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감독: 김동령, 박경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박인순과 박경태, 김동령의 세 번째 작품이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시놉시스.
시놉시스에는 작품을 만든 이가 셋이라고 적혀 있다. 오래 전부터 기지촌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온 두 감독은, 이 작품이 박인순씨의 그림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에 죽음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가 죽음과 대면하는 것을 찍자고 생각했고(김동령),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라는 제목도 그의 그림으로부터 왔다고(박경태). [reversemedia.co.kr]
“자기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꼭 기지촌에 있는 사람에게서 들으려고 하는 태도가 있었다.”
-김동령, 인터뷰 손시내, [reversemedia.co.kr]
내레이션 목소리가 달라지며 시작되는 두 번째 플롯은, 언뜻 ‘보통의’ 다큐멘터리인 듯 보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교수와 함께 인순을 취재하러 온 포토그래퍼. 소개를 받고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 취재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진다. 그는 인순이 글도 모르고 하는 말의 앞뒤가 다르다는 교수의 말을 옮기며, 그의 말보다 그림이 더 ‘흥미롭다’고 표현한다. ‘재미있는’ 전시 구상이 떠올랐다며, 다시 홀로 인순의 집을 찾는다. 동네를 돌며 사진을 찍던 그는, 전에는 아마 술집이었을 터를 ‘발견’한다. “다른 작가가 발견하기 전에 얼른 작업을 시작해야겠다.”며 붙은 사진과 전단지를 뜯어내 챙기다, 창문 너머로 ‘꽃분이’를 보고는 도망친다.
“꽃분이는 옛 친구를 보고 반가워 인사를 건넸다.” 그 내레이션 뒤에 꽃분이는, 인순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욕을 퍼붓는다. 원한밖에 남지 않아서일까. 인순은 그저 보고, 지나간다. 두려워하지도 쫓아내지도 않는다. 꽃분이는 살아 있던 때처럼, 당구공을 정리하고 술을 따른다. 그 꽃분이와, 다른 꽃분이가 있다. 크레딧에 꽃분이1, 꽃분이2로 적혀 있는 이들이다. 이름도 이야기도 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너무 많아, 다 하나같이 꽃분이가 되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저승사자들마저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작당질”을 한다. 산 자는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귀신을 숨겨 준다. 꽃분이는 창문을 넘어 인순의 집으로 들어가고, 인순은 꽃분이의 손에 고구마를 쥐어 준다. ‘동료들의 피를 빨아 건물을 사들인’ 집주인은, 창문 너머로 웅크려 있는 꽃분이를 보고 조용히 돌아간다. 인순은 저승에 갈 방법을 알고 싶어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러 왔다고 하였다. 그는, 저들을 동정해 저승으로 데려가려 ‘산 자를 위한’ 이야기를 만드는 저승사자들에 대항해, ‘죽어도 저승에 가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왜 이 이야기는 살아남지 못했는가’를 질문하게 됐다.”
-김동령, 인터뷰 손시내, [reversemedia.co.kr]
이상한 다큐멘터리다. ‘대상’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겪은 일을 파헤치는 것. 작품이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다. 대신 박인순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 속의 박인순을 박인순이 연기하도록 하였다. 그는 생사를 뛰어 넘어 친구들을 만나고, 시간을 뛰어 넘어 남편에게 복수하며, 죽음과 만나 도깨비가 된다. 산 자가 다른 산 자의 이야기를 빼앗는 곳에서, 이야기를 빼앗기고 살아가는 자들. 죽어야만 나갈 수 있다는 뺏벌에서, 죽고도 나가지 못하는 자들. “뺏벌의 진짜 주인”이라던 그 무덤들의 이야기를, 누구의 목소리를 통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가. 작품을 만든 이들은 그것을 무겁게 고민했으리라.
“My pain is not your art project.우리의 고통은 당신네들의 아트 프로젝트가 아니야.”
-Angelica Ross, 20200601, at instagram live with Cody F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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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그냥 써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감독들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읽었더니 내가 덧붙일 말이 별로 없었다.
“그런 일들이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졌고, 동두천이라는 곳은 도대체 어디까지 착취당하는 걸까 싶더라. 그렇게 그 인물이 탄생하게 됐지만, 사실 그 안에는 우리의 모습도 들어있다.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지. 이 영화에서는 그런 외부의 교수나 작가, 저승사자들이 각자 박인순을 자기 언어로 정의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걸러진 수준의 정보나 이야기로는 접근할 수 없는, 그 밑에 숨어있는 엄청나게 욕망 가득하고 모순적인 세계가 있다. 박인순이 원하는 이야기는 피해자다운 비참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거다. 자기 운명을 비장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영화에서 나마 이기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김동령, 인터뷰 손시내, [reversemedia.co.kr]
* 참고 인터뷰
http://reversemedia.co.kr/article/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