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Vincent(세인트 빈센트)(2)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Masseduction>(2017)
함께 작업한 Jack Antonoff의 영향일까, <Masseduction>에서는 전에 비해 보편적으로 낯익은 사운드가 많이 들려, 세인트 빈센트로선 ‘낯설다’. 트렌디한 댄스팝과 힙합, 일렉트로닉 비트에, 끈적하게 늘어지는데 터프하고 때로 러프한 보컬, 레트로향의 기타 멜로디를 얹어, ‘언뜻 흔하지만 조합은 색다른’ 사운드를 완성한다. 스토리텔링의 개성은 그대로 뚜렷하다. <St. Vincent>는 강약조절과 밀고 당기기로 반전을 주는 사운드와 종교적 레퍼런스에, 강렬한 아이덴티티의 비유를 심은 앨범이었다. <Masseduction>의 빠르고 경쾌한 리듬, 중독과 유혹이 어지럽게 널린 가사 속에는, 불안과 결핍, 결국 사랑으로 모이는 정서가 숨어 있다.
제목부터 ‘거대유혹’. 마약과 섹스 따위 ‘유혹거리’들이, 섹시한 사운드를 통해 쏟아진다. 타이틀 ‘Masseduction’의 전주는 트랩힙합을 연상시키고, 벌스는 댄스힙합 같다. 반복되는 구절에는 오토튠을 입혔다. 욕망이 끓어넘치는 것처럼 끌어올려 누르거나 쭉 올려 내지르는 코러스가 매력적이다. 다음 곡 ‘Sugarboy’는 더 빠른 디스코?풍 비트를 사용했다. 여기에 간드러지게 늘려 뱉는 보컬 - 동양 민요 같기도 한 멜로디 흐름이 묘하게 붙는다. 그룹 댄스곡처럼 합창으로 끊는 코러스는 어디서 들어본 듯 하지만, 포인트를 준 마무리 덕에 색다르다. 제목부터 ‘알약’인 ‘Pills’는, 리듬의 텐션이 중요한 트랙이다. 세인트 빈센트는 항상 라임을 염두에 두고 가사를 쓰는데, 이 곡은 반복되고 대응되는 모음이 특히 두드러진다.
I heard the tales, fortune and blame
Tigers and wolves, defanged by fame
From the chains to the reins to the veins to the brain
Anyway there’s a day and I’m paying and paying
이야기를 들었어, 부와 비난에 관한
호랑이와 늑대들이 유명세에 이빨 뽑혔지
사슬부터 고삐와 뇌의 정맥까지
어쨌든 날이 있으면, 난 돈을 쓰고 또 돈을 쓰지
-‘Pills’, <Masseduction>
라임이 다 ‘이빨 뽑힌’ 번역이지만, 암시하는 바를 전하기 위해 대강 해봤다.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동요처럼 리드미컬하고 가볍게 굴러가는 코러스, 살짝 빨라지며 이어지는 비트, 목을 눌러 째며 뱉는 벌스의 보컬. 간주의 하드한 일렉기타가, 동요풍 메인 멜로디를 그대로 연주한다. 후반부에는 마치 ‘pills’를 삼킨 화자의 상태를 묘사하듯, 악기며 보컬이며 죄다 간드러지고 흐물흐물하게 늘어진다. 다채로운 사운드가 실험적으로 오락가락한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매번 새롭고, 역시 탁월하다.
‘오피셜 비주얼’은 곡의 해석을 돕고 뒷받침하면서도, 정교하고 스타일리시한 블루blue를 입어 색다른 정서를 더한다. 정신병원 콘셉트 하이패션 화보집 같은 구성의 배경. 색색의 조명은 어둡고 화려하다. 배우들은 마네킹처럼 정지해 있다가, 생기 없는 마임을 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생기 없는 채로, 햇빛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앉아 하늘을 보거나, 복제된…(Ladytron도 종종 쓰던 편집)다. 후반부로 가면, 검은 프레임이 생기며 화면이 둘로 쪼개지고, 매우 ‘미국적인’ 이미지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역시, ‘pills’는, ‘아메리칸 드림 류’에 대한 암시였나보다. ‘약물중독은 흔하면서도, 뮤지션마다의 개성이 묻어나는 소재’라고 적은 바 있다.(<Razzmatazz> 리뷰.) 아메리칸 드림과의 연결도, 참신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세인트 빈센트 식 에스테틱과 섹시한 사운드로 충분히 독보적이다. 마무리에서 배우들은 약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간다. 눈이 로봇처럼 번쩍이고, 눈물이 한 방울 흐른다.
