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글을 쉬기로 했다. 글을 쉬기로 했다는 글을 쓴다니 이상하지만 나는 구제불능이므로 이것은 써야만 한다. 각 잡고 쓰는 덕질 글을 쉬기로 했다는 말이다. 6월이면 꾸준히 글을 써서 올린 지 삼 년이 된다. 맨날 글만 쓴 건 아니지만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쓴 거 치곤 꽤나 썼다. 안 쓰지 못해 쓴다, 고 늘 말했다. 그게 좀 지쳤나 보다. 소재가 고갈된 건 아니다. 쌓인 인풋이 잔뜩 있었던 때만큼 솟아오르는 건 아니지만, 이제 글 쓸 거 없다고 시무룩해 있다가도 뭐 하나 보거나 들으면 또 써지고 그랬다. 까닭을 설명하려니 뭔가 잘 문장이 완성되지 않는데,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세인트빈센트 대디즈 홈이 발매되고, 이건 절대 써야만 하겠어서 인터뷰 해석부터 하고 있었다. 근데 이상했다. 집중도 안되고 다들 쓸텐데 써서 뭐하나 싶고 그러고 있다가 도피하듯 이상희 글을 썼다. 대개는 그렇게 돌려가면서 쓰면 다 쓸 수 있게 되는데 또 그렇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약간 팍 하고 깨달음이 왔달까 오 잠깐 멈춰야겠다 그런.
또 그 며칠 후에 짐 자무쉬 특별전을 하길래 미스테리 트레인을 보러 극장에 갔다. 극장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나가세 마사토시와 스티브 부세미는 존재 자체가 웃기고, 아니 이거 길어지겠으니 옆으로 새지 말자.- 또 깨닫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걸, 그리고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없이, 순수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몇 달 전부터 지친다, 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물론 항상 글은 즐괴로운 일이었다. 돈은 따로 벌고 내 작업은 따로 하는 거 다들 하는 거지만, 그게 좀 그렇더라. 휴무가 하루 있으면, 영화를 보러 갈지 카페에 가서 글을 쓸지 고민하다 결국- 오늘은 완성해야지, 하고 랩탑을 들고 카페로 가고 있는 거다. 그럼 이제 잠들기 전까지 글쓰다 딴짓하다 그러면서 하루를 보내는 거고. 힘들다는 건 아니야 좋다 좋은데- 멈추면 이제 못 쓰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뭘 보면 써야 한다는 약한 강박이 쌓여가지고 지쳤나 보지 뭐. 글써서 먹고 살 수 있다면 좀 덜할 텐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니까. 텀블벅 펀딩이긴 했어도 겨우 내 글이 실린 지면이 나온 이 타이밍에 쉬는 게 잘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닥치고 열심히 꾸준히만 하면 좋은 글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좀 쉬고(그래봤자 돈 버는 일은 하면서..) 오려고. 대디즈홈은 미안하지만 중단한 채로. 아니 그냥 대충 써서 올리는 게 더 미안하니까. 일단 목표는 한 달쯤이다. 영화관도 가고(이러고 또 영화 보고 이건 안쓸수 없다며 조용히 리뷰를 올릴 지도 모른다.) 드라마도 몰아 보고 인터뷰 영상도 잔뜩 보고 남이 쓴 글도 좀 읽고(물론 픽션…) 봤던 영화도 또 보고 오로지 배우를 보기 위해서 욕하면서 보는 쓸데없는 영화도 보고. 그림도 좀 끄적이고 글은 절대 정리하지 않고 막 쓰는 이런 글만 쓰고. 오 신난다. 일단 다음주에 지상의 밤부터 보러 갈 거다. 짐 자무쉬 영화는 여러 번 보면 더 재밌는 거 아시나요 여러분. 기승전짐자무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