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e Rose (1)
<Loner>(2018): 다크 코미디-사이콜로지컬 호러 판타지
"(왜 코미디언이 되었냐고?)
It’s the only way I know to tell the truth without getting killed.
그게 살해당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2021, 레오 까락스, <아네트>
선명한 빨간색 트레이닝복 세트에 헤어 밴드까지 갖춘 이가, 깃발 아래서 체조를 한다. 퍼 코트에 양말, 크록스까지, 역시 밝은 빨강으로 맞추고 폼을 잡는 이도 있다. 뮤직비디오 얘기다. (‘Soul No. 5’) ‘Bikini’는 6-70년대 TV 퍼포먼스, ‘Money’는 올드스쿨 범죄물이다. 어설픈 가발을 쓰고 돈을 뿌린 침대 위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이도, 세상 지루한 얼굴로 청소기를 돌리는 이도 전부 같은 사람, 공연도 ‘재미있게 하기’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캐롤라인 로즈다. 다양한 장르를 모티브로 일관되게 키치한 바이브를 입혀, 그만의 비주얼 에스테틱aesthetic을 창조했다. 그 세계를 완성하는 것은, 아티스트 본인의 능청스러운 연기다. 기꺼이 스스로 코미디가 되어, ‘관객들을 웃긴다’. 그가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이다.
비주얼로 글을 열었으니, 이번엔 사운드, 그중에서도 보컬을 불러온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때론 힘을 빼고 툭 던지듯, 때로는 힘 있고 신나게. 기본적으로 허스키하고 때로 효과적으로 곱다. 보이스 톤은 물론, 허스키함, 끈적함, 비음, 가성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해 각 곡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보컬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뽑아낸다. <Loner>는 주로 깔끔한 로큰롤이나 팝펑크. 가벼운 댄스팝도 들린다. ‘Getting to Me’는 알앤비가 섞였고, ‘To Die Today’는 인디팝. ‘Soul No. 5’는 약간의 컨트리/포크가 들리고, ‘Animal’은 풍성하게 끈적한 록발라드다. ‘Bikini’나 ‘Money’에서 리듬 위주로 뱉는 클래식 로큰롤 보컬은, 개인적으로 그 존재에 감사하고 있다. <Superstar>의 경우 전반부 트랙들에선 다채로운 팝보컬들이 들리고, ‘Pipe Dreams’나 ‘I Took A Ride’에는 풍성한 재즈가 섞여 있다. 트랙이라는 에피소드마다 각각의 화자를 연기하는 것 같다고 할까. 단순히 음역대가 넓다기보다, 사용하는 보컬의 범위 자체가 넓다. 그럼에도 ‘캐롤라인 로즈의 목소리’임을 강조하는 개성은 충분하다. 십 몇 년 동안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해 온, 자기 목소리를 찾아낸 이의 능숙함이다.
"풍자는 분노나 고통을 해석하는 도구라고 생각해. 아주 강한 메시지야. 누군가를 웃게 만듦으로써, 그걸 의미를 드러내는making a point 정말로 강한 수단으로 휘두를 수 있어."
-Caroline Rose, interview by. Maggie Lange, [rollingstone.com]
곡의 사운드는 팝펑크와 신스팝, 올드스쿨 로큰롤이 뒤섞여 전체적으로 신나게 쿨하다. 앨범 커버 아트나 비디오처럼 밝은 빨강이 만연한 느낌이다. 허나 가사를 살피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친구의 파티에 갔어. 모두 잘 차려입었고 몸매도 완벽해. 얼터너티브 헤어컷에 가지런하고 하얀 이를 가졌어.” <Loner>는 ‘More of the Same’의 ‘loner’/아웃사이더적 관조와 함께 열린다. 전체적으로 공허하고 지루한 세상의 분위기를, 파티에 있는 완벽한 외모의 사람들을, 이어 이상에 대한 믿음과 현실이 맞물리는 ‘교실’을 묘사하며, 화자는 결론을 내린다. “Everything is just more of the same thing. 근데 다 그게 그거야.”
이 시니컬은, ‘Money’에서 좀 더 강렬한 위트를 입는다. 펑키한 기타 연주가 시작된다. 약간의 끈적함을 묻혀 가사를 리드미컬하고 빠르게 뱉는다. 소절 끝의 ‘money’는, 경쾌하고 건조하게 쭉 올라간다. 나중에는 째지게 내지른다. 마구 달리는 듯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듣기 불쾌할 정도로 이어진다. 노래sing보단 보컬링vocalling에 가깝다. ‘그는 사람을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대단한 힘이나 전쟁, 야수, 섹스, 법, 소녀, 소년, 어머니, 아버지, 스피드, 평화, 네온 예수, 그 모든 고통과 시련을 위해서도 그걸 한 게 아니’란다. 그럼 무엇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그’는 이후 ‘나’와 ‘우리’로 확대된다.
