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åneskin
Måneskin
(‘I WANNA BE YOUR SLAVE’, ‘MAMMAMIA’를 중심으로.)
Måneskin. 이 대세 록밴드를 알게 된 경로는 흔했고, 시기는 살짝 ‘늦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했다는 기사를 얼핏 보았다. 며칠 후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들의 파이널 퍼포먼스를 걸러 놓았길래, 무심코 재생했다. 진한 아이메이크업, 타이트한 팬츠, 열어젖힌 셔츠-보컬은 그나마도 안 입고 있고. 맴버들은 굽 높은 플랫폼 부츠를 신은 채 계단을 오르내리고 무대를 활보하며 카메라와, 또 서로와 열심히 눈을 맞추었다. 와중 한 번도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에너지가 있었다,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게 아니라 함께 흥분하게 만드는. 무엇보다, 스스로 완전히 즐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서로 경쟁해 우승자를 가리는 ‘콘테스트’ 아니었던가. ‘잘 해야지’라는 조바심이 보이지 않아 잊고 있었다. ‘잘 하는 것,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음악을 올리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나 재밌잖아 이거!’라는 듯한 태도가 내내 흘러넘쳤다.
"간단해. 그냥 자신, 음악, 또 서로 연결되는 데에 집중했어."
-Victoria De Angelis, interview by. William Lee Adams [youtube: wiwibloggs]
"(‘ZITTI E BUONI’는) 우리 음악을 공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선언이야,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되겠다는. 또 이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스스로가 되라는 메시지이기도 해."
-Damiano David, interview by. William Lee Adams [youtube: wiwibloggs]
개인적으로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으나, 객관적으로 리스펙하게 됐다. 클래식한 스타의 에너지와 새로운 가능성이 공존했다. 그 아우라는 네 맴버 모두에게 있었다. 각자 자유롭고 함께 조화로웠다. 자신들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창작물에 대한 확신이 있는, 남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중심이 있는 이들.
유로비전 파이널 무대에서처럼, 모네스킨이 맞춰 입는 의상과 적극적인 퍼포먼스는 대부분 ‘글램글램’하다. 그 시절 글램록 스타들이 던졌던 프라이드의 제스처를, 바람직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시대에 맞게, 또 그들만의 방식으로 가져왔다. 팔리기 위한 ‘컨셉’이 아닌 당연한 가치다.
"우리가 주로 하는 스타일은, ‘젠더 규범’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떻게 메이크업을 해야 하고,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고 그런 것들 있잖아. 또한 누구나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유의 메시지이기도 해."
-Victoria, interview by. William Lee Adams [youtube: wiwibloggs]
“2018년의 <Il ballo della vita>는 가상의 뮤즈 ‘Marlena’에게 영감을 받은 앨범이며, 스카의 영향이 굉장히 헤비하다. 그러나 2021년의 앨범 <Teatro D’Ira: Vol. I>은, 밴드로서의 비전을 보다 깨달은 느낌이다.”
-Brittany Spanos, [rollingstone.com]
록을 베이스로, 넓은 범위를 넘나든다. <Il ballo della vita>에서는 위에 언급된 스카를 비롯해 알앤비, 힙합마저 들리는 반면, <Teatro D’Ira: Vol. I>는 보다 록으로 모여- 록발라드에서 메탈까지 있다. 여기서 보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끈적하게 들러붙는데 축 늘어지지 않고 시원하게 감긴다. 걸걸하게 갈라지며 내지를 때는, 힘이 굉장하다. 하드록에 딱이라고만 여겼는데, 들을수록 커버하는 폭이 넓다. 과감하게 까거나 톤을 바꾸는 것은 물론, ‘Coraline’이나 ‘Torna a casa’ 등에선 감성적으로 부드럽게 뽑기도 한다. 개성이 확실하고 가능성이 상당하다. ‘Back to Black’ 커버 영상에선, 에이미 와인하우스마저 꽤나 괜찮게 소화한다.
또한 그는 ‘숨과 발음을 뱉고 끊는 방식’을 아는 보컬이다. 영어로 쓰인 ‘Are You Ready?’와 ‘Close to the Top’을 이어 들으면, 단어 각각의 발음과 그 이어짐이 최상의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전자는 흐물흐물하게 눙치고 흘려 멜로디에 녹였다. 후자는 신나게 터지는 빠른 템포의 리듬 사이사이로 딱딱 끊기게 배치했다. 계산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각이다.