B: 네 ‘뉴요커’ 프로파일에서, 넌 이 앨범이 “섹스, 약, 그리고 슬픔”에 관한 거라고 했잖아. 뭐가 먼저야; 섹스와 약이야, 아니면 슬픔이야?
St. V.: 맞아, 닭이냐 달걀이냐지. 아마도 그냥 컨티넘continuum일걸. [웃음]
Interview by. Natalia Barr, [Interviewmagazine]
앞서, ‘Masseduction’과 ‘Sugarboy’를 묘사할 때, 부러 구체적인 인용은 피했다. “Nuns in stress positions smoking Marlboros” 처럼, 다소 모순되거나 정신없는, 중독적이거나 피폐한 이미지들이 연상되는 ‘Masseduction’의 가사. 코러스에서 화자는 “Masseduction”을 반복해 뱉으며, “날 turn on 시키는 걸 turn off 할 수가 없다”고 호소한다. 목소리의 아찔한 비틀림에는, 흥분과 괴로움이 동시에 묻어난다. 반복의 끝은, “Mass-destruction”으로 맺는다. 거대한 유혹은, 거대한 파괴와 함께 밀려온다. 화자는 견딜 수 없는 유혹과 파괴에 빠져든다.
Sugarboy, I’m in need
How I wish for somethin’ sweet
Sugarboy, I am weak
Got a crush on tragedy
슈가보이, 난 도움이 필요해
뭔가 달콤한 걸 원해
슈가보이, 난 나약해
비극에 반해버렸어
-‘Sugarboy’, <Masseduction>
‘Sugarboy’의 화자는 스스로를 “발코니에 매달려 있는 희생자, 너의 고통의 기계”라고 표현한다. “널 많이 닮았고, 너처럼 홀로”라고. 처음엔 보이즈와 걸즈를 향한 유혹인가보다 하고 대충 넘겼던 가사를, 되풀이해 들으며 곱씹을수록, 결핍과 고통이 선명히 귀에 들어온다. 유혹하고 유혹당하고, 중독될 것들을 찾아 헤매고, 스스로를 파괴하며, 사실, 외로워하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한다.
Come on sir, just give me the answer
I fear the future
제발요 선생님, 그냥 제게 답을 주세요
저는 미래가 두려워요
-‘Fear the Future’, <Masseduction>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 굉장히 강렬한 불안 증세를 겪기 시작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심지어는 뭔지도 몰랐어. 그건 늘 내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놈이야; 내 모든 세계관에 영향을 줬어. 일상적인 불안도 있고, 정말 통제할 수 없는 비참한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패닉 발작이 오곤 해, 이해할 수 없는 큰 일을 견뎌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면, 더 안전하게 느끼도록 하거나, 덜 미칠 것 같은 방향으로 우주를 해석할 방법들을 찾게 되지, 내게 있어서는, 그게 음악이었어.”
-Interview by. Jonah Weiner, [RollingStone]
그가 찾은 방법이 음악이었음에, 세상은 감사해야만 하겠다. 가사에 부분적이거나 비유적으로 언급되던 이 불안은, ‘Happy Birthday, Johnny’ 에서 보다 솔직한 스토리텔링으로 드러난다. 구체적이고 개인적으로 슬픈 사랑 이야기다. “넌 날 잡지와 TV에서 봤어. 그들이 내 진짜 버전을 알았다면. 너만이 비밀을 알고 있지, 늪과 공포를.” 화자는 ‘Annie’, 세인트 빈센트의 이름이다. 그들은 지금 함께 있지 않다. ‘애니’는 ‘조니’의 생일을 축하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그의 평안을 바란다.
“‘유혹’은 사람들이나 자연 안에 있는, 누군가를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는 힘을 의미해, 블랙홀 아주 가까이에 서 있는 것처럼. 이 앨범이 사랑에 관한 거라는 말은, 그냥 유혹, 힘, 그런 거 전부가, 실제로는 사랑을 원하고 있을 때, 우리가 손을 뻗게 되는 것들이란 뜻이야.”