Rah, Rah priest dance, show me how me do a dance
I didn’t do it for the thing there other than the money
We did it for the money
You know we did it for the money
Come on we did it for the money
라, 라 신부여 춤을 춰요, 춤을 어떻게 추는 건지 보여 줘
난 다른 게 아닌 돈을 위해 그걸 했어
우린 돈을 위해 했어
우리가 돈을 위해 했다는 거 알잖아
왜 이래, 돈을 위해 한 거 맞잖아
-‘Money’, <Loner>
캐롤라인 로즈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가 처음부터 독보적인 스타일로 풍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음악과 비디오를 만들었던 건 아니다.
“(……) 나는 차에 살며 떠돌아다니는 포크 연주자였어, 여행과 드는 생각들에 대한 곡을 쓰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그걸 커버하도록 내버려 두는. 꽤나 빨리 질렸던 것 같아. 모든 사람은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해. 톰 웨이츠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 그의 시작은, 결국 하게 된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이었거든 -그리고 결국 그걸 하지 않게 됐을 뿐 아니라, 자신이 초기에 만든 것들을 적극적으로 후회하고, 듣는 걸 싫어해.
같이 일했던 모든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아; 나 자신도 포함되지. 내 일부는 준비가 안 됐던 거야.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편안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근데 또 다른 일부는: 정말로 힘들어. 왜냐면 정장을 차려 입고 통계랑 숫자들을 죄다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들은 이런 식이거든, “관객들이 이 곡의 아웃트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그거 하나로 이걸 다 망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러면 난 한 귀로 듣고 이러지, “그래 그치만 그게 내가 뭔가를 느끼게 해 주는 걸요, 난 좋아요.” 관객들은 수준을 낮추기를dumbed down 바라지 않는다고 나는 느껴, 게다가 사람들은, 자극 받는 걸 좋아하거든.”
-Caroline Rose, interview by. Rachel Martin & Victoria Whitley-Berry, [npr.org]
포크/컨트리 바이브의 앨범 둘을 뒤로 하고, 4년 만에 낸 세 번째 정규 앨범 <Loner>에는, 그만의 위트가 가득하다. 앞에서 언급한 두 곡에 포괄적으로 담긴 풍자는, 특정 이미지를 지닌 ‘대상’과 함께 보다 구체적인 방향으로 이어진다. ‘Jeannie Becomes a Mom’은 ‘지니’의 이야기를 담은 트랙이다. “지니는 엄마가 돼.” 화자는 차분하게 잇는다, “지니는 여길 벗어나서, 큰 집을 구할 거야. 아빠가 될 만한father figure 사람을 찾을 거야. 왜냐면 그녀의 아빠는 게으름뱅이, 담배를 우그러뜨리곤 했거든. 지니는 그녀를 보호해 줄 사람을 찾을 거야. 그녀를 잘 대해 줄 사람을.” 그러나 마무리 구절은, ‘But’으로 시작한다.
But the world don’t stop
Even when you’re livin’ in color
No, the world don’t stop
Time is only gonna pass you by
Now you’re in real life
그러나 세상은 멈추지 않아
네가 컬러 안에 살고 있어도
아니, 세상은 멈추지 않아
시간은 그냥 흘러갈 거야
이제 넌 현실 세계에 있어
-‘Jeannie Becomes a Mom’, <Loner>
비디오는 이를 효과적으로 이미지화했다. (아마도)‘지니’가 남편과 넓은 집으로 이사하며, 평범하게 시작된다. 그러나.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짐을 나르며 춤을 추더니, 캐롤라인 로즈가 등장해 짐짝처럼 옮겨진다. 지니와 그의 ‘드림 라이프’ 옆에 달라붙어,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그녀가 청소기로 밀고 있는 카펫의 일부가 되거나, 빨랫감 중 하나가 되어 널려 있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저 평화로워 보이던 이 컬러풀한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는 아이디어가 갈수록 커지고, 지니의 일상은 점점 무너진다. 가시에 찔린 후 오색이 섞인 케이크를 들고 가다 쓰러져 죽어가거나, 제 몸보다 큰 장미를 들고 걷는다. 마지막, 비로소 인간의 위치에서 지니를 꼭 끌어안은 캐롤라인은, “Now You’re in Real Life”를 반복하며 기계적으로 활짝 웃는다.
“Now you’re in real life”가 뒤섞이듯 메아리치며, 곡은 끝난다. 현실을 깨달은 지니의 머릿속이 그렇게 뒤죽박죽일까.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의 가사는, 자신의 진한 감정을 드러내는 종류의 것과는 다른 울림을 준다. 이 곡은 그 중에서도, 자아를 드러내지 않은 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화자를 택했다. 음미하는 듯한 ‘Mmm’마저, 풍자의 일환으로 들린다. (가끔 캐롤라인 로즈를 추천하곤 하는)댈런 위크스가 쓴 곡들을 가져와 비교하면, 화자의 기억과 정체를 포함한 iDKHOW -‘Noel’ 보다는, The Brobecks -‘All of the Drugs’와 유사하다. 다만 초점이, 개인보다는 상황에 있다. 감정이나 평가를 배제한 채 전지적으로 관조하는 뉘앙스를 입음으로써, 지니의 서사를 보편으로 확대시킨다.
