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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Feb 09. 2022

반쪽의 삶들이 만났을 때

<퍼스트 카우>(2019)




<퍼스트 카우(First Cow)>(2019, 감독: 켈리 라이카트)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회의 땅이라는 서부, 그곳의 ‘기회’는 자본과 권력을 기반으로 한 착취가 만든다. 젖소와 우유는 그 상징이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소를 ‘소유한’ 자는 대장. 그는 매를 맞는 자가 잃을 노동력과 그것을 보는 다른 일꾼들이 겁을 먹고 더 내놓는 노동력을 저울질한다. 사형도 때로 효율적일 수 있다는 말을, 유행하는 패션처럼 그저 이야깃거리로 삼는다. 내키는 대로 부리고 죽이는 인부들처럼, 소는 그에게 재산에 불과하다. 굳이 먼 길을 데려온 까닭은, 자신이 어디서든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아니 과시라는 의식을 할 새도 없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다. 우유를 ‘도둑맞았음’을 깨달은 대장은 분노한다. 그 당연한, ‘불가침한’ 권력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퍼스트 카우>(2019). 왓챠피디아.


두 사람은 우유를 훔쳤다. 그러나 대령이 아니라 소에게서다. 소와 그의 젖은 애초에 인간의 것이 아니다. 설명할 말주변은 없어도 쿠키는 어쩐지 그것을 아는 듯하다. 마음을 졸이며 젖을 짜는 와중에도 소를 살피며 미안하다는 듯 말을 건다. 그게 쿠키다. 사람의 됨됨이는 혼자 있을 때 드러나곤 한다. 뒤집어진 도마뱀을 조심스레 바로 놓아주곤 하던 그는 위기에 처한 사람을 망설임 없이 돕는다. 쿠키는 동료들에게 심부름꾼 취급을 받고 때로 괴롭힘까지 당해도, 늘 묵묵히 먹을 것을 구해 온다. 그렇게 번 돈으로 사 소중히 신은 부츠를, 주변에서 멋지다며 부러워하자 흙과 바지로 가린다. 위스키 값을 물으며 가진 은화를 죄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민다. 모르는 남자가 맡긴 아기를 열심히 지켜본다. 편하게 있으라는 말을 듣고도 괜히 비질을 하고 이불을 턴다. 저리 착해 빠져 어찌 사나 갑갑한, 그것이 쿠키의 매력이다. 당장 잘 곳이 없어도 어색하게 술 한잔을 주문하고, 남의 집에 쭈뼛쭈뼛 들꽃을 가져다 놓는 낭만이 그에겐 있다. 그런 행동을 비웃거나 무시하지 않는, 이해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이가 킹 루다.​


킹 루는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 친구의 배를 가른 인간들에게 총을 쏘고 도망치는 이다. 불평등을 언어로 정리해낼 통찰력과, “소가 내 혈통보다 좋네.”라며 현실을 웃어넘길 유머와 여유가 있다. 농장이나 호텔을 세우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알아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체념하기보단 ‘더 나은’ 앞날을 궁리한다. 어딘가 정착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늘 계획을 세우고 이것저것 시도한다. 기술을 지닌 것은 쿠키이나, 우유를 훔치자고 한 것도, 그것으로 반죽한 빵을 팔자며 판을 벌린 것도 킹 루다. ‘중국의 신비로운 비밀 레시피’라고 재료를 둘러대며 오리엔탈리즘을 적절히 이용할 정도의 재치와 배짱이 있는 사람이지만, 어딘가 어설프다. 불을 피우겠다며 여유롭게 나가놓고는 장작을 패는데 애를 먹고, 망을 보겠다고 해놓고 나무에 제대로 오르지도 못한다. 쿠키는 그런 그를 묵묵히 기다리거나 돕는다. 우연히 만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생긴 인연, 두 사람은 잘 맞는다.

<퍼스트 카우>(2019). 왓챠피디아.

 

오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쿠키와, 내일을 꿈꾸고 계획하는 킹 루, 그들은 자신이 그린 현재와 미래에 친구의 자리를 마련해 놓는 이들이다. 의견의 차이가 있어도 싸우지 않고, 일이 잘못되어도 상대방 탓을 하지 않는다. 쿠키는 머리를 다치고도 친구를 찾아야 한다며 길을 나서고, 킹 루는 돈을 챙긴 후에도 도망가지 않고 집 주위를 맴돈다. 쿠키가 나무에서 떨어진 킹 루를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킹 루는 머리를 다친 쿠키를 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욕심 많은 손에 잡혀 살해당하는 대신, 나란히 누워 고요한 죽음을 맞이한다.


대장의 집, 지식과 권력을 자랑하던 남성들이 방을 나가자마자, 자기 말을 하지 못하고 대화를 옮기거나 뒤에 조용히 있던 여성들은, 서로의 옆에서 허물없이 웃는다. 쿠키가 만든 빵을 게걸스럽게 쓸어 담던 남자들은 그들의 집을 신나게 부수지만, 새치기를 당해 빵을 맛보지 못한, 늘 어리숙하다며 핀잔을 듣던 젊은이는 비틀거리는 쿠키를 보고도 모르는 척 한다. 머리를 다친 쿠키를 구해 준 것은 안면도 없는 원주민 할아버지. 완전히 탐욕스럽지 못한, 가진 것 없는, 권력에 눌리는, 타인을 위할 줄 아는 이들을, 거친 땅이 쓸어가지 못한 우정을, 작품은 모아 담는다.


<퍼스트 카우>(2019). 왓챠피디아.



세월이 흘러 뼈밖에 남지 않은 두 형상. 그들이 어찌하여 그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두 사람이 만나 살다 결국 함께 죽는 이야기다. 가진 것 없어 ‘반쪽의 삶’을 살던 그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든 것은 빵이나 돈이 아닌 우정. “새에겐 둥지, 거미에겐 거미줄, 사람에겐 우정.” 처음에 인용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문장을, 작품은 고유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명료하게 풀어낸다.



+조나단 레이몬드가 쓴 원작의 제목이 ‘The Half-Lif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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