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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Feb 28. 2022

역할극과 ‘선’

<나이트메어 앨리>(2021)




<나이트메어 앨리(Nightmare Alley)>(2021,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가 훌륭한 스릴러인 까닭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서가 아니다. 결말을 예측하도록 복선을 차근차근 깔아주며 서서히 옥죄기 때문이다. 스탠튼이 개인의 특징을 파악해 독심술 흉내를 내듯, 관객은 스탠튼의 행동과 표정을 통해 그가 맞이할 앞날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이트메어 앨리>(2021). IMDB.


지나와 피터는, 속이지만 사로잡지는 않는다. “스스로에게 진짜 능력이 있다고 믿게 되면 위험해진다.”, 스탠튼을 향한 피터의 조언이자, 작품이 던지는 복선이다. 타인을 속이는 자는,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상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스탠튼은 릴리스에게 제안할 문장을 반복해 연습한다. 그는 타인을 속이기 위해 연기를 계속하다 자신도 속는 인간이다. 지나의 쇼를 보고 ‘왜 거기서 그만두었냐’고 물었던 그는, 제 선생들이 ‘선line’을 지키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경고를 무시하고 심령술을 한다. 산 자를 죽은 자의 세계로 끌어들이며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피터에게 메틸알코올을 가져다 준 것이 “실수”라고 하여 그 죽음에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듯(어쩌면 ‘실수’라고 스스로를 속인 것일지도 모른다), 줄리안의 말이라며 꾸며낸, “나중에 우린 모두 만날 거에요”에 별다른 악의가 없었다 하여 킴벌 부부의 죽음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을 사기 피해자,로 단정하기도 힘들다. 아들이 세상의 전부였던 킴벌 부인에겐, 의도가 어떠했든 -‘방아쇠를 당겨도 된다고 허락해 줄’ 한 마디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릴리스는 말한다, “당신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속이는 거에요.” 사람들은 감추는 척 드러내고 싶어하고,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고. 제 죄로 인한 괴로움을 덜려 수많은 타인을 해치고, 돈과 권력을 사용해 그것을 덮으며 살아가는 에즈라. 그는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해 스탠튼을 시험한다. 언뜻 거짓을 밝혀내기 위함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더 완전히 속기 위함이다. 까다로운 의심을 뛰어넘어 자신을 속이고 죄책감을 다독여 줄 사람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스탠튼이 성공하며 그들 사이엔 타인을 속이는 자와 자신을 속이는 자 사이의 암묵적이고 교묘한 거래 같은 것이 성사된다.

 

스탠튼은 이미 선을 넘어 한참 걸어왔지만, 에즈라와의 거래에서도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는 “사이킥”이지 해결사가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구체적인 의뢰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 그럴듯하게 둘러대며 죄책감을 덜어주면 되는 것이다. 돈에 휘둘려 ‘요구를 들어주려’고 하면서, 그는 주도권을 놓치고 “사이킥”의 자격을 잃었다. 에즈라 또한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그는 돈을 건네며 자신의 죄책감과 상실감, 공허감이 줄어들기를 바랐다. 그는 속았어야 했다. 아니-완전히 믿어서는 안 되었다. ‘도리’에게 달려가지 말고 스탠튼의 말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어야 했다. 에즈라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스탠튼의 말을 어기면서, 균형이 어긋났다. 욕심을 부린 두 사람의 거래는 그렇게 서로의 룰 위반으로 깨졌다.


<나이트메어 앨리>(2021). IMDB.


