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alive
half•alive, <Give Me Your Shoulders, Pt. 1>(2022)
Feat. <Now, Not Yet: in Florescence>(2020)
하프얼라이브half•alive에겐 ‘음악 그룹’보다는 ‘크리에이터 그룹’이라는 수식이 더 어울린다. 간단한 단어들을 부드럽고 독특하게 조합한 가사.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늘 새로워, 각 곡의 개성이 자연스러운 흐름과 함께 묻어나는 사운드. 오디오를 이미지화함을 넘어 독자적인 예술이 되는 비디오. 필수 요소인 무브는- 단순히 백그라운드 댄스가 아닌 곡의 일부다. 언어 역할을 하거나, 감정의 흐름을 나타내거나, 곡의 느낌을 그리거나, 그 복합이 된다. 이들은 관성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해 내보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또한 그 방법과 과정을 팬, 여러 아티스트들과 공유하며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전 세계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2020년 초봄, 이들은 첫 스튜디오 앨범 <Now, Not Yet>의 네 곡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리메이크해 미니앨범을 냈다. 오케스트라와 얼터너티브 팝의 콜라보라는 아이디어부터 신선했고, 이들의 음악 특유의 경쾌한 웅장함은 클래식한 악기들과 독특하게 어울렸다. 오디오만으로도 훌륭했으나, 녹음 과정을 담은 비디오에는 또다른 울림이 있다. 관객 없는 스튜디오 공연 같다. 조명이나 공간을 섬세하게 배치한 것은 물론, 옆에서는 아티스트들이 몸 전체, 혹은 손을 중심으로 무브를 하거나, 가사가 적힌 보드를 들고 있곤 한다. 보컬 조쉬 테일러가 공연 당일을 찍은 영상을 27분 길이의 다큐멘터리로 편집해 올리기도 했다. 세트 구성부터, 기획하고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시선이나 느낌이 담긴 인터뷰, 그들이 서로 의견이나 농담을 나누는 모습들이 공연 사이사이에 담겨 있다.
“<Now, Not Yet>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대화를 나누며, 다른 방향으로 실험해보면 좋겠다 싶은 네 곡을 골랐다.” -J Tyler, ‘Now, Not Yet: in Florescence (documentary)’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았던 파트는 ‘Creature’. 오케스트라와 하프얼라이브가 곡을 플레이 하는 동안, 두 작가가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과 녹음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행위예술이고, 그 결과물은 따로, 또 같이, 작품이 된다. 각기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만나, 단순히 ‘음악과 그림을 함께 감상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복합 예술로 탄생시켰다.
[구교환 배우가 <메기>(2018) GV에서 ‘영화는 생물같다’는 말을 몇 번 했는데, 곡에도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라고 본다.] (본인의 글 ‘오! 유 크리피-프리티 보위’에서 인용.)
하프얼라이브야말로, 이 비유에 가장 들어맞는 작품을 만드는 동시대 아티스트 중 하나라고 본다. ‘여지가 없는’ 결과물을 가지고 대중과 만나는 창작가들도 있지만, 이들은 늘 ‘여지’, 창작의 실마리를 남기는 쪽이다. 오디오 트랙을 낸 이후에도 다양한 배경이나 컨셉의 라이브/무브 클립이나, 여러 아티스트와 팬들이 자신들의 곡을 모티브로 만든 창작물들을 SNS에 올려놓곤 한다. (팬아트와는 조금 다르다.) 위에 언급한 다큐멘터리처럼 비디오나 곡의 해석이 담긴 메이킹 필름을 따로 공유하기도 한다. ‘What’s Wrong’ 싱글이 발매된 후엔, 세계 여러 언어들로 리릭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어도 있다. 번역기 돌린 뉘앙스이기는 하나, 해 준 것 만으로 감격했다.)
