지게 연주하고, 보컬은 곱고 길게 뽑아낸다. 가사 내용은 ‘Nobody Likes the Opening Band’를 제외하면 표면적으론 대개 ‘러브’ 스토리로, 감정이나 바람을 관념적이거나 전형적인 비유 위주로 담아낸다.
아니 이 위대한 트랙은 대체 어디로 분류해야 하지 하고 가슴을 쿵쿵 울리게 했던 ‘Razzmatazz’가 약간 따로 놀지만, 우겨 넣어 봤다. 물론 화자의 시점은 조금씩 섞여 있다. 곡 순서는 다음과 같다.
꼭, 그래 뭐 나눌 테면 나눠봐, 하듯 딱 여섯 곡 씩인데, 또, 이거 그렇게 간단히 분류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라고 경고하듯, 여백을 두고 그것들을 ‘섞어’ 배치해 흘러가는 구성을 이룬다.
이 분류는 어디까지나 임의. 하나하나 곡마다 개성이 톡톡하다. 이제, 곡 하나하나를 살펴볼텐데, 조금 늘어지더라도, 이들이 정한 트랙 순서대로 언급하려고 노력했다. 왜냐면 이 글은 덕질이고 그 대상은 완벽한 앨범이니까. 결과적으로 조금 뒤섞이기는 했다. 미리 경고하자면, 짧은 음악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감상인데다, 절제되지 않은 팬심이 종종 튀어나올 터라 부담스럽고 쓸데없을 가능성이 높겠다.
일단 첫 번째 트랙 ‘Leave Me Alone’. 스타일은 예상 범위에 있었으나, 귀의 기대치는 가뿐히 뛰어넘었던, 역시 이게 iDKHOW지, 하는 만족감을 안겨줬던 트랙이었다. 전체 곡을 다 돌려봤을 때, 이전 EP의 곡들과 가장 느낌이 통했다. 가사를 살피기 전에, <1984 Extended Play> 속 가사들을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Now shut your dirty mouth
If I could burn this town I wouldn’t hesitate
To smile while you suffocate and die
이제 그 더러운 입을 닥쳐
이 도시를 태워버릴 수 있다면 난 망설이지 않을거야
네가 숨막혀 죽어 가는 동안 미소 짓고 있겠지
-‘Choke’, <1984 Extended Play>
Lonely little life
And nobody believes you now
You’re bleeding magic
외롭고 보잘것없는 인생
이제 아무도 널 믿지 않아
넌 마법을 흘리고 있어
-‘Bleed Magic’, <1984 Extended Play>
Now, we’re so young but we’re probably gonna die
It’s so fun we’er so good at sellin’ lies
We look so good and we never even try
Get your money from the trust fund
Do it all the time
지금은 아주 젊지만 우린 분명 죽겠지
이거 너무 재밌잖아 우린 거짓을 정말 잘 팔아
우린 정말 잘생겼어, 심지어 그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는데
신탁펀드에서 네 돈을 꺼내가지, 매번.
-‘Do It All the Time’, <1984 Extended Play>
댈런 위크스가 쓰는 가사의 한 축은, ‘이런 식’이다. 독특하게 sarcastic서캐스틱한 방향으로 시적이다. 테두리 밖에서 ‘현대인’과 사회를 관조하고 평가하거나, 시스템에 통달한 채 그 속에 기꺼이 포함되어 이용해먹으며 상황을 ‘fully control완전히 통제’ 하고 있는 입장의 화자들이 있다. ‘Leave Me Alone’은 사운드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전작을 가장 닮아 있는 곡이다. ‘넌 돈을 다 가져갔지만, 돈으론 친구를 살 수 없었지’, ‘넌 거물이지만 여기 아무도 그걸 몰라’. 화자는 돈과 물질에 자아를 투영해 소유에 목숨을 거는 이들에게 요구한다, 귀찮다는 듯. ‘Now I want you to leave me alone.이제 날 좀 혼자 내버려뒀으면 해.’
