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어질 결심>(2021, 박찬욱)의 애매한 스포일러
보기 전 주저리
박찬욱 필모그래피를 깨진 않았다. 유명한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를 안 봤다. ‘박찬욱 영화를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박찬욱 영화를 본 적은 드물었다. 그의 영화엔 늘 관심이 가는 배우가 한둘씩 나왔고 그게 관람을 결심하는 주된 이유였다. <JSA 공동경비구역>과 <복수는 나의 것>은 신하균,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임수정, <아가씨>는 김민희, <스토커>는 미아 바시코브스카(였지만 보고 매튜 구드에 빠졌다). <리틀 드러머 걸>이 나왔을 무렵엔 이 감독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간 상태였으나 플로렌스 퓨가 아니었다면 시청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단편 <일장춘몽>은 박정민. 늘 완전히 취향인 것은 아니었으나 취향을 아주 만족시키는 부분들이 있는, 저 감각을 누가 따라가겠냐는 감탄이 나오는 작품들이었고, 사랑하는 배우들은 그가 구성한 화면 속에서 색다르고 또 대개 입체적으로 빛났다. 내가 박찬욱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게 된다면, 그 메인 까닭은 아마 그것과 관련이 있을 테다. 그들 고유의 매력을 잘 담아낼 줄 안다거나(ex: 김민희) 이제껏 목격하지 못했던 그들의 면을 끌어내 준다는(ex: 매튜 구드). <헤어질 결심>은 박해일이었다. 그러니까, 박해일이 박찬욱과 영화를 찍었다는데, 포스터 속의 눈이 저렇게 슬프니 안 볼 수가 있나, 대충 그런 느낌.
보고 (엉엉 울고) 난 후 주저리
나는 마침내, 박찬욱을 좋아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박해일에 의해 붕괴되었다.
박찬욱 전문가 많을 텐데 내가 굳이 말을 더 붙일 필요가 있을까? 한 번 더 봐야만 할 작품이고, 그래야 쓰고 싶은지 아닌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끝없이 밀려 들어오는 여운을 내보내지 않고 이 망가진 상태를 그저 유지하고 싶다. 만약 쓰게 된다면 주로 영화 안의 말을 빌려오게 되지 않을까. 물에 잉크가 번지듯 서서히 무너지고 깨어지는 사랑, 꼿꼿하게 당신의 미결로 남을 결심, 뭐 이런 식으로. 그래 영화에 다 들어 있는데 뭘 또 끄적인다구 그래. 어쨌든 당장 정리된 글을 쓰려는 시도를 하면 다 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속에서 넘쳐 흘러나온 것들만 대강 추슬러 보도록 하자.
폼 잡거나 무게 잡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품위 있다.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의 연결이나 절묘한 구도며 정교하고 역동적인 카메라 회전 좋고… 인물의 심리나 욕망을 화면에 구현해 버리는 것도 너무 좋았다(그러다 나중에 눈오는 산의 장면은…). 박찬욱의 작품에는 종종 섹스나 키스를 하지 않음에도/않아서 더- 몹시 야해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다(뭔지 알잖아). <아가씨>에서 숙희가 히데코의 이를 갈아주는 씬, <스토커>에서 찰리와 인디아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씬….. 여기서는 하나는 아닐 텐데, 일단 서래와 해준이 숨소리를 맞추는 씬이 있다. 눈산에서의 키스씬은 야하기보단 아리다.(두 번째 관람 이후 덧붙임: 모든 장면의 두근거림에는 슬픔이 섞여 있음을 깨달았다. 야한 것은 없다, 모조리 아릴 뿐이다.)
서래의 한국말이 능숙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대화 사이의 여백과 긴장, 오역(심장과 마음), 익숙한 표현을 생경하게 와닿게 하거나 곱씹게 하기… 탕웨이의 또박또박하려 애쓰는 한국말은 박해일의 약간 옛날 사람 같이 부드럽고 분명한 말씨와 몹시도 잘 어울렸다. 서래와 해준은 가끔 일상에서 말할 것 같지 않은 표현들을 뱉는데, 특유의 말투 덕에 어색하지 않고 독특하게 와닿는다. 또 늘 사연 있어 보이는 탕웨이의 눈동자는 그 사연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할 듯한 박해일의 눈동자와 너무나 최고의 조합을 이룬다. 후반부에는 거의 가슴을 부여잡고 봤다.
+
서래가 현대인 같지 않게,라고 했었지… 그렇다. 박해일에겐 좀 옛날 사람 같은 분위기가 있다. 할아버지 영감님 같다. 스크린에서 그를 볼 때 무너지게 되는 까닭 중 하나다. 고아라 작가의 <마음의 숙제>가 영상화 된다면 윤봉원은 절대 박해일이 연기했으면 한다는 바람이 퍼뜩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