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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Apr 12. 2021

"흙발의 철학자"

K'naan



K’naan, Keinan Warsame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NPR 뉴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문화/예술 카테고리의 기사만 골라 듣고 있을 무렵이었다. ‘Tiny Desk Concert’라는 코너에서, 어떤 ‘래퍼’의 공연 비디오를 보게 됐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런 목소리에, 그런 방식으로, 그런 내용의, 랩을, 또 노래를!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당장 내 페이버릿 뮤지션 리스트에 올렸다. 십 년도 더 된, 내가 힙합키드였던 시기의 기억이다. 그러니까, 그가 바로 ‘K’naan’이다.


힙합에서 귀를   오래인(맥은 물론 예외) 지금도, 그의 랩은 기꺼이 듣는다. 갑자기 케이난으로 돌아간 까닭을 TMI 하자면, 최근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Netflix) 시즌3 엔딩에 Snow Tha Product ‘Bilingue’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는데, <해밀턴> <해밀턴 믹스테잎> 나왔던 시기  이미 힙합을 듣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들과 리즈 아메드  ‘이민자아티스트들이 함께한 트랙 ‘Immigrant’ 이제야 듣게 됐고~  그런 얘기다.


https://youtu.be/6_35a7sn6ds

'Immigrant (We get the job done)' mv.



‘Immigrant’ 힙합/ 트랙이고, 한창 활동할 당시 케이난의 랩은 독보적이었지만, 그를 힙합/ 카테고리의 뮤지션으로 묶어 두기는 힘들다. 원래 ‘최근 앨범만 살필 계획이었으나,  번째 스튜디오- 번째 레이블 앨범, <The Dusty Foot Philosopher> 외면할 수가 없었다. 스무 개의 트랙들이 나름 설득력 있는 순서로 배열돼 있다. ‘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노노다. 듣다 보면 누구든  트랙이라도 ‘정리  없으리란  깨달을 테다. 상대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 ‘ 아티스트시기만의 매력이 묻어난다. 보다 ‘래퍼로서의 그가 들리지만, 다채로운 시도와 가능성도 함께다.


인트로 ‘Wash It Down’부터 심상치 않다. 물이 흐르는 소리에 리드미컬하게 말과 랩의 중간쯤을 뱉는다. 유사하게, 손 박자만 치며 생으로 랩하는 짧은 트랙 ‘God’도 있다. ‘랩 스킬’을 강조하는 ‘아주 힙합’ 트랙도 꽤 있는데- 비음이 많이 섞인 음색의 랩이 들리는 ‘Boxing My Shadow’, 비슷한 목소리로 하는 멜로디컬 랩과 타이트한 랩을 섞어 구성한 ‘Smile’. (초반 ‘블랙 에미넴’이라는-지금 생각하면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별칭을 듣기도 했는데) 에미넴이 연상되는 스타일로 목에 힘을 팍 주고 긁어 랩을 하는 ‘Voices In My Head’, 흥겨운 리듬의 ‘The Dusty Foot Philosopher’까지. 아, 레게 바탕에 힙합스러운 돕함이 혼합된 중독성 강한 트랙 ‘Soobax’도 있다. 제목과 훅은 소말리아어로 추정된다.


다른 사이드에는 ‘싱어singer’나 ‘시인poet’으로서의 케이난이 있다. 이후 레코딩에는 잘 없는 ‘아주 레게’ 스타일의 보컬을 들을 수 있어 보물 같은 트랙, ‘In The Beginning’, 이어지는 ‘Hoobaale’는 타령 같다. 투박한 타악기 소리, 흥 나는 대로 오르내리는 듯한 보컬이 쓰인 ‘Until The Lion Learns To Speak’. 재생되면, 길거리에서 뭔가를 두드리며 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래퍼’, ‘싱어’, 또 ‘시인’이 풍부하게 흩어져 있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토록 다양한 재능으로 케이난이 이야기하는 것은, 살아온 이야기, 여전한 현실, 그리고 그 삶을 대하는 태도다.


