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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Oct 04. 2021

8, 1, 8, Superorganism!

Superorganism



Superorganism


* <리전(Legion)>(FX) 시즌3의 장면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타일에 대한 진심이 매니아층을 감동시킨- TV 시리즈, <리전>(FX). 다수의 관객을 그럭저럭 만족시키는 대신, ‘이런거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다. 사운드트랙에서도 그 ‘진심’이 들린다. ‘음악중심적’, ‘취향중심적’인 곡 선택, 감각 있는 리메이크가, 매 에피소드 내 청각적 입맛을 완전히 충족시켰다. 음악 감독은 <파고>(FX), <엄브렐러 아카데미>(Netflix)의 제프 루소. 제퍼슨 에어플레인부터 라디오헤드까지, 몽환적인 화면에 완벽히 어울리는 트랙을 고르고 뽑아냈다. 주로 올드스쿨하거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꽉 채워 놓았다.


그러던 ‘챕터 20’, 스위치가 비밀스러운 표지를 따라 후미진 가게에 들어갔다. 아마도 세컨핸드 샵, 다소 ‘히피스러운’ 무리가 그를 둘러쌌다. 생소하고 신선한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았다. “네가 날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하는 거 알아.”. 대뜸 쏟아지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깨끗한 목소리. 잠들어 있던 내면의 감각을 깨우는 듯 했다.


뮤직비디오스러운 콜라주가 이어졌는데- 이 낯선 인물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낯익음이 풍겼다. 곡과 아티스트를 검색했다. 느낌이 터무니없이 들어맞았다. 이들 가운데 연주하고 노래하던 여덟 사람이 바로, 곡을 만든 밴드 맴버들이었다. 그이름도 ‘Superorganism’.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 제멋대로 들쭉날쭉하면서도, 하나의 유기체가 된 듯 움직이는 무리. 인디indie, 트렌디trendy, 젠-지gen-Z(y)함의 결정체. 예술적 유행에 앞장서면서도 본인들은 그렇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선구자’들 같았다.  


https://youtu.be/PaWM-hMPUx8

‘Superorganism’ in <Legion>(FX).



(이들은 스스로를 “DIY pop production house”라고 표현한다.)

“우리 모두의 삶은 꽤나 뒤엉켜 있어, 이 시점에서. 그리고 다 서로 베스트 프렌드야. 우리를 다 함께 묶어 주는 건, 아무도 아주 강한 지리적 기반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거야. We’re all varying shades of misfits.우린 모두 다 다양한 색을 지닌 부적응자들이야. 인터넷 문화 속에서 자랐지. (……) 송라이터와 이미지메이커 역할을 하는 멤버가 있긴 하지만, 동시에 작업을 분배하는 데에 있어서는 전부 다 민주적이야.”

-Harry, interview by. Douglas Greenwood, [interviewmagazine.com]


수퍼올가니즘의 사운드 조합 방식은 매우 ‘얼터너티브’한 신스팝 세계 속에서도 신선하다. 재치 있게 통통 튀는 소리들이모여, 어수선하게 뻗치지 않고 한 길을 따라 흘러간다. 보컬의 톤을 변조하고, 별안간 끊어버리고, 조각을 떼어내 반복되는 리듬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를테면 ‘Everybody’의 마무리; 같은 구절에 기계음을 입혀 대놓고 톤을 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하는- 등의 순간을 만나면, ‘이거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방에서 쓰고, 곡의 조각조각을 서로에게 이메일링해 다시 만들거나 발전시키고, 이후 주방에 다 함께 모여 마지막결과를 듣는다.)

Harry: 모든 방에서 항상 뭔가가 일어나고 있어. 약간 ‘논스톱 팝 프로덕션 하우스’ 같애.

Orono: 문자랑 인터넷을 통해서 (음악에 대해 소통)하는 게 좋아. 왜냐면 음, 생각을 해봐야 하잖아. 인터넷은 그냥 이 밴드의 근본 같은 거야: 우리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됐고,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모였지,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작업하는 거야.

-interview by. Mark Savage, [bbc.com]



https://youtu.be/_bhJzXTf6KE

‘Nobody Cares’ mv.


