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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Jan 16. 2021

“Welcome to the show.”

케일럽 랜드리 존스(Caleb Landry Jones)




케일럽 랜드리 존스(Caleb Landry Jones) as a musician
2020, <The Mother Stone>

 
<쓰리 빌보드>(2017)에서 처음으로 그를 봤다. 중심에 있는 역할은 아니었고, 힘을 줘 연기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으나, 희한하게 눈에 박혔다. 이어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데드 돈 다이>(2019)까지, 필모그래피를 파고들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어쩐지 비슷한 시기에 스크린에서 조금씩 목격하게 된 그는, 약하거나 소심하거나 예민해 보이지만, 있는 그대로, 자기만의 힘을 가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데드 돈 다이>(2019)


 
그의 음악도, 우연한 ‘목격’으로 듣게 됐다. 종종 애플뮤직이 권하는 믹스류 플레이리스트를 훑으며, 좋아하는 이름을 발견하면 괜히 기뻐하곤 하는데(이유 없음, 플레이리스트를 플레이하는 일은 거의 없음.)-그날은 인디뮤직 플레이리스트를 살피고 있던 중이었다. 낯익은 이름이 생소한 곳에 있었다. 케일럽 랜드리 존스.

 
작년에 나온 그의 데뷔 앨범 <The Mother Stone>은, 여러 모로 ‘룰’을 깨는 작품이었다. 첫 두 곡은 마치 청자를 테스트하듯 러닝타임을 길게 설정했다. 각각 두 곡이 이어져 있는 트랙이라고는 하지만, 흔하진 않다. 대개, 러닝타임이 6-7분이 넘어가는 곡은, 마지막 순서로 밀거나, 적어도 청자가 어느 정도 아티스트의 매력을 파악한 이후에 넣는다. 드물게 초반에 위치한다면, 청자가 결과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 다시 말해 팬층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첫 앨범의, 첫 두 트랙으로 보란 듯이 던져 놓는 경우는 잘 없다. 스스로가 창조한 작품에 대한 자신감, 철저함보단 과감한 스타일이 보였다.  

관현악 밴드가 늘어지게 연주하는 ‘Flag Day’가 지나면, 약간 펑키한 연주와 함께 ‘Mother Stone’이 시작-하자마자, 존스의 보컬이 들린다. 강렬하게 등장하지는 않는다. 힘을 빼고 내보내는 데다가, 소리를 죽이고 여러 겹 쌓아 꼭 악기의 한 종류처럼 들리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트렌디하게 로우파이인데, 비음과, 깔끔하지 않아 독특한, 갈라짐 때문에 보컬만 특히 더 로우파이 느낌이다. 아주 매끈하거나 풍부하지는 않지만 개성과 매력은 확실하다. 스킬을 뽐내기보다는 다양한 사운드를 추구한다. 높낮이 폭을 거의 없애고, 박자나 발음의 디테일을 살린다. 마무리 부분으로 가면, 얇은 가성과 인위적으로 굵은 보이스를 번갈아 내어 꼭 연극의 한 장면처럼 들린다.

‘You’re So Wonderfull’은 딱히 클라이맥스 없이 흐르는데도, 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다채롭게 변하는 보컬이 한 까닭이다. 스크린에서 볼 때 대사를 맛지게 뱉는 배우라고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역시 그는 발음의 사소한 디테일을 살릴 줄 아는 배우, 아니 보컬이었던 것이다. 문장의 끝에 있는 ‘me’를 ‘mei’ 처럼 들리도록 늘어지게 발음하는 등, 음절이 곡의 흐름 속에 녹아들도록 감각적인 모양으로 뱉는다. 비음과 성대의 떨림이 자연스럽고, 톤도 자유자재로 바뀐다. ‘you’re’에서 갑자기 감미롭게 낮아졌다가, 곧바로 다시 올라간다. 후반부로 가면 와글와글하고 괴기한 웃음소리/비명소리를 내뱉거나, 여러 음색을 번갈아 사용해 노래하기도 한다.


https://youtu.be/mxkgsPNs0rs

‘I Dig Your Dog’ 오피셜 오디오.