‘힙합’ 트랙에 속하는 ‘What’s Hardcore’를 살펴본다. 얼핏 ‘도발’로 들리는 가사는, 개인적 서사의 특수성을 따져 보면, 당연한 소리다. 래퍼들이 총/ 갱/ 주먹/ 등 이런 저런 ‘하드코어한’ 얘기를 ‘스웩’으로 내세우는 걸 보면, 정말로 ‘하드코어한’ 생활을 했던 케이난은 무슨 생각이 들까. 훅에서 그는 차분하게 되풀이해 읊조린다. “So what’s hardcore, really. Are you hardcore? Hmm. 뭐가 하드코어야, 정말. 네가 하드코어? 흠.” 이어지는 ‘My Old Home’에서는, 그 ‘하드코어함’을 들려준다. ‘자랑하는’ 톤이 아닌, 고통이 묻어나는 진지한 랩핑으로.



https://youtu.be/S0Jw4YTvHKw

‘I Was Stabbed By Satan’ 오피셜 오디오.



여기 상당히 ‘착한’ 분위기의 곡이 하나 있다. 부드러운 랩과 서정적이고 언뜻 밝은 후렴, ‘lalala‘까지 들어간다. 허나 제목은 ‘I Was Stabbed By Satan’이다. 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해맑은 사운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아픔을 담는 한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I was stabbed by satan on the day that I was born

I was promised loving but instead I was torn  

태어나던 날, 나는 사탄에게 찔렸어

사랑 받아야 했지만, 대신 갈기갈기 찢겼어.

-‘I Was Stabbed By Satan’, <The Dusty Foot Philosopher>  


<The Dusty Foot Philosopher>. 음악적 색은 살짝 덜 뚜렷하지만, 여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Troubadour>로 시작한 팬으로서는, 덕질포인트가 많달까- 그런 앨범이다. 이 다양한 가능성과 재능을, <Troubadour>(2009)에서 보다 집중해 좁혔고, <Country, God or the Girl>(2012)에서는 다시 일관성 있게 넓혔다.



<Troubadour> 커버.


케이난이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Troubadour> 부터다. ‘세계적인’ 곡이 돼 버린 ‘Wavin' Flag’ 포함, 대부분의 트랙이 음, 역사적이다. 첫 번째 트랙 ‘T.I.A.’는 ‘This Is Africa’의 줄임말이다. “네가 여권을 갖고 있고, 백신을 맞았기를 바란다”고 시작하며, 청자를 아프리카로 ‘데려간다’. 별로 즐거운 여행은 아니다. “You don’t know how hard it is here.너넨 여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 어떤 ‘생활’에 대한 일깨움이자, 살아있다는 외침이다. 비트의 일부처럼 가는 목소리로 반복되는 ‘simmer down진정해’는, 청자보단 어쩐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다.


레게를 리듬 위주로 단순화하거나 ‘눌러’, 랩에 사용했다. 배경 비트만이 아니라, 랩 자체에서 레게 맛이 난다. 그의 랩에 있는 특징 중 하나는 귀에 꽂히는 정확한 발음과 낮지 않은 보이스다. 꾸밈없는 톤의 깔끔한 음색과 만나 독보적인 스타일이 탄생했다. ‘스킬’을 뽐내려는 의도의- 힘을 잔뜩 준 현란한 랩핑, 오르락내리락 변하는 그루브는 잘 없지만, 바로 그것이 나를 비롯한 청자들이 그의 랩을 사랑하는 까닭 중 하나다.


‘If Rap Gets Jealous’에서는 하드록 사운드를 접목시켜, “내가 헤비하게 록 해버려서, 내 랩이 시기를 받아도, 너새끼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난 걱정 안 돼.”라는 가사로 연결한다. ‘스웩swag’이다. 이 스웩에는, 자신만의 근거가 있고, 필요가 있다. ‘랩핑을 위한 랩핑’(‘Somalia’)이 아니라는 거다. 케이난의 스웩은, 스웩을 넘어 프라이드pride다. 허세 없이 자연스러운 랩과 만나 완전체를 이룬다. 후의 앨범으로 갈수록, 랩과 싱 각각과, 그것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케이난스러움’이 덧붙는다.


거의 랩으로 구성되어 있고, 힙합의 전형적인 훅 형태인 코러스를 지닌 곡들도, ‘다르게’ 들린다. ‘15 Minutes Away’는 배경 사운드가 멜로디컬해 아예 색다르고, ‘Dreamer’의 경우 메인 멜로디에 민요적인 분위기가 있다. 통상적인 ‘랩’을 하고 있음에도, 모든 요소가 케이난스럽다. ‘ABC’s’에서는 약간 타령처럼, 흔들리며 리듬을 타기도 한다. 평가는 아니고 단순 비교로 말하면, Chubb Rock의 벌스는 기존 힙합 곡 속의 랩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 주제와 어울리게, 훅에는 칠드런 보이스 합창이 쌓여 있는데, 본인의 어린 시절이자, 지금 소말리아 어린이들의 생활이란 뜻이 아닐까 싶다.


