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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Feb 28. 2021

위대한 리바이어던(1)

St. Vincent(세인트 빈센트)(1)




<Marry Me>(2007) - <St. Vincent(Deluxe Edition)>(2015)


I’m not your mother’s favorite dog
I’m not the carpet you walk on
I’m not one small atomic bomb
I’m not any, any, any, any, any, any, anything at all
난 너네 엄마가 가장 예뻐하는 개가 아니야
난 네가 밟는 카펫이 아니야
난 조그만 원자폭탄 하나가 아니야
난 아무, 아무, 아무, 아무, 아무, 아무, 아무것도 아니야
-‘Now, Now’, <Marry Me>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첫 스투디오 앨범 <Marry Me>의 첫 트랙이다. 자신을 규정하고 복종시킬 수 없음을, 비유의 부정으로 표현하다,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체하기에 이른다. 타인이 정한 무언가가 되느니,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택한다. 마무리에 반복되는 문장은, “You don’t mean that, say you’re sorry진심이 아니었잖아, 미안하다고 말해”. 그는 이미 시작부터, 세상이 정한 편협한 틀을 해체하고, 자신만의 파워를 쌓는 작업을 해왔다.


<Marry Me> 커버.


로큰롤 베이스 사운드에, 클래식하게 고운 포크/컨트리 스타일 울림이 있는 풍부한 가성과 화음이 만나 독특한 느낌을 주는 앨범이다. ‘Now, Now’의 비유, 반복되는 배치, 청량한 보컬은, 동화적이고 몽환적이다. 아카펠라 때문에 동요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배경음은 또 다르고, 마무리는 일렉기타가 꽉 채운다. 여러 장르가 한 곡에 섞인, 아니 섞이지 않은(못한,이 아니라 않은) 듯하다.

‘John’에게 청혼하는 내용인 ‘Marry Me’는, 흔하게 예쁜 사랑노래인 척 하고 있지만, 가사를 살피면 흥미로운 부분들이 보인다. 화자는, “정말 잘해 줄 테니, 마리아와 요셉처럼 결혼해서, 아이 없이 살자”고 한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의 표면적 부모다. 단순히 ‘부부’의 예를 들기 위해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말하는 건, 종교적인, 전통적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결혼이 아니라, “게임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나눌 존재, “심장이 있는 바위”를 붙들기 위한, ‘아이 없는’ 결혼이다. 그러고 보면, ‘John’을 일컫는 대명사는 ‘you’. 젠더를 규정할 수 없다.


https://youtu.be/m2eqWeF0ui0

‘Jesus Saves, I Spend’ 오피셜 비디오.


다음 곡 ‘Jesus Saves, I Spend’ 역시 종교를 ‘이용’한 표현이 들어간 트랙이다. 제목부터 보이는 이 대담한 센스. 낭비하다, 쓰다, (시간, 날을)흘려보내다를 뜻하는 ‘spend’의 반대편에 섰을 때, ‘save’는, 저장하다, 모으다, 저축하다, 등을 의미한다. 허나 예수 그리스도의 ‘save’는, 당연히 ‘구원하다’ 이겠다. ‘save’의 여러 의미와 종교적 뉘앙스를 이용해 말장난을 한 것이다. 메인 어구 ‘While Jesus is saving, I’m spending-‘ 으로 시작하는 벌스들은 죄다 ‘찬송가처럼’ 차분하고 단순한 공식을 띠어 능청스럽다. 강렬한 드럼과 아카펠라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마무리 부분 울리는 피리 소리는 민요 느낌까지 한 방울 흘린다. 이것저것 다 가져다 놔도 어수선하지 않다. 담백하면서도 풍부한 보컬이 한데로 잡아줘서다.