‘I Dig Your Dog’의 목소리는 조금 더 우울하고 시니컬해 ‘내려놓은’ 느낌이 든다. 미세한 떨림이 있어, 쿨하고 곱고 예쁘다. 곱다고 하자마자 밉살스럽게 짜내는 목소리를 들려주며 시작하는 다음 트랙 ‘Katya’. ‘All I Am in You’의 보컬은 록에 가깝다. 리듬도 그렇다. 일렉기타와 강한 드럼 사운드가 두드러진다. 이처럼 존스는 한 작품 속에서 여러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곡마다, 혹은 한 곡 안에서도, 그 순간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6번 트랙 ‘No Where’s Where Nothing Dies’의 끝은, 7번 트랙 ‘Licking the Days’의 시작과 이어진다. 기본 리듬이 비슷해, 한 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No Where’s-’에서는 차분하게 이어가던 보컬이 뒤에서 기습적으로 왁자지껄하게 샤우팅을 내뱉는데, 악기는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시끄러워진다. ‘Licking the Days’에서는 사운드가 뒤로 뭉치듯 고조되는 구성이 반복되다, 별안간 일렉기타가 치고 들어온다. 늘어지다 반전을 주고 다시 원상복귀 되는 구성이 닮았다.

‘No Where’s Where Nothing’s Died’의 변주 같은 느낌으로, 13번 트랙에 ‘No Where’s Where Nothing’s Died(A Marvelous Pain)‘가 있다. ‘a marvelous pain’. 좀 희한한 어구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명사 ‘pain’의 수식어로, ‘marvelous/놀라울 정도로 멋진’를 보통은 잘 쓰지 않을 것이다. 예술적 허용이겠다는 짐작을 하면서도, 그 문제의 부분 ‘marvelous pain’을, 장난스럽게 들릴 정도로 아주 간드러지게 부르는 걸 들으면, ‘정말 페인이 마뷸러스한 거 아니야?’ 뭐 그런 식의 상상도 하게 된다. 합창으로 시끌시끌하게 소리를 쌓아 마무리한다.

‘The Great I Am’의 ‘괴물’ 같은 목소리, 어울리게 꽉 찬 배경음악. 다음 곡 ‘Lullabbey’의 나긋나긋한 보컬과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배경음악. ‘상대적’이라고 하였다. 절대 완전히 편안해지는 법은 없다. 사이사이 뒤로 뭉치며 강해지는 악기 사운드가 정신을 산란하게 만든다. 절대 ‘별로’라는 뜻이 아니다. ‘차분한 듯 정신사나운’, ‘늘어지게 시끄러운’, ‘능청스레 괴기한’ 따위의 말로, 이 앨범의, 일종의 ‘에스테틱’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해석했기에 하는 소리다.


https://youtu.be/QYSJbEYiHVY

‘All I Am In You / The Big Worm’ 오피셜 오디오.



그 해석의 바탕이 된 것 중 하나는 ‘Flag Day / The Mother Stone’ 뮤직비디오다. 역시 트렌디하고 실험적이고 연극적이다. 뺨은 새하얗게 입술은 시뻘겋게 칠하고, 흰 곱슬머리 가발을 쓴, 앨범 커버처럼 분장한 존스가 있다. 중세 유럽 귀족을 연상시키지만, 화려한 장식을 주렁주렁 달기는커녕,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다. 한껏 얼굴 근육을 당겨, 익살맞음을 넘어 ‘괴상한’ 표정을 반복하여 짓는다. 점차 등장하는 다른 이미지들은 정확히 알아보기 힘들다. 언뜻 저화질의 랜덤한 옛 영화나 뉴스 클립들 같으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집단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둘 다이거나-혹은 그렇게 보이도록 편집하였거나. 각각의 클립들은 단순히 ‘disturbing’ 하지만, 존스의 얼굴과 겹치며 그로테스크 에스테틱을 완성한다. 이 존스의 페르소나-랄지, ‘이번 앨범에서 맡은 캐릭터’는, 크리피한 미소를 띠며 의자에 늘어져라 폼을 잡고 있거나,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곤 한다. 세상의 단면을 관람하며 무관심하게 비웃는 부패한 절대자처럼. 그는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마치 죽거나 망가진 듯 축 늘어진다.

묘사는 하였지만, 설명은 되지 않는다. 해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실험영화 혹은, 명확한 주제보다는 편집된 이미지의 맞물림이 구성하는 분위기가 포인트인 아트비디오 뉘앙스다. 이 아티스트는, ‘배우일 때의 나는 잊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로서의 능력을 사운드는 물론 비주얼적인 측면에도 이용해, ‘복합적인, 컨셉 아트’(라고 할까.)가 있는 음악 세계를 창조했다.  


https://youtu.be/YUjl5KLxz28

‘Flag Day / The Mother Stone’ 오피셜 비디오.


