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ctus Blossoms (1)
맴버: Jack Torrey, Page Burkum
정규: <You’re Dreaming>(2016), <Easy Way>(2019), <One Day>(2022)
싱글: ‘Happy Man’(2020)
‘blue’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기를 좋아한다. ‘우울’이라 옮기면 왠지 충분치 못한 기분이 든다. 그 상태/감정이 -컬러 블루가 그렇듯- 스펙트럼의 어딘가에서 각자의 채도와 농도, 질감을 띠고 있음을 내포하는 말이라 느낀다.
더 칵투스 블라썸즈The Cactus Blossoms의 곡들은 그 다양한 블루들을 가장 심플하고 아름다운 모양으로 예술화한다. 이들의 소리에 중독된 경로는 필연적이었다. 클래식 아메리카나를 찾아 듣는 편은 아니다. 주로 옛 뮤지션들의 곡 혹은 ‘Hell or High Water’(The Neighbourhood)나 ‘House of Gold’(Twenty One Pilots)처럼 좋아하는 얼터너티브/록 그룹이 앨범에 하나씩 끼워 넣은 트랙 정도만 들어 왔다. 동시대에 이쪽 음악을 주로 탐구하는 뮤지션들에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잘 모르기도 한다.
그러하니, 경우의 수는 <트윈 픽스> 단 하나였다. 반드시 보게 될 작품이었고, 시즌3, EP3의 엔딩, 무대에 선 잭 토리와 페이지 버컴이 “M-I-S-S-I-S-S-P-P”을 흥얼거리는 순간 귀가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두 정해진 수순, 다만 시기의 문제였다. <트윈 픽스> 시즌3이 공개되자마자 보기 시작했다면, 이들의 스튜디오 2집과 3집이 발매될 때마다 그것들을 돌리느라 잠을 못 이루었을 게 뻔하다. 2022년에야 보기 시작한 탓에 서른 세 트랙 분량의 설렘을 한꺼번에 겪고 있는 것 뿐이다.
2011년 자가로 첫 음반을 낸 칵투스 블라썸즈는, 5년 후 인디 레이블 Red House Records를 통해 스튜디오 1집 <You’re Dreaming>을 발매했다. 이후 셀프 레이블 Walkie Talkie Records를 설립해 정규 앨범 둘을 더 선보였다. 공식 맴버인 잭 토리Jack Torrey와 페이지 버컴Page Burkum은 형제, 악기 세션도 주로 형과 사촌들이 맡는다. ‘어렸을 때 타일러의 밴드에 들어가서 베이스를 치고 싶었던 막내였기에 지금 형과 공연하는 게 너무 좋다extra good’는 잭 토리[interview by. Greg Vandy, Live on KEXP]. 타일러 버컴의 멋들어진 기타 연주는 이들의 곡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트랙마다 아낌없이 들어가는 하모니 또한 청각을 매료시키는데, 이들에게 있어 별로 어렵거나 특별한 작업은 아닌 듯하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늘 음악과 싱잉을 곁에 두었고 우리도 어려서부터 화음을 맞추어 노래해 왔기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페이지 버컴은 말한다.[interview by. Joy Williams, Southern Craft Radio EP26]
Jack: 만약 우리에게 화음을 맞추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면, 그건 함께 보낸 시간들 때문이지 그저 부모가 같아서는 아니다. 물론 우리는 하모니 파트를 함께 쓰는데, 꽤 쉽게 나온다.
