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e Rose (2)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Superstar>(2020): 로맨틱 코미디-미스터리 멜로드라마
부러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곡이 있다. 컨트리 맛이 나는 ‘Soul. No. 5’다. 다음 앨범의 실마리가 보이는 트랙이다. 화자와 주인공은 일치. 언뜻 자신감이 넘치는 듯한 그에게서 자조적 뉘앙스가 풍긴다. “I got the gucci gucci gooey oozy icky style” 이라더니. 이 과장된 자신감은, 제목마저 <Superstar>인 네 번째 앨범의 일부 트랙에 흘러 넘친다. ‘Feel the Way I Want’는 캐롤라인 로즈가 연기하는 화자가 잘못된 오디션 장소에 도착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을 담은 컨셉 비디오다. 여전히 새빨간 수트, 키치한 구찌 티셔츠. 흰색 헤드폰을 쓰고 걸어가며, 혹은 멈추어 서서 끊임없이 리듬을 타거나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그 움직임에는 무언가가 있다. 본인은 굉장히 진지하다. 동작은 큼직하고 시원시원하다. 딱히 어색하지도 않다. 근데 웃기다. 너무 스스로에 취해 혼신을 다하고 있어서다.
전체적으로 신스가 두드러지며, 보컬은 팝스럽고 부드러운 앨범이다.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풍자하는 뉘앙스의 곡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Loner>와 달리, 아티스트 본인의 감정이나 심리를 기반으로 했을 듯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 통일된 화자가 제 이야기를 일상적인 뉘앙스로 들려준다.
첫 트랙 ‘Nothing’s Impossible’은 힙합스러운 비트로 시작해 신스로 넘어간다. “불가능한 건 없어”라고 가성을 잔뜩 넣어 몽환적으로 노래한다. 새로이 드라마틱한 시도도 들린다. 중간에 목소리를 변조해 분위기를 잡고 하는 독백. 그렇게 꽉 찬 사운드가 평범하게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다, 테잎이 풀리듯 돌연 부자연스럽게 늘어지고, 단조로운 음이 지속되다 곡이 끝나버린다. 앞에서 아름답게 불러냈던 희망과 의지가 다 풀려버린 느낌이다.
Everybody’s so quick to stand up
And say I gotta be this way or that way
Gotta ask yourself, is this really what I wanted?
Everybody so quick to cry out
And say you gotta keep your shit together
But, baby, watch me freak out
다들 너무 쉽게 일어나 주장하더라
그리고 내가 이렇고 저래야 한다고 말해
스스로에게 물어봐, 이게 진짜 내가 원했던 건가?
다들 너무 금방 목소리를 높이더라
그리고 넌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고 말해
그치만, 자기, 내가 겁에 질리는 걸 지켜봐
-‘Feel the Way I want’, <Superstar>
‘Feel the Way I Want’는 레트로 댄스팝 느낌이다. “완전 나 자신과 사랑에 빠졌어, 아주 로맨틱해”라며, “난 내가 원하는 대로 느껴”를 반복한다.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자기애, 광기 섞인 현재에 대한 즐거움. 그대로 유쾌하다. 화자는 ‘everybody’를 향해 직설적인 메시지를 날린다. 그의 음악에 대해 왈가왈부했던, 또 이 음악들도 색안경을 끼고 접할 누군가들을 향한, 캐롤라인 로즈 본인의 재치 넘치는 메시지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내 안의 경쟁적인 면이 이 앨범을 실험처럼 접근했던 것 같아. 그저 유명해지고 만 싶어 했던 친구들이 있었어, 왜 누구든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건지에 대해, 내 일부가 머릿속을 간지럽혔어. 근데 내 다른 일부는 이랬어, “내가 이걸(아마 유명해지기를)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면 진짜 멋지겠다.” 그게 내가 썼던 일종의 접근법 이었어, 왜냐면 수년에 걸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underestimate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어."
-Caroline Rose, interview by. Rachel Martin & Victoria Whitley-Berry, [npr.org]
다음 키워드는 주로 사랑, 연애. 그러나 메시지도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다. 연인 ‘you’를 향해 노래하는 곡도 많으나, 그 속에서 사랑의 감정 뿐 아니라 자신의 면면들을 드러낸다. ‘Got to Go My Own Way’의 사운드는 희망적이다. 딱히 반전도 없다. 지나간 연인에게 건네는 듯한 가사도, 언뜻 희망적이다. “내 자신의 길을 갈 거야, 나는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과거는 끝났어, 다 극복했어. 네 새 여자를 즐겨.” 근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희망과 의지가 의도적으로 과장된 느낌이라 오히려 어둡다.
