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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리운 지버리시들

by 않인



. 못 본 작품들이 많다.

글을 쓰는 기간에는 20분-시트콤 이 아닌 픽션을 보지 않고 집중이 되든 안 되든 붙잡고 있는 나쁜 버릇이 들었다. 그래서 상영 중에 보지 못하고 지나간 영화나, 스트리밍 플랫폼 제휴 기간 중에 보지 못하고 지나간 드라마들이 종종 생긴다. 왜 또 갑자기 이걸 아쉬워하냐면, 이상한 놈 아담 새클러에 환장하다가 글 쓸 게 생겨서 한동안 잊고 있었더니 걸스가 왓챠에서 사라졌고, 또 늦게 배운 맷 머독에 날 새는 줄 모르다가 또 뭐 쓸 게 잔뜩 있어서 한동안 안 봤더니 데어데블이 넷플릭스에서 사라져서 그렇다. n개월 후의 나는 아마 디즈니 플러스와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은 hbo 맥스까지 구독하고 있을 것 같다. 가스파르 울리엘 유작은 봐야 하니 문나이트 공개되면 디즈니 플러스는 구독해야 한다. 그리고 미드나잇 맨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봐서 머릿속에 단단히 새길 거다.


. 십이 년 전 영화 속 그를 보았다.

지루한 컷들과 갑갑한 자막 사이에서 주연 배우 몇의 연기는 빛났는데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가스파르 울리엘이 저리 어중간하게 길고 끝장나게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우수에 찬 눈빛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노잼이라는 것조차 잊고 내내 숨을 죽이며 감질맛나게 등장하는 그의 실루엣을 감상하고 나니 갑자기 허해지고 말았다. 십이 년 후의 그가 영영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 어쩌면 옅어졌을 머리색과 풍부해졌을 주름 그리고 더 아득히 깊어졌을 눈빛 같은, 오지 않을 미래의 것이 그리웠다. 가장 그리운 것은 그에게서 사라진 날들이다. 이건 이기적인 팬의 얕은 상실감일 뿐이다.


<La Princesse de Montpensier>(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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