배경음이 웅장하고 꽉 차 있다면, 보컬을 천천히 띄엄띄엄 배치하여 균형을 맞춘다. ‘Your Lips Are Red’의 보컬은, 높낮이 폭이 적고 템포가 느린 기본은 유지하면서, 속삭이듯 나직했다가, 강렬하게 쥐어짰다가, 고운 가성으로 변한다. 여러 악기가 여러 느낌을 줘, 카니발 느낌마저 나는 배경 사운드에서, ‘Your skin is so fare, it’s not fare’과 같은 펀치라인 까지,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멜로디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그의 음악 스펙트럼은, 넓고도 깊다. ‘Human Racing’은 클래식 재즈 포크. 공기가 섞여 풍부하게 간드러지나 보컬은 여전히 담백하다. 다음 곡 ‘What Me Worry’에서는 보컬마저 재즈풍으로 가지고 간다.

Do I amuse you, dear?
Would you think me queer if while standing beside you, I opted instead to disappear?
내가 당신을 즐겁게 하나요, 자기?
날 퀴어하다고 생각할까요, 내가 사라지는 대신, 거기 당신 옆에 서 있기를 택한다면?
-‘What Me Worry’, <Marry Me>

‘queer’를 ‘퀴어’로 해석하고, ‘Paris Is Burning’을 동일한 제목의 1990년도 다큐멘터리 레퍼런스로 해석함이, 틀리지 않았으리라 본다. ‘Paris Is Burning’ 역시, 재지하다. 정신없는 속도로 집어삼키는 게 아니라, 축 쳐져 나른하게 천천히 잠식하는 종류의 ‘burn’이다. 우울하고 몽롱하게 시작해, 악기가 추가되고, 우울함을 유지하면서도 통통 튀며 전개된다. 마무리까지 이어지는 ’Dance’ 브릿지에서 보컬은, 단어 하나하나의 리듬을 강조하고, 발음을 누르거나 띄우면서 음절은 불분명하게 만든다. 단어가 움직임이 되고, 문장이 춤이 된다.  

‘The Apocalypse Song’은, 픽셔널한데 묘하게 현실적이다. ‘시적이다’는, 이 곡에 쓰기엔 너무 흔한 표현이다. 투박한 리듬, 현악기의 고운 멜로디, 천진한 투의 보컬 때문에 가사의 어두움이 희한한 방향으로 두드러진다. 문장의 끝에서 강조되는 “Time”, “Light”은, 느닷없이 새되게 올라간다. 감탄사 “Hah!”는 놀리는 느낌마저 준다. 손과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추는 듯한 소리와 함께, 빠른 템포의 기타 소리가 들리는데, 역시, 박자가 어긋난다. 익숙한 모티브를 가져와 그만의 상상력을 담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이, 생소한 배치의 사운드가 좋다.


https://youtu.be/-9prpAv6kvo

‘Marrow’ 오피셜 비디오.


다음 앨범 <Actor>에서는, 보다 실험적인 시도들이 들린다. ‘The Neighbors’의 시원하게 째지는 일렉 기타와, 곱고 무심한데 종종 끈적이는 보컬의 이상한 어울림. ‘Laughing With a Mouth of Blood’는 클래식한 현악기와, 공기 가득 머금은 간지럽고 가벼운 보컬이 맞물린다. 이어지는 ‘Marrow’도 비슷하나, 잔잔하게 시작해서, 크랙이 있는 펑키한 기타 사운드가 조짐을 보이다 갑자기 치고 들어온다. 보컬은 시작점의 가벼움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리드미컬하고 강렬해진다. 후렴구의 끊어짐과 겹치는 효과는 색다른 재미를 준다. 위잉거리는 악기들이 꽉 채운 간주는, 귀에 익는다. 이게 뭐더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슈게이징? 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다. (매번 말하지만 나는 음악을 잘 모르며 아티스트 위주로 편식해서, 알고 좋아하는 음악들에서 비교대상을 찾을 뿐이다.) 후반부로 가면, 그 늘어짐이 강하게 끊기는 스타일로 변해 이어지다, 아쉬울 법한 타이밍에 멎는다. ‘The Bed’는 일관되나 웅장하고 몽환적이고, ‘The Party’의 경우 배경음은 재즈 베이스인데 끝에서 까지게 들뜨는 보컬이 스타일을 부여한다.