They don’t teach us the ABC’s

We play on the hard concrete

All we got is life on the streets

그들은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아, ABC를

우리가 뛰어노는 곳은, 딱딱한 콘크리트

우리가 가진 전부는, 길거리의 삶이지

-‘ABC’s’, <Troubadour>


Something bad happens, "Que sera, sera"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케 세라 세라"

-‘Dreamer’, <Troubadour>


‘나쁜 일’은, 이런 류의 문구에서 흔히 일컫는, ‘보통의 불운’ 정도가 아닐 것이지만, 케이난은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읊는다. 그가 자란 소말리아에서는, 바로 그 정도가 ‘보통의’ 일이며,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의미다. 아웃트로에서 케이난은 중얼거린다, “내 나라는, 지구상 가장 살기 힘든 나라야 지금, 근데 난 여전히… 여전히 분위기 타는 법을 알아, 예쁜 여자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아.” 이 바이브가 앨범 대부분의 ‘힙합’ 곡들에 흐른다. 래퍼들이 흔히 하듯 실력 자랑도 하고, ‘핫 걸’ 얘기를 늘어놓기도 하는데, 고통스러운 과거가 배경에 어른거린다. 그것은 현재이기도 하다.


https://youtu.be/4fRF6Cby824

'Dreamer' 오피셜 비디오.


So what you know about the pirates terrorize the ocean?

To never know a single day without a big commotion?

It can’t be healthy just to live with such a steep emotion

And when I try and sleep, I see coffins closing

그래서 너넨 해적들이 바다를 테러하는 것에 대해 뭘 아는데?

단 하루도 큰 소동 없이는 지나가지 않아, 절대

어떻게 건강해 질 수가 있겠어, 이토록 극단적인 감정 속에 사는데.

잠들기 위해 노력하면, 보여, 관이 닫히는 게

-‘Somalia’, <Troubadour>


이런 가사를, 그리도 흥겨운 리듬으로 뱉는다는 거다. 케이난은 말한다, “They love me in the slums and the Native deprivation. 그들은 슬럼가에서 지내는, ‘원주민적 결핍’을 지닌 나를 좋아하지.” ‘그들’이, 미국의 음악 산업이, 세상의 대중이, 자신을 어떤 포인트에서 ‘흥미로워’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것을 대놓고 비꼬는 동시에 프라이드로 사용한다.


Probably get a Grammy without a grammar education

So fuck you school, and fuck you, immigration!

아마도 그래마 교육 없이 그래미를 받을 걸

그니까 학교 꺼지고, 이미그레이션(출입국 관리 사무소)도 꺼져!

‘Somalia’, <Troubadour>


다음 트랙의 타이틀은 재치 있게도 ‘America’. 여러 래퍼들의 피쳐링 가운데, 케이난의 랩은 소말리아어다. 아메리칸들이 잘 모르는, ‘관심을 갖지 않는’ 언어로 아메리카에 대해 말한다. 아, 어쩜 좋냔 말이다. 그런가 하면, ‘Take A Minute’과 ‘People Like Me’에서는 랩과 싱을 모두 한다. 구체적으로 들리는 그의 스토리를, 여기 굳이 옮기지는 않겠다. 차분한 랩과 처연하고도 담담하게 끊는 보컬. 이 분위기와, 다양하게 비유적인 표현법은, 싱으로만 이루어진 곡들(‘Wavin’ Flag’, ‘Fatima’, ‘Fire In Freetown’)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보컬이 전보다 일관된 색을 낸다.


https://youtu.be/70N3e1W7XsA

'Wavin' Flag' 오피셜 오디오.



케이난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올림픽 송’, ‘코카콜라 송’으로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Wavin’ Flag’. 이 위대한 곡이 귀에 들어온다면, 가사를 찾아보는 건 의무다. 오버는 팬의 특권이지만, 이건 별로 오버가 아니다.