작년엔 싱글을 유독 여럿 내놓았다. 각 트랙과 비디오의 컨셉이 다채로우면서도 모이는 데가 있어, 이후의 뭔가,를 기대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미니 앨범이 나왔다. 타이틀은 <Give Me Your Shoulders, Pt 1>, 싱글로 선보였던 곡이 넷, 추가된 곡이 셋이다. 일단 오디오 사운드만 거칠게 훑어본다. ‘Make of It’은 오르내림 없이 끊어 뱉는 보컬로 색다르게 시작한다. 유사한 리듬의 다른 소절은 효과를 넣지 않고 가늘게 떨도록 둔다. ‘Summerland’는 신나면서도 아련하다. 첫 두 곡 모두 빠른 템포로 경쾌하게 이어지지만,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감정을 입혀 부드럽게 내보내다 필요할 때 내지르는 보컬이 들어가, 이들만의 얼터너티브한 댄스팝을 완성한다. ‘What’s Wrong’의 경우 멜로디도 보컬도 차분하게 누르다, 후렴에서 임팩트를 준다. 특히 감탄사 ‘Yippee ki-yay’의 예상치 못한 쓰임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분위기가 차별화된 트랙, ‘Everything Machine’. 기본 틀은 다른 곡과 유사하나, 흐름이 펑키하고 쿨하다. 보컬은 감정과 살짝 거리를 두듯 눌러 건조하게 퉁퉁 치듯 뱉다, 아련하고 먹먹한 클라이맥스를 지나-자마자, 정리해 다시 깔끔하게 끝난다. ‘Hot Tea’는 기본 리듬이 트랩으로 쪼개져 있는데, 텐션과 무게가 있는 기타 연주로 포인트를 주며 굴러간다. 전체적 사운드가 부드럽고 처연해 전 트랙과 구분된다. 나직하게 시작해 점점 고조되는가 싶더니, 후렴은 배경에 어울리는 고운 가성으로 차분하게 잇는다. 저 깊은 속을 위로해 주는 듯 하다.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신 기분이 든다.
‘Move Me’는 포인트 멜로디가 상큼하다. 천천히 가다, 빨라졌다가, 후렴은 아예 풀어지고 늘어지며 몽환적인 임팩트를 준다. 화음도 두드러진다. 엔딩 직전에는 여러 소리들이 쌓여 풍부해지며 마음을 벅차오르게 한다. ‘Back Around’는 어쿠스틱하게 신나는 악기들의 조합으로 시작된다. 지르듯 내보내 먹먹한 효과를 입힌 소절과 함께 들어가는 후렴, 빠른 기타 리듬이 귀를 꽉 채우는 와중 보컬은 거의 비어 있다. 몇 단어만 악기처럼 섞여 있다. 반대로 반주 없이 보컬만 차분하게 내보내는 브릿지 이후, 사운드가 터지며 한동안 유지되다 끝난다. 부드러우면서도 다이나믹한, 세기와 빠르기를 노련하게 조절하는 곡들이다.
이 중 싱글로 미리 선보이지 않은 트랙이 ‘Everything Machine’, ‘Back Around’, 그리고 ‘Move Me’다. 허나 하프얼라이브의 SNS를 가끔 살폈다면 ‘Move Me’의 일부는 귀에 익을 테다. 정식 발매 전부터, 이들은 곡의 후렴구 30초를 배경으로 한 영상들을 ‘Move Me - creator•series’라는 이름을 붙여 올렸다. 다양한 아티스트의 다양한 예술이 담겨 있었다. 여럿이 한 줄로 서서 타는 웨이브, 홀로 혹은 둘이 엮어 하는 무브, 애니메이션 아트, 영화의 한 장면, 추상화와 액자를 완성하는 과정까지. 이 클립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 오피셜 비디오다. 유튜브에서 비디오를 재생하면, 설명이 먼저 뜬다. “Move Me 비디오를 위해, 우리가 보통 뮤직비디오에 넣는 리소스를 선정된 아티스트 그룹에게 분배하였고- 그들의 상상으로 30초 비디오를 만들 수 있도록, 각자에게 창작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여러 그룹이 함께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비디오의 핵심인 셈. 하프얼라이브는 이후의 가능성도 열어 둔다. ‘Move Me’ 포함 각 곡을 유튜브에서 재생한 뒤 하단의 ‘만들기’ 버튼을 누르면, 트랙을 배경으로 한 짧은 영상을 찍어 업로드 할 수 있는 링크가 열린다. 30초의 오디오가, 넓은 세계로 이어진다.