다소 정신없이 나열했다. 장르를 혼합하는 스타일이 두드러진다는 뜻이었다. 베이스는 로큰롤인데, 한 앨범 안의 어떤 곡은 동요, 어떤 곡은 재즈, 어떤 곡은 클래식 발라드, 어떤 곡은 일렉트로닉 댄스다. 한 곡 안에도, 여러 분위기가 얽혀 있다. 애초에 나누어 구성한 플롯을 불친절하게 합쳐버린 실험 연작 소설 같다. ‘장르는 이미 뒤엉키거나 흩어진 지 오래고, 얼터너티브가 대개 그렇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세인트 빈센트의 곡들은, 십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모험적’,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리저리 오가고 섞인다.  

초반 앨범들에서 세인트 빈센트는, 악기의 다양한 사용과 조합을 통해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보컬 스타일은 일관되게, 가볍고 건조하고 클래식하고 깔끔하게 가져갔다. 허나 앨범을 거듭 낼수록, 곡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택하며 재지하거나 펑키해진다. 2011년의 <Strange Mercy>에서는 끈적하고 허스키한 보컬이 꽤 들린다. ‘Surgeon’과, 다음 곡 ‘Northern Lights’는 좀, 사이키델릭하다. ‘Year of the Tiger’는 동양 민요 같은데, 역시 반복을 자주 사용한다. 까지는 보컬은 간절하고도 혼란스러운 뉘앙스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해체중이다.

Best, finest surgeon
Come cut me open
최고의 의사여
이리 와 나를 잘라 열어 줘요
-‘Surgeon’, <Strange Mercy>

I’ve played dumb when I knew better
Tried too hard just to be clever
I know honest thieves I call family
I’ve seen America with no clothes on
내가 더 잘 알았을 때, 멍청한 연기를 했어
단지 영리해지기 위해 너무나 열심히 노력했어
난 정직한 도둑들을 알아, 가족이라고 부르지
미국을 봐 왔어, 아무 옷도 걸치지 않은
-‘Cheerleader’, <Strange Mercy>

화자는 외친다, 선언한다, “I don’t wanna be a cheerleader no more더 이상 치어리더가 되고 싶지 않아”. 비디오 또한, 일관되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술관에 묶여 있던 거대한 조각상은, 줄을 끊고 걸어가 조각난다. 파괴까지는 이르렀다, 그렇다면, 그는 그 조각들로 무엇을 만들고자/-지않고자 하는 걸까.


 https://youtu.be/LEY9GJAm8bA

‘Cheerleader’ 오피셜 비디오.



다음 솔로 정규 앨범 <St. Vincent>의 대표 비주얼, ‘Digital Witness’ 비디오를 보니, 뚜렷한 서사로 메시지를 전달했던 ‘Cheerleader’에 비해, 색과 공간의 배치가 두드러진다. 다소 ‘디스토피아적’ 뉘앙스로 통일된다. 세인트 빈센트는 청록색 원피스를 입고 정지해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원피스’라고 했으나, 개인의 개성이 들어간 옷이 아니라, 집단시설에서 통일된 디자인으로 ‘착용’하는 유니폼에 가깝다. 환자복 같기도 하다. 그저 가만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입만 분명한 형태로 움직여 노래한다. 같은 옷을 입고 텅 빈 거리를 행진하거나, 기계적으로 한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이어진다. 후반부로 가면 변주가 일어난다. 먼저, 각자 다른 프레임에 있던 세인트 빈센트와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잡힌다. 그렇기는 하나, 한 방 안에 앉아 있거나 바로 옆을 지나쳐도, ‘분리되어’ 있다. 이어, 정면의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던 이들이, 서로를 곁눈질 하거나 응시한다. 교감하지는 않는다. 한 공간에 있어도 ‘함께’ 있는 것은 아니며, 각각을 ‘목격’해도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은 아니다. 라스트 씬, 세인트 빈센트는 눈을 감았다, 다시 뜨고 곁눈질 한다. 상당히 감각적인 가사, 이미지다. ‘Seventeen’(Ladytron) 비디오가 떠오르기도 한다.


https://youtu.be/mVAxUMuhz98

‘Digital Witness’ 오피셜 비디오.