[2019.03.01, interview by. Neil Hallam, Six Shooter Country]
그저 가족적 유산이라 뭉뚱그리기에 두 형제의 음악은 지나치게 특별하다. 5-60년대에 만들어져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건너온 듯한 빈티지함. 레트로 트렌드를 대강 따르는 건 당연히 아니고, 옛 곡을 카피한 느낌도 아니다. (세 앨범 통틀어 커버곡은 Alton and Jimmy의 ‘No More Crying the Blues’ 단 하나.) 칵투스 블라썸즈가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전 시대와 장르를 통틀어 유일하다. 정작 본인들은 ‘이런 것 밖엔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부끄러워 하지만[interview by. Greg Vandy, Live on KEXP], 이토록 오리지널한 예스러움은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몹시 올드스쿨하고 깔끔해 설명을 덧붙이면 군더더기밖에 더 될까 싶어, 사운드 자체에 대한 코멘트는 짧게만 달아본다. 기본을 지키면서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절대 서두르거나 쥐어짜지 않는다. 힘의 강약조절이 탁월하며 빼야 할 때는 제대로 빼서 귀에 걸리는 부분이 전혀 없는 흐름을 구성한다. 심플한 라임이 부드럽게 문장을 갈무리한다. 발음을 얼버무려도 억지스럽지 않다. 부러 흘린다기보단 굳이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 뉘앙스다. 손가락 사이로 강물을 흘려보내는 느낌. 화음의 배치도 대강 하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Mississippi’에는 고요하게 집중을 유도하는 몇 구절을 제외하고 거의 내내 하모니를 맞춘다. 반면 ‘If I Saw You’의 경우 “I don’t know what I’d do, if I saw you”의 맨 끝 단어와 이에 뒤따르는 두 문장에만 들어가 있는데- 그마저도 항상은 아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집중해 귀 기울이지 않으면 인식하기 힘든- 섬세한 디테일이 수없이 많다. ‘Mississippi’의 후렴을 예로 들면: 마지막 알파벳 ‘I’를 다음 절의 ‘나’를 일컫는 ‘I’와 퉁치는 것.
보컬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기보단 편안하게 스미다 필요할 땐 힘있게 꽂힌다. 이리도 담백한 맛으로 사로잡기가 가장 어렵지 않던가. 페이지 버컴의 보컬은 청량하고 고운 편이고(혹은 그런 곡 위주로 쓰는 편이고), 잭 토리의 것엔 비교적 밀도가 있다. 주로 곡을 쓰는 쪽이어서 단독 보컬을 들을 기회가 더 많았던 잭 토리에 대해 덧붙이면: 그의 목소리에선 폴 매카트니의 몽롱함이 때론 밥 딜런의 건조함이 다른 때에는 행크 윌리엄스의 아련함이 얼핏 들린다. 그러나 누구의 이미테이션도 아닌 잭 토리 오리지널이다. 소리를 내는 방식에 이미 올드한 멋이 있기에 ‘Please Don’t Call Me Crazy’처럼 현대에 가까운 사운드가 섞이면 또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Q: 이전 앨범이 1950-1960 초반에 분명히 가까웠다면 이번 앨범은 60년대 중반에 가까워지는 거 같은데. 그게 창작 시작 단계에서의 결정이었나?
Jack: 우린 의도적으로 어떤 시대의 음악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니다. 허면 우리가 12줄 기타나 오르간, 딜레이 이펙트를 사용하는 걸 즐겼나? 완전히.
[2019.03.01, interview by. Neil Hallam, Six Shooter Country]
칵투스 블라썸즈의 멜로디와 가사가 ‘어디서 들어본 듯 하면서도 결국 유일한’ 까닭 중 하나는, 이미 있는 음악을 샘플로 놓고 특정한 결과물을 바라며 창작하는 것이 아니어서일 테다. 목표가 있다면 음악 그 자체, 그것을 듣고 만들고 부르는 즐거움에 흠뻑 빠진 채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고 고민하는 태도는 작품에도 인터뷰에도 비친다. 음악을 평가할 주제는 못 되지만- 그러한 나조차 이들의 음악에 동시대성과,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의 품위가 공존함을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음악을 듣기보다는 ‘시청’하는 시대, 스타일리시한 비주얼로 이미지와 사운드를 연결해 인상을 남기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티스트들도 많다. 칵투스 블라썸즈의 경우 뮤직비디오 자체가 몇 없고, 있더라도 주로 두 사람이 노래하는 모습일 따름이다. 공연장에서도 기본에 집중하는 편, 화려한 분장이나 재기발랄한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멀다. 관객은 이들을 따라 음악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레코드-사운드와 가사-에는 왠지 색이 어른거린다. 귀로 듣고만 있는데 눈이 푸른색이나 붉은색에 반응하는… 이것을 공감각이라 하던가. 이는 앨범 커버의 담백한 컬러링과 통하기도 한다. 클래식한 컨트리/포크를 탐구하는 러브송 위주의 <You’re Dreaming>이 맑은 강물을 닮은 푸른색과 탁한 은빛 구름이 섞인 하늘색을 오간다면, 소셜한 뉘앙스가 강해진 <Easy Way>는 커버 속 두 사람이 입은 수트처럼 짙은 레드와 블루, 그리고 심플하고 잔잔하면서도 밝아진 <One Day>는 ‘꼭 블루인 것만은 아닌’ 색이다. 뮤직비디오의 컬러링에도 닮은 데가 있다. 텅 빈 스튜디오에서 공연하는 흑백 영상이었던 ‘Stoplight Kisses’와 달리 <One Day>의 비디오들은 다채로운 파스텔톤이다.
