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노 고 스다 마사키
덕질의 시작이라면, 보통은 첫인상이다. 구교환이 뎀프시롤이었고, 엄태구가 잉투기였고, 에즈라 밀러가 월플라워였고, 루니 마라가 밀레니엄이었듯- 캐릭터의 분위기, 그걸 완성하는 연기, 배우에 차례로 꽂히는 거다. 아야노 고와 스다 마사키는, 그게 아니었다. 드물게, ‘크러쉬’ 케이스가 아닌 아담 드라이버도 패터슨으로 첫인상은 강하게 남았었는데, 이이들은, 처음 화면에서 본 후 놀랍게도, 잊었다. 이어질 내용은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한 글을 비롯해 이미 몇 번쯤 적은 것이겠으나-이야기를 모아두고 싶어 또 적는다. 덕질 얘기는, 나는 몇 번을 해도 안 지겹다. 듣거나 읽는 그대들이 알아서 걸러줘야 된다. 이번엔 자체로 거른다. 디테일이 궁금하지 않다면, 쭈욱 내려서 마지막 물에 빠진 나이프 문단만 읽어주시기 바란다.
첫인상
아야노 고는, 버니드롭이었다. 납치범 같이 수상하게 등장해서는, 해맑게 웃고 장난치면서 퇴장했던 다이키치의 동생의 애인. 적당히 길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깡마른 몸, 옆으로 긴 눈, 후리후리하게 타는 자전거까지- 완전 내 취향인데 왜 기억을 못했는지 미스터리다. 몇 년 후 립반윙클의 신부를 봤고, 분노를 봤고, 유마와 함께 굉장히 울었고, 사랑에 빠졌고, 필모그래피를 훑다가, 어 설마, 맞네. 하고 놀래버렸던 것이다.
한창 아야노 고에 돌아서 죄다 시청하고 있을 무렵, 그 죄다 중 하나였던 피스 오브 케이크 속에서 스다를 처음 봤다. 멋쟁이 수염 점장 아야노 고 밑에서 일하던 직원, 주인공에게 전형적으로 징그럽고 가볍게 들이대서 대놓고 비호감이었던, 음 비교/대조를 위한 기능적 인물 정도려나. 시간이 흐른 후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타쿠지를 보고 되게 웃었는데, 처음엔 같은 배우인지도 모르고 낯익어하기만 했다. 얼마 후 민왕-코노 에츠코와 함께 스다에게 스며들었다는 이야기. 세상에 이름도 스다라 스며든다는 말을 그냥 쓰면 된다. 말도 안된다.
아야노 고의 어떤 리듬
필모를 대강 시간 순으로 보면, 스다는 가면라이더로 데뷔 후 필모가 꾸준히 있다. 상업작 주연까지도 비교적 몇 년 안 걸렸다. 아야노 고는 조금, 띄엄띄엄, 그러다 언젠가부터 슈루룩. 고생했을 것 같아 주제넘게 살짝 안쓰럽기도 하고, 선택한 방향이 다른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천년대~이천십년대 초 독립영화 필모가, 작품이 어떻든간에 매우 소중하다. 사실은 아직 못 봤다. (나… 일본어.. 배운다.. 라이프 진짜 꼮본다…) 뭐, 지금은 대스타다. 너무 성실해서 오는 작품 다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걱정이지만.
스다 작품은 갈수록, 어느 정도 괜찮을 거란 짐작이 있고, 연기도, 뭔가 제 고집을 놓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아야노 고는, 감독이 하란 대로 다 해주는 것 같아서 대단하고 속상하다. 사랑하지만, 감독과 캐릭터에 따라 연기가 내 취향이냐 아니냐가 매우 갈리는 배우다. 때문에 주로 작품이 취향이면 연기도 취향- 이렇게 되는데, 최근에는 그렇지만도 않아졌 다. 개인적 느낌인데, 아야노 고가, 어떤 전형적인 분위기 전혀 없이 (주로 힘도 없이) 연기를 할 때가 있다.-보고 있으면 멍하게 그 리듬에 감기는- 분노 나오토, 최고의 이혼 우에하라 료, 그곳에서만 빛난다 타츠오, 약속의 땅 타케시. 지금 생각나는 건 그정도인데, 그게, 약속의 땅이 예외였다는 거다. 영화는 그냥 그렇고 뭔가 과했는데, 아야노 고가 군더더기 없이 너무 깊었다. 오 경지다 이배우 경지에 오르셨어 하고 두근두근 했었다. 캐릭터 차이려나, 근데 글쎄. 화면과 어울리면서도, 분리된 아우라를 입고, 홀로 어둡게 빛나는 걸 봤을 때의 그 벅참은, 덕후만 안다. 보고 정말정말 욕했던 호문쿨루스에서도 연기 자체는 괜찮았다는 것. 그래도, 열심히 해서 더 아름다운 대배우님, (또)주제넘는 바람이지만, 너무 전부 다 열심히 하지는 않아줬으면 좋겠습니다.