사람들이 TV를 틀면, 창문 보는 거랑 똑같이 생겼잖아.
People turn their TV on, it looks just like a window, yeah
-‘Digital Witness’, <St. Vincent>

화자는 묻는다, “Digital witnesses, what’s the point of even sleeping?디지털 목격자들아, 잠을 자는 것조차, 의미가 있긴 해?” 잠은 꿈으로 이어진다. 세상과 단절되어 자신만의 세계에 잠기는 행위다. 프라이버시도 진실된 공감도 없이, 서로를 늘상 “stare응시”하며, “care신경은 쓰지만” “don’t care마음을 쓰지는 않는” 상태를 유지한다.  

스토리텔링 측면으로 보면, 트랙 가운데서 홀로 튀는 곡이다. 깊게 내면으로 들어가기보단, 건조하게 현상을 풍자하는 뉘앙스다. 대표 비디오로 이 contemporary critic을 택했다는 점이 흥미로우면서도 의아한데, 곡을 끝까지 들어 보면 ‘뭔지 알 것’ 같다. 반복되던 구절이 마무리에서 살짝 변주되며, 본심에 가까워진다. 언뜻, 보편 현대인들에 대한 풍자로 보이나, 대중에게 공개된 채 일상적으로 ‘목격’되는, 여성 셀러브리티/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상황에 대한 묘사가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석하면, ‘Cheerleader’ 비디오와도 정서가 연결된다.

If I can’t show it, you can’t see me
What’s the point of doing anything?
What’s the point of even sleeping?
So, I stop sleeping, yeah I stop sleeping
Won’t somebody sell me back to me?
내가 보여주지 않으면, 너도 날 볼 수가 없어
뭘 하든, 의미가 있긴 해?
잠을 자는 것조차, 의미가 있긴 해?
그래서, 난 잠을 자는 걸 멈췄어.
누구든 날 다시 내게 팔아주지 않을래?
-‘Digital Witness’, <St. Vincent>


‘Digital Witness’를 몇 번 듣고 나면, 기계적인 “Yeah”와, 꼭 삑사리처럼 올라가는 새된 고음이 귀에 남을 것이다. <St. Vincent>부터 본격적으로, 세인트 빈센트는 듣기 ‘좋다’고 으레 여겨지는 익숙한 멜로디 흐름의 공식을 깨는 방향으로 사운드를 배치하기 시작한다. ‘Bring Me Your Loves’에서는 “I thought you like a dog” 문장 끝을 ‘과하게’ 쭉 늘이기도 한다. ‘Every Tear Disappears’ 속 “Every tear disappears”의 변주들의 끝도 늘이는데, 유사하지만 같은 방식은 아니다. 떨어지는 기타의 박자에 살짝 엇나가게, 마지막 음절을 늘이고 늘인다. 반복되는 구성과 철학적이고 위치witchy한 가사 때문에 주문 같기도 하다. “Hey hey hey”의 희한한 바이브레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https://youtu.be/lxIOjTvmUEA

‘Every Tear Disappears’ 오피셜 오디오.


‘Rattlesnake’와 ‘Birth In Reverse’에서는 부러 째지고 갈라지고 꽉 막힌 채 소리 내는 보컬이 들린다. 일렉트로니카 혹은 신스팝. ‘Regret’으로 가면, 벌스에서는 깔아서 툭 던지는 듯한 락보컬을 박자 위주로 뱉는데, 코러스에서는 내지르지 않고 가성 보컬을 사용한다. 간주에서는 카니발 배경음악 분위기로 경쾌한 기타 연주가 이어지는데, 끝이 쫙 퍼지는 게 아니라, 줄이 풀리듯 소리가 죽 늘어져 재미있다.