Page: 이번 레코드는 지난번 앨범의 접근법보다 더욱더 심플하고, stripped down되고, 개인적이기를 원했다.
[2022.01.10, interview by. Hannah Means Shannon, Americana Highways]
Q: 몇 곡에서 낙관주의Optimism가 아니라 선택적 희망Chosen Hope이 느껴지는데, 어떤 맥락에서 이 아이디어가 나온 것인가.
Jack: 그걸 들었다니 기쁘다. 약간.. 복잡하다. 나는 이 행성에서 가장 희망적인 사람은 아니다. 우리 세상엔 고쳐야 할 문제들이 많고, 한 개인이 그걸 고치기는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혼자 가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나는, 펜데믹과 같이 아직도 우리와 함께하는 문제들을 보며 이걸 해결하기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근데 모르겠더라, 가능한 한 쿨하게 있던 그대로 있는 거 말고는. 몇 곡은 그 Hope Zone을 두드리며 만들어졌다고 해야겠다. 이 문제들을 희망 없는 곡 한 무더기로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웃음) 우리 자신에게 필요해서 이 곡들을 쓰게 된 것 같다.
[interview by. Joy Williams, Southern Craft Radio EP26]
‘선택적 희망’의 방법으로서의 로맨스
Light Blue with Silver Lining
그 ‘홉 존을 두드리며 썼던 몇 곡’이 무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로맨틱한 감정과 관계는 답이 나오지 않는 세상에서 이들이 그린 ‘선택적 희망’의 모양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잭 토리가 ‘일종의 윙크 윙크 송’이라고 한 첫 트랙 ‘Hey Baby’부터 들여다보자, 창작자 본인의 친절한 요약을 빌려서.
Jack: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비록 차는 고장 날 테고 넌 네가 가고 싶은 곳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그렇지만 넌 마을을 벗어날 수 있고, 우린 함께 있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곡이다. 일종의 농담에서 시작했던 거 같다, “이 상황에 도박을 걸어 볼래?” 같은 거.
Page: 루저에게 받은 좋은 제안 같은 거다, 아마도.
[2022.01.10, interview by. Hannah Means Shannon, Americana Highways]
So many things I thought I’d never see
Like you sittin’ shotgun starin’ back at me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걸
이를 테면, 샷건으로 내 등을 겨누고 앉아 있는 너
- ‘Hey Baby’, <One Day>
지나가듯 흘러가는 브릿지가 재미있어서 옮겨 봤다. 상황은 스릴러이나 이를 딜리버리하는 일관되게 담백하고 명랑한- 제 안위에 무심한 듯한 톤이(어차피 절망적인데 함께하고 싶은 당신이 내 등에 총을 겨누고 있다 해서 뭐…라고 하듯) 장르를 로맨틱(+다크)코미디 로드무비로 유지한다. 먼지 낀 햇빛이 내리쬐는 넓은 황야의 텅 빈 도로, 멈춰 선 트럭 안에 두 사람이 있다. 뒷좌석에 올라탄 상대가 총을 겨누자,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백미러를 응시하며 “헤이 베이비, 그래서 나랑 갈래? 모든 게 잘 풀릴 거야.”라며 씩 웃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위험한 모험을 즐기는 이도 아니고, 딱히 무모하거나 낙천적인 것도 아니다. 그에겐 ‘길이 보이지 않지만 보이기도 해’라는 듯한, 상당히 대책 없으면서도 묘한 설득력을 지닌 태도가 있다.