이 어둠의 뉘앙스는 ‘Someone New’에서 좀 더 분명한 형태를 띤다. 차분한 팝펑크 비트에 신스가 섞인다. 힘을 빼고 나직하게 노래한다. 후렴도 힘을 많이 싣지 않은 가성으로 반전 없이 가볍게 간다. “넌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버전의 날 원했어. 근데, 있지, 넌 수많은 타입들 중 하나일 뿐이야”, “넌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거고, 그녀는 나와 똑같이 생겼을 걸”. 헤어진 연인에게, 아픔을 딛고 일어나 ‘Someone New’가 될 거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허나 가사를 더 살피면, 그 바탕이나 방향이 별로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극복’의 이미지가, 훌훌 털고 일어나는 종류가 아니라, 이를 악물고 벗겨내는 느낌이다. 피부를 한 겹 벗고 다시 시작할 거라는 말 다음에 등장하는 구절은, “Ruthless, cutthroat, breaking bread with evil men. 무자비해지고, 살벌해지고, 악한 남자들과 밥을 먹겠지.”. ‘새 출발’을 상징하는 동작 중 하나인 ‘머리 빗기’는, 이전 앨범의 ‘To Die Today’에서 죽기 전 스스로를 정리하는 동작으로 등장했던 바 있다.
우아하게 시작해 펑키하게 이어진다. 위 두 곡의 화자가 ‘내 길을 갈 것’이라며 전 연인을 향해 굿바이를 날렸다면, ‘Do You Think We’ll Last Forever?‘의 화자는 “네가 거기서 날 보고 있으면 집중할 수가 없어”, “이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며 새로운 연애의 짜릿함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무심한 척하지만 설렘이 새어나온다. 그러다 질문한다. “우리가 끝까지 갈 것 같애?” 멜로디와 리듬은 간지럽게 통통 튀는데, 질문 자체에 의심과 불안이 내포돼 있다. 도중 어지럽게 반복되는 “You Know That I love you babe.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자기.”는, 배경음 때문일까, 핫하지만 어딘가… 위험하게 들린다.
Is the end now, babe, or is it just the beginning?
이걸로 끝인 걸까, 자기, 아니면 그저 시작인 걸까?
-‘Do You Think We’ll Last Forever?‘, <Superstar>
‘~Last Forever’는 평범하게 설레는 사랑 노래인 척 불안을 섞었다. ‘Freak Like Me’는 반대로, “내 사랑은 나쁜 생각이야”로 시작해 부정적인 언어를 잔뜩 늘어놓는데, 오히려 내포된 감정은 파괴적일지언정 안정적이다. 딱히 건강하진 않은데, 그대로 괜찮다. “Do you think we’ll last forever?”가 불안한 의문이었다면, “You’re a freak like me.”는 편안한 결론이다.
I kick back like there’s no tomorrow
I beg, steal, or borrow
I let it all hang free
‘Cause you’re a freak like me
Baby, I got your heart in a chokehold
Now there’s nowhere to go
‘Cause it’s plain to see
You’re a freak like me
내일이 없는 것처럼 반격해
빌고, 훔치거나, 빌려
그냥 다 내버려 둬
왜냐면 넌 나와 같은 괴짜니까
베이비, 난 네 심장을 꽉 쥐고 있어
이제 갈 데가 없어
왜냐면 쉽게 보이거든
넌 나와 같은 괴짜야
-‘Freak Like Me’, <Superstar>
‘Pipe Dreams’는 ‘Jeannie Becomes a Mom’처럼 구체적 서사가 두드러지는 곡이다. 다만 이번엔 ‘지니’가 아니라 ‘나와 너’의 이야기다. 다시 시작했으니 다 잘 될 거라고, 연인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듯 하다. 그러나 우울하고 나직한 멜로디와, 가사에는 포함되지 않은 ‘Pipe Dreams’라는 제목이, 화자가 가린 이야기를 건넨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의 이름을 고르고, 드랙 스타일로 차려입은 채 술에 취하고, 결혼식 날 길거리에서 춤을 출 거야”는 실현되지 않을 미래의 아련함을 띤다. 이 관계의 현실에 가까운 건 마지막 구절,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화자를 의심하게 되어 버린’ 연인. 그를 설득하기 위한, 혹은 이미 실패한 후의 ‘Pipe Dreams 몽상’, 그게 이 스토리텔링의 정체일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Back at the Beginning’의 사운드 흐름은 살짝 ‘이상’하다. ‘이국적인’ 현악기 라인이 익숙한 팝적 리듬으로 이어지는데, 먼젓번의 소리가 미세하게 남아 예상치 못한 조화를 이룬다. 보컬은 끈적하며 다양한 톤으로 간드러진다. 가사 흐름도 ‘이상’하다. 조용히 내 옆의 ‘너’를 묘사하며 시작해, 의미심장하게 이어진다. “이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양이 되겠어”라니. 예상치 못한 전개다.
