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트>(2021)
<아네트(Annette)>(2021, 감독: 레오 까락스)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씬은 스튜디오다. 나스탸 골루베바 까락스와 그의 아버지이자 감독, 레오 까락스가 보인다. 녹음실에 있는 건 오리지널 스토리와 사운드트랙을 만든 Sparks.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고, 그들은 “이제 시작해도 될까요?”라고 노래하며 스튜디오 밖으로 걸어나간다. 마리옹 꼬띠아르와 아담 드라이버는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두 사람을 선두로, 일행이 거리를 행진하며 합창하는 모습에 오프닝 크레딧이 겹친다. 노래가 끝나자, 두 주연 배우는 각각의 이동수단에 올라타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나머지 일행은, “Goodbye Henry, Goodbye Anne.” 이라며 손을 흔든다. 엔딩 크레딧의 막바지에도 그들은 모여 걷는다. 모든 크루가, 배우들과 스텝들까지,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어땠나요, 좋았다면 사람들에게 말해줘요.”라고 노래한다.
시작부터 제 4의 벽을 보여주며,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거대한 연극임을 명시한다. ‘지휘자’가 고백하던 와중 여러 번 “Excuse me.”라고 하는 부분이나, 마지막 헨리가 카메라를 향해 “Stop watching me.”라고 말하는 모먼트들과 이어진다. 뮤지컬 영화로서 돋보였던 요소 중 하나는 합창이다. 헨리의 쇼를 보며 한 목소리로 웃거나 비난하는 관객부터, 끌려가는 그에게, “이제 누가 우릴 위해 죽어 줄까.”라고 노래하는 군중들까지. ‘작품 밖’ 관객은 때로 헨리와 함께 그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헨리에게 위협을 느낀다.
헨리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 이름은 ‘Ape of God신의 유인원’. 진화론과 창조론을 모순적으로 조합했다. 작품 속 세계에서는 ‘양쪽을 모두 조롱하는’ 헨리 맥헨리 스타일 시니시즘의 상징일 것이다. 허나 거리를 두고 보면, 그가 현 세계를 ‘만들고’, ‘발전’시켜 온, 기성의 세력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헨리는, 감독 자신을 포함한 딸의 아버지들, 이성애규범적 권력을 지닌 남성성을 대표한다. 두 사람의 사랑도, 앤의 죽음도, 대부분 그의 목소리로 서술된다. 허나 영화는 언어만으로 구성된 예술이 아니라 복합예술, 작품은 그의 행동을 통해 타인과 스스로를 기만하는 말들을, 그의 실체를 폭로한다. 여성을 학대했고, 아내를 죽게 만들었고, 제 부와 명성을 위해 아이를 착취했고, 사람을 또 죽였다.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고도 자기연민에만 빠져 있다 결국 다 잃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완벽해 보였던 이들의 세상에 애초부터 있었던 균열은, 앤이 보던 산불 뉴스가 ‘Six women’ 씬으로 이어지며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지금?” 한 여성은 답한다, “앤이 걱정돼서.” 늘 “죽이게” 쇼를 했던 헨리와 늘 “사람들을 위해 죽으며” 공연을 마쳤던 앤. (“I killed them.”, “I saved them.”) 그들이 사랑을 노래하며 풀밭을 거닐 때, 헨리는 사냥하듯 뒤에서 다가가 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폭력성을 드러내기 전까지, 앤을 향한 그의 제스처는 대부분 애정으로 해석된다. 별로 ‘척’은 아니다. 헨리 맥헨리는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다. 동시에, “심연에 끌리는”, “스스로를 혐오하며 사랑을 요구하는” 남자다. 그의 자기혐오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문제의 라스베가스 공연에서 헨리는, “사랑이 날 병들게 해”라고 변명한다. 인기의 하락세가 ‘와이프킬링 조크’를 하고 다니는 제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적어도 그런 척 한다. “전엔 내 농담에 웃었잖아, 이건 당신들 문제야, 문제가 뭐야?”라고 적대적으로 묻는다. 실제로 관객은 “Nobody likes Jew.”라는 그의 말에 웃은 바 있다. 그러나 이제 합창한다, “우리가 현명해지고, 당신이 진짜 뭔지 알게 되었다”고, 당신은 “Our big old problem.우리의 커다랗고 오래된 문제.”라고. 표면적으로는 헨리를 향하나, 보다 포괄적인 구절이다. 시대가 변했고, 퍼블릭도 변했다. 제 분노를 이기지 못해 폭력을 행사하고, 차별적인 조크를 일삼고, 그렇게 얻은 인기가 휘청거리자, 아내를 깎아내리면서 제 위신을 세우려고 하는, 낡은 남성성에, 더 이상 환호할 수 없게 됐다. 헨리는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대신, 심연에 파묻히기로 한다.
커리어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홀로 어두운 표정을 드러내곤 하는 헨리를, 앤은 불안하게 바라본다. 그 분노가 자신에게 향할 수도 있음을 짐작했을 것이다. 앤은 ‘성공한 커리어를 지닌, 아름다운 아이가 있는’ 여성이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별안간 생겨난 위화감은 아닐 것이다. 초반 공연에서 어두운 숲을 거닐며 그는, “He is a stranger tonight.오늘 밤 그는 낯설어.”라고 노래했다. 두렵지만, 사랑하므로 걱정한다. 결국 떠나지 못하고, 헨리 때문에 죽는다.