 
트랙의 배치나 구성도, 보컬이나 영상과 유사하게 예사롭지 않다. <The Mother Stone>의 곡 내 구성은 대개, 설명하기 힘들다. 같은 트랙 안에서도 음이 떨어지거나 조각나 있고, 나뉜 트랙이어도 붙어 있다. 보컬이 이어지거나 끊기는 부분이 존재는 하지만, 정석대로 벌스, 코러스, 브릿지 구분이 없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리듬이나 가사가 자주 들리며, ‘튀는’ 구절을 클라이맥스라고 하기도 뭐하다. ‘Hodge-Podge’는, 중반부터 클라이맥스가 계속되는 듯한, 혹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고조되다가 결국 도달은 하지 않고 끝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승전결이 뒤죽박죽이거나, 여러 번 반복되는 느낌이다. 모든 곡의 기본 사운드가 비슷하고, 전주와 간주 파트가 명확하지 않아, 어떻게 들으면 한 곡이 한 시간 동안 재생되는 것 같다.  

바로 그거다. 트랙 하나씩 듣기보단, 전체를, 영화를 시청하듯 쭉 순서대로 이어 들어야 하는 앨범이라는 결론을 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어도, 결국 한 점으로 모여 서커스틱&서캐스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청자의 귀를 쉬게 내버려 두는 듯 하면서도, 무언가에 계속 시달리게 만든다. 취향에 맞지 않으면 쉽게 피로해지겠고, 나 같은 경우는 여러 번 들으면서도 자꾸 다음엔 뭐가 튀어나올지 궁금해하고 흥미로워 했다.

그리하여 ‘Thanks for Staying’은, 이 ‘연극’을 여태까지 ‘들어 준’ 청자들에게 공연자가 보내는 감사 인사인 게다. ‘어디 끝까지 견뎌보세요!’하고 놀리듯 또 심상찮은 러닝타임을 지녔다. 다크한 록과 동요틱한 서커스 음악을 섞어 놓은 듯한 사운드까지, 이래저래 짓궂은 트랙이다. 서커스틱&서캐스틱. 와 이사람 증말,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었구만. 마지막 트랙 ‘Little Planet Pig’의 끝 무렵 나오는 합창은, 공연의 마무리를 알리는 배우들의 라스트 퍼포먼스 같다.



<The Mother Stone> 커버.


<The Mother Stone>은, 스크린 속 존스의 연기처럼 자기만의 힘이 있는, 그러나 색다른 면이 들리는, 앞으로 나올 음악도, 연기도, 더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적당히 트렌디하면서도, 독특한 개성으로 꽉 차 있었다. 더 이상 사람이 머무르지 않는 낡은 유원지, 한밤중 갑자기 팍 하고 조명이 들어오며 흘러나올 것만 같은 음악들. 그로테스크하게 아름다운 서커스를 통째로 듣는 것 같았다. 케일럽 랜드리 존스 본인이 ‘You’re So Wonderfull’에서 대놓고 노래하지 않던가, “Welcome to the show.”라고.

 

https://youtu.be/6OTWqp_HuIo

‘I’m On the Top of the World’ 오피셜 비디오.


+
최근 나온 싱글 ‘I’m On the Top of the World’(+‘A Jug A Long Jam’)는, 전체적 곡 스타일은 전작과 유사한데 사운드가 보다 경쾌하다. 또한 곡 사이 구분이 명확해 각 트랙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I’m On the Top of the World’ 뮤직 비디오는, 옛 영화 클립들을 엮어 놓은 영상이다. 앞 영상과 비슷한 듯 하나 다르다. 린치의 <듄>이나 <스타워즈> 시리즈 등, 히어로물이나 SF 장르들이 많이 보이며, 굉장히 빠르게 편집돼 있다는 점이 어쩐지 가사(I’m on the top of the world but everyone’s looking down)와 닮아 있는-것 같지만, 역시 내가 쓴 것조차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
존스의 곡엔 슈게이징 느낌도 있어서, 음악과 영화 모두 만드는 짐 자무쉬랑 잘 맞았겠다는 주제넘는 짐작도 든다. 짐 자무쉬는 예술 전반을 사랑하고 발도 넓으며, 경계를 가르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 출연한 뮤지션을 나열해보면 -잭 화이트, 메그 화이트, 이기 팝, 톰 웨이츠, 우탱클랜, 뭐 더 있겠지 이미 다들 익숙해서 특별출연 뉘앙스도 아님) 본인은 주로 ‘슈게이징’한 곡을 내는 록밴드의 일원이며, 이 밴드는 본인 영화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한다. 또 <다운 바이 로> 같은 작품 오프닝/엔딩 크레딧을 살피면, 뮤직 바이 존 루리(주연), 송 바이 톰 웨이츠(주연) 같은 문구를 찾고 재미있어하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면, 디렉티드 바이 짐 자무쉬, 메인 롤 케일럽 랜드리 존스, 뮤직 바이 케일럽 랜드리 존스 뭐 이런 크레딧이 조만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짐 자무쉬와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음악적 소속사는 데이빗 린치가 있는 ‘Sacred Bones Records’로, 같다. 어느 쪽이든 협업을 기대해 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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