Deluxe Edition 버전에서 추가된 ‘Pieta’와 ‘Sparrow’도 벌스와 후렴의 보컬 스타일 대비가 두드러지는 곡이다. ‘Pieta’의 벌스는, 높낮이가 거의 없이 느리고 낮게, 분명하고 묘하게 늘인다. 일렉트로니카와 레게의 중간 쯤 되는 듯한 빠른 타악기 베이스다. ‘Sparrow’의 경우, 박자가 타이트하기보단, 그루비하게 늘어진다. ‘돕’하달까. 두 곡 모두 코러스에서, 베이스 악기 사운드는 그대로 두고, 가느다란 현악기(떼레민일 수도 있겠다.)와 ‘찬송가스러운’ 보컬을 얹는다. ‘Sparrow’는 끝에 가성으로 포인트를 주는 정도이나, ‘Pieta’는 극단적인 대비로 반전을 주어, 귀를 번쩍 깨운다. St. Vincent의 <St Vincent>,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이는, 그럼에도 유독 ‘생소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 앨범이다.  

‘Huey Newton’은, 앞과 뒤가 별개의 곡처럼 다르다. 후반부에서 배경의 코러스와 꽉 찬 일렉기타 사운드로 반전과 변주를 주고, 곱게 떨리는 가성에서 째지는 허스키함을 첨가한 락보컬을 얹는다. 기본 리듬이 동일해, 분리돼 있으면서도 아주 끊어지지는 않는다. ‘Every Tear Disappears’는 댄스 팝 같은데, 청량한 피리와 펑키한 기타 사운드가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린다. 간주에서 더 도드라지는 조합이다. ‘Bring Me Your Loves’는 어느 지방 민요 같은데, 간주의 기타는 역시, 펑키하게 튄다.


https://youtu.be/Epu4lMAgMpk

‘Psychopath’ 오피셜 오디오.


모든 곡이 그렇게 튀는 것은 아니다. 도중에 익숙한 흐름의 사운드를 하나씩 끼워 넣기도 한다. ‘Bad Believer’는 댄스팝 혹은 팝펑크, ‘Severed Crossed Fingers’는 클래식 발라드 -묵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평범’하지는 않다. ‘Psychopath’를 예로 들면, 박자 자체는 펑키하나, 그 흐름은 유하다. 비밀은 가사에 있다. 제목으로부터 스파이시spicy한 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드는데, 실은 따스한 사랑 노래다. 일종의 ‘역’반전이랄까. ‘psychopath’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건 첫 문장, “고속도로를 내달려, 싸이코패스처럼” 뿐이다. 화자는 “심장마비가 오기 직전까지 달려 내려가”지만, 연인의 말에 진정해 중심을 찾는다. 그리고 노래한다, “Keep me in your soft sight.”

역시, 여기쯤 이런 게 나오겠지 하면, 엉뚱한 게 퍽 튀어나온다. 처음 듣는 무언가인데, 설득력이 있다. 세인트 빈센트는 작곡에 있어서도 작사에 있어서도, 노련하고 독창적인 스토리텔러다. “My ears are smarter than my fingers내 귀가 내 손가락보다 똑똑해.”[RollingStone] 작곡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적극 사용한다며, 그가 한 말이다. 앞 문장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비교지만, 그의 ears와 fingers, 그리고 그것을 쓰는 능력 모두 최고로 스마트하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다.


I prefer your love than Jesus
난 예수보다 당신의 사랑을 더 원해요
-‘I Prefer Your Love’, <St. Vincent>

<St. Vincent>를 돌리다 귀에 익은 ‘스마트’한 구절이 들렸을 때, 반가워버렸다. 나는 그를 최근에야 자세히 훑기 시작해서, 곡들을 들은 간격이 좁았음에도 그랬다. ‘Jesus Saves, I Spend’처럼, 잔잔한 사운드, 문장 끝의 ‘Jesus’에서 공기가 텅 하고 들어가는 듯한 보컬, 의도적으로 ‘성스럽다’. ‘I Prefer Your Love’에서 ‘you’는, 화자가 마음의 안정을 찾고 기대는, 마더 네이처mother nature 혹은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듯 하다. 따지고 보면 종교를 ‘이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존재들의 사랑을, 비교하고, ‘prefer’라는 표현을 사용해 ‘고르’는 행위, ‘불경’하지 않은가. 신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룰’을 깨고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는 ‘부끄러울 것 없는 “나쁜” 신도’(‘Bad Believer’), 세인트 빈센트의 가사에 매번 짜릿해진다.

