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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Jul 21. 2021

틈의 마력

Terra Twin



Terra Twin, <Terra 1>



<휴먼 보이스>(2020) GV, 단편 작업에 대한 질문에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말했다, “특정 길이로 만들어져야 하는, 굳이 90분-120분으로 늘일 필요가 없는 이야기가 있다(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음악 트랙도 마찬가지다. Terra Twin 첫 EP <Terra 1>의 러닝타임은, 10분. 2분이 채 되지 않는 곡도 있다. 더 이어지지 않아 아쉬운 그대로 아름답다. 이들은 벌스-코러스, 전주-간주 등 곡의 형식이나 길이에 묶이지 않고, 본인들만의 예술작품을 만든다. 라임을 맞추지 않고 문장 끝을 자주 자유롭게 두기도 한다.


‘Terra Twin’ Spotify 프로필.


“맥심 밸드리와 제임스 하비의 장거리 음악 콜라보.”


위 문장이, 테라트윈에 대한 공식적 설명의 전부다. 따라서 뒤따르는 내용은 주로 개인적인 해석과 짐작. 이들의 작품을 듣거나 보면, 다음과 같은 수식들이 떠오른다: 자유로운, 레트로한, 클래식한, 틀을 벗어난, 로우파이의, 몽환적인, 무심한, 초현실적인, 여백이 있는. 꽉 채워 틈이 없는 결과물을 선사하곤 하는 뮤지션들도 있지만(꼭 사운드가 웅장하거나 뮤직비디오가 화려하다는 뜻은 아니다.)- 테라트윈은 틈을 남겨두는 쪽이다.


창작자와 곡, 청자 사이에 ‘거리’가 있다. 많이 다듬었거나, 전혀 다듬지 않은 듯한, 짧은 문장들을 천천히 내보낸다. 그 사이로 단순하고 익숙한 악기 사운드가 들어온다. 그 조합이 생소하다. 듣고 있으면 멍해지고, 살짝 무기력해진다. 동시에 영감을 받는다. 맥심 밸드리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인 보컬의 목소리에는 끈적하고 깊은 소울이 있는데, 힘을 빼 나른하게 내보내기 때문에, 무심한 듯 세심한 멜로디와 딱 어울린다. 발음을 흐리거나 비음을 섞는 디테일을 어느 부분에 어느 정도로 써야 곡이 은근히 맛있어지는지 알고 있는 보컬이다. 이를 테면- ‘Eastern Boy’ 속 ‘breaks down’은 목을 약간 막아 둔탁한 비음으로 낸다. ‘I Don’t Know’에서는 모음 ‘o’를 대부분 흘려 발음하거나, 악기 소리에 묻히게 한다. 각 단어를 위치에 알맞는 소리로 내놓는다. 계산의 치밀함이 아닌 감각의 예리함일 것이다.


오르내리는 폭이 크지 않은 멜로디. 가사는 생략이 많은 시 같다. 가장 처음 낸 곡 ‘Eastern Boy’에서는 리드미컬하고 클래식한 기타 반주가 두드러진다. 보컬은 담백하다. ‘I Don’t Know’역시 기타로 시작하지만, 초반부터 소리가 쌓여 있다. 곡이 진행되며 인스트러멘탈이 추가되고, 사운드가 다채로워진다. 싱이 끝난 후에는 증폭된다. ‘Yucca’도 비슷한 구성이나, 후반부 (아마도)신스가 멜로디 라인을 연주한 후, 가늘고 몽환적인 사운드 한 갈래만 남겨 끌고 가다 페이드아웃 한다. 이 소리는 ‘Lover Come Here’ 도입부의 것과 닮았다. 꼭 의도한 듯 두 곡을 떨어뜨려 배치한 점이 재미있다.



https://youtu.be/sDsb5OFQPtY

'Eastern Boy' 오피셜 비디오.