스탠튼이 몰리와 릴리스를 사랑했는지 여부는, 모호하다. “당신에게 온 세상을 줄 수 있어요.” 어떤 상황이든 내 세상을 당신에게 바치겠다는 말로 들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착각했지만, 그 말의 전제는 ‘온 세상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는 ‘필요하다’와 ‘사랑한다’를 섞어버린다. 몰리의 외모와 재능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끌렸다. 둘이 함께 이루어 낼 것들, 그리하여 자신이 상대에게 줄 수 있을 것들을 상상했다. 몰리가 진정 원하는 것,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뭔지는, 상관이 없었다. 예상만큼 ‘필요’하지 않게 되자 몰아세우고, 의견이 갈리자 ‘순진한 여자’라고 여긴다. 그 “사랑”의 방향이 릴리스에게로 틀어지는 건, 당연하다. 몰리가 스탠튼과 함께하기로 정한 순간 역시 그의 임기응변 “독심술” 쇼를 보았을 때이나, 가능성이나 능력 때문이라기보단- 자신을 지켜 주었다는 사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 때문으로 보인다.

 

<나이트메어 앨리>(2021). IMDB.


몰리의 역할은 ‘주인공 남성 옆의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다. 그에겐 스탠튼이 준다던 ‘온 세상’이 필요치 않았다. 그의 세상은 돈이나 지위가 아닌 소중한 사람들, 친구들이다. 카니발을 떠난 것은 스탠튼을 믿고 자신의 세상이 되도록 허락했기 때문이지, “난 여기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지나와 피터처럼, 몰리는 ‘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가 했던 쇼에 붙은 서사는 거짓이지만, 흐르는 전류를 견디는 모습은 진짜, 끝없는 연습의 결과다. 전기쇼를 연습하며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자꾸 견디다 보니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는 언제인지’ 알게 되었다는 몰리. 고통의 원인은 전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탠튼과 처음 키스할 때 그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남자를 허락한 적이 없다”고 말하며, “저항할 수 없었던 적은 있지만” 이라고 덧붙인다. 몰리는 그렇게 상처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정한 기준을 따른다. 스탠튼이 자꾸 선을 넘으려 하자, 분명한 언어로 설득하고 분노한다. 무리한 요구를 하자 떠난다. 마음을 돌린 것은 연민 때문, 마지막 쇼를 시작하기 전 그는 똑똑히 말한다, “I had enough.” 스탠튼이 사람을 해치는 광경을 목격하자 두 번째로, 그리고 완전히, 떠난다. ‘I had enough’는 ‘더 이상 못 견디겠어’로 번역되었다. ‘그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호소라기보단, ‘그러니까 이만하면 됐다’는 -더 이상 이 짓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스탠튼은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고 나 또한 그렇다”며 릴리스와 자신을 한 카테고리로 묶는다. 둘 다 타인의 마음을 쥐고 대가를 얻으므로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 구분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릴리스와 몰리가 더 닮았다. 스스로가 감당하고 견딜 수 있는 정도와, 멈추어야 할 때를 아는 이들이다. 릴리스의 가슴에는 큰 흉터가 있다. 그 또한 몰리와 같이, 견디고 견디다 보니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스탠튼이 에즈라와 엮이려 할 때 그는, ‘나는 빼달라’고 선을 긋는다. 벽장에 숨긴 녹음기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지키는 수단이다. “I DO love you.” 릴리스가 처음부터 스탠튼을 속일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도 몰리도, 스탠튼과 달리 사랑의 감정을 다른 것들과 구분할 줄 안다. 몰리는 스탠튼을 사랑하면서도 그를 떠나고, 릴리스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이용한다. 스탠튼이 지켜주려고 했던, ‘순진한 여자’라고 일컬었던 몰리와, 강한 척 한다고 비꼬았던 릴리스. 그들은 거짓과 기만, 각자의 입장과 고통으로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강함’을 찾은 이들이었다. 스탠튼은 그렇지 못했다.


<나이트메어 앨리>(2021). IMDB.