2n세의 스다 마사키가 열 다섯을 연기하는 법
요새는, 스다 마사키다. MIU404 쿠즈미로 세컨 크러시가 왔다. 오-랜만에 한 배우의 작품을 죄다 볼 정도의 덕질 에너지가 생겨서, 물에 빠진 나이프도 보고 암살교실도 봤다. 둘 다 원작은 안 봤기 때문에 말은 아끼겠지만, 암살교실은… 이 정도의 영화는 ‘취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별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보다 끄진 않았다. 원작은 아마 훌륭하겠으나, ‘비치’ 캐릭터를 보면, 아마 내 취향은 아닐 것 같다. 물에 빠진 나이프는, 다른 거 없고, 세 배우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코우가 웃을 때마다 엉엉 울었는데, 다 보고 나니 왜 울었는지 모르겠어서 어이없는 거다. 신기하다, 코우나 카르마나, 캐릭터 설정은 좀 소위 ‘중2병’스러운데, 스다 마사키가 하니 납득이 되는 게. 중학생 안같지도 않고(중학생인 척 하는 성인 같지도 않고), ‘중학생’ 같지도 않고, 그냥 사람 같다. ‘2n세의 스다 마사키가 열 다섯을 연기하는 법’ 이라는 글의 제목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바로 내렸다.
Written by Masaki Suda
덕질하는 일본 배우는, 그 둘이 다다. 호감 가는 배우들이야 꽤 있는데, 덕심이라고 할 만한 건 아야노 고와 스다 마사키,에게만 있다. 새삼스러운 말을 하자면, 이 둘에게 내가 너무 진심이어서, 그 중 하나에게 회까닥 할 때마다 일본어를 배울까 진지하게 고민(만)하곤 한다. 지금은 일본어를 배워야 스다 마사키 as 뮤지션 글을 쓸텐데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맞다, 세컨 크러시가 심하게도 와서, 좀 돌아 있다. 시청각이 스다밖에 취급을 하지 않는 관계로 음악도 주로 스다 앨범을 듣는다. 전엔 배우-모델로만 좋아했지, 음악까지 들어보진 않았었다. Play부터 시간 순으로 듣기로 하고, 첫 몇 곡만 written by를 찾아봤다. 아 곡을 만들기도 한 건 아니구나 하고, 플레이. 귀가 상당히 제이팝스러운 멜로디를 거부하는 것을 참고 스다가 노래하는데 니가 감히 끌것이냐는 다짐으로 돌리다, 갑자기 어 이건 왜 괜찮다 하는 트랙을 발견했다. 그게 율라율라. 무심코 written by를 봤더니, ‘Masaki Suda’. 세상에. 그 뒤로 한 곡 들을 때마다 만든 이를 찾아봤다. 어째 본인이 쓴 곡만 그나마 내 귀에 맞더라. 그게 또, 다른 뮤지션이랑 같이 말고, 저 혼자 쓴 게 더 좋더라. 콩깍지지만 완전 콩깍지는 아니다. 기성 작곡 작사가가 아니어서 그런가. ‘인디느낌’이어서- 흔하지 만은 않다는, 자기 오리지널이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만든 곡은 케일럽 같고 내 취향이다. 스다 마사키가 만든 곡은 내 취향이라고 하긴 뭐한데, 스다같고 귀엽다. 자꾸자꾸 듣고 싶다. 요새는 쯔모루 하나시를 듣지 않으면 하루가 굴러가지 않는다. 꼭, 프랑스 영화 보고 나서 평소엔 듣지도 않던 분위기의 삽입곡을 하루종일 듣는-썸머85 보고 한동안 세일링이랑 스타둘라펍 듣고 그랬다- 그런 거 같달까. (와 정말 당신 노래 만들 시간은 언제 있었어 세상에 안만들었으면 나 어쩔 뻔 했어 어 증말 카미사마노 프레젠또냐고)
뮤직비디오도 돌리다가, 뭔가를 발견하고 말았다. 픽션 스토리 구조가 정확히 있지 않은 비디오라면, 연기를 어느 정도 하지만, 캐릭터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자연스럽게 본인의 모습이 묻어나는데 -옷을 입거나 벗을 때 몸을 아무렇게나 잔뜩 굽히고, 입을 슉 하고 오므리고, 미묘하게 어긋난 각도로 앉거나 서 있고 그런 것들이- 모조리 스다다.
그런 게 스다.
스다는 항상 스다다. 물에 빠진 나이프, 축제 시작 전, 복장을 능숙하게 다듬는 코우에게 오오토모가 말한다, “넌 역시, 그런 게 점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역시 그런 게 너다워.”그 문장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진지하고 담백하게 치는 시게오카 다이키와 무심하고 장난스럽게 받는 스다 마사키의 톤, 그 장면의 분위기 전체가. 원작을 보지 않은 나로선 코우가 ‘뭔지’ 실루엣을 제시해 준 표현이기도 했다. 스다 마사키에게도 누군가, 그런 말을 지나가듯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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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스다가 인스타를 했으면 좋겠으면서도 계속 안 했으면 좋겠다. 물론 아야노 고는 계속 사진을 찍어 올려야만 한다. 아티스트 데뷔는 밴드였던 걸로 아는데, 역시 폭이 넓다. 가끔 본인 계정인지 동료 아티스트들 홍보 계정인지 헷갈리지만 그게 이사람 매력 중 하나다. 쿠로가 스키데스라더니 사진도 흑백으로 하는 아야노 고. 그가 스다 마사키의 아티스트 프로필을 찍어 올렸을 때 나는 뭔가 여한이 없는 기분이 되었다. 두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자꾸자꾸 같이 작품 해 줬으면 좋겠다. 연기로 만난다면 -아야노 고가 목소리 안 긁어도 되고, 스다 마사키가 소리소리 안 질러도 되는 걸로.
(-아인과 3학년 A반에 악감정 있는 덕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