(“Everything’s natural.”[-Damiano, wiwibloggs])
유로비전 이후, ‘I WANNA BE YOUR SLAVE’ 이기팝 피쳐링 버전이 나왔다. 진실로 ‘역사적인’ 콜라보레이션에 벅찼던 마음과는 별개로, 이기팝의 보컬을 그다지 즐기지는 못했다. 곡을 나름의 스타일로 색다르게 소화했지만 -다미아노의 타고난 리듬감과, 유하게 굴러가는 듯 하다 별안간 투박하게 끊어지는 이탈리안-잉글리시 발음(반 농담: 정말 ‘이탈리아노라서 핫한’[MAMMAMIA] 것이다.)이 핫함의 포인트 중 하나이던 트랙에 다른 보이스가 끼어드니, 색다른 매력보다 위화감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오리지널을 새삼 반복재생했다는 얘기다. ‘I WANNA BE YOUR SLAVE’. 보컬의 발음을 건드리며 문을 열었지만, 할 말이 많은 곡이다. 가사는 단순하다. 제목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화자는 상대의 노예가, 주인이, 착한 아이가, 갱스터가, 챔피언이, 루저가, 섹스토이가, 선생이, 죄가, 신부님이 되고 싶다. 그를 배고프게 만든 다음 먹이를 주고 싶고,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 다음 떠나고 싶다. 화자는 스스로를, 구원을 찾는 악마, 변호사, 킬러, 나쁜 남자, 금발의 소녀, 괴물로 칭한다.
“네 노예가 되고 싶다”고 노래하는 다미아노는 남성이나, 그는 단지 목소리다. 화자는 딱히 남성이 아니며, 욕망의 대상도 딱히 여성은 아니다. “네가 날 이용하겠다면,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어”라는 말은, 상대가 원하는 틀에 자신을 맞추겠다는 순종의 표현이 아닌- 몰아치는 욕망 자체의 표현이다. 최선을 다해 원하고 사랑하며, 거부당하고 좌절할지언정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그리하여 이 곡은, ‘YOU’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누구든(리터럴리는 아니다) 욕망할 수 있다’는 선언이 된다.
비디오는 메시지를 스타일리시하게 강조한다. 화면은 사운드에 어울리게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뮤지션이 모델이나 배우들을 성적으로 지배하는 흔한 구도가 아니다. 뮤지션 스스로 대상이 되어 다양한 성적 이미지를 입는다. 키스하거나 서로 몸을 맞대고 쓰다듬는 것은 물론, 밧줄에 묶이거나, 그물에 잡히거나, 속옷만 입고 스타킹을 신거나, 침을 뱉거나, 그 침을 맞는다. 이미 별로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묘사지만, 각 제스처를 취하는 맴버를 의도적으로 배치해 ‘젠더 규범’을 전복시킨다. 키스하듯 껌을 나눠 먹는 것은 에탄과 다미아노, 브래지어를 입은 이는 다미아노, 화면을 노려보며 알통을 뽐내는 이는 빅토리아다. 짜인 연출이지만, 단순한 컨셉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곡을 통해 말하려는 바다. 비주얼마저 스스로 표현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자신의 몸과 마음, 창작물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이 비디오는) 섹스에 대한 것, 스스로를 어떻게 성적으로 표현하는가에 관한 거야. (‘I WANNA BE YOUR SLAVE’는) 원하는 상대를 자유롭게 택할 수 있다는, 거기엔 옳고 그른 게 없다는 것을 말하는 곡이야. 그걸 비디오에서 보여주고 싶었어."
-Victoria, interview by. Brittany Spanos, [rollingstone.com]
얼마 전 나온 싱글 ‘MAMMAMIA’ 비디오 또한 강렬하고 자유롭다. 상징적 이미지 위주였던 ‘I WANNA~’와 달리 간단한 서사가 있다. 빅토리아가 운전을 하며 “걔 진짜 존나 짜증나.”라고 말하며 시작한다. 세 맴버는 파티를 즐기고, 다미아노는 끼어들어 ‘짜증나는’ 행동을 한다. 에탄의 화장실을 새치기하고, 빅토리아의 키스를 방해하고, 토마스의 담배를 뺏어 피운다. 그 대가로 셋에게 살해당한다. 비디오의 끝에는 셋이 타고 가던 차를 막아 몸을 밀어넣더니, “이 노래 존나 싫어.”라며 플레이되고 있던 맘마미아 카세트테잎을 빼 버린다. 듣기 전, 커버부터 ‘I WANNA~’식 바이브라는 생각을 했었다. 살펴보니 사운드 구성은 유사하나, 가사는-오히려 ‘ZITTI E BUONI’의 뉘앙스가 살짝 풍겼다.
