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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Apr 28. 2022

루이 웨인의 “진짜 이야기”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2020)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2020, 감독: 윌 샤프)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함’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오프닝 화면에 적힌 문장은 “This is a true story.이건 진짜 이야기다.”였다. 아무리 그대로 옮긴 전기라 해도 픽션, 만든 이들의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백 퍼센트 맞는 표현은 아니다. 그럼에도 평범하게 ‘based on’라는 문구를 삽입해 이야기를 여는 대신 ‘진짜’라고 명시하는 것은, 정보의 서술이 아닌 창작자의 관점을 드러내는 행위일 수 있다. 환상적인 연출의 비중이 상당한 이 작품이 ‘실존 인물’을 다루는 방법은 ‘세상의 눈에 비친 사실’을 객관적 리얼리즘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정확’하지 않더라도 루이 웨인이 ‘진짜로 목격한 것들’을 화면에 옮기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노년의 루이 웨인이 추상화에 가까운 모습의 고양이를 그리기 앞서 보는-기하학적 무늬의 환영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 편집, 종종 자막에 번역되는 고양이의 대사,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한 사람들, 루이가 ‘가라앉는’ 상태에 시달릴 때마다 물이 들어차는 시각적 연출이 리얼하게 사용되거나 배가 침몰하듯 카메라가 기울며 흔들리는 것, 루이가 ‘전기’로 기억한 장면들이 그림의 질감으로 변하는 것 전부, 이를 위한 장치다.


루이는 ‘전기’가 시간을 넘나들며 흐른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이를 통해 그는 과거나 미래의 비전을 만난다. 그것들은 단순히 그림의 영감이 아니라 실제로 보는 것, 어두운 과거가 가슴에 차오를 때 물에 잠기는 것도, 다이어리에 끼어 있던 숄 조각을 들고 에밀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전부 루이에겐 진짜다. 고양이는 그 순간의 ‘전기’를 담아낼 소재이자, ‘보통의 인간들’-루이를 따돌리고, 에밀리와 루이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고, 끝내 그를 병원에 가두었던-보다 훨씬 자신을 잘 이해할 친구였을 것이다.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2020). 다음 영화.


그 ‘보통의 인간들’을 대표하는 자는 동생 캐롤라인이다. 그를 포함한 동생들이 루이를 옥죄는 듯 그려지는 건 일단 작품이 루이의 시선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그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동생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리라는 짐작이 든다. 직업이 있는 여성은 에밀리와 같은 ‘하층민’, ‘집안의 남자’가 있는 상류층이 결혼도 않고 돈을 벌러 나갈 순 없었을 테고, 내레이션이 서술했듯 소문이 퍼지며 결혼조차 어려워졌을 것이다. 그들의 탓은 아니나 어쨌든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애초에 그 틀에 딱 들어맞지 않았던 루이와 에밀리는 벗어날 용기 또한 지니고 있었다.  


루이 웨인은 다들 룰을 따라 우아하게 헤엄치는 수영장에서, 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첨벙첨벙 헤엄쳐 새로운 물살을 만드는 자다. 그가 그림으로 세상을 바꾸도록 도운 것은 에밀리, 세상이 그에게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보지 않는 것을 보는 그와 공감하는 자다. 작품의 해석에 따르면 에밀리는, 사람들이 그림으로부터 자신이 아는 진짜 루이를 발견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는 그림으로 세상에 닿고, 세상은 그림을 보며 그에 닿아 루이가 고립되지 않기를. 작품은 이를 우연히 재회한 낯선 이와의 대화를 통해 강조하고, 에밀리가 알게 해준 사랑이 바로 ‘전기’였다고, 내레이션으로 갈무리한다. 평생에 흘렀던 그 사랑의 기억이 루이를 살아가게 했다.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2020). 다음 영화.

 

루이 웨인의 일렉트리컬 라이프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라고 옮긴 제목 번역은, 사실 ‘틀리지않았다. 루이 웨인이 그토록 찾았던 ‘전기 작품은 사랑이라고 해석했고, ‘사진은 전기를 담지 못한다 말로 미루어 보아 루이는 그림을  순간의 ‘전기(사랑)’ 포착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듯하다.(<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2008)  찰스의 대사와 유사하다.) 루이는 ‘사랑을 그린것이다. ‘고양이 화가 고양이를 그린 화가,이면서 고양이인 화가, 읽히기도 한다. 루이는 에밀리와 만난 이후 내내 고양이와 소통했고, 초반 씬에서 나이든 루이의 눈은 고양이의 그것처럼 빛났다. ‘신비로운 신이나 사악한 요물로 취급될  동등하고 평범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루이도 마찬가지였고, 사람보다 고양이에 공감했을 테다. 고양이를 그린 화가이기도 하지만, ‘고양이 같은화가이기도 했던 . 따라서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단지 예쁜 비유가 아니라 어느 정도 맞는 수식이다. 작품은 ‘루이 웨인의 삶에는 내내 전기가 흘렀음 언급하며 시작해, 그의 여정을 따라가며 ‘전기 정체를 서서히 밝혀 설득해 가는데,  바뀐 제목은 관객이 깨닫기 전에 대신 해석을  주는 ‘친절한…’ 의역이라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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