So we strugglin’, fightin’ to eat

And we’ll wonderin’ when we’ll be free

So we patiently wait for that fateful day

It’s not far away, but for now we say

우린 고군분투해, 싸워, 먹기 위해

우린 궁금해 해, 언제 자유를 얻을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 그 약속의 날을

그렇게 멀지 않지만, 지금은 말해

-‘Wavin’ Flag’, <Troubadour>


이 유명한 곡을 사기를 올리거나 에너지를 끌어내는 수단으로 쓰든 말든 뭐 그건 자유지만 -감히 “나이 들수록, 강해 질거야, 난 자유라고 불릴거야, 흩날리는 깃발처럼.”이라고 노래하는 화자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 그대로가 담긴 이 가사를 진심으로 노래할 수 있는 이는, 케이난 뿐이다.



하나 덧붙이면, 케이난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트렌드를 거부하지도 않았다. 당시 랩 벌스에 다른 ‘싱어’가 피쳐링한 발라드 혹은 댄스팝 멜로디 코러스 구성의 곡들이 유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의 앨범에도 그룹사운드 댄스팝 멜로디에 트렌디한 팝 보컬이 들어간 곡들(‘Bang Bang’, ‘Is Anybody Out There?’)이 있었다. 지금 들으면, 약간 레임lame하다(물론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케이난 본인이 부르는 파트는 레임하지 않다. 이 보이스는, 존재 만으로 십 년을 아우른다. 그리하여, 흔한 이별 노래를 불러도 특별하게 들린다 <Country, God or the Girl> 속 ‘Hurt Me Tomorrow’나 ‘The Sound of My Breaking Heart’가 그러하다. 아마 ‘the Girl’에 포함되는 곡이지 싶다. 가사는 별로 취향이 아니지만 보컬 때문에 계속 들어지는, iDKHOW <Razzmatazz>의 ‘Kiss Goodnight’ 같은 트랙들이다.


이어보면, 케이난의 가사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여성이 단순히 ‘girl’이라는 것인데, 단지 아쉬운 것 뿐이다. <Country, God or the Girl>의 ‘the girl’은, 연애와 사랑의 대상으로 등장하는데, 내러티브가 흔하고 사적일지언정 인격체로 존중된다. <Troubadour>에서 몇 불편한 구절이 들리기는 하지만..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어 보이는 정도. 당시 대부분 남성 래퍼들처럼 일상적으로 미소지니를 보이지는 않으며, 뒤로 갈수록 더 그렇다.


https://youtu.be/7HepO6AOV0E

'Fatima' 오피셜 오디오.


아이러니하게도, ‘girl’에 대해 노래하는 곡 중 내 페이버릿은 <Troubadour>에 있다. ‘사랑의 대상’에 대해 노래하는 방식으로, 특정한 장소의 여성이 겪는 과거/현재의 폭력을 적은 곡 ‘Fatima’. 화자가 열 두 살 때 빠졌던 소녀에 관해 ‘추억’이다. 가사 전체가, ‘동화’ 같다. 그러나 실제 경험이든 아니든, 현실의 이야기다. 아름답고 서늘하다. 파티마에 대한 기억은 전체를 다 듣는 게 좋겠고, 마침내 미국에 온 화자의 이야기인 마지막 벌스만 옮겨 본다.


Damn you, shooter, Damn you the building

Whose walls hid the blood she was spillin’

Damn you country so good at killin’

Damn you feelin’ for persevering

망할 총잡이, 망할 빌딩  

누구네 벽이 숨겼어, 그녀가 흘린 피를

망할 너네 나라는, 죽이는 걸 너무 잘한단 말야

참아야만 해, 망할.  

-‘Fatima’, <Troubadour>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예리한 시각, 그리고, 현재형의 고통이 담겨 있다. 아웃트로, “We’re not mourning, we’re celebrating.우린 애도하고 있는 게 아니야, 축하하는 거야.” 라는 문장의 그 애써 밝음은 가슴을 푹 가라앉게 한다.



<Country, God or the Girl> 커버.

 

<Troubadour>에서 케이난은 경험과 현실, 고통과 프라이드를, 담백하고 희망적인, 때로는 ‘힙합스러운’ 톤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집중했다. 햇수로 3년 후 낸 <Country, God or Girl>에는, 보다 철학적이고 사적인 뉘앙스가 섞여 있다. ‘최근의’ 경험과 정서가 덧붙었으며, 희망은 전처럼 파워풀하고 꽉 채워 곧지 않다. 공허함이나 ‘해탈’이 좀 섞였다. 앞서 트렌디 팝 보컬 피쳐링 범주로 묶은 두 곡을 우선 비교하면, <Troubadour>의 ‘Bang Bang’은 ‘핫 걸’에 빠졌다는 흔한 스토리인 반면, <Country, God or the Girl>의 ‘Is Anybody Out There’은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가사다. 이전 앨범의 곡들이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얘기+다들 하는 얘기 약간’ 이었다면, ‘굳이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비중이 생겼다고 할까.


