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thrust
Slothrust
- <Parallel Timeline>(2021)을 중심으로.
‘Slothrust’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을 처음 본 것은 Sons of an Illustrious Father와의 크로스 커버 미니 앨범에서였다. 서로의 곡을 리메이크한 트랙에 각자의 색이 뚜렷하게 드러나 인상적이었다. 감정의 응어리와 자유로운 에너지가 가득해 곧 터질 것만 같던 선즈~의 오리지널 ‘U.S.Gay’는, 여유 있고 기승전결이 분명한 반주와 담백하고 몽롱한 보컬로 색다른 옷을 입었다. 전에 Slothrust의 곡을 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완전히 선즈~의 곡이 되어 버린 ‘Horseshoe Crab’의 오리지널이 대강 어떤 사운드를 기반으로 할지- 예상되면서도 궁금해졌다.
Words make less sense to me these days
Faces look flat and unfamiliar
Do you wanna rest forever?
Underwater, it gets better
When I get better, I’ll treat you like I used to
I’ll do the things you want me to
요즘 내겐 말들의 의미가 덜 와닿아
얼굴들은 밋밋하고 낯설게 보여
영원히 쉬고 싶어?
물 밑으로 가면, 더 나아질 거야
내가 더 나아지면, 널 전처럼 대할 거야
네가 바라는 일들을 하겠지
Sometimes I feel like I’m a seahorse
Sometimes I think that I’m a horseshoe crab
I don’t have anything in common with myself
Except that I came from the sea, like everyone else did
가끔 내가 해마인 것 같다고 느껴
가끔 내가 투구게인 것만 같아
나 자신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다른 모든 이들처럼 바다로부터 왔다는 것 말고는
It is so unfamiliar now
Everything is so unfamiliar now
지금 아주 낯설어
지금은 모든 게 아주 낯설어
- ‘Horseshoe Crab’, <Everyone Else>
반주는 어쿠스틱하고 보컬은 선즈~ 버전과 달리 감정과 거리를 두듯 붕 떠 있다. 포인트 기타 리듬의 끝에 어긋나듯 튕기는 음이 흥미롭다. ‘허기는 증상이라고 배웠어, 나쁜 행동을 수반하는. 어젯밤 내 혀를 깨물었어, 베개에 피를 묻힌 채 일어났지, 갈증과 함께’로 시작하는 가사는,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갈수록 바다의 색을 더한다. 어떤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세상과 상호작용을 한다기보단, ‘모든 게 낯설어’라는 표현처럼 비자발적으로 자아나 개성을 잃어버린 뉘앙스다. 사고 흐름에서 디프레션이 읽히나, 그게 다는 아니다. “나 자신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다른 모두처럼 바다에서 왔다는 거 말고는”. 자신을 낯설게 봤다가, 다시 전체로 환원 시킨다.
맴버는 Leah Wellbaum, Will Gorin, Brooks Allison으로 셋. 주로 보컬/기타 포지션의 리아 웰바움이 곡을 쓰고 다른 맴버들과 함께 구체화하는 듯하다. ‘slothrust: 나태+녹슨’이라는, 상당히 뚜렷한 분위기를 지닌 이름이지만, 커버의 시그니처는 이와 상반되게 늘 선명한 글씨체로 인쇄되어 있다. 이 조합은 슬랏th러스트가 주로 사용하는 보컬과 리릭의 조합과 통한다. 보컬은 시그니처와 같이- 정확한 발음과 곧은 창법을 사용해 정방향으로 내보낸다.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강렬하나 늘 담백하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가사가 대부분 귀에 들어올 정도인데- 내용은 네이밍의 뉘앙스와 닮아있다. 우울하고 파괴적이고 종종 기괴하다. 마음 속으로 깊게 내려가지만 닫아걸지는 않으며, 오히려 다른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I’m a man, I’m a machine
Cut me as deep as you want, I won’t feel anything
And I’m alone in my mind
I take it as it comes, I don’t look, I don’t find
나는 남자야, 나는 기계야
원하는 만큼 날 깊게 베어, 난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거야
난 내 마음 속에 홀로 있지
다가오면 난 받아들여, 보지 않고, 찾지 않아
- ‘Travel Bug’, <The Pact>
반주는 하드락/그런지스러운 그룹사운드 위주이고 보컬도 이를 따라가는데- 한 앨범 안에서 다양한 범위를 넘나든다. <The Pact>를 예로 들면 아주 락에 가까운 ‘Double Down’, ‘Peach’, 그런지/펑크 스타일의 ‘Planetarium’, 어쿠스틱 포크 ‘Travle Bug’이 한 앨범에 있다. 그런데, 유독 최근 발매한 <Parallel Timeline>에서는 끝까지 터지는 사운드의 비중이 줄었다. 이전의 계보를 따르면서도, 새로움을 들였다.