당연히, 이 설명은 충분치 못하다. 창작자의 가치관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지닌 예술이므로. 모든 문장이 하나의 의미로 통하지 않을 수도 있고, 분명히 읽히는 메시지가 아티스트의 의도에 부합하더라도, 그게 전부는 아닐 테다. 고로 이 곡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브릿지에 있다. 일관된 뉘앙스로, 서사의 한가운데에서 ‘모자장수처럼 정신 나간’ 듯 이야기하다가, 휙 곁으로 빠져서는 차분한 예언자의 목소리를 낸다.
Four in the morning but we’re having such a lovely time
Mad as a hatter with a dagger and a dollar sign
새벽 네 시인데, 우린 완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야
모자 장수처럼 미쳤지, 단검이랑 달러 사인을 가지고는
Aristocrat, tip your hat and break your mother’s heart
And when the sun comes out you’ll find a brand new god
귀족이여, 모자를 버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무너뜨려라
그리고 해가 떠오르면, 넌 ‘브랜 뉴 갓’을 찾을 거야.
-‘Leave Me Alone’
또 주목할 것은, 늘 그렇듯, every single scene이 neat한 비디오다. 영상도 절대 컨셉에 부합하게 기획하는 아티스트 iDKHOW. 특유의 ‘올드’한 로보틱 에스테틱이 풍기는, 기계로 둘러싸인 실험실 같은 공간, 비닐막으로 각자 격리된 채 두 맴버는 공연한다. 실험 대상인 듯, 뭘 붙이거나 쓰고 있다. 주변에는 방호복과 가운, 마스크로 무장한 사람들이 둘을 관찰/감시한다. 댈런이 거대한 버블 안에서 홀로 노래하는 컷이나, 구식 TV 화면에 데이터 실루엣으로 잡히는 컷도 있다. 낯익은 ‘해골 인간’도 보인다. 늘 그렇듯, 댈런은 온몸을 절도 있게 마구 놀리고, 라이언은 세상 뜨악하고 귀찮은 표정으로 팔을 툭툭 움직인다. ‘Do It All the Time’ 같은 이전 비디오와 컨셉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요소가 추가됐다. 좀 나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그냥 쓰련다, ‘펜데믹 에스테틱pandemic aesthetic’이랄까.
유사하게, ‘New Invention’리릭 비디오의 댈런 위크스는 머리에 기계 장치를 쓰고 몸은 정지한 채 로봇처럼 눈알을 굴리고 손을 움직이며 열심히 입을 벌려 노래한다. 가사대로, 통제 당하는 발명품 답다. 라이언은 무심하게, 댈런의 머리와 이어진 기계를 내내 조작한다. 가사는 화면 곳곳에 나타나서는, 커졌다가 작아지거나, 색이 변하거나, 흔들리거나, 각종 효과를 깔끔하게 입었다가 사라진다. 이 분위기는 ‘Mad IQs’의 가사와도 이어지는데, “In this world to survive, we can live while we’re alive.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린 살아 있는 동안만 살 수 있어.”(직역하니 한국어 문법으로는 어색한 문장이 됐다.)라며 아포칼립스를 예언한다.