여기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 1집 첫 트랙 ‘Stoplight Kisses’를 재생한다. 2011년의 셀프 레코딩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었으니 10년쯤 전에 처음 공개된 곡이다. 유사하게 자동차와 로드의 이미지가 있지만, 이번엔 해질 무렵 차와 사람이 적당히 오가는 도시의 도로가 그려진다. 찰나의 로맨틱을 포착해 경쾌한 멜로디를 입혔다. 차를 타고 가다 신호등에 걸리면 “don’t walk sign”이 뜰 때까지 당신과 키스를 하겠다는 내용, 도로에서의 시청각 요소를 사용한 표현들 덕에 그 순간이 곡 전체에 흐르는 것만 같다. 언뜻 평범한 사랑 노래로 들리지만 한 문장이 귀에 남는다, “Stoplight kisses, you drive away my blues 빨간불에 키스하면, 네가 내 블루를 몰고 가버리지”. 삶의 ‘stoplight’에 걸리고 “어두워졌을” 때, 주위를 아주 밝혀준다기보단- 등불을 건네며 “블루를 몰고 가주는” 행위로서의 키스를 화자는 노래한다. ‘선택적 희망으로서의 로맨스’는 이들의 예술 세계에 시작 무렵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2집의 첫 트랙 ‘Desperado’에도 유사한 느낌이 있다. 이쯤 되면 일부러 트랙을 대칭적으로 배치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늘 혼자였던 무법자”로 일컫는 화자는 노래한다, “You’re the only one who brings me home 날 안식처로 데려다 주는 유일한 존재는 너야(의역: 내 유일한 안식처는 너야)”. 픽션적 과장이 들어간 의존적 연애의 묘사도 흔한 멘트도 아닌, 진실되고 어쩌면 필연적인 감정이다. 독립적으로 안정돼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게 아마도 연인 관계의 법칙/교훈이지만- 이런 시대에조차 로맨스를 추구하는 고독한 영혼에게 있어 그게 어디 쉽게 가능한 전제인가. 그러니 칵투스 블라썸즈는 익명의 화자들을 통해- 순조롭게 빛나는 날들의 화룡점정으로서의 연애가 아니라, 이미 블루의 바다에 위치한 삶 속 유일한 위안으로서의 사랑(대상이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을 말한다. 사랑을 지나치게 낭만화romanticize 하는 행위인가? 글쎄, 이들은 “망상의 삶delusional life”(잭 토리)을 살자는 게 아니다. 이야말로 현세의 어둠을 똑바로 인지하기에 나오는 자세가 아닐까. (너는 나를 블루 오션에서 건져 줄 -대상화된- 구원자가 아니다. 너와 나는 모두 바다에 빠져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 생성한 사랑이 마치 공기방울처럼 숨을 틔울 공간을 이룬다.)
I’m painting my jealousy
My hands are shaking
My brush is slipping
And the red paint’s dripping to the floor
- ‘You’re Dreaming’, <You’re Dreaming>
설레고 명랑했던 ‘Stoplight Kisses’가 끝나면 이어지는 ‘You’re Dreaming’, 표면적으로는 그저 “너”가 화자의 옆에 잠들어 있는 상황이다. “눈을 감고 있는 너는 내 말을 들을 수 없고”, “나”는 편안한 멜로디와 어울리는(!) 불안과 질투에 잠긴다. 같은 앨범의 ‘Powder Blue’나 ‘Mississippi’, <Easy Way>의 ‘Blue as the Ocean’에 각기 질감이나 채도가 다른 블루 컬러가 배치돼 있다면, 이 트랙의 경우 푸른색이 가득 칠해진 캔버스 위에 선명한 붉은색 물감이 마구 흩뿌려진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 그러나, “시간이 좀 걸릴 뿐,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네가 깨어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것이 설령 “옛 연인이 부르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형체 없는 불안의 떨림은 “너”의 온기에 금방 잦아들지 않을까.
사랑을 담은 트랙들의 온도와 톤은 각각 다르다. 늘 설레고 명랑한 것은 아니다. 불안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거칠게 묶으면 유사한 뉘앙스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랑의 시작만이 아니라 끝 역시 로맨틱하며 어느 정도 희망적이다. “언젠가 내가 떠나면 당신이 그리워하겠지”라는 ‘One Day’도, “바다처럼 블루한- 그게 네가 돌아올 때까지의 내 감정이야”라는 ‘Blue as the Ocean’도.