잠깐 옆길로 새 본다. ‘무브 미 크리에이터 시리즈’ 중, ‘Summerland’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조쉬 테일러)이 폴라로이드를 보며 서머랜드를 회상하는 클립이 있다(by instagram /finnfrancismyer). 두 트랙의 서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보인다. 맴버들이 입고 있는 턱시도에서는, ‘What’s Wrong’이 연상된다. 그렇게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춰, 앨범이 한 편의 이야기라는 가설을 세워 보았다. 싱글 발매 순서는 ‘What’s Wrong’, ‘Summerland’, ‘Make of It’, ‘Hot Tea’. 마음의 균형을 잃은 ‘What’s Wrong’의 시점에서 ‘서머랜드’의 추억을 떠올리는 화자를 설정한 뒤, 감정의 단계를 놓고, 서사에 빈 부분을 채우고, 일곱 에피소드를 시간 순으로 재구성했다는 상상. 딱히 설득력 있는 추리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앨범의 의미가 좁아지기도 하고. 쓸데없이 길게 늘어놓았지만 말하고 싶은 건; 하프얼라이브의 작품들은 픽셔널한 공상의 실마리를 건네면서도, 가사의 문장들을 개인적인 감정이나 경험과 버무릴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첫 트랙 ‘Make of It’ 비디오는 그 포인트를 이미지화 했다. 댄서들이 방 안 소파에 앉거나 누워 있고, 상담사therapist로 보이는 조쉬는 따로 데스크에 있다. 심리 상담실이라는 설정, 일상적인 뉘앙스로 각자 또 따로 하는 무브는, 언어다. 다른 배경은 대기실인 듯한 푸른 조명의 텅 빈 공간, 그리고 ‘우주적’ 분위기의 수영장 혹은 그저 물,이다. 소파에 앉아 있던 이들 중 하나는 넓은 물에 잠겨 있다가 올라와, 물기를 털어내듯 무브를 한다. 이후 방에 앉아 있던 조쉬가 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비디오가 끝난다. 물 파트는 마음 속 공간, 누군가 털어낸 감정과 기억들이, 나누어 받은 이를 적신 것이다. 감정의 전이, 공감, 기억과 상처의 공유, 그게 바로 하프얼라이브의 작업에 담긴 핵심 중 하나다.
가사를 살피면, 계절적 배경은 겨울이 떠나는 순간인 듯 하다. “겨울이 내 기분을 다운 시켰어, 다음 계절엔 다시 돌아오겠지.” 화자는 말한다, “돌이켜 보면 네가 내 유일한 친구였고, 날 정말 많이 도와줬어, 근데 이 순간조차 난 다른 사람들처럼 이 사랑을 원해.”라고.
Therapy saw me naked
Twenty-six years I’ve waited
Life isn’t what I made it
My past is what I make of it
심리치료가 날 벌거벗겼어
스물 여섯 해 동안 기다렸어
삶은 내가 만든 대로가 아니야
내 과거, 그게 내가 만든 거야
-‘Make of It’, <Give Me Your Shoulders, Pt. 1>
‘Summerland’ 역시 계절이 바뀌는 시점을 노래한다. “계절이 바뀌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자유, 나무들이 죽어가기 시작하고 햇빛이 얼굴을 떠나면, 빛이 갈라지는 걸 느끼면, 가슴이 찢어지겠지.” 기본 멜로디는 경쾌하면서도 몽환적이다. 삽입된 -즐겁게 어울리는- 소리들마저 상투적이지 않다. ‘Golden’이라는 표현으로 곡에 색을 입혔다. 옅고 맑은 푸른색에, 금빛이 한 줄 지나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구체적인 기억을 들려주기보다는, 여름의 모습을 아련하게 꿈꾸듯 묘사한다. “모든 게 금빛이야”, “모든 게 로맨스야”. 여름만이 줄 수 있는 경험과 추억, 익숙하면서도 마법에 빠진 듯한 날들을, ‘여름나라’를. 그래서, ‘Summer’가 아닌 ‘Summerland’다.