수퍼 온라인메이드online-made인 이 곡들을 들으면, 수퍼 오가닉푸드organic food를 맛보는 기분이 든다. 온라인을 통해 만나 작업하는-이들이 찾아낸 사운드는, 삶의 오프라인적 부분과 닿아 있다. 폭발, 호흡, 한숨이나 하품, 비명 등, 다양한 일상적 효과음을 그대로 삽입하거나, 변형해 사용한다. ‘Night Time’의 마지막에 들리는 알람과 하품처럼, 서사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끼어들어 있기도 하지만, 리듬의 일부로 맞물려 있는 경우가 더 많다. ‘Nai’s March’의 리듬 베이스는 물 흐르는 소리와 심장이 뛰는 소리다. ‘Relax’에서는 한숨,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자동차 경적과 시동을 거는 소리가 리듬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Something on your M.I.N.D.’에는 사과 따위를 아그작 하고 베어 무는 소리가삽입되어 있는데, ‘Nobody Cares’의 경우 유사한 소리가 등장하더니 리듬으로 이어진다. 음악에 생활을 끼워 넣은 기분. 익숙하게 스쳤던 소리들이 생소한 방식으로 귀에 들어온다. 다양한 개성이 섞여 있는데, 각 디테일이 단순히 ‘소리’로 지나가는 게 아니라 영혼을 지니고 자기 주장을 하는 느낌이다. 그러다 조화롭게 어울려 하나로 모인다.

‘Nobody Cares’에서는 와삭 하고 베어 무는 소리, 아이들이 짓궂게 까르르 웃는 소리, ‘hey’ 하고 타이르는 듯한 어른의목소리가 이어진다. 한 ‘씬’을 곡에 집어넣은 거다. ‘It’s So Good’의 후렴은 모두 모여 와글와글 떠드는 장면을 떠올리게한다. 음악적 경험이 데굴데굴 굴러온다. 구체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이들의 곡을 듣다 보면 머릿속에 선과 색이 나타난다. 청각 만으로 공감각적 체험을 불러 일으킨다. 조그만 우박 모양으로 시원하게 와르르 쏟아지는 사운드를 맞는 기분이들 때도 있고, 또 가끔은 사과 모양으로 뭉친 새콤한 사운드를 베어 무는 상상을 할 때도 있다. ​


메인 보컬은 오로노지만, 각 맴버들의 개성이 묻어나는 독백과 백킹보컬들이 있어야만 곡이 완성된다. ‘Something for Your M.I.N.D.’를 예로 들면, 소울이 중얼거리는 ‘무엇인가, 정신에, 집어넣으세요’가 흥미로운 컬러를 더한다. 다른 쪽으로 뒤집어 말하면; 독특한 요소들이 모여 굴러가는 사운드를, 오로노의 보컬이 하나로 모아 준다. 과연 ‘보컬’은 이 밴드의 시그니처다. 깨끗하고 앳된, 꾸밈없는 이미지가 있으나, 순진함보다는 통달한 시니컬이 있다. 투박하고 무심하며, 담백하고 깊다. 부드럽게 마음을 건드린다. 왠지 무방비한 상태로 만든다. 대화할 때와 별 차이 없는 투로 음을 붙여, ‘말을 걸지만 딱히 대답을 바라지는 않는’ 느낌으로 던지는가 하면, 가성을 섞어 곱게 흐르듯 노래하기도 한다.  



https://youtu.be/mJQYRzAoErc

‘Everybody Wants to Be Famous’ mv.


초현실적 스타일을 입은 채 현실을 담는 비디오들은, 트랙과 재미있게 어울린다. ‘Everybody Wants to Be Famous’는 유튜브 류 사이트의 검색창에 누군가가 “Orono Superorganism”을 입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상 속 영상에서 오로노가 노래하고, ‘오로노는 홀로그램이야’란 내용의 댓글이 달리고, 또 댓글이 달리고, 대댓글이 달리고, 소문이 퍼지고, 키보드들이 휘둘린다. 아티스트를 존중하며 음악을 감상하기보다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습. 이들의 작품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휘몰아치는 온라인 상 전개를 지켜보다, 오로노가 ‘I’m out’을 남기는 장면에 이르면, 왠지 질리고 지친 기분이 든다.