유독 헤어짐의 소리가 울렸던 2집, ‘Got a Lotta Love’는 제목에서 예상되는 바와 달리 이별 노래다. 화자가 바라는 건 단순히 관계의 현상유지가 아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진짜 사랑, 그것을 되찾는 것.” 때문에 그는 “If you don’t want me, you can’t have me 그대가 날 원하지 않는다면, 날 가질 수 없어”라고 말한다-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지만 날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며 ‘놓아주는’ 게 아니다, ‘내겐 줄 사랑이 많지만, 날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줄 옆자리는 없다’며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다. 거기엔 관계를 끝내고 사랑을 지키려는, ‘사랑을 사랑’하는 자의 용기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사랑은 여기 머무르고, 어디 가버리지 않아,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타이틀 ‘Easy way’는 좀, 서늘하다. 사랑에 대한 노래이지만 딱히 ‘사랑노래’가 아니다. “사랑은 쉬운 길”이라 칭하는 화자가, 앞서 인용한 문장들을 과연 사랑에 대한 긍정의 뜻으로 뱉은 걸까? 소셜한 뉘앙스가 강한 이 앨범의 시니컬이 러브송에도 어른거린다고 느껴졌다면 착각일까.
어쩌면 <One Day>는 몇 년 전 자신들이 보였던 이 약간의 회의에 스스로 ‘선택적 희망’이라는 답을 내리는 앨범인지도 모르겠다. 그 근거로 ‘Love Tomorrow’를 살펴보면: “내가 느끼는 걸 당신도 느끼나요? 어떤 이들은 진짜일 리 없다고 말해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던 걸 찾았는지도 모르죠.”라고 사랑의 본질과 유효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시작한다. 결국 그건 사유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닌, “반은 차 있고 반은 비어 있는 잔”처럼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나와 당신이 느끼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현재를 견디게 하고 어쩌면 내일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노래한다, ”사랑해요 내일, 사랑해요 오늘, 사랑이 우리에게 길을 보여 줄 거예요.“
Q: 관계가 새로운 곡들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고, 그 곡들을 한데 놓고 보면 각 곡에 특정한 관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거기 캐릭터 혹은 내러티브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Jack: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나는 ‘꼭 내 자신의 것은 아닌’ 관점을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심지어.. 항상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가 처한 포지션에서 굉장히 풍부한 조각을 잘라내 한 입 먹어보는 걸 좋아한다. 그 세계에서 3분 동안 살아보는 거. 내가 창작을 시도하길 즐기는 종류의 것이다…(중략)… 여러 사람들의 관점에서 온 각기 다른 조각들different slices of people’s perspectives이 있는 것 같다, 당신이 내내 말했던 것처럼. 다 같은 사람은 아니다.
Page: 거기 덧붙이자면, 잭과 내가 각각 다른 사람이 되어 곡을 쓰기 시작하더라도 가끔, 한 사람이 합류해서 콜라보레이팅하는 방향으로 끝나기도 한다. 각자가 취하고 가져오는 아이디어에는 약간의 무작위성randomness이 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쓰거나, “이게 우리가 이번 앨범에서 할 거고, 말하려는 이야기는 이런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2022.01.10, interview by. Hannah Means Shannon, Americana Highways]
송라이터마다 가사를 쓰는 방식이 다르다. 예쁜 꿈을 꾸기도,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주로 다루기도 하고, 내면으로 파고들기도 하고,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거나 철학을 논하기도 한다. 칵투스 블라썸즈의 방식은, 어떤 화자를 통해 이 주제들 중 하나 혹은 여럿을 단순하고 솔직하면서도 시적인 -“타인의 삶의 조각들”이 섞여 있는- 언어로 다루는 것이다.
이들에겐 익명의 목소리를 빌려 메시지와 진심을 들려 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의 능력이 있다. 아티스트 본인으로 특정 가능하기에 더 진실되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곡들도 있지만- 칵투스 블라썸즈의 러브송에 있는 특별함은 불특정성과 연결된다. 구체적인 묘사가 있음에도 시공간을 넘어 누구에게든 적용될 가능성을 지닌다. ‘꼭 본인인 것은 아니며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는’ 화자와, 연인으로 단정할 수 없는 대상. 로맨스가 향하는 곳은 때로 시대나 장소에 대한 향수다.
There’s a dive I know on River Street
Go on in and take my seat
There’s a lot of friends I’ll never meet
Gonna take a dive off River Street
- ‘Mississippi’, <You’re Dreaming>
Jack: ‘Mississippi’는 이상한 건데strange one, 이 레코드에서 가장 이상한 곡 중 하나인 거 같다. 정확히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영화 <멋진 인생>이 좀 들어가 있다, 미시시피 리버로 뛰어들어가 바다까지 떠내려가는 거 말이다. 아마 또다른 슬픈 사랑 노래이지 않을까.