카니발 맴버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속일지언정,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며 자유롭고 평등한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 갇혀 학대 당하는 “기인”을 외면했다. 서로를 속고 속이는 세상, 대부분의 인간은 적당히 속은 후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허나 어떤 이들은 한 번 속은 대가로 “내가 아닌” 존재가 된다. ‘최하’의 삶, 스탠튼은 그것이 자신을 덮칠까 두려워, 최대한 멀어지려고 애썼다. 그는 처음부터 “기인”을 보기 힘들어했다. 클렘의 ‘방법’을 듣고는 질색했다. 그 표정에는 착취를 목격하고 느낀 끔찍함이나 안타까움 외에,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클렘은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며 “기인”을 보는 까닭은 ‘자신이 더 낫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스탠튼의 두려움은, 어떤 동질감에서 나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도망간 “기인”을 우리에 잡아넣는 것을 돕고, 말이나 담배를 건네며 연민했으나 풀어 주진 않았다. 그가 자유의 몸이 되어 동등한 위치에 서는 순간, 자신에게도 그처럼 될 가능성이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던 까닭은, 위험을 느껴서다. 가까이하게 되면 절제하지 못할 것을 예감하여, 아예 시작하지 않았다. 헌데 절제하지 못한 것은 술만이 아니었다. 그는 “기인”도 에즈라도, 누군가 말리거나 쫓아올 때까지 계속 때린다. 주먹처럼, 쇼도, 돈에 대한 욕심도, 끝을 볼 때까지 내지른다. 술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마지막 지표였다. 릴리스와 키스한 후 그는 처음으로 술잔을 든다. 선을 넘었는지 여부조차 신경 쓰지 못할 정도의 상태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입에서 술냄새를 풍길 때, 숨어 들어간 기차 칸에서 닭장에 둘러싸여 잠을 청할 때, 술을 더 마시기 위해 시계를 팔 때, 작품은 스탠튼이 최후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스탠튼의 악몽에 반복해 등장하던 과거의 환영은, 미래의 예측이기도 하다. 결국 또, 구덩이로 무언가를 밀어 넣고 불을 붙이게 된다. 이번에 태우는 것은, 아버지의 시체가 아닌 살아있는 자신이다. 아버지를 죽이기 전 스탠튼은 그에게서 시계를 앗았다. 시계를 술과 맞바꾸는 건, 삶을 포기했다는 제스처다.


<나이트메어 앨리>(2021). IMDB.


스탠튼은 돌고 돌아 다시 ‘에녹’을 마주한다. 품은 배를 죽이고 세상에 나온 존재, 그는 메틸알코올에 갇혀 영원히 카니발에 ‘전시’된다. 스탠튼은 그에게서 제 운명을 감지했을 것이다. ‘운명’은, 운보다는 개인의 행동 패턴에 따른 예측. 지나가 행맨 카드를 점치며 말했듯, 선택의 여지는 있었다. 스탠튼은 카드를 뒤집음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거부했다. 저를 낳은 아버지와 가르친 피터를 해하고 세상으로 도망갔던 그는, 결국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에녹 앞으로 돌아왔다. 카니발 주인에게서 귀에 익은 제안을 듣고는 마구 웃는다, 그게 바로 나,라고 말한다. 슬픈 자조다.

 

스탠튼은 스스로 얼마나 감당할  있고 어디까지 견딜  있는지, 선을 넘고 걸어가 절벽에 닿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다. 돈과 권력으로 둘러싸여 안전해 보였던 킴벌 부부나 에즈라도, 선을 넘은 스탠튼과 과거에 묶인 채로 엮이며 최후를 맞았다. 그들이 나가떨어지고  세상엔 여전히 갖가지 형태로 타인을 속이거나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이 남아, 거래와 게임을 지속하고 있을 것이다.

 

<나이트메어 앨리>(2021). IMDB.




+

사실 오로지 덕질을 위해 관람한 작품이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 루니 마라, 케이트 블란쳇, 토니 콜레트, 아니 이름만 들어도 현기증이 나지 않나.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함께한 씬이 거의 없어 무지 아쉽다. 토니 콜레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투샷도 없었다! 그러니까 셋이 하나 더 찍어야 된다. 감독은 또 기예르모 델 토로 아니면 토드 헤인즈. 토니 콜레트도 벨벳 골드마인으로 함께 작업했던 적이 있으니, 무리한 상상은 아니지 않을까. (우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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