‘Something on your M.I.N.D.’ 비디오: 초현실적이고 온라인 게임 느낌이 나는 로우파이 콜라주가 이들이 즐겨 쓰는 비주얼 에스테틱인 듯 하다. ‘Prawn Song’은 전체적으로 바닷속 배경 온라인 게임 같은 디자인이다. 오로노는 플레이어처럼 3D 안경을 쓰고 노래하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가상 세계를 걷는다. 다른 맴버들은 새우 몸통을 달고 있다. 뒤이어등장하는 현실 배경, 허공에 실사화된 게임 몹들이 둥둥 떠다니고, 사람들은 꼭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것처럼 등을 보인채 돌아다닌다. 가사처럼 -새우의 시선에 놓인 인간 세계 같다.


https://youtu.be/VGgaRmRP1ck

‘Prawn Song’ mv.


You people make the same mistakes

Over and over, it’s really kinda dumb

Oh, slow learning’s kinda your thing

You do you, I’ll do me, chilling at the bottom of the sea and I say

당신네들은 같은 실수를 해

늘 되풀이해, 진짜 좀 멍청이 같아.

아, 느리게 배우는 스타일이라고.

넌 너대로 해, 난 나대로 할게. 바다 밑바닥에서 쉬면서, 난 말해


I’m happy just being a prawn

난 그저 새우라서 행복해.

-‘The Prawn Song’



I know you think I’m a sociopath

My lovely prey, I’m a cliché

Make way, I’m in my Pepsi mood

Mama needs food, how about a barbecue?

For us, the bourgeoisie, so carefree

Remember when we

I don’t know what you need to get by

내가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하는 거 알아

사랑스러운 내 먹잇감. 난 클리셰야.

비켜 봐, 펩시 좀 마셔야겠어.

이 몸은 먹을 게 필요해, 바비큐 어때?

우리에게 부르주아지는, 걱정 하나 없는 사람들.

우린 언제 그랬더라

네가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어

-‘Something for Your M.I.N.D.’



가사 역시, 독특하고 꾸밈없다. 순수하게 서캐스틱하다. 왠지 ‘뉴본-베이비-갓newborn-baby-god’이라는 괴상한 표현이 떠오른다. 연애 관계에 대한 묘사로 넘쳐나는 팝 리릭의 세계. 굳이 로맨스나 섹스에 관한 곡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분위기를 풍기거나, 진짜건 아니건 화자 혹은 아티스트 자신의 ‘성’을 암시할 때가 많다. 수퍼올가니즘의 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다. 개인적이고 솔직하면서도, 섹슈얼한 뉘앙스는 잘 없다. 오로노의 군더더기 없는 보컬도 한몫한다. 부러 배제한다기보다- 본인들의 음악적 세계에 굳이 가져다 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인 듯 하다. 맴버들이 한데 모여 생긴 (팬로맨틱panromanctic-에이섹슈얼asexual-st?) 초유기체 화자가, 인간이라는 초유기체들의 집합을, 저 멀리서/혹은 내면 깊은 곳에서, 바라보며 하는 이야기들이랄까.

음악을 만드는 까닭과 동기는 다양하겠지만-  측면을 살피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가 만들고 싶다’/ 욕구가 아티스트마다 다른 비율로 존재할 테다. 주체가 ‘보다는 ‘그룹 가까운- 수퍼올가니즘의 경우, 후자의 비중이  느껴진다. 동시에  결과물이, ‘세상이 들었으면 하는 이야기 통한다. ‘보여주고 싶은 아닌, ‘들었으면 하는’. 설명이 모호하게 꼬였지만, 결국 솔직하고 건강하며, 그들만의 ‘잣대 지닌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뜻이다.​


여덟이 모여 수퍼올가니즘을 구성하는-Superorganism은, 듣는 이를 자신들이 플레이하는 현실적인 초현실로 초대한다. 곡이 귀에 울리는 몇 분 동안, 당신의 호흡은 리듬이, ‘수퍼올가니즘’의 일부가 된다.

<Superorganism> 커버.



Everybody needs to be a superorganism, a superorganism

I wanna be a superorganism, a superorganism  

(It is no longer clear where one human ends)

(And another human begins)

A superorganism

(You are me and I am you)

모두 다 초유기체가 되어야만 해

난 초유기체가 되고 싶어

(이제 더 이상 한 인간의 끝이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아)

(또 다른 인간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도)

초유기체

(넌 나고 난 너야)​


-‘Sprorgnsm’


* 참고 인터뷰

https://www.interviewmagazine.com/music/superorganism-new-gorillaz


https://www.google.co.kr/am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43210235.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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