클래식 프린스 앤 프린세스 스토리의 ‘해피엔딩’은, 주로 혼인과 함께 공주가 왕자의 궁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약혼을 고백하며 헨리는 말한다, “나는 그녀의 궁전으로 이사했어, 왜냐면 그녀는 퀸이거든.” 앤에겐 ‘왕자’가 필요치 않았다. “문 앞으로 찾아온 수많은 남자들을 거절하고”, 스스로 선택한 헨리. 그러나 이 다른 세계의 왕자, 프린스 챠밍이 건넨 사과엔 독이 들어 있었다. 그걸 베어 문 건 전혀 그녀의 탓이 아니다. 다만 앤의 잘못은, 그 독을 아네트에게 주입했다는 거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길 때 헨리는 사람을 죽인다. 제 인기는 추락하고 앤은 커리어의 정상을 누릴 때, 그는 술에 취해 앤을 바다에 빠트렸다. 직후 그가 하는 말은 “There’s so little I can do.” 폭풍 속에서 아내의 비명이 들려 오는 가운데, 귀를 막고 주저앉아 있다. 아네트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휩싸인 그는, ‘지휘자’를 수영장에 빠트린다. 그의 머리를 물속으로 누르며 하는 말은 역시, “There’s so little I can do.” ‘지휘자’는 투어를 다니는 동안 헨리 대신 내내 아네트를 돌보았던 이다. 헨리가 죽이는 건 매번 아네트의 보호자,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 자신이 딸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 채로, 늘 “모든 게 괜찮아 질 거”라고 되뇌인다.
그 살인들을 목격한 아네트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뱉는 ‘말’은, “Daddy killed mommy.아빠가 엄마를 죽였어요.”가 아닌 “Daddy kills people.아빠는 사람을 죽여요.”, 특정 과거형이 아닌 보편 현재형 서술이다. 아빠는 그런 사람,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보호’를 받는 나 또한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딱히 어머니의 ‘편’에 서거나 복수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입장을 갖고, 홀로 선다.
법정에 서서, 헨리는 뉘우친다. “앤, 당신을 바라보는 게 내겐 가장 큰 기쁨이야, 나는 작은 소년.”이라고 노래한다. 그는 ‘small boy’가 아닌 ‘grown man’, 성인 답게 행동했어야 했다. 후회는 진심이나, 변명이다. 앤의 형상이 화음을 맞추며 마치 용서한다는 듯 노래하지만, 헨리가 만든 환영일 뿐이다. ‘실재’하는 건 젖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I will haunt you.”라고 경고하는 유령. 앤과 아네트는, 작품은, 헨리의 목소리를 빼앗아가지는 않되, 끝내 그를 용서하지도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아네트는, 대놓고 인형이었다. “아름다운 선물”이었고, 엄마의 복수와 아빠의 돈벌이에 착취당하는 퍼핏이었다. 달빛을 받으면 어쩔 수 없이 노래하면서도, 살인을 폭로하고 두려움을 표현할 언어는 알지 못했다. 감옥에 있는 헨리를 면회하러 와서 입을 여는 순간, 아네트는 인형에서 배우로 교체된다. 어떠한 특수 편집도 없다. 의자에 앉아 있는 인형 옆으로 배우가 다가온 후,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건너뛴다. 앤과 헨리의 눈으로 보여지던 아네트는, 이제 스스로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난 다시는 노래하지 않을 거야.”
아네트는 자신을 복수에 이용한 엄마를 동정하지도 않고, 유일하게 남은 보호자라는 까닭으로 아빠를 억지로 용서하지도 않는다. 강해지기로 결정하고, 두 사람을 자기 인생에서 내보낸다. 앤과 헨리, 완벽해 보이던 이 커플이 부르던 ‘We Love Each Other So Much’는 사실 ‘지휘자’가 앤을 위해 만든 곡이었다. 아네트는 바로 그 멜로디로, “Now you have nothing to love.”라고 노래한다. 애초에 ‘사랑’은, 딱히 완벽한 운명 같은 게 아니었고, 결국 누구도 구원하지 못했다. 롯폰기 클럽, 헨리는 술에 취해 “내가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렸다, 교도소 면회실, 널 사랑하면 안되겠냐고 묻는 그에게 아네트는, “No.”라고 답한다.
헨리가 불안할 때마다 긁던 오른쪽 뺨의 자국은, 점점 커지다 마지막에는 선명하게 검붉은 색을 띈다. “심연을 내려다보지 마.”는 아버지이자 가해자, 심연에 파묻혀 이제 딸을 사랑할 자격이 없어진 그가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말이겠다. 작품이 끝나자, “나스탸를 위해”라는 레오 까락스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헨리도 앤도 아닌 ‘아네트’. <아네트>는, 아네트의 이야기, 나스탸를 비롯한 세상의 ‘딸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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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의 존재는 흥미롭다. 고유한 이름조차 없이 ‘반주자/지휘자’로 등장하는 그는, 앤을 짝사랑하는 남자이자, 어쩌면 친부일지도 모르는(그러나 중요치 않다) 아네트의 두 번째 보호자다. 헨리가 아네트와 투어를 다니자고 했을 때 ‘착취’라고 여러 번 말하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인다. 아네트의 보호를 위해서였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였건, 결과적으로 공범이 된다. 진실을 밝히지도 누굴 ‘구원’하지도 못하고, 헨리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그가 죽어가며 후회하는 것은, 앤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만들지 못한 것, 그래서 헨리를 만나게 한 것이다. 결국 그는 거기까지, 였던 거다.
아 그러나, 홀로 연주하거나 지휘하는 와중 카메라를 향해 독백하며 제4의 벽을 두드리는, 그가 등장하면 화면은 다른 리듬을 탄다. 사이먼 헬버그의 유머러스한 고독, 연약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처연한 눈빛은, 다시 극장으로 가기로 결정한 까닭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