The apocalypse is coming / Don’t you lose all your control
‘Cause you cant get into Heaven / If you haven’t got a soul
You can never ever stop me / If you are sick of you’re obscene
You can bend or you can break / But they’ll replace you with the machines
아포칼립스가 다가오고 있어 / 정신을 완전히 놓진 마
왜냐면 넌 천국에 갈 수 없거든 /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면
넌 절대로 날 막을 수 없어 / 스스로의 죄로 병들어 있다면
넌 굽히거나, 부러질 수 있어 / 그러나 그들은 네 자리를 기계로 채울거야
-‘Mad IQs’
‘넌 날 멈출 수 없을거야. 난 내가 원하는 걸 얻을 거고, 넌 길을 잃고 정신도 나갈 거야’, ‘난 네 미친 IQ 안에서 불타오를거야.’라고 말하는 ‘Mad IQs’의 화자가 악마와 같은 무언가라면, ‘New Invention’의 화자는 그것에 고통 받는, 싸우고 있거나 굴복한 누군가다. 사운드에서는 ‘Do It All the Time’ 느낌이 살짝 나지만, 반대로 통제당하는 입장에서 노래한다. 악몽을 꾸거나, 잠에 들지 못한다. 곡이 끝나갈수록, 알 수 없어진다, ‘The girl은 아키텍트이며, 나는 그냥 걔의 새로운 발명품일 뿐이야’ 라는 것이, 꿈인지, 비유인지, 현실인지. 아마 ‘The girl’ 혹은 전지자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다음 벌스는, 무엇이 옳은지 더 헷갈리게 만든다. 진짜 악마는 그의 어깨에 있는 존재일까, 그게 악마라고 알리는 목소리일까. ‘Mad IQs’의 ‘너’와 ‘나’ ‘New Invention’의 ‘너’와 ‘나’는, 궁극적으론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라는 짐작도 든다.
You’ve got to choose between your faces
Feels like you’re running out of holy places
And now the room is getting quiet
Oh, what a shame, nobody taught you how to read and riot
넌 무슨 표정을 지을지 골라야만 해
성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느낌이겠지
이제 방 안이 조용해지기 시작해
오, 이런 부끄러울 데가, 아무도 네게 읽고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니
-‘New Invention’
‘Mad IQs’, ‘New Invention’의, 전주나 간주에서 들리는 리듬과, 멜로디보단 리듬 위주로 내보내는 보컬에서, 데이빗 보위의 ‘Repetition’ 혹은 ‘Red Money’(1979, <Lodger>)가 떠오른다. 굉장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의식/무의식중에 데이빗 보위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그렇다 하여 두드러지는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댈런 위크스는 iDKHOW에게 영감을 준 뮤지션 중 하나로, 데이빗 보위를 꼽는다. 이를 근거로 귀기울여 봤을 때, 확 띄지는 않지만, 스토리텔링 스타일, 보컬의 디테일, 서브 리듬 같은 것에서 별안간, ‘보위스럽다’는 생각이 아니라, 보위의 특정한 곡이 팟 하고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구나,하고 확신할 수 없는 정도다. 보위와의 얽힘조차, iDKHOW답게 비밀스럽다.
글램록의 흔적을 더 찾아보자면, ‘Absinthe’의 도입부에서 전면에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왕왕한 코러스는, 티렉스의 어떤 곡들을 연상시킨다. ‘코러스면 티렉스’는 아니고, 개인적 선호도 때문에 익숙한 것이 겹쳤을 뿐이다. 무식한 음악 편식자의 귀가 자꾸 글램록만 캡쳐해버리는 것인데 (사실 [spin.com]인터뷰에서 댈런이 <Razzmatazz>의 리릭컬 임프레션은 엘비스 코스텔로에게서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 바 있다.)- 이런 내가 대강 들어도, iDKHOW의 음악은 상당히 넓고 신중하다. 단순히 다양한 범주의 음악을 섞어놓는 게 아니다. 얻은 아이디어를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반영해 전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도입부와 달리 ‘Absinthe’ 후렴구에서 합창 코러스는, ‘Mad IQs’와 유사하게, 치고 빠지듯 슬쩍 넣거나, 배경처럼 퍼지는 사운드로 활용된다. ‘뒤집을 줄 아는 창작자’이자 ‘버릴 줄 아는 편집자’인 댈런 위크스의 감각은, 깔끔하고, 철저하고, 가끔 일부러 어긋나 완벽하다.