사운드를 짚으면, 랩으로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보컬’의 가능성은 이전부터 충분했으나, <Troubadour>는 어쨌든 주로 랩에 집중하고 몇 곡에 보컬을 배치했었다. <Country, God or the Girl>로 가면, 래퍼로서의 음악적 정체성이 여전히 있는 와중, 힙합으로 분류하기 힘든 곡이 여럿 띈다. 보컬의 비중이 늘어났고, 랩도 더 루즈하고 멜로디컬하다. 멜로디 라인들 자체도, 범위가 넓어진 느낌이다.


https://youtu.be/XuoccsY9jp0

'The Seed' 오피셜 오디오.


첫 곡 ‘The Seed’ 부터 멜로디컬한데, 레게를 자기 식으로 해석한 케이난 특유의 보컬이 호소력 있고 안정적으로 울려 퍼진다. 전 앨범의 ‘ABC’s’에서와 같이, 칠드런즈 보이스 합창이 과하지 않게 쓰였다. “흩날리는 깃발처럼”을 직유로 사용해 현실의 삶, 살아남기, 자유에 대한 의지, 희망을 날것의 언어로 솔직하게 표현했던 곡 ‘Waving Flag’. ‘The Seed’ 역시 유사하게 모이는 주제이나, 스토리텔링 방식은 달라졌다. 거리두기와 절제가 보인다. 화자 자체를 ‘나무가 된 씨앗’으로 설정해, 보다 심화된 비유를 한다. 가사가, 한 편의 시다. 흔한 표현이나, 아무튼 정말 그렇다. 후반부로 가면 마지막 구절이 반복된다. ‘난 내가 살아남을 것임을 아는데, 너는? 이제 네 차례야.’ 하고, 살아갈 힘을 건네는 것 같다.


I was a seed planted by lovers in a refugee

camp in over seas I grew free

I grew my roots and became a tree

So now they never gonna cut me down

난 씨앗이었어, 어느 연인이 심은

바다 건너 난민 캠프에

자유로이 자라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됐고

이제 그들은 날 잘라내지 못해 절대로

-‘The Seed’, <Country, God or the Girl>


‘Gold In Timbuktu’와 ‘Waiting Is a Drug’, 이어지는 ‘Better’는, 구성과 소재가 묶이는 곡들이다. 벌스에선 랩을 하고 코러스에선 노래를 하며, 삶 자체에 대한 ‘감상’이랄지-를 솔직하게 늘어놓는다. 분위기는 나뉜다. 앞 두 곡의 랩은 힘을 빼 부드럽고, 보컬 역시 곱고 가볍게 내보낸다. 여전히 희망으로 마무리되기는 하나, ‘Gold In Timbuktu’에는 은근한 허무가, ‘Waiting Is a Drug’에는 구체적인 우울이 들린다. ‘Better’는 보다 본격적으로 희망적이다. 기본 사운드나 보컬이 밝고, 힘찬 감정이 실린 랩에는 의지가 묻어난다.


‘Bulletproof Pride’는 서사적으로 전 곡 ‘70 Excuses’와 이어지는 듯한 곡이다. 같은 구조의 문장과 레게 바탕에 민요 느낌이 섞인 멜로디를 반복하며 ‘변명excuse’을 나열하는 ‘70~’ 이, 라이프에 대한 곡인 듯 하다가 코러스에서 “I could’ve been loved난 사랑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를 반복하며 사랑과 이별의 뉘앙스를 풍기는 정도라면, ‘~Pride는’ “70개의 변명이 다 떨어졌어~”로 시작해, 본격적으로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흔한 이별 노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트랙과 트랙으로 연결되는 스토리텔링과, 케이난 특유의 담백한 소로우는 흔한 걸 흔하지 않게 만든다.


https://youtu.be/ApNUBxmY-ck

'Simple' 오피셜 오디오.


‘Simple’은 가사와 사운드 모두 독특한 곡이다. 최근 다시 돌리면서 더 사랑하게 됐다. 랩 끝을 레게 스타일로 늘리는 변화구를 넣었다. ‘그녀’에 대한 사랑과, ‘대중’에 대한 시니컬한 감상이 함께 들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양쪽 모두, ‘simple’을 사용해 표현한다.


