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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걸 쓸 시간에 아임낫데어를 또 볼 예정이었는데

by 않인



* <캐롤>(2015)과 <아임 낫 데어>(2007) 의 특정 장면에 대한 묘사 포함



다 썼다고 여겼던 케이트 블란쳇 글을 두 시간 반에 걸쳐 다듬으며 홀로 조용히 다채로운 난리법석을 떨었다.

캐롤이 하지와 변호사 미팅을 하는 씬에 대한 묘사를 정독하다 갑자기 울컥 하였다. 물론 내가 글을 잘 써서 그런 것은 아니고 위 아 낫 어글리 피플 하지, 하던 캐롤을 머릿속에 그리다가 그런 상태가 됐다. 그리고 이런저런 장면을 떠올리며 계속 울려고 말려고 하였다. 항상 테레즈에 이입하며 봤었는데, 이번엔 케이트 블란쳇에 집중해야 했어서 그런가 캐롤의 마음을 자꾸 생각하게 됐다.

서로를, 혹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바라보는 캐롤과 테레즈는 아름답다. 함께 같은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캐롤과 테레즈는, 다른 느낌으로 아름답다. 두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미스터 터커에게 관심 없는 눈길을 건네는 장면을 엄청 좋아한다. 테레즈는 캐롤이랑 있으니까 즐거워서 그냥저냥 상대해 주고, 캐롤은 테레즈를 제외한 그 공간의 인간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엄청 대충 대하며 무시하는데, 뭔가 공범 같고. 두 번째 관람부터는 미스터 터커의 정체를 아는 상태에서 저놈새키하면서 보게 되지만, 그 장면 자체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캐롤>(2015). IMDB 이미지.



주드 퀸 부분을 훑으면서는 십 대 이후로 처음 밥 딜런을 찾아 들었다. ‘발라드 오브 띤 맨’을 귀로만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스쳐가지고. 그러다 ‘밥 딜런스 115th 드림’에 좀 꽂혔는데 그건 그거고- 나는 미스터 존스-키넌 씬을 또 증말 좋아한다. 비틀즈랑 와글와글 하는 씬도 좋고, 수염 그리는 씬도 좋고,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성냥 있어요 하는 씬도 좋고, 풍선이 되는 씬도 좋고, 알렌한테 타자기로 편지 쓰는 씬도 좋고, 애스트로넛 씬도 좋고, 댓 워즈 알렌 긴즈버그 맨! 씬도 좋고. 벤 위쇼의 목소리랑 심장소리랑 맞물려 로큰롤 공연이 시작되는 씬도 좋고 음. 아니 그냥 주드 퀸의 모든 씬을 좋아한다.


트루스랑 라그나로크는 빼버렸고, 추가로 작품을 더 찾아보지도 않고 딱 다섯 작품만 넣었는데도 시작부터 길어질 조짐이 보였었다. 둘로 나눠야 될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나누지 어떻게 나누지 꽤 고민했다. 스타 아티스트 주드 퀸과 버나뎃을 묶으려니 롤라와 캐롤이 너무 안어울리더라고. 무슨 메이크업으로 가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맘대로 가르면 되겠구나! 하고 번쩍 했다. 아니 어차피 맘대로긴 한데, 음. 다음은 그때 적은 메모다.

--깨달았어 역시 내 영화 선호도로 멋대로 편집 해야겠어 1파트는 토드헤인즈아닌거 2파트는 토드헤인즈영화로 하고 1파트의 처음과 2파트의 마지막이 가장 주목되잖아 역시 그러면 여는 건 커피앤시가렛으로 하고 닫는 건 주드퀸 아임낫데어로 해야지 이거야 이거이야-

뭐 그랬다는 이야기다. 커피앤시가렛과 아임낫데어를 쓰면서 옆길로 새거나 티엠아이를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다가, 약간만 발산했다. 짐 자무쉬가 하는 밴드 ‘SQU(위에 점 두개)RL’이 쉘리 애인이 하는 밴드로 언급된다거나, ‘Cousins’ 말고 ‘Cousins?’라는 에피소드가 또 있는데, 그걸 본 후 난 스티브 쿠건만 보면 피식거리게 되었다거나. 둘 다 스타 뮤지션을 모티브로 한 영화인데 벨벳골드마인과 아임낫데어는 스토리텔링 방식, 색 표현, 음악 사용 등등에서 아주 다르고 또 각자 너무나 내 취향이라거나, 하이틴시절의 나는 아임낫데어를 보고 밥 딜런 평전과 자서전을- 아 이 얘긴 써버렸구나.


<아임 낫 데어>(2007)



이런식으로 각 안잡고 끄적거리면 쉬는 기분이 들어 좋다. 원래 그냥 냅두거나 개인적인 플랫폼에 올려놓거나 하는데, 요새 뭔가 정리해서 올려보고 있다. 나름 재미있다. 근데 훨씬 뒤죽박죽인 글들이 공개한 것의 오십배쯤 있다. 어떤 영화광 부자가 하루에 한번씩 원더스트럭 이전 토드 헤인즈 영화를 돌아가며 트는 상영관을 지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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