“과거에는 우리 라이브 연주에서 가장 밷애스badass한 버전을 포착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레코드를 만들곤 했어. 여전히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텍스쳐texture를 탐색하거나 전에는 하지 않았던 사운드적 선택을 위한 공간을 남겨 놓았어. 아날로그와 디지털한 기술을 추가했지. 우리는 완전히, 관객 앞에서 메테리알material을 이것저것 시도하는 종류의 밴드야, 그렇지만 이번 레코드에서는 분명한 까닭들로 인해 그걸 옵션으로 두지 않았어. 과거 데모들에 시간을 많이 들였어. 중요한 과정이었어, 곡들을 다른 방식으로 배치해 보거나 제작 방향을 달리 해보고, 궁극적으로는 뭐든 곡에 가장 잘 들어맞는 쪽으로 정하는 거지.”
- 리아 웰바움, 2021.09.09, interview by. J. Poet [newnoisemagazine.com]
I don’t want to be like all those other boys
Who tell you that they get you
But we both know that they do not get you
난 그 모든 다른 남자애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
널 이해한다고 말하는 애들 말이야
우리 둘 다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지
- ‘Cranium’, <Parallel Timeline>
‘네 뇌에게 케잌을 사주고 싶어, 천사의 방문이 장식된 걸로 말이야’, ‘손에 꿀을 묻힌 채로 네 머리를 땋아 주고 싶어’, ‘널 위해 눈썹을 뽑아주고 싶어, 우리 할머니의 엔틱한 핀셋으로 말이야’…… 상대에게 해 주고 싶은, 독특하게 구체적인 행위들을 나열한 후 계속해서, ‘배고파? 긴장돼 보여’ / ‘이게 널 아프게 해? 이거 좋아?’ / 혹은 ‘네 마음을 기념하기 위한 시간을 좀 갖고 싶어?’ 등의 질문을 던지며 상태를 확인한다. 몽롱하게 유혹하듯 공기를 많이 넣어 가성으로 내보내는 보컬 역시 내내 차분함을 유지하다- 뒷부분에서는 고조되는 반주와 어우러진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상대를 향해 아주 ‘개인적인’ 위로를 건네는 것 같은데, 듣는 이에게도 친밀하게 와닿는다. ‘나’만을 위한 공연을 관람하는 착각이 든다.
어쩌면 화자가 말하는 ‘너’는, 자기 자신일 가능성도 있겠다. 뮤직 비디오 속 리아 웰바움은, 자꾸 자신을 토닥이거나 구슬에 비친 모습을 들여다본다. 카메라와 내내 눈을 맞추며 꼭 ‘사이킥’처럼 손과 몸을 놀린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교감하려는 듯도 하다. 비디오 후반부에는 다른 공간이 등장한다. 마음 속의 방을 형상화한 듯 초현실적이다. 흰색 오버롤을 입은 리아는 눕거나 기타를 들고 우울한 얼굴을 내보인다.