If I could do this again, I’d come back as a red flag
And pass a fire right where it stands
‘Cause if you don’t think we’re in Hell now, babe
Take another look around
Everything’s engulfed in flames, it’s all comin’ down
내가 이걸 다시 할 수 있다면, 붉은 깃발이 되겠어
그리고 불길 한 가운데를 지나갈래
지금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봐
불꽃이 모든 걸 다 삼켰어, 이리로 내려오고 있어
-‘Back at the Beginning’, <Superstar>
“후회로 가득해”, “내 두려움을 죄다 두르고 있어”. 사운드와 가사 모두 마음 상태를 이미지화 한 듯 이어지다, 마무리에는 ‘Feel the Way I Want’에서 잠깐 언급됐던 질문이 반복된다, “Is this really what you wanted to be? 이게 진짜로 네가 되고 싶었던 바야?”
Some men might think that
A woman is weak because she cries
But nothing is stronger
Than a lover’s lonely tear
어떤 남자들은 그렇게 여길 수도 있어
여자는 울기 때문에 약하다고
허나 사랑하는 이의 고독한 눈물보다 강한 건 없어
-‘I Took a Ride’, <Superstar>
가사를 살피기도 전 이미 사운드 구성에서, 우아하고 웅장한 멜로드라마의 비극적인 엔딩이 절로 떠오른다. ‘I Took a Ride’는 고요하고 비장한 라스트 트랙이다. St. Vincent의 <MASSEDUCTION>이 ‘Smoking Section’으로 마무리됨과 비슷한 모양이다. 절망했고, 가슴이 찢어졌지만, “다시 참된 사랑을 찾을 것이다, 내 사랑을 되찾을 것이다”라는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별과 사랑에 대한 노래다. 그러나 ‘you’의 대상을 넓히면 다른 가능성이 들린다.
스스로를 ‘본투비 스타’(‘Got to Go My Own Way’)로 능청스럽게 정의하며, 과장된 자기애와 함께 시작하더니, 사랑과 이어지는 설렘, 불안하고 파괴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마지막 트랙으로 갈수록 무겁게 가라앉으며 저 깊은 내면을 슬쩍 내보인다. 그 이어짐은 <Loner>가 그랬듯, 능숙한 강약조절을 수반하며, 몹시 조화롭다.
"작은 세계를 만들려고 했어, 당신이 헤드폰을 썼을 때,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고, 끝날 때는 더 깊은 것을 보게 되고,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을 말이야, 진짜로, 내가 개발한 이 캐릭터는 나 자신의 면모들을 바탕으로 하거든."
-Caroline Rose, interview by. Rachel Martin & Victoria Whitley-Berry, [npr.org]
그가 모노크롬monochrome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며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언급했으니([rollingstone.com]), 그 핑계를 대며 필름의 언어를 통해 좀 멋대로 아울러 보도록 하겠다. <Loner>가 깔끔한 다크 코미디에서 출발해 오묘한 흐름을 타고 판타지 섞인 사이콜로지컬 호러로 끝난다면, <Superstar>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에서 파괴적으로 우아한 미스터리 멜로드라마로 이어진다. 아주 엉망인 비유는 아니리라.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좋은 곡들도 있으나- 캐롤라인 로즈의 표현법에는 그의 시그니처 컬러인 밝은 빨강처럼 비비드한 데가 있다. 허나 파헤치고 들어가면, 주로 어둡고 깊은, 때론 넓은 색의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는, 진짜 세계가 있다. 한 겹을 거른 후 다가오기 때문에 더 진한 뒷맛을 남긴다. 이토록 다채로운 가능성을 지닌 뮤지션, 코미디언, 아티스트, 캐롤라인 로즈. 그가 다음으로 칠할 색이, 가져올 장르가, 무엇일지, 만들 세계가 어떨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in a good way.
"상당히 치유적이야therapeutic. 난 곡을 써야만 해, 어떤 면에서는. 그게 바로 좋은 대중음악의 아름다움이야: 심각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지."
-Caroline Rose, interview by. Maggie Lange, [rollingstone.com]
* 참고 인터뷰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features/caroline-rose-is-making-fun-of-everything-628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