Interview by. Natalia Barr, [Interviewmagazine]
왜 세인트 빈센트는, 이토록 트렌디한 사운드에 트렌디한 소재를 택했을까: 답은 사랑이었다. 모든 ‘유혹’들은, 사랑을 그리워하고, 원하는, 주고/하고 싶어하는 ‘증상’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앨범의 트랙들은 거의 다, 사랑 이야기였다.
No I, young lover, begging you please to wake up
Young lover, I wish that I was your drug
아니 난, 어린 연인이여, 그대가 제발 깨어나 달라고 빌고 있어요
어린 연인이어, 내가 그대의 마약이었으면 하고 바라요
-‘Young Lover’, <Masseduction>
연인이 다른 것들 대신 자신에 중독되기를 바라는 ‘Young Lover’와 달리, ‘Savior’의 화자는, ‘너’를 향해 ‘나는 너의 구원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너’는 ‘나’에게 간호사, 교사, 수녀의 옷을 입힌다. 성적인 코스튬플레이를 연상시킨다. 가르쳐주고, 인도해주고, 희생해 줄 절대적 존재를 기대하는 듯하다. 화자는 “나는 너의 순교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But then you say, ”Please“. 근데 그러고 나면, 넌 말해, ”Please“라고.” 그 한마디에, 화자는 이기지 못하고 말려든다. 중독과 사랑, 사랑에 대한 중독으로 가득한 앨범이다.
Yeah, so hang on me
Cause you and me
We’re not meant for this world
그래, 그러니까 날 붙잡아
왜냐면 너와 난
우리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Hang On Me’, <Masseduction>
이쯤에서 첫 트랙을 언급해야 겠다. 잔잔하지만 짜 하게 울리는 배경음. 보컬에는 공기가 굉장히 많이 섞였는데 일부러 성대를 꽉 막아 놓은 듯 자주 잠기거나 까진다. 꼭 목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의도적인 발성이다. 곱지 않은 가성. 본인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연인을 붙잡는 것 같은 가사다. 패닉과 발작들, 그럼에도 결국 사랑. 화자는 말한다, “Only lovers will survive.”
세인트 빈센트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lovers연인’만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이들’에 가까울 것이라고, 멋대로 해석해 보련다. 마지막 트랙 ‘Smoking Section’과 함께. 나직하고 웅장한 피아노 반주에 둔탁한 드럼, 기타가 더해지고, 보컬이 쉴 때는 강하게 때리는 하드한 그룹사운드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벌스와 코러스의 구분이 없으며, 톤이 차분한데 풍부해, 시를 낭송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가끔, 흡연구역에 앉아 있다. 깡패가 와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면, 소리 지르고 싸우기 위해서다. 손에 권총을 쥐고 있다가, ‘너’를 겁주기 위해 풀밭에 쏜다. ‘너’가 겁먹고 도망가지 않는다면, 화가 나겠지만 굴복할 것이다. 단지 ‘너’를 벌주기 위해 지붕 위에 서 있다가 뛰어내릴 것이다. 왜 그는 이렇게 극단적이고 자학적인 행동을 하나. 어김없이, 사랑이다. ‘너’는 연인, 사랑하는 이, 화자가 사랑하거나 놓지 못하는 대상일 테다.
마침내, ‘나’는 생각한다, “What could be better than love사랑보다 더 나은 게 있을까?” 형태는 의문문이지만,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임을 받아들임으로 보인다. 내내 어둡다가, 끝에 약간의 빛을 주며 회복을 암시하는 전개다. 이 사랑은 끝났을지 몰라도, 이게 사랑의 끝은 아니라고 말하듯, “It’s not the end”를 되풀이한다. 허스키하며 끝에 크랙을 넣어 의도적으로 곱지 않다. 몽환적으로 반주에 점점 묻힌다. 곡은 마무리되고, 앨범도, 마무리된다.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며 유혹거리를 찾다, 사랑하고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잃고, 결국 사랑이라고, 정리한다. <Masseduction>의 소리들을 한 겹 한 겹 걷어내다 보면, 마지막까지 남아 귀에 울리는 것은, 사랑이다.
그렇다면, 이제 눈의 차례다.
“비주얼 콘셉트 면에서 많이 발전했지. 이 에스테틱(‘Pills’)은 약간, 정신병원 원장 같은 느낌인데. 밴다이어그램에서, 섹시와 완전한 우스꽝스러움ridiculous이 겹치는 부분이 어디일까? 내게, 섹시는 힘을 가지는 것empowered과 같아. (……)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가 그거잖아. 누가 파워를 가지고, 어떻게 굴리는지, 그 형태가 어떤지.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선, 이렇게 말해야 해, ‘파워가 나한테는 어떤 형태인지를, 내가, 결정해야겠어. 너희가 내 파워를 정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내 파워를 정의할 거야.’”