‘Strange Astrology’ 비디오에도 유사한 정서가 있다. 배경은 색색의 과일에 둘러싸여 있는 잔디밭. 조명 또한 다채롭다. 리아는 정갈하게 진열된 과일들 사이에 누워 있는가 하면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과일 더미에서 굴러다니기도 하고, 그것들을 두드려 보거나 가르고 뭉치고 짓이기기도 한다. 이 또한 감정이나 마음의 모양을 비유한 것일 수 있겠다. 이 플롯과, ‘Cranium’ 비디오 후반부의 배경은 ‘Waiting’ 비디오에서 재등장한다. 전 트랙의 심리적 기반이 연결되어 있는 듯하며, 이전의 앨범들과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Waiting’의 주된 스팟은 이들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꾸준히 등장해 온, ‘바다’다.
보컬을 쭉 들으며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그 유명한 ‘White Rabbit’이 떠올랐다. 물론 아주 드문 스타일은 아니고, 다르지만- 내보내는 방식에 그레이스 슬릭과 유사한 데가 들렸다. 리아 웰바움의 음색에는 올드 사이키델릭에 어울리는 울림이 있어, 그 자체로 ‘뭔가를 말한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 것일까, 재미있게도 ‘White Rabbits’라는 제목의 곡이 있는데, 일단 ‘White Rabbit’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약’에 대한 직접적 레퍼런스는 없다. 사실 유사성은 타이틀에만 있다. 몽롱하게 홀리는 뉘앙스는 없고, 분명한 고통과 의지가 묻어난다. 동일한 소재를 아주 다른 방향으로 풀었다. 처음에는 ‘완전함’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음’을 같은 선에 놓던 화자는, 끝에는 ‘난 완전해’ 뒤에 ‘모든 것을 느낀다’고 덧붙인다.
I’ve been running so long / Searching for something
I’ve been waiting in the dark
I’ve been hiding for so long / Sleeping in shadows
I’ve been waiting all this time
너무 오랫동안 도망쳐 왔어 / 무언가를 찾으면서
어둠 속에서 기다려 왔어
너무 오랫동안 숨어 왔어 / 그림자에서 잠을 자면서
지금까지 내내 기다려 왔어
To let it out / and take it down
Tear it apart / Turn me around
I’m underneath / and up above
I am complete / I don’t feel anything at all
그걸 내보내기 위해 / 그리고 해체하기 위해
찢어발기기 위해 / 날 되돌리기 위해
난 저 밑에 있어 / 그리고 저기 위에 있지
난 완전해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I could swallow the whole cage / Rusting inside me
It’s white rabbits everyday
I don’t care about the pain / I serve it up gladly
In the end it’s all the same
우리cage를 통째로 삼킬 수도 있어 / 내 안에서 녹슬어가고 있는
흰 토끼들이야 매일매일
고통은 상관 없어 / 기꺼이 수행해
끝에 가면 다 똑같아
I’ll let it out / and take it down
Tear it apart / Turn me around
I’m underneath / and up above
I am complete / And I feel everything
그걸 내보낼 거야 / 그리고 해체할 거야
찢어발기겠어 / 날 되돌려줘
난 저 밑에 있어 / 그리고 저기 위에 있지
난 완전해 / 그리고 모든 것을 느껴
- ‘White Rabbits’, <Parallel Timeline>
I went outside to see if I could find a sun or a moon. But all I could pay attention to was a feeling, both exciting and frightening. That something was about to crack open the muted orange mess above to save and destroy us, one at a time and all at once. But still I wait
나가서 해나 달이 있는지 찾아 봤어. 그러나 내가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느낌 뿐이었지,
흥분되면서도 두려운. 소리 없는 주홍빛 메스를 열고 무언가가 갈라져 나오려고 하고 있었어, 우릴 구하고 파괴하기 위해, 동시에 그리고 한 번에. 그렇지만 난 아직도 기다려
- ‘The Next Curse’ (talking part), <Parallel Timeline>
“‘The Next Curse’에서 말하는 부분은, 펜데믹 첫 여름에 LA에서 끔찍한 화재가 발생했던 시기에 쓰였어. 그날 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 리아 웰바움, 2021.11.12, interview by. Jason Brow [hollywoodlife.com]
현실이 예술적 상상으로 이어진 방향이 독특하다. 반주는 기존에 많이 등장했던 하드한 그룹사운드인데 얹은 보컬은 얇은 가성에서 힘있는 종류의 것으로 나아가면서도 내내 차분하다. 후반부 겹치는 샤우팅은 리아 웰바움이 아닌 헤일스톰의 보컬 Lzzy Hale의 것. 가사와 사운드 모두에 아포칼립틱한 분위기가 만연한 곡이다. 그게 멸망인지 구원인지, 화자는 헷갈리지 않는다 -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짐을 알고 있다.