가장 처음 나온 곡, ‘Eastern Boy’는, 꼭 서사시 같다. 특히 더 거리감이 느껴지는 트랙이다. 리듬에 집중해 담백하고 무관심하게 툭툭 뱉듯 노래한다. 반복되는 멜로디, 특정 부분에 목소리를 쌓아 포인트를 준다. 단조롭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Old man take me out

In the peaceful way her skirt sings

Waves keep going and she said

나이든 이여, 날 데려가오

그녀의 치마가 노래하네, 평화롭게

끊임없이 물결치네, 그녀는 말해


The eastern boy no money and no family

Head down now cant go, no no

동쪽의 소년에겐 돈도 가족도 없지

고개를 숙여 이제 갈 수 없어, 안돼


Breaks down every time

Comes on with the sun

There’s an ocean now in her memory

It’s chemical nothing and everything

매번 무너져 내려

해와 함께 찾아오지

이제 그녀의 기억 속엔 바다가 있네

화학적이야. 아무것도, 모든 게.


Old man just take me out

나이든 이여, 그저 날 데려가 주오


The eastern boy no money and no family

Head down now cant go, no no

동쪽의 소년에겐 돈도 가족도 없지

고개를 숙여 이제 갈 수 없어, 안돼


-‘Eastern Boy’, <Terra 1>


‘그녀’는, 나이 든 남자에게 말한다, 날 데려가라고. ‘이스턴 보이’에 대한 기억을 노래한다.  드러나지 않는 관찰자/전지자인 화자는, ‘올드 맨’, ‘그녀’, ‘이스턴 보이’가 누구이며 서로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 드라마적 서사를 넣어 가사를 쓴다면, 구체적 스토리텔링을 택할 수도 있다- 이를 테면 Cavetown의 ‘Lemon Boy’. 그저 케이브타운 스타일과 테라트윈 스타일이 다른 것이겠지만, 두 아티스트의 감각에 찬사를 보내기 위해 별로 전문적이지 않은 설명을 덧붙여 본다. ‘Lemon Boy’는 소재 자체가 판타지스럽기 때문에 이 방향이 어울린다. 적당히 자세한 묘사가 트랙의 분위기를 뚜렷하게 해준다. ‘Eastern Boy’를 그렇게 풀면, 전개에 아주 독특한 요소가 있지 않은 이상 식상해질 가능성이 높다, 아래와 같이.


Few years ago she met the eastern boy

He had no money no family

They lived together

Little house with the ocean view

Few months later he said to her

….

(Wow how corny…)

몇 년 전 그녀는 동쪽의 소년을 만났어

돈도 가족도 없었지

그들은 함께 살았어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에서

몇 달 후 그는 그녀에게 말했어

….

(와 진짜 식상하다…)


대충 지어내 봤다. 그저 한 예다. ‘그녀’와 ‘오션’, ‘이스턴 보이’의 관계는 다를 수도 있다. 뮤직비디오에도, 뚜렷한 전개나 감정이 없다. 이어지는 분위기는 있다. 낡은 벽 앞에 차가 선다. 누군가가 내린다. 흰 드레스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다. 가사에 대입 시킨다면 ‘그녀’겠으나, 그저 짐작이다. 차에 기대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곡이 끝날 무렵 다시 타고 가버린다. 드라마틱한 효과나 움직임, 표정 변화는 없다. 멀리서 한 앵글로 찍은 원테이크가 전부다. 뭔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결여’가 아니라 ‘생략’, ‘여백’이다. 다 채우지 않음으로써 완전해지기. 차 문에 치맛자락이 끼어 삐져나온 것마저 일관적 에스테틱으로 다가온다. 가사와 비디오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아주 적음. 드러내는 감정은, 분명치 않음. 때문에 이 곡은 매력적이다. 청자는 작품이 마련한 틈에 앉아 각자 느끼고 상상한다.


https://youtu.be/4xNPsj5gL08

'I Don't Know' 오피셜 비디오.