-2018 Interview, [Channel 4 News]
<Masseduction>이 발매되기 며칠 전, 세인트 빈센트는 오피셜 SNS 계정에 ‘Mock Press Conference가짜 기자회견’ 클립을 몇 올린다. (이후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게 됐다’고 그는 반 농담으로 말한다. 본인은 ‘kind of into it’이라고. [Interviewmagazine]) 이 컨셉마케팅은 자체로 팝아트가 되었고, ‘스스로의 파워를 정의’해온 그의 역사에 새로운 색깔을 입혔다. 뮤직비디오도 이와 연결된다. ‘Digital Witness’ 비디오의 색 배치와 연결되면서도, ‘어긋남’의 개성으로 ‘진화’하여, “sexy and ridiculous” 컨셉으로 뚜렷해졌다. 오디오 자체로도 훌륭하나, 시각적 편집과 만난 결과물은, 단순히 ‘뮤직비디오’로서 곡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가치를 지닌다.
이 파트를 위해, 도시를 모티브로 삼은 두 곡을 설명하지 않고 남겨 놓았다. ‘Los Angeles’의 철자를 재치 있게 바꿔 재해석의 모티브로 삼은 트랙, ‘Los Ageless’. 트렌디한 댄스팝에 레트로한 멜로디를 얹었다. 목소리를 까거나 눌러 끈적하고 리드미컬하게 내보내는 벌스. 힘을 빼고 소리를 쌓아 흐느적거리는 코러스. 도중에 하드한 일렉기타가 첨가되며, 브릿지로 가면 아주 락이다. 째서 끝을 내지른다.
The last days of the sunset superstars
Girls in cages playing their guitars
But how can I leave?
I just follow the hood of my car
저물어 가는 수퍼스타의 마지막 날들
케이지 안의 여자들이 기타를 치고 있어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
그냥 내 차의 후드를 따라갈 뿐이야
-‘Los Ageless’, <Massedution>
“어찌 누가 널 가질 수 있을까, 누가 널 가졌다가 잃을lose 수 있을까, 그리고 나서 미쳐버리지lose mind 않을 수 있을까.” 중독적인, 아름답고 화려한, 그러나 마음을 둘 곳은 되지 못하는 장소. ‘toxic love’/‘love와 seduced의 경계’가 이 도시에 대한 화자의 감정에 가까운 표현일 듯 하다. 그렇다면 뉴욕은 어떨까. 그 전에 오피셜 비디오들을 살펴봐야 겠다. 인공적인 장소들이 번갈아 편집돼 있다. 깔끔하고 다채로운 색 배치와 ‘이상한weird’ 형태 배치가 만나 완성되는 “섹시-리디큘러스” 에스테틱은 유사하나, 그것으로부터 드러내는 정서는 다르다. L.A.는 섹시하고 ‘속물적’이고, 뉴욕은 개인적이고 따스하다.
비디오 ‘Los Ageless’은, 밀폐된 ‘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색의 방, 하늘색 바디수트를 입은 세인트 빈센트는 하늘색 카세트를 튼다. 한쪽에는, 멍게 같은 생물들이 천천히 움찔거린다. 성형외과 혹은 피부관리샵을 연상시키는 흰 방, 그는 민트색 의료용 의자에 앉아 있다. 청록색 두건을 쓰고 붕대 같은 흰 드레스를 입은 채, 얼굴에도 붕대를 감고, 흰 기타를 친다. 민트색 장갑을 낀 간호사들이 잡아당기자, 뺨이 비현실적으로 쭉 늘어난다. 그 장갑 끝에 튀어나온 긴 손톱과, 립스틱, 구두는 붉은색이다. 붉은 방, 그는 붉은 의자에 앉아 있다. 붉은 TV에서는 ‘다리’가 튀어나온다. 보라색 벽지의 방, 검은 에나멜 드레스를 입은 그는 ‘NO’가 적힌 오렌지색 종이를 보라색으로 포장된 분쇄기에 넣는다. 바닥에는 오렌지색 종이 조각들이 깔려 있다. 그는 화면을 무표정으로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우아하게, 그러나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움직인다. 코러스에서는, 무표정을 베이스로, 얼굴을 미세하게 일그러뜨린다. 천천히 눈을 내리깔거나 한쪽 눈썹을 올리기도 한다. 단순히 노래를 위한 근육의 사용인지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상태를 드러내는 것인지 헷갈린다. 후반부 사운드가 고조되며 ‘깨지고 찢어짐’과 함께, 줄곧 정적이던 표정을 극적으로 일그러뜨리거나,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고 열창한다. 갈려 나온 ‘종이’ 더미에 주저앉아 조각들을 마구 움켜쥐고 흩뿌리고, 가만히 내려다보던 생물을 입으로 가져간다. 이제까지 쌓아온 느낌을 깨고 무너뜨린다.