[2017.01.09, interview by. Maurice Hope, Americana UK]
잭 토리는 ‘Mississippi’를 ‘또다른 슬픈 사랑 이야기’라고 수식했지만, 그 문장의 끝엔 단정이 아니라 짐작이 있었다.(“I guess”) 이들의 송라이팅은 작업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목표와 해석, 기승전결이 담긴 기획안을 짜서 ‘숙제처럼’ 해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위와 동일한 인터뷰 참고)… 나름대로 상상해 해석을 붙여 봐도 되지 않을까. 언뜻 그저 미시시피 리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듯한데, 강의 질감이나 색감과 연결되는 초연하고 청량한 블루가 감지된다. “내가 만나지 않을 많은 친구들”이라는 구절 때문인지- “나”가 어떤 사람이나 과거가 아닌 오로지 장소만을 추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넌 달라 보여”의 “you”는 자기 자신을 일컫는 것일까, 꼭 죽기 직전 삶을 돌아보는 듯도 하다.
There was a time you sang a song
Of too much wine and love gone wrong
Is it over?
- ‘Is It Over’, <One Day>
<One Day>의 ‘Is It Over’에는 역시 페이지 버컴이 쓴 <Easy Way>의 ‘See It Through’와 유사한, 어떤 평화로운 엔딩의 뉘앙스가 묻어난다. ‘사랑의 시절이 다 끝난 것이냐’고 묻지만… 초점은 ‘끝났다’는 서술에 보단 그 아름다웠던 시절을 묘사하며 향수에 젖는 행위에 있어 보인다. ‘Not the Only One’을 이어 언급하면 적절할 것 같다, 꼭 ‘Is It Over’의 물음에 ‘Not yet.’이라고 답하는 것 같은 곡이니. “나 혼자만이 아닌 걸 알아, 하늘이 푸르게 변할 때까지 밖에 머무르는 이가,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거리를 걷는 이가.”, 단절의 시대에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이가.
길의 노래, 혹은 자신을 길에 비유하는 인간의 노래인 ‘I Am the Road’도 여기 연결할 수 있겠다. 길이라면 연인처럼 로맨틱하고, 사람이라면 풍경처럼 너그럽다. 어느 쪽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앞서 2집이 전체적으로 시니컬하다고 했던가, 그렇지만은 않다고 정정해야겠다. 이들은 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을 열어 두고 있었다. 멜로디도 내용도 너무나 따스해 눈물이 날 정도. “나는 길이야, 어디든 데려다 줄게. 네게 시간이 좀 있다면 보여 줄게, 내가 널 아낀다는 걸.”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절망 사이로 비치는 엷은 희망, 로맨스. 블루만큼 다양하진 않으나 그 실버라이닝의 종류 역시 한 가지는 아니다. 그 ‘선택적 희망’들을 어느 정도 한데 모아 주는 명료한 문장을 찾았다, <One Day> 이전- 펜데믹이 한창이던 시기 나온 싱글에서.
I’m a happy man on a gloomy day
Can’t tell the clouds not to act that way
I’m a happy man on a gloomy day
I wait patiently for things to come my way
- ‘Happy Man’ (Single)
“우울한 날의 행복한 남자”. ‘우울한 날’이라는 어구가 이미 ‘나는 오늘 우울하다’는 의미, 그 상태로 자신을 ‘행복한 남자’라 칭하는 가사는 언뜻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글루미”는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구름”적 요인에 의한 것, 화자는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지배당하지 않는다. “내 앞길이 열리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해피 맨”이 되기를 택한다.
(8월 30일 덧붙임: 정식 레코딩은 2020년에 했으나 이미 2013년도 라이브 비디오에 이 곡의 early version이 담겨 있다. 리듬과 몇 구절, 부르는 방식엔 차이가 있지만 기둥이 되는 가사와 멜로디는 동일하다. 이들은 처음부터, “우울한 날의 행복한 남자(들)”이었다. 7년이나 지난 시기에 이 트랙을 싱글로 발매하기로 한 까닭이 짐작되기도 한다.)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