I used to be cold.

Then she hold me close and me fold like sheets. So,  

I love how she make it seem so simple.

난 차가웠어.

그때 그녀가 날 꼭 안아줬어. 난 종이처럼 딱 접혔어.

어찌 그녀가 모든 것을 그토록 간단하게 만드는지를 사랑하게 돼.

-‘Simple’, <Country, God or the Girl>


I see killers on the corners taking lives like they on commission

But I keep on, on a mission

Survival is my addiction

And you people just love how I make it seem so simple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생명을 빼앗는 킬러들을 봤어, 모퉁이에서

그러나 계속 나아갔어, 내 사명을 향해서.

내 중독은, 살아남는 것.

그리고 당신네들은 그냥, 사랑하고 말아

어찌 내가 그걸 그토록 단순하게 보이도록 만드는지를 말야

-‘Simple’, <Country, God or the Girl>


마지막 그 ‘심플’한 구절에 있는, 묘하게 뒤틀린, 시니컬한 프라이드가 느껴지는지. 그러고 보면 코러스의 “It took all this time”은 연애의 과정이 아니라 그의 삶 전부에 가깝게 들린다. 맞다. 그의 곡에서 사람들이(내가) 사랑하는 것 중 하나는 심플함이다. 래퍼를 음유시인……이라고 하던 때…..도 있었지만- 케이난의 가사는 정말로 시다. 복잡한 라임과 펀치라인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에 집중하는 대신, 담백한 요소들을 독특하게 조합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안에 담긴 메시지를 잊지 못하게 한다. 그 심플한 가사와 리듬으로 파고드는 깊이는, 아득하다.



고통을 말하는 방식은 아티스트마다 다르다. 그 크기를 줄 세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다만, 케이난은 그렇다는 거다. 과거를 전시하듯 늘어놓지 않고, 담담하고 희망적인 톤으로, 장소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청자는 이입하기보단, 거리를 두고 타인의 경험으로 인식하게 된다. 가슴에 손을 얹고, 감히 존경하게 된다. 이 굉장한 아티스트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속에 담긴 삶을 고민 없는 동감으로 소비하지는 말 것. 케이난을 들을 때마다, 되새기는 바다.



https://youtu.be/Ehdueqh89hw

‘For Mohamoud-Soviet’


다시 <The Dusty Foot Philosopher>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화의 일부로 이루어져 있는 skit 하나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고작 30초지만, 앨범의 핵심이 담긴 트랙이다. ‘흙발의 철학자’는 죽은 친구에 대한 묘사인데, 그 자신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또)감히 든다. 래퍼, 보컬, 뮤지션, 시인, 철학자, 운동가, 케이난. 이 위대한 인간에 관한 글을 그 자신이 적은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내 가까운 친구가 살해당했어. 그를 ‘Dusty Foot Philosopher흙발의 철학자’ 같다고 생각하곤 했지. 무슨 말이냐면, 가난하고, 빈곤한데, 고귀하고 당당한 태도로 살았거든. 우주를 철학적으로 보고- ‘잘 배운’ 사람들이 그렇듯, 절대 배운 적 없는데 말이야. 비행기에 타 본 적은 없지만, 구름 너머에 뭐가 있는지 이야기하듯. 그게 바로 ‘Dusty Foot Philosopher’야.”

-‘For Mohamoud-Soviet’, <The Dusty Foot Philosopher>  




+

2012년 <Country, God or the Girl> 이후, 4년 만에 ‘Immigrant’ 벌스 하나로 여전한 랩을 해 준 것을 마지막으로, 케이난은 스튜디오 앨범은커녕 싱글도 내지 않았다. ‘뮤지션’으로서 할 이야기가 더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다. “케이난이 올림픽 머니를 만들고 더 곡을 내지 않는다”는 반응에 관한 곡을 만들었다고, 몇 년 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었고, 본인이 기획한 HBO 시리즈 리드 롤을 맡을 소말리 젊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공고를 내기도 했었는데(벌써 오 년도 더 됐는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엎어진 걸까). 이 글은 뮤지션 케이난의 작품을 다뤘지만, 그래. Keinan Warsame, 그는 어떤 단어 하나로 정의하기엔 너무 자유로운 아티스트, 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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