대부분의 곡이 팬데믹 이전에 쓰였다지만- 현 시기에 몹시 들어맞는 정서의 앨범이다. 무지개 사이로 천사의 날개를 단 동물이 날아다니는, 상당히 밝은 톤의 커버. 가사와 사운드에는 파괴와 기다림이 비치는데- 묘하게도 커버와 연결된다. 이 ‘저주’에 희망과 재건의 뉘앙스 또한 있어서다. 자신/현실과 거리를 두고 ‘평행한 타임라인’에서 들여다보는, ‘낯설게 보는’ 시도. 그것이 이번에 하려던 것이라고 슬랏th러스트는 말한다.
“‘평행한 타임라인’이라는 제목은, 펜데믹이 강타하기 아주 오래 전에 선택됐어. 듣는 이들이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를, 아주 조금의 노력으로 얼마나 모든 것이 완전히 달리 보이고 느껴질 수 있는지 고려해 보기를 격려encourage하는 의미의 이름이야.”
- 리아 웰바움, 2021.11.12, interview by. Jason Brow [hollywoodlife.com]
이들은 <Parallel Timeline>에 아홉 트랙을 추가한 <Parallel Timeline (Origins)>를 최근 발매했다. 통상적인 ‘deluxe’ 대신 ‘origins’라는 워딩을 사용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아홉 트랙은 4개의 데모, 어쿠스틱 라이브 하나, 시낭송 하나, 그리고 곡에 대한 맴버들의 코멘트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일하게 펜데믹 이전에 쓰이지 않은 곡’(리아) ‘a giant swallow’가 추가된 경위를 리아 웰바움이 설명하고, 다음 트랙에서 해당 곡의 가사로 시낭송을 한다. 마지막 두 트랙에서는 윌 고린이 음악 레코딩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드럼 샘플을 사용했다며 실망하는 목소리들을 들었는데, 사실은 전부 다 진짜 드럼 소리야 친구들.”(윌) 인터뷰와 같은 추가적 수단이 아니라 앨범 트랙에 설명을 포함하는 것. 흔한 시도는 아니다. 곡 자체, 제작 과정에 대한 프라이드와 더불어, 리스너들이 곡을 통해 자신들처럼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리아) 행위를 할 수 있게 도우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의 계보를 이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리라.
“난 평생을 탐색의 감각과 함께 살아왔어. 뭘 탐색하고 있는지 항상 알고 있지는 않았지, 심지어는 내가 무얼 찾고는 있는지 자체조차. 지금은 그 현실을 깨달은 상태고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받아들이려고 해, 내 삶 전체에 걸쳐 흘러나가고 움직일ebb and flow 거대한 원정이지.”
- 리아 웰바움, 2021.09.09, interview by. J. Poet [newnoisemagazine.com]
* 참고 인터뷰
https://hollywoodlife.com/2021/11/12/slothrust-interview-lzzy-hale-song/a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