But something ‘bout May makes it all feel better, baby
Summerland holds what I want right now
It’s like the hoodie you find and you wear forever, baby
Whatever ain’t golden now will only come back around
그치만 오월의 무언가가 모든 걸 다 괜찮게 만들어, 그대여
써머랜드는 지금 내가 원하는 걸 가지고 있어
어디선가 찾아내 영원히 입게 되는 후디 같아, 그대여
뭐든, 지금은 금빛이 아니라 해도, 돌아오게 될 거야
-‘Summerland’, <Give Me Your Shoulders, Pt. 1>
비디오에는 픽셔널하고 개인적인 서사가 있다. ‘써머랜드’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만났다가, 여름이 가며 떨어지게 되는 연인의 이야기. 짧은 길이의 일상적인 컷들을 자연스럽게 이어 편집했다. 무브는 최소화해 장면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썼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다함께 하는 무브는 써머랜드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두 사람이 해변에서 몸을 엮으며 하는 고요한 무브는, 떨리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모습 같다. 그들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 만큼 중요한 건, 친구들과 공간까지 포함한 전체적 이미지. 따로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촘촘한 전개 보다는 색감이나 연출을 통해 느낌을 전달하는 데에 집중하지만, 단편 영화로 손색이 없을 아름다움이 있다. 여름 한 철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떠오른다.
“최근 집착하는 건, 회피, 올바른 의도로 시작하지만 결국 선반에 넣어 버리게 돼”, “마음 속 속삭임을, 절대 소리 높여 말할 수 없어, 가슴 속 메시지엔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버렸지” 다음 트랙 ‘What’s Wrong’은 꺼내놓지 못한 기억, 못다한 이야기를 말한다. “The time’s always right to fix what’s wrong 시간은 언제나 옳아, 잘못된 것을 고치기에.”라고 여러 번 반복해 뱉는 걸 보면, 되뇌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는 노력 같기도 하다.
So tell me how to live in tension
‘Cause every “could’ve been”, kills
When living here has been hell
And I can’t hold it myself
그니까 긴장한 채로 살아가는 방법 좀 알려줘,
모든 “이랬으면 어땠을까” 때문에 죽어가고 있거든,
여기 사는 게 지옥이 되고 나선 말야,
날 추스를 수가 없어졌어.
-‘What’s Wrong’, <Give Me Your Shoulders, Pt. 1>
<Now, Not Yet>과 함께, 하프얼라이브 표 비디오의 스케일이 커진 느낌을 받았었다. 구체적 픽션 서사를 지니거나(‘RUNAWAY’) 보다 범위가 넓은 추상 예술 뉘앙스를 입기도 했다(‘ok ok?’, ‘Pure Gold’). 도입부에 언급한 <in Florescence> 작업을 통해 실험을 지속하는 듯 했는데- 이후 오랜만의 신곡인 ‘What’s Wrong’ 비디오는 오히려, ‘still feel.’이나 ‘arrow’ 때의 빈티지한 아기자기함이 묻어난다. 방에서 방으로 돌아오는 구성은 아주 초기 곡 ‘The Fall’ 비디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소품 등의 배경 구성이나 연출은 더 촘촘해졌고, 새로운 아트도 보인다. 사운드에 여백이 있는 브릿지 파트. 페이스페인팅을 한 맴버들의 얼굴이 어두운 배경에 겹친다.
턱시도를 입은 화자(조쉬)는 마음 속을 돌아다니고, 앞에서 언급한 ‘Move Me’ 클립과 유사하게 편지를 들여다보며 회상하고, 전화를 걸고, 감정과 ‘싸우고’(일대일 무브 파트) 혼란스러워하고(플래시 파트), 마주한다(페이스페인팅 파트). 결국 깨어나, 다시 원래의 방으로 돌아온다back around. 마음을 시각화한 비유로 꽉 차 있는 가사를, ‘방’ 컨셉의 비디오를 통해 정말 ‘보여주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Everything Machine’의 화자는 호소하지 않는다, 반대로 상대를 향해, ‘내가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사운드가 다른 곡들에 비해 쿨하고, 보컬도 상당히 건조하게 누른 편이라 그런지- 언뜻 “네가 원하는 건 바로 나잖아, 네 눈에서 보여”라며 가볍게 끌어당기는 듯도 한데, 그리 간단하진 않다. “나는 네 두 번째 본성, 절대 네 옆을 떠나지 않아. 난 자라는 암세포야, 잠이 오지 않는 밤엔 네 천장이고. 난 네 세로토닌, 네 불타는 눈동자. 울지 마, 오늘 밤 여기 내가 있잖아.” 아니 이런, toxic하게 유혹적인 표현들을 하프얼라이브의 가사에서 보게 될 줄이야.