비디오의 감독은 작곡/작사가와 같다. ‘리튼 앤 디렉티드 바이 맥심 밸드리’가 되겠다. 이 아티스트의 또 다른 재능인 ‘연기’가, 한 달 후 올라온 ‘I Don’t Know’ 비디오에 보인다. 표면적 형식은 무려, 광고다. 영상에 덧붙은 설명은 “스트로브 라이트를 99달러에 사세요.”. ‘디스코 라이트’를 검색하는 유튜브 창으로 시작되는데… 두 사람이, 어두운 야외 같은 곳에 전등을 놓고 손으로 쨘- 하듯 장식한다. 다른 누군가가 천으로 닦는다. 맥심 밸드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무표정으로 중얼거리거나, 마구 팔짓을 하며 열변을 토하는 장면도 있다. 중간중간 디스코풍으로 꾸며진 ~스트로브 라잍~ 문구가 끼어든다. 싱이 끝나고 인스트러멘탈 볼륨이 커지면, 투박한 초현실적 배경에, 몸을 흔드는 두 사람의 형상이 더욱 로우파이로 삽입된 씬이 등장한다. 디스코 음악에 맞춘 춤인 듯 한데, 곡의 박자와 약간 어긋나며 묘하게 들어맞는다. 마무리는 다시 첫 배경, 애매한 표정들. 이상하다. 그 거친 줌인 하며.. 옛날 광고나 뮤직비디오 같은데, 희한하게 잘 만들었다. 모든 씬이 곡의 템포에 맞춘 슬로모션이고, 로우파이라 촌스럽지 않다. 뭐하자는 거지 싶은 멋짐이다. 이 저세상 감각, 대체 뭘까.  


I don’t know

Been a while

Anything goes

I can’t lie

You no friend of mine

모르겠어

좀 됐는데

뭐가 됐든(?)

난 거짓말 못 해

넌 내 친구 아니야


Say no more

Beauty gone

Sin on me

While I stay high

For you to carry on

말은 그만

아름다움은 사라졌어

죄를 지어

취해 있는 동안

네가 나아갈 수 있도록


-‘I Don’t Know’, <Terra 1>


픽셔널했던 ‘Eastern Boy’와는 또 다르다. 단어와 음절을 최소한으로 남기고 지웠다. ‘Beauty (is) gone’, ‘(It’s) Been a while’, ‘(There’s a) Sin on me’ 이런 식이다. 그 몇 되지 않는 단어들마저, 불분명하게 흘린다. ‘1절’의 know, goes, of, ‘2절’의 more, gone 등은 악기소리와 함께 배경에 스며든다. 퍼지며 사라진다. 인스트러멘탈과 합쳐진다. ‘You are not my friend’가 아니라 ‘You no friend of mine.’ 처럼- 몇 되지 않는데도, 단어와 문장의 배치가 묘하다.


(그래서 이 곡은 더더욱 번역에 의미가 없겠다 싶으면서도 언젠가 생길 한국 팬들이 조금 반갑기를 바라며 해보았다. 짧은 시 같은 느낌을 살리고는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이번 EP와 함께 공개된 곡들로 가면, 쓸 말이 줄어든다. 비디오도 없고, 오피셜하게 올라온 가사도 없다. 귀로만 가사를 캐치하는 것에도 나름의 ‘틈’적 재미가 있다. 내 귀에 들어온 소리가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 옮기지는 않았다.)



<Terra 1> 커버. 출처: 인스타그램 @terratwin. 아트워크: Frances Carter.


남은 두 곡의 사운드에 대해서는 앞에서 묘사했으나, 조금 더 살펴본다. ‘Yucca’는 기타와 퍼커션으로 단순하게 시작해, 보컬과 건반 등이 등장하며 갈수록 풍부해진다. 보컬은 보다 톤을 높이고 힘을 실어, 호소력 있게 노래하는데, 소리가 얕게 여러 겹 쌓여 색다르다. 그러다 잦아들고, 잔잔하고 조용한 (아마도)건반이 몽환적인 사운드를 끌듯 내며 마무리된다.


‘Lover Come Here’의 처음은 ‘Yucca’의 마무리처럼, 가느다란 악기 소리로 시작한다.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스트러멘탈이 차례로 추가되고, 탁하고 나직한 (아마도)맥심 밸드리의 보컬이 슬며시, 또다른 악기처럼 들어온다. 역시 ‘Yucca’와 유사하다. 그 목소리에 잠겨 있을 무렵, 살짝 날카롭게 힘주어 내뱉는 (아마도)제임스 하비의 보컬이 끼어 들어오며, 확 깨운다. 이 구성이 반복되고, 예상치 못한 순간 끝난다.