<Razzmatazz> 역시 깔끔하고 철저하나, 약간의 ‘틈’이 생겨난 느낌이다. 그 ‘틈’은 ‘빈틈’이 아니라 ‘빈’ 틈, 결여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하여 <1984 Extended Play>가 부족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앨범의 성격이고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른 차이다. 그 ‘틈’ 덕에 앞서 분류한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곡들이 섞일 수 있었겠다. 헌데 이 ‘부류의’ 곡이 물리적으로 끼어 있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통일된 감수성으로 이어져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파괴적이거나 절망적인 구절이 포함돼 있기도 하고, 딱히 가사에 조짐이 없다면 사운드가 갑자기 훅 무너지는 등 -언뜻 아주 다르게 들리는 곡들도, 결국 어떤 ‘apocalyptic razzmatazz’로 통한다.
You’re beautiful / And evil too
Sinister and vile
For you, I’d die / Or kill myself
Whichever makes you smile
그대는 아름다워요 / 나쁘기도 하죠
사악하고 지독해요
그댈 위해 난 죽거나 / 자살을 할 수도 있어요
그대를 웃게 만든다면 어느 쪽이든요
And if I succeed / I’ll count all your teeth
I’d swing from the gallows and wave
And there, from the noose / Lest you cut me loose
I’d carousel into my grave
만약 내가 성공한다면 / 그대의 이빨을 모두 셀 거에요
교수대에 걸린 채 몸을 스윙할 거에요
그리고 거기, 올가미에서 / 그대가 날 풀어 줄지도 모르잖아
난 빙글빙글 춤추며(? carousel:회전목마) 무덤으로 들어갈 거에요
-‘From the Gallows’
‘From the Gallows’는 익숙함과 생소함, 올드와 뉴가, ‘어울린다’기 보단 ‘충돌하는’ 방향으로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기본 멜로디는 몇십년 전 재즈 발라드 바이브다. 그런데 후렴구 끝의 밀고 당기는 효과, 마무리 부분 음의 뒤섞임 같은 디테일이 미래적이다. 특유의 로우파이lo-fi 사운드와 삽입된 (아마도 라이언의)내레이션도 독특함을 더한다. 가사에서도, 익숙함과 생소함이 부딪힌다. 닳고 닳은 소재인데, 표현법, 욕망이 향하는 방향이 괴상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갈망하는 대상을 묘사하는 어구로, ‘아름답지만 나쁜’- 까지는 흔하나, ‘sinister and vile’은 드물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요’- 까지는 클리셰나, ‘or kill myself’는 또 너무 갔다. 감미로운 클래식 멜로디가 천연덕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후렴구는, 세상에나 이렇게 크리피할 수가. 그러고보니, 제목부터가 심상찮았다. ‘From the Gallows교수대에서’라니.
Darling, you’re a holy quarantine / New romantic Philistine
We can turn around / We can burn this town to ash
As charming as we are, we are nothing but pretty trash
달링, 그대는 신성한 쿼란틴이야 / 뉴 로맨틱 속물이지
우리는 등을 돌려버릴 수 있어 / 이 도시를 태워 재로 만들 수 있어
매력적인 만큼, 우린 예쁜 쓰레기 밖엔 안 돼
-'Clusterhug'
뭘까 이 ‘pretty bitch highteen’물에 끼얹어진 펜데믹의 향기는. ‘Clusterhug’의 화자는 본인을 ‘대충 십대 뷰티 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칭하며, 수식어를 덧붙인다. ‘계산적이고, 차갑고, 뉘우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우린 뭐든 할 수 있어, 병을 퍼트릴 수도 있어’라고. ‘나는 오직 네가 원한다면, 사랑에 빠질 거야’.
‘clusterhug’의 뜻은 ‘집단포옹’. 이 시기 가장 해선 안 될 것 중 하나다. 마지막에 외치는 말은, ‘Beautiful quarantine circumvent me날 둘러싼 아름다운 쿼란틴’. 이렇게 예쁘장한 멜로디로, 시대를 냉소한다. <Razzmatazz> 발매 기념 라이브가 라이언 시몬 거주지의 펜데믹 때문에 계속 댈런 위크스 단독으로 진행됐다. 펜데믹은 당연히, 이들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단편적으로 든 예다. 당연히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이들은 없겠지만, 내 일이 아니니까/ 다 망했으니까 마구 살자는 뜻이 아니다. iDKHOW식의, (염세주의적)컨셉을 통한 시대 스케치다.