I could be your world, every single dream
I’ll be your everything machine
You know, you know
That when your faith is gone, got me to believe in
When people let you down, I’m here, you know
네 세상이 되어 줄 수 있어, 꿈 하나하나가
네 ‘만능 머신’이 될게
너도 알잖아, 알잖아
믿음이 사라졌을 때, 날 믿어도 돼
사람들이 널 실망시킬 때, 내가 여기 있어, 알잖아
-‘Everything Machine’, <Give Me Your Shoulders, Pt. 1>
여기서 ‘you know’는, ‘you all know’로 들리기도 한다. 귀의 착각이거나 발음의 독특함일 수도 있다. 허나 의도 된 바라면, 그 대상이 특정한 사람에서 여럿, ‘누구나’까지 확장된다. 어쩌면 ‘me’는, 인격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어떤 ‘기계/미디어/중독적 대상’이거나(iDKHOW-‘Sugar Pills’ 바이브), ‘네 속의 또 다른 너’가 될 수도 있겠다. 이렇게 해석하면 다른 트랙들과 동떨어지게 되는데, 구분을 위해 사운드를 일부러 튀게 뽑은 것이라면, 이쪽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반면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고, 자신과 닮은, 이해하고 곁에 있을 상대를 향한 메시지로 읽을 경우, 이 관계와 감정이 이후 트랙들에서 단단해지고 깊어진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다. 노래하는 투 때문인지 살짝 위험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위험’하면, 안 ‘건강’하면 또 어떤가. 타인의 감정에 흠뻑 젖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I’m patient when you’re in pain난 네가 아파할 때 참고 기다릴 수 있어.”
Hold you in my hands like hot tea
Knowing I’m safe cause you want me
Sitting in a garden at your feet
You me, only, holding on and on
널 내 손 안에 쥐고 싶어, 따뜻한 차 같이
안전하다는 걸 아는 채로, 네가 날 원하니까
정원에, 네 발에 앉아서
너와 나, 오로지, 계속 서로를 안은 채로
-‘Hot Tea’, <Give Me Your Shoulders, Pt. 1>
“사랑에 의해 망가지고 싶어, 평화의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싶어.”, “네 두 발에 앉아 에너지를 다 빨아들여, 지금 당장은 지나치게 가까이 있고 싶어.” ‘Hot Tea’에는 파괴와 치유가 동시에 있다. 뮤직비디오로 감상하면 또 느낌이 다른데, 사운드의 차분함/따스함과 가사에 감지되는 위태로움, 이미지의 격렬함/서늘함이 묘하게 섞인다. 자연스러운 컬러 혹은 은은한 흑백을 입은 플롯 몇이 번갈아 나오는데, 완전히 분리된 서사를 지닌 것 같진 않다. 공연을 하거나, 조쉬 홀로 야외에서 강한 감정이 담긴 무브를 하기도 하고, 비닐에 싸여 노래하거나 달리기도 한다. 마지막, 셋은 높은 사다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채다. 반투명한 비닐이 벽처럼 가리고 있어 실루엣만 보인다. 카메라가 그들을 서서히 클로즈업하는데, 별안간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아마도)조쉬가 뒤로 훅 떨어진다. 그로테스크한 서늘함이 속으로 파고드는데, 따스하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Hot Tea’의 감정이 더 상호 밀접하게 나아가 ‘Move Me’에 도달했다고 봐도 될까. 화자는, “내가 너무 빨리 살고 너무 일찍 죽길 바라는 거 알잖아”라며, “내 길을 찾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고 묻는다, 사실 충분하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넌 내가 과거를 꺼내도록 해 줬어. 내가 뭘 그렇게 간절히 바랐는지 깨닫게 됐어.”, “내가 사랑이라고 여겼던 것에 익숙해지는 동안, 넌 날 웃게 만들었고, 난 끝나지 않았어, 완성될 수 없었어, 가진 게 충분하지 않았거든.”
Be my train in where I stand
Would you be my song when I can’t dance?