They wanna arrest me, but I was just having fun
I swear I’m not drunk, and I’m not taking drugs
They ask me, “Why so hot?” ‘Cause I’m Italiano
날 체포하고 싶어하네, 그냥 놀고 있었을 뿐인데
술도 안 마셨어, 약도 안 했다고 맹세해
내가 왜 핫하냐고들 물어보는데, 나 이탈리아노잖아
-‘MAMMAMIA’
경찰차에 갇힌 화자가 무죄를 주장하는 설정이다. 간드러지는 톤의 ‘oh mammamia’로 천연덕스럽게 벌스를 열고, 구간의 마무리마다 걸걸하게 힘을 싣는다. 당황이 분노로 이어지는 것처럼. 모네스킨이 쓰는 가사의 매력 중 하나는 분명함에 있다. 빼거나 빙빙 돌리지 않고, 자유롭고 솔직한 그들의 태도에 어울리게- 정면돌파한다. 위 인용한 가사를 읽고 뭔가 떠오르지 않는가. 유로비전 파이널, 다미아노가 무대 전 마약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결국 검사까지 통과한 사건이 있었다. ‘ZITTI E BUONI’ 가사대로라며, 팬들은 흥미와 분노를 표했다. 모네스킨처럼 ‘규범’을 깨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예술가들에게, 지겹도록 따라붙는 의도적인 오해와 평가. 다소 귀여운(?) 비유로 묘사했지만, 비디오 속 다미아노는 이들을 모함하고 시비를 거는 누군가들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들은 노래한다, “Telll me your limit and we’ll cross the line again.네 리밋을 말해 봐, 우리가 다시 그 선을 넘어 줄게.” ‘너’를 그 ‘짜증나는’ 이들로 본다면, ‘당신들이 우리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비웃어 주겠다’는 말이겠고, ‘너’를 원하는 대상, 곡을 듣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 본다면, ‘그대들이 스스로에게 두는 제약을 해방시켜 주겠다’는 뜻이겠다.
Give me a command and I’ll do what you ask ‘cause my favourite music’s your ah, ah
Give me a command and I’ll do what you ask ‘cause I love when you sing out loud
명령을 내려 봐, 바라는 대로 해 줄게, 내 페이버릿 뮤직은 네 ‘아, 아’ 거든.
명령을 내려 봐, 바라는 대로 해 줄게, 네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 게 너무 좋거든.
-‘MAMMAMIA’
‘you’는 이들의 음악을 소리 높여 따라 부르는 관객, 팬들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MAMMAMIA’는, ‘규범’에 사로잡혀 멋대로 평가하고 제한하려 드는 무리에 대한 조롱이자, 자신들의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팬들에 대한 믿음과 애정의 표시, 모네스킨은 누가 뭐래도 모네스킨일 것이라는 (역시나)선언이 된다.
확고한 스타일과 가치관을 드러내며 건강하고 섹시한 음악을 만들어 온 모네스킨. 유로비전 이후 첫 창작물인 이 싱글로,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증명-아니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더 어렸을 때는, 스스로에 대해 지금처럼 자신과 확신이 없었어, 그렇지만 우린 함께 성장하며 서로를 지지해 줄 수 있었지. 우리의 경험을 팬들과 공유하고 싶어. 그들 자신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려고 해. 모든 사람에겐, 무엇을 공유하고 싶고 또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표현할 권리와 가능성이 있어, 평가 당하거나 배제 당하지 않고 말이야."
-Damiano, interview by. Brittany Spanos, [rollingstone.com]
+
다 쓰고 남은 인터뷰 번역 클립들. 뭔가 아까워서 덧붙인다.
interview by. William Lee Adams [youtube: wiwibloggs]
(Q: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을 받은 적 없나?)
Damiano: 이탈리아에서 주로 연주하는 장르가 아니긴 하지. 약간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뭐, 별로 신경 안 써. 그냥 우리 음악을 연주하고 우리 자신이 될 뿐이야.
(Q: 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입었어?)
Victoria: 난 약간 히피 스타일이었어.
Damiano: 얜 히피였고, 난 그냥 평범했어. 보통 남자애 스타일이었지. 왜냐면 ‘보통’의 기준이 정말 두려웠거든. 근데 얘넬 만났고,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됐어. 그런 거 있잖아, 넌 남자야, 넌 메이크업을 하면 안 되고, 이런 거 달면 안 되고. 근데 익숙해지니까, 그냥 사라지더라고.
(‘moonlight’ 이라는 뜻의 밴드 네이밍에 대해)
Victoria: 부모님 중 하나가 덴마크 사람이거든. 콘테스트에 나가야 되는데 이름이 없었고, 얘네가 나한테, “아무거나 덴마크어로 말해봐!” 그래서, “모네스킨!” “그래!” 그렇게 된 거야.
Damiano: 그 후에 바꾸던가 하려고 했는데, 절대 안 바뀌었어. 이 이름을 달고 콘테스트에서 우승했어. 약간 행운의 이름인 거잖아. 괜찮아, 우리 이름이니까.
(Q: 록 뮤직 씬의 여성으로서, 맞닥뜨리는 벽이 있어?)
Victoria: 딱히 그렇진 않아. 매우 좋은 환경에 놓여 있으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 모두 다 오픈마인드고, 날 보호하려고 해 줘, 근데 가끔은- (Damiano, 진지하게: 근데 빅토리아는 우리 보호가 필요 없는데, 사실.) 맞아맞아, 근데 누군가 무례하게 굴거나 하면 내가 여자라서 문제라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되게 잘 대해 준다는 말이야. 사실 그래야 맞지만.. 그런 점에서, 이런 환경에 있어서 행운이라는 거야.
*참고 인터뷰
: https://youtu.be/fzoq5By-k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