그렇다면 다음 곡 ‘Sugar Pills’는 트랙 흐름상, 시대를 일시적 수단으로 망각하려는 제스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가사는 의외로 평범. 처방전을 무시하고 개수를 잊을 만큼 많은 약을 삼키면서, wild imagination을 기대하고, 갈수록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나쁜 습관임을 알면서도 그게 다가 아니기를 바라는- 중독자의 심리가 나열되어 있다. 약물중독은 흔하면서도, 뮤지션마다의 개성이 묻어나는 소재다. 분명 화자가 중독자인데, 그 ‘sick’한 느낌이 매우 깔끔해서 거리감이 든다. 이 곡의 핵심은, 빠른 리듬을 타고 한껏 날리고 놀리는 보컬이다. 댈런 위크스 보컬의 ‘핫’한 특징이 극대화된 곡이라고 해야겠다. 화자의 뒤죽박죽인 멘탈을 청각적으로 표현한 듯한, 마구 섞어버리는 날카로운 사운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중독증세는, 내가, 이 곡에 보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매번 다른 수식어를 사용해 찬양하는 댈런 위크스의 보컬은, 곱지만 맑진 않다. ‘Mad IQs’ 브릿지, ‘Nobody Likes the Opening Band’의 부분들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 보면, 맑게 하자면 할 수 있을 듯 한데, 본인이 로큰롤 스타일로 한구석을 꽉 막아 내보내는 게 매력이다. 어떤 곡들에선, 그게 올드/뉴에서 뉴를 담당하며, 때론 모든 것이 된다.
‘Kiss Goodnight’. 한눈에 흥미를 끌지는 않는 제목이다. 가사도 마찬가지. ‘Clusterhug’ 같은 시대 냉소나 ‘From the Gallows’ 같은 특수한 에스테틱도 없다. ‘Girls like you~’로 시작하는 구절까지 있는, ‘구식’ 사랑노래의 전형이다. 올드하다.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건 ‘뉴’를 담당하는 디테일이다. 섬세하고 가끔 생소한 단어의 배치, 사이사이의 여백, 예상치 못하게 늘이고 끊는 사운드. 곡이 끝날 무렵 살짝 먼 감으로 들려오는 누아르풍 멜로디와, 배경의 배경 정도로 들리는 “Let’s begin.”이 정점을 찍는다. 귀에 익은 이 대사는 <1984 Extended Play> 첫 트랙 ‘Introduction’의 일부로 추정된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을 하나로 엮어 주는 건, ‘It might just end my life’ 같은 구절에서 두드러지는 곱디고운 보컬이다. 댈런 위크스의 클래식 발라드풍 러브송에 대한 애정은, The Brobecks 시절 앨범이나, 개인 유튜브 계정에 올린 커버, 홀리데이 싱글 등을 통해 꾸준히 드러난 바 있다. <Razzmatazz>에서 그 애정은 이제까지 중 가장 완벽한 형태로 발현됐고, 그 까닭 중 하나는 본인의 보컬이다.
‘Need You Here’도 같은 류의 로맨스 송인가 했다가, 다른 목소리가 들리고 가사가 읽히는 순간 깨닫는다, 아 댈런 위크스가 가족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곡이로구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클리셰적 ‘따스함’에 거부감이 있고, 댈런 위크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지, 그의 사생활이나 가족엔 관심이 없는데도, 어쩐지 들을 때마다 눈물이 핑 돈다. 항상 에세이보단 픽션에 가까웠던 iDKHOW의 곡들 중 예외적인 트랙이라서일까. 아티스트 개인의 실제 서사 없이도 완전하나, 그것에 기반하기 때문에 더 울림이 있다.