“울어! 도망쳐! 넌 무너지고 있어, 마음이 부서진 또 다른 소녀일 뿐이야.”라고, 팝펑크적 멜로디로 ‘부드럽고 따스하게’ 노래하는 곡, ‘Cry!’. 그 속의 ‘너’와 ‘Jeannie~’의 ‘지니’는, ‘Bikini’ 속 ‘너’와 같은 선에 있는 듯 하다. 캐롤라인 로즈는 ‘Bikini’의 화자를 ‘너’ 혹은 전지자 대신, ‘너’에게 비키니를 들이미는 이들로 설정함으로써, 온도를 더 서늘하게 낮춘다. 그들은 ‘너’를 향해 말한다, “네가 원했던 모든 걸 갖게 될 거야. 전 세계를 여행하게 될 거야. 우리 TV 영화에 출연 시킬 거야. 네가 이 조그만 비키니를 입기만 한다면! 그리고 춤을 춘다면!” Ladytron의 ‘Seventeen’ 바이브가 다크 코미디적으로 묻어난다. 배경음악은 약간 디스코 펑크. 매우 신난다. 보컬은 ‘Money’처럼 멜로디를 죽이고 힘을 줘 박자 중심으로 뱉는다. 마구 효과음을 내기도 한다.
바로 전 트랙이 ‘Smile! (Aka Schizodrift Jam) [1 aka Bikini Intro]’ (정신분열적으로 떠다니는 연주?). “웃어요! 왜 안 웃어요! 웃어요!”를 목소리들이 반복한다. 단순히 ‘씬’으로 두지 않고, 신나는 배경음을 입힘으로써 ‘트랙’ 중 하나로 만들었다는 게 또 하나의 포인트다. ‘Bikini 인트로’라는 부제를 참고해 들으면, 조그만 비키니를 입고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선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너’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개인적인 정서가 들어간 곡들도 비중을 차지한다. 위 곡들과 확실히 구분되나, 따로 놀지 않고 적절한 위치에 놓여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몽환적이고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띠며, 화자의 심리와 상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Talk’의 경우 보컬 스타일이 다른 곡들과 구분된다. 지나칠 정도의 떨림이 있다. 단순히 고운 떨림이 아닌, 약간 호러적 바이브레이션이라고 할까(멋대로의 표현이다). 곡이 전개되며 잦아들고 힘이 들어가지만, 재지하게 늘이던 보컬을 소절이 끝날 때 가늘게 까거나 올리며 분위기를 유지한다. 여전히 기본 리듬은 신스팝이나, 멜로디 흐름이 비장하다. 그 비장함은 다음이자 마지막 트랙 ‘Animal’로 이어진다. 떨칠 수 없는, 혈관을 동물처럼 기어 다니는 그와 그녀의 이미지를 화자는 털어 놓는다. 이 곡의 색은 밝은 레드가 아니라 검붉은 핏빛. 젖어 무겁게 축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To Die Today’에서는 아예, 죽음의 모양을 상상한다. 배경 사운드와 보컬 모두 차분하게 시작한다. 악기가 추가되고 슈게이징 스타일로 풍부해지며 분위기가 고조되나, 보컬은 여전히 힘을 뺀 채 고요하게 울린다. 키워드는 괴로움이나 두려움보다는 평온. 화자는 ‘고통도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라고 반복해 이야기 한다. 파괴적이면서 평화롭고, 약간 따스하기까지 한 레퀴엠이다. 마이크 플래너건의 미니시리즈 <Midnight Mass>에서 라일리가 묘사했던 죽음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캐롤라인 로즈가 묘사하는 현실의 삶은 팍팍하고 물질적이고 지루해 다 똑같아 보이는 것, 그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죽음- 이라는 편협한 결론에 이르면 안 된다. 죽음에 대한 아이디어를 털어놓으며 그것을 향한 욕망을 덜어내는 것에 가깝다. 파멸을 그림으로써 이 우스꽝스러운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심리상태나 감정의 흐름을 개성 있게 이미지화 /스토리화하는 능력, 그리고 그 트랙들을 적절히 배치해 앨범 전체적으로 분위기적 흐름을 구성하는 능력이 캐롤라인 로즈에겐 있다. 가볍게 포괄하며 열었다가, 강약조절을 하며 고조되고, 개인적이고 무겁게 파고드는 마무리가 찾아온다.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도입부의 <아네트> 인용은, 헨리 맥헨리의 말이다. 캐릭터와는 별개로 대사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단했기에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