Light my fire and burn the trees
No, I won’t get tired when I can’t breathe
기차가 되어 줘, 내가 서 있는 곳에
내 노래가 되어 줄래, 내가 춤 출 수 없을 때
불을 붙여 나무를 태워 줘
아니, 지치지 않을 거야, 숨 쉴 수 없어도
-‘Move Me’, <Give Me Your Shoulders, Pt. 1>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너’를 만났고, 그게 다가 아님을 깨달아서, 다른 누구 아닌 네가 날 움직여 줬으면 한다,고 털어놓는 걸까. 차원이 다른 -로맨스로 한정되지 않는 복합적 관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다. ‘너’는, 누구라도 좋은 것,은 아닌 동시에, 누구든 될 수 있다. “I want you to move me네가 날 움직여/감동시켜 줬으면 좋겠어”는 좁게 보면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이를 향한 고백이지만, 넓게 보면 하프얼라이브의 작품을 마음에 담는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다. 홀로 변하기보단 타인의 영향을 받기를 원하는- 수동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기를 적극적으로 바라는- 그 태도는 곡 자체에도, 그것을 ‘시청’자에게 전하는 모양에도 있다.
‘Back Around’는 자연과 계절의 이미지로 내면을 표현하며,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갈무리한다. “잎들과 함께 죽어가며, 다시 돌아오고 있어.” 화자는 ‘계절의 흐름’을 따라, ‘다시 돌아온’다. “비로 발자국을 다 지우고, 집(마음이 머무를 곳)을 다시 찾기 위해 길을 잃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에 대한 애정, 타인과 거리를 두고 홀로 남아, 마음을 소중히 들여다보겠다는 결심을 묘사하는 듯 하다.
I’ve been on my own, but trust me, I’m okay
Just need some time to think, I need to walk it out
I know that you love me, but I don’t think you can help me
Let me walk in circles, I’ll be back around
홀로 있었지만, 정말이야, 난 괜찮아
그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야, 여기서 벗어나야 해
날 사랑하는 걸 알지만, 네가 도울 순 없을 거야
순환하며 걷게 해 줘, 다시 돌아올 테니
-‘Back Around’, <Give Me Your Shoulders, Pt. 1>
사랑이란, ‘당신은 내 유일한 친구’(Make of It)라고 느끼는 것, ‘우연히 찾아내 영원히 입게 되는’(Summerland) 것, ‘가슴 속에 쌓인 먼지를 꺼내는’(What’s Wrong) 것, ‘당신의 고통에 참을성을 지니겠다’(Everything Machine)고 선언하는 것, ‘상대와 함께 망가지고 또 안전함을 느끼고 싶은’(Hot Tea) 것, ‘상대가 나를 움직이기를 바라는’(Move Me) 것이다. 그리고 때론 타인과 거리를 두고, 홀로 자신을 들여다본 후, ‘다시 돌아올 필요가 있는’(Back Around) 것이다. 하프얼라이브는 그렇게 일곱 트랙의 흐름으로, 사랑의 감정과 관계를 풀었다.
그리하여 ‘Give Me Your Shoulders’는, 사랑에 대한 성찰이다. ‘어깨’는 복수형, 그 주인은 앞에서 말했듯- 누구라도 좋은 것,은 아닌 동시에, 누구든 될 수 있다. 대상이 연인이든, 여럿의 타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결국 사랑은, “Give me your shoulders네 어깨를 내어 줘”라고 말하는 것이다. 네 어깨를 내어 나를 위로해 달라는 의미로도, 내가 너의 어깨를 감싸겠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하프얼라이브는 먼저 자신들의 어깨를 내어 주었다. 그렇게, 또 한 편의 공감/치유/함께의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있게alive 하였다.
“Give Me Your Shoulders 는, 여러 층의 밀접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체의, 감정의 & 영혼의. 어깨는 본성nature과 밀접한, 심장과 가까운, 강함의 장소이자 & 연약함vulnerability의 표현tell입니다. 얼마나 안전함을 느끼는가 & 당신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상징입니다.
To shoulder 란 책임감을 받아들이는, 무게를 건네는 일 입니다. 사랑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것what you cannot carry을 넘기는. 조건 없이 타인의 짐을 받아들이는. & 스스로를 사랑의 창작자author와 결합시키는 & 영혼의 안식을 찾는 행위입니다."
-half•alive, instagram /halfaliv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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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1이라 함은 Pt. 2도 있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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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Machine’ 비디오가 (만들 예정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무지 기대된다.
* 이전 하프얼라이브 글
https://brunch.co.kr/@yonnu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