이어지는‘Door’는 마무리하며 커튼을 서서히 내리는 느낌의 트랙이다. 보컬에 비음과 먹먹한 효과가 더 많이 섞여 색다르게 아련하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준다면, 바닥에서 내 물건을 주워 모을게.’라는 걸 보면, 베이스는 로맨스인 듯한데, “Promise that next time that you take my hand is to show me the door.다음번 네가 내 손을 잡을 땐, 문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일 거라고 약속해.”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탁한 현실에서 현자에게 맑은 지혜를 구하는 제스처 같기도 하며, 세상의 막이 내리기 직전 다 끝낼 준비를 하는 해탈한 차분함이 들린다. 100초 남짓의 트랙으로 이런 짐작까지 끌어내는 건, 절대 팬의 오버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능력이다.
여기까지 왔다. 첫곡과 막곡, ‘Leave Me Alone’과 ‘Razzmatazz’의 스토리텔링은 이어진다. <1984 Extended Play>와 ‘Leave Me Alone’까지가, 아주 냉정하고 절제된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살짝, 함께 무너지고 망해가는, 비장한 뉘앙스가 있다. 그 전에 부러 건너뛴 ‘Lights Go Down’을 언급해야만 하겠다. 여기, 매우 글램록풍-의 리릭비디오가 있다. <1984 Extended Play>의 시그니처 컬러가 처음과 마무리 부분에 슬쩍 등장하며, 간주에 삽입된 아티스트의 TMI는, 트렌디하다.
Hello / Pardon me if I forget your name
Well not every hollow is sleepy as this one
But heads rolls just the same
안녕 / 네 이름을 잊어도 이해해 줘
모든 곳이 이처럼 졸리진 않을 거야
근데 머리는 똑같이 돌아가네.
Oh Lord / Dressed like your so uptown
Parade through the ballrooms
Decay in your costumes / and dance
Until the lights go down
오 이런, 너 되게 멋쟁이처럼 입었다.
볼룸을 따라 걸어가
코스튬 안에서 썩어가 / 그리고 춤을 춰.
불빛이 잦아들 때까지.
Come now / Is that any way to talk to me?
Corrupting the young / With your uncivil tongue
What a shame if you misspeak now
이제 이리 와 / 나한테 말할 방법이 없는 거야?
젊은이들을 타락시키지 / 네 예의 없는 혀로
지금 말실수를 한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어
Somehow / Dance till the lights go down
It’s curtains for you / Join the back of your queue
And we’ll break our necks
Like we do when the lights go down
Until the lights go down
어떻게든 / 불빛이 잦아들 때까지 춤을 춰
이건 널 위한 커튼이야 / 뒤에 줄을 서도록 해
그리고 우린 엄청나게 열심히 할거야
불빛이 잦아들 때 하듯 말이야
불빛이 잦아들 때까지
-'Lights Go Down'
일단 내 해석이 침범하기 전에, 댈런의 코멘트를 인용한다. 키워드와 이미지에 집착한 나머지 떠올리지 못했던 부분인데, 아티스트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앞에서 언급한 ‘이런 식’의 가사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적혀 있다. 이를 근거로 살피면, ‘Lights Go Down’은 스토리텔링에서도 ‘Leave Me Alone’, ‘Razzmatazz’과 유사하다.
가사의 주된 영향은 엘비스 코스텔로에게서 받았다. “진정으로 재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위크스는 말한다, “단지 sarcastic서캐스틱하고 acerbic신랄한 가사 뿐 아니라, 이중적 의미가 있는 가사에 있어서도.” 위크스는 glittery글리터리한 ‘Lights Go Down’의 가사에서 한 줄을 짚는다. “Parade through the ballrooms / Decay in your costumes” 그는 읊는다. “나는 그게 정말로 이 곡의 주제를 illustrative분명히한다고 생각했어- 그런 류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L.A. 무리, 스포트라이트 아래 있기만 하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뭐든 다 하는 이들 말이야. 그리고 그렇지 않을(스포트라이트 아래 없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지.”