Mother Nature sighed
“What hell is this I made this time?
You are Leviathan in size.”
마더 네이처는 한숨을 쉬었어
“내가 대체 이번에 뭘 만든 거야?
넌 리바이어던 급이야.”
-‘Pieta’, <St. Vincent>

<St. Vincent>는 레퍼런스가 자주 들리는 앨범이다. 성경에 나오거나 실존했던 인물을 가사에 언급함-과 동시에 해체해, 자신만의 것, 앨범 타이틀이자 아티스트 네임, ‘St. Vincent’의 아이덴티티로 재구성한다. 그 과정을, 친절하지 않은 비유로 노래한다. 화자는, ‘지저스의 사랑보다 마더의 사랑을 원하는’(‘I Prefer Your Love’) 존재, ‘마더 네이처가 만들고는 한숨을 쉰 괴물’(‘Pieta’)이다. 언뜻 자기파괴적이나, 동시에 그 자체로 정체성, 프라이드로 이어질 가능성을 지닌다. (Deluxe Edition 기준으로 살폈다. 아티스트가 정의한 최종 형태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싶어서,는 핑계고. 추가된 곡들이 너무 취향이어서.)

I’m entombed in a shrine of zeros and ones, you know
With fatherless features, you motherless creatures, you know
나는 영과 일의 제단에 매장됐어, 알잖아
아버지 없는 형체들과, 너희 어머니 없는 창조물들과 함께, 알잖아
-‘Huey Newton’, <St. Vincent>

We’re all sons of someone’s
I’ll mean more than I mean to you.
I pray to make me a real girl
우린 모두 누군가의 아들들이야
네게 의미하는 것보다, 난 더 많은 걸 의미해.
기도해, 날 진짜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Prince Johnny’, <St. Vincent>

https://youtu.be/idllxjHbX7w

‘Prince Johnny’ 오피셜 오디오.


‘Marry Me’에 처음 등장한 John은, ‘Prince Johnny’, 이후 <Masseduction>의 ‘Happy Birthday, Johnny’에 ‘다시’ 언급된다. 각각의 트랙마다 개성이 다르고, 구체적으로는 아마 다른 대상을 지칭할 것이다. 다만, 젠더가 지정되지 않은 연인이라는 점은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세인트 빈센트는 John/Johnny를 일컫는 대명사로 ‘you’만을 사용한다.


“(기타에 젠더가 정해져 있다는)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너바나는 내 영웅이었어. Pearl Jam, Soundgarden. (…...) 음악에 빠지자마자, 정치에도 빠지게 됐지. 그보다 더했을지도 몰라. 터프했고, 전선에 있었지. 커트(Kurt Cobain)는 완전 페미니스트였고, 씬은 매우 급진적이고, 펑크하고, 퀴어했어. 퀴어함queerness은, 섹슈얼리티를 초월해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고, ‘Other’가 된다는 간판banner 같은 거지. 내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Other’를 느낄 걸, 안 그래? (‘Prince Johnny’에 대해) “그건 ‘진짜 여자’, 혹은 ‘진짜 남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뭔지를 꺼내 풀어헤쳐 보는 거야. 우리는 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생각들을 물려받잖아: 넌 이렇게 저렇게 되어야만 해. 만약에 우리가, 이 경계선들을 넘나들며, 그런 식의 제한적인 묘사에 들어맞지 않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Interview by. Jonah Weiner, [Rolling Stone]


<St. Vincent> 커버.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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