I guess that’s just me, honey
I guess that’s how I’m built
I try to tell you I love you
And it comes out all sick
I try to write you a love song
But it comes out a lament
아마도 그게 그냥 나인가봐, 자기
아마도 난 그런 식으로 만들어 졌나봐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다 이상한 말로 나와버렸어
너한테 사랑 노래를 쓰려고 했어
근데 추모곡이 돼 버렸네
-‘Los Ageless’(마지막 속삭임), <Masseduction>
비디오 ‘New York’의 경우, 인공적인 스투디오이더라도, ‘방’보다는 사방이 트인 느낌의 장소들이 등장한다. 역시 블랙과 오렌지, 라벤더와 블랙, 민트와 레드 등 유사한 컬러 매치가 보이는데, 연출과 연기 모두 감성적이다. 꽃밭 한가운데에 서 있거나, 새를 쓰다듬고, 미러볼에 뺨을 기댄다. 거대한 큐브에 상반신을 넣은 채 타이츠를 입은 하반신만 드러내고 있다가, 다음 장면에서 그 속에 잠겨 있는 얼굴을 보여 주기도 한다. 화장과 복장 모두, 어쩐지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한다. ‘감정’이나 ‘역사’가 느껴진다. 울고 난 듯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표정이지만, 기계적이지는 않다.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깔거나 슬픈 미소를 띠운다. 종종 리듬에 맞춰 손을 천천히 부드럽게 뻗는다. 곡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복장과 동작이다.
곱고 웅장하게 이어지는 코러스에서 보컬이 쭉 올라가는 부분에 툭 터지는 웃음 같은 소리를 미세하게 섞었다. 표현의 디테일을 살짝 틀어 포인트를 주지만, 곡 자체는 ‘차분한’ 편이다. 청자를 헷갈리게 만들지 않고, 일관되고 확실한 정서를 전달한다. “난 영웅을 잃어 봤고, 난 친구를 잃어 봤어. 그러나 널 위해서라면 달링, 기꺼이 모든 걸 다시 할 수 있어.” “너 없는 뉴욕은, 뉴욕이 아니야.”, “새로운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어, 네게 돌아갈게, 내 사랑.” 주제가 읽힌다, 뉴욕과 연결되는 사랑, ‘true love’/‘old love’/’homely love‘. 이 곡엔 19세 딱지가 붙었는데, 벌스 막바지마다 등장하는 비속어 때문이다. “네가 이 도시에서 날 다룰 수 있는 유일한 motherfucker야.” 요새 ‘진짜’임을 강조하기 위해 후기에 일부러 욕을 넣어서 SNS에 올리는 것이 바이럴마케팅의 한 유형이지 않나. -예시가 좀 뜬금없지만- ‘motherfucker’라는 단어 선택이 오히려, 화자의 진심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예쁘게 다듬어 포장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붉은 하이힐 수화기, 불타는 상추 마이크, 수많은 발코니 중 하나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읽는 매거진 같은 이미지가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정서의 이미지화랄까. 이토록 ‘평범한’ 사랑 노래여서 아름답고, 이토록 독보적인 비주얼이 그 아름다움에 색을 더한다. 롤링스톤 인터뷰어는, 세인트 빈센트가 뉴욕을 고향으로 ‘택했다’고 적었다. “너 없는 뉴욕은, 뉴욕이 아니야.” 뉴욕의 ‘home’이라는 장소성은, 도시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 모이는 이들로부터 나온다.