저 위에 ‘(맥심 밸드리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라고 적었고, 바로 앞에는 ‘아마도’를 붙였다. 어느 곡 어느 부분의 보컬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건, 오로지 내 귀의 판단이다. 공식 정보나 퍼포밍하는 영상이 없기 때문이다. 단어를 발음하거나 음을 내는 방식의 디테일 등으로 유사점을 찾아 유추하는 것에 불과하다. ‘Eastern Boy’의 보컬은, 출연한 작품에서 들은 맥심 밸드리의 목소리, 또 크레딧의 ‘작사/작곡 맥심 밸드리’라는 문구를 통해 그의 것으로 짐작했다. 첫 단추였다. ‘I Don’t Know’도 동일한 보컬임이 거의 확실했다. ‘Yucca’의 경우 목소리 톤은 다르지만 기반 음색이나 발음의 특징(‘come’ 같은)을 통해 동일한 이의 것으로 추측했다. 두 목소리를 겹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그건 아니라고 결론. ‘Lover Come Here’의 첫 번째 보컬도 마찬가지. 두 번째 보컬은 단순히 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목소리의 특색이 다르-둔탁한 비음이 없고 목에 힘이 다르게 들어간다-므로 맥심 밸드리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 스포티파이 크레딧 작사/작곡 란에 두 사람의 이름만 있고 피처링 정보가 없으므로, 나머지 한 아티스트, 제임스 하비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략 이런 사고 과정을 거쳤다.  뭐, 전부 맥심일 가능성도 있다. 확실한 건, 매력적인 보컬이라는 점.



출처: 인스타그램 @terratwin


좋아하는 곡을 따라 흥얼거리면, 대개는 스스로 못 부르는 것을 알아도 즐겁다. 예외는 있다. 주로 만든 이와 퍼포밍한 이가 같으며, 보컬 기술적으로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인디 음악들에 해당된다. -가사도 멜로디도 단순해 금방 익힐 수 있지만, 따라 부르면 ‘내가 노래를 잘 못해서’가 아닌 까닭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곡. ‘느낌이 이게 아니야, 이건 그만이 부를 수 있어’라며 고개를 젓게 된달까. (당장 생각나는 건 데뷔 초 레이디트론-) 테라트윈이 그랬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음악 자체엔 의도적으로 틈이 있는데, 다른 아티스트가 리믹스나 커버를 할 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라이브 공연을 하게 된다면 변주의 가능성이 다채로울 것이란 짐작이 든다. 멜로디를 더 늦춰 시를 낭송하듯 노래하거나, 악기 종류를 바꾸거나 더해 연주하는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라이브를 할지 말지, 음원대로 갈지 애드리브를 할지는 아티스트의 선택이다. 테라트윈은 더욱, 앞으로 무엇을 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펜데믹 때문만은 아니다.


앨범을 듣고 떠오르는 문장의 개수는, 트랙의 개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곡은 네 개 뿐이지만, 테라트윈에겐 스타일의 윤곽이 있다. 뚜렷하지는 않고, 그것이 매력이다. 자극적이지 않은데, 중독된다. 곡들에 일관성과 각각의 개성이 모두 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아트를 만들어 낼지 알 것 같다가도, 전혀 모르겠다. 장거리 작업으로 나온 음악이라니, 갑자기 기술의 발전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아티스트(s)와 곡에 대한 정보가 적어, 여러 모로 제멋대로인 글이 나왔다. 테라트윈은 본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결과물이 그리고자 한 모양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아티스트(s)는 아니다. 가사조차 다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도, 이들의 작품은 귀에 스며들었다. 원래 취향이던 종류이면서도 새로웠다. 들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내 ‘음악뇌’ 속 풍경은 달라졌다. 물리적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음악적 세계를 넓힌 것은 아니나, 무엇인지 모를 화학작용을 일으켜 모든 곳에 틈을 만들어 놓았다. 그 틈이 나를 자꾸 끌어들였다. 쓰고 싶게 했다.



+

아 어쩌면 테라트윈은 본인들의 예술을 표현할 말을, 처음부터 그 안에 숨겨 놓았을지도.

“It’s chemical nothing and everything화학적이야, 아무것도, 모든 게.”('Eastern Boy')

(그냥 갖다 붙이기다.)


출처: 인스타그램 @terratwin. 사진: Frances Ca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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