-Dallon Weekes, interview by Danielle Chelosky [spin.com]
도입부의 상큼하게 딩동거리는 건반사운드를 곡 전체로 가져가면서 레트로한 분위기를 낸다. 동시에 깔끔하게 세련됐다. 빠른 리듬 탓에 댄스팝 같기도 한데, 멜로디에 아련하고 웅장한 뉘앙스가 있어서, 세상이 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댄스플로어에 서는 느낌이다. 간주의 색소폰 솔로가 분위기를 더한다. 가사는, 분명 클럽이나 볼룸에서 춤을 추는 내용인데, ‘sleep’, ‘decay’, ‘haunt me like you were a ghost town’등 단어나 어구의 선택과 배치가, 묘하다. ‘until the lights go down’의 반복은 불빛이 곧 사라질 거라는 암시처럼 들린다. 잡음으로 지직거리는 스피커, 불규칙하게 껌벅이는 불빛, 칠이 벗겨진 벽, 울퉁불퉁한 바닥이 있는, 낡은 볼룸에서, 서로 멀찍이 떨어져 우울하게 눈꼬리를 내리고 몸을 대강 끄덕끄덕 흔들거나, 비장하게 입을 꾹 다물고 최선을 다해 힘을 줘 팔다리를 절도 있게 놀리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거, 그거다. ‘Apocalyptic razzmatazz’. ‘Lights Go Down’이 그 형태를 노래한다면, ‘Razzmatazz’에는 영혼이 들어 있다.
세 종류의 악기 사운드가 차례로 이어지다 겹치는 전주로 시작된다. 메인 멜로디는 모두 정리하고 갈무리하듯, 비장하다. 댈런 위크스는, 저음으로 보컬을 훅 내려도, 기본적으로 목소리에 곱고 가는 필이 있다. 그 담백한 떨림을 이용해 뒤로 밀어 툭 던져놓는 벌스에, 위로 당겨 끌어올리는 후렴구, 역시 부분적으로 사용한 코러스 효과가 이어지며, 심장을 점점 더 쿵쿵 울린다. 구성은 딱히 새롭지 않은데, 이루는 요소들이 맞물려 이루는 조화는,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곡이 나왔다는 건 아포칼립스의 전조다. 호들갑은 이만 떨고, 완벽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이며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인, 가사를 들여다본다.
You broke my heart again
You climbed up on your ivory tower
And you paid off all my friends
넌 내 마음을 다시 무너뜨렸어
상아탑에 올라선 / 내 친구들을 다 매수했지
And now well / Some things just cannot be fixed
With sparkled tongues and politics
In a fascist little paradox / We all become anonymous
이제 그러니까, 어떤 일들은 바로잡을 수가 없어
현란한 혀와 정치 만으로는
파시스트의 작은 역설 속에서 / 우린 모두 익명이 되지
-'Razzmatazz'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반복해 노래한다, ‘집에 가는 길에, 이 도시를 페인트칠하자’고. ‘that good old fashion razzmatazz’가 네 안에 있다고. 이 프리-아포칼립틱 자본주의 파시즘 펜데믹 속에서도 라즈마타즈-를 잃지 말자고. 직면하고 받아들이되,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 나름 우울하고 즐겁게 살아나가자고.
‘apocalyptic razzmatazz’. 막 나온 풀 앨범을 마구 돌릴 무렵 떠오른 말을 키워드로 정해 적어 봤다. 이렇게 old fashion하고도 contemporary한 앨범이라니. 뭐 iDKHOW가 의도한 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사랑하는 뮤지션들이 무식하고 뒤죽박죽인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이 없어 매우 다행이다. 어쨌든 나는 마스크와, 그럼에도불구하고 계속되는 출퇴근과, 그것을 혐오하면서도 다행으로 여기는 스스로와, COVID-19 이전부터 보이는 온갖 아포칼립스의 일상적 전조 사이에서, 난생 처음 보는 그리운 색으로 탁하게 빛나는 오래된 타임캡슐을 발견한 기분이다.
* 참고 인터뷰
https://www.spin.com/featured/idkhow-have-no-ru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