(게이 혹은 스트레이트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냐는 질문에) “그런 말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 젠더의 유동성fluidity과, 섹슈얼리티의 유동성이 있다고 생각해. 난 어떤 것으로도 스스로를 정체화identify하지 않아. 뉴욕은 온갖 곳에서 온 온갖 프릭freak들이 모이는 곳이지.……..누구든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 숨길 게 아무것도 없는 걸. 그치만 음악에 더 중점을 둘래.”
-Interview by. Jonah Weiner, [RollingStone]
세인트 빈센트는 익숙한 요소를 예상치 못한 곳에 가져다 놓거나, 장르의 공식을 조각내 다시 조합한다. 사운드도, 가사도, 비주얼도. 성서든, 도시든, 연애든, 기존의 틀을 해체해, 새로운 시선을 통해 다시 구성하거나, 흩뜨린 그대로 둬 버린다. 그 기반은, fluid한 사랑이다. 스스로 정의한 힘, 그것이 그의 음악을 ‘신성하게’ 만든다. 가부장적 권력에 종속된 질서를 어지럽히고, 다채로운 가능성의 혼돈을 열어 주는 -아 그의 가사대로, 세인트 빈센트는 리바이어던이다. 신보다 위대한, 러버lover다.
“사람들이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할 때, 더 힘이 생긴다고 느끼는 것 같아. 시스템과 현상태status quo를 해체하고 혼란시키는 건 항상, 파란만장turbulent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흥분돼. 섹슈얼리티도 플루이드fluid하고, yeah, 젠더도 플루이드하다고 생각해. 매우 많은much 아이덴티티가 구성될 수 있고, 또 매우 많은 아이덴티티가 어쨌든 임의적arbitrary인 거지. 인간이 무엇이 되는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확장시키는 거, 되게 신나는 일이야.”
-2018 Interview, [Channel 4 News]
Q: Annie Clark 과 St. Vincent가 같은 사람인지 물어본다면.
A: 애니 클락과 세인트 빈센트가 같은 거냐고요. 사실은, 그녀에게 물어봐야 해요.
-Mock Press Conference, [Instagram @st_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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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운드에 집중하다 종종, 자주 들리는 이 악기가 뭘까, 잘 모르지만 더 모르겠다, 그냥 기타인가 신스인가 갸우뚱하곤 했다. 세인트 빈센트가 연주하는 악기 목록에서, 떼레민을 발견하고 아! 했다. 나는 <프랭크>(2014)의 클라라로 떼레민을 알게 된 음악문외한이지만. ‘신성하고’ 묘하게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몫 하는 것 같은데, 그가 연주하는 모습이 궁금하다. 라이브 퍼포먼스도 상당히 독특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보기 시작하면 St. Vincent - Live Performance Art 뭐 이런 글이 또 나올 것 같아 꾹 참고 안 보고 있다. 유사한 이유로 <Masseduction>의 피아노 버전 레코드 <MassEducation>도 듣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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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가 환장할 요소들만 모아 놓은 세인트 빈센트의 필모/디스코그래피들이다.
솔로 밴드 데뷔 직전, 수피안 스티븐스의 투어 맴버로 참여했었다. 2012년에는 토킹헤즈의 David Byrne과 콜라보 앨범 <Love This Giant>를 냈다. 작년엔 벡의 ‘Uneventful Days’ 리믹스를 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비거 스플래쉬>(2015) 사운드트랙 작업으로, 롤링스톤즈의 ‘Emotional Rescue’를 커버했다. 201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XX 호러 필름 엔솔로지’의 파트 <The Birthday Party>로 영화계에 데뷔했고, 지금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1890)의 여성 리드 각색작을 디렉팅[Interviewmagazine] 중이다.
Q: 오늘날의 젊은 뮤지션들에게 할 조언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
A: 젊은 뮤지션들에게 뭐라고 말할지.. 근데 그거 약간 움직여 줄 수 있어요? 이쪽으로 각도를 움직여서, 네, 그렇게요, 네, 더 낫네요. 음.. 아니 이렇게.. 제가 만져도 될까요? 감사해요. 오늘날의 젊은 뮤지션들에게… 음… 영화산업으로 가라고 하고 싶어요.
-Mock Press Conference, [Instagram @st_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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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장 좋아하는 곡은 데이빗 보위의 ‘It’s No Game(Part 1)‘ 란다. [2013, Pitchfork]
* 참고 인터뷰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news/the-dream-world-of-st-vincent-101044/
https://www.google.co.kr/amp/s/www.interviewmagazine.com/music/st-vincent-ten-minutes/a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