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3구>(2021)
<파리, 13구(Les Olympiades, Paris 13e)>(2021, 감독: 자크 오디아르)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핵심 전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메라는 종종 풍경을 찬찬히 훑는다. 그리고는 건물 안이나 거리에 있는 이들 중 하나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생활과 사랑을 담는 시선은 풍경을 훑는 모양과 유사하다. <파리, 13구>는 이 도시가 지닌 장소성의 핵심은 머무르거나 떠나는 사람들에 있다고 말한다. 파리의 아름다움은 센강에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노라와 같은 이들이 모여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만남의 계기는 주로 공간의 공유다. 에밀리와 카미유는 한 집에 살며 사랑을 나누고, 노라와 카미유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다 연애를 시작한다. 관계가 끝나면 둘 중 하나는 그곳을 떠나고, 남겨진 이는 상대의 빈자리를, 물건들과 온기, 목소리가 빠져나간 공허를 느낀다. 수많은 이들이 모인 강의실에서 노라의 얼굴이 대상으로 주목 받는 동시에 목소리는 지워진다. 그곳과 노라의 관계는 일방적이고, 그가 떠난 빈자리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쉽게 메워졌을 것이다.
노라는 주로 ‘원해지고’ 대상이 되었다. 원하던 장소에 속하게 됐지만 구성원들은 그를 놀림거리로 소비했다. ‘앰버 스위트’가 오해였다는 점은 이 사건에 있는 폭력성의 핵심이 아니고, 사실 놀리던 무리에게도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촌(‘uncle’은 ‘삼촌’에 비해 포괄적인 단어고, 그는 말그대로 ‘삼촌’이 아니라 ‘친척 아저씨’ 정도였을 것이다.)은 울며 전화를 건 노라에게 ‘널 원하니 돌아오라’는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다. 카미유에게도 원해졌고 자신 역시 그를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관계엔 종종 의심과 불안이 자리했다. ‘예쁘다’, ‘널 원한다’는 말은 상대의 의도와 상관 없이 늘 기분 좋게 들리는 말은 아니다. ‘포스트트라우마 반응’은 그 감정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고, ‘앰버 스위트’에게 연락을 시도한 것도 ‘극복’하려는 의지 따위로 수식할 수 없는 성질의 행위다.
노라는 어느 정도 유사한 정서를 공유하는 루이즈에게 남들에겐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루이즈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닮은’ 그들의 만남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히 서로에게 빠지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역시 콕 집어낼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은 아니다. 관계나 감정의 성질을 가려 구분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을뿐더러 사랑에 대한 무례다. 에밀리와 스테파니를 구분 짓던 카미유의 확실한 언어야말로 무지하다. 카미유의-스탠드업 코미디/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에밀리가 만나는 남자들/가르친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평가들, 노라의 대학 동급생들이 그의 나이나 (착각한) 직업을 바탕으로 했던 짐작들이 그런 언어다. 사랑을 설명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카미유는 결국 노라와 자신이 ‘연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미묘한 찰나들이 쌓여 연결되거나 영원히 어긋나기도 하는 것이 로맨스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스스로도 종종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제스처들은 소중하다. 노라가 루이즈와 대화를 시도한 것, 루이즈가 함께 잠들자고 부탁한 것, 내내 서로를 사랑했던 에밀리와 카미유의 작은 손내밀기들이. 그렇게 카미유는 에밀리와, 노라는 루이즈와 이어지는 결말이지만, 로맨스가 ‘이루어지기까지’의 서사를 기승전결로 설득하려는 의도는 비치지 않는다. 카미유가 돌고 돌아 에밀리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전, 스테파니나 노라와 맺은 관계는 단지 페이즈가 아니고, 에밀리가 어플로 남자들을 만났던 것도 단지 공허를 채우기 위한 행위는 아니다. 그가 몸과 몸을 맞대는 행위에 대한 상상만으로 ‘날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던- 레스토랑 씬에 있는 정서는, 카미유를 만난 후 마트에서 랩과 콘돔을 카트에 던져 넣던 리듬에 닿아 있다.
노라가 카미유에게 “착각했어, 너도, 나도.”라고 말하는 건 이별의식처럼 그와 몸을 나누고 나서다. ‘내가 할 거’라는 노라의 말과 함께 시작된 그 섹스엔 위화감이 없다. 그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라기보다는, 타인에게 원해지는 게 아닌 ‘내가 상대를 원하는’ 감각을 생생히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침내 루이즈를 만난 노라는 온몸의 힘이 풀려버린 듯 쓰러지고, ‘키스해달라’(원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파리, 13구>의 사랑은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작품은 최대한 모든 터치를 담으려 시도한다. 카미유와 관계하는 노라의 쾌감과 흥분이 불안과 의심으로 이어지는 장면처럼, 한 ‘씬’에 있는 정서는 수렴하지 않을 때가 많다. 에밀리가 노라의 그림자 아래서 카미유를 느끼거나, 이후 파티에서 노라가 카미유와 에밀리 사이 공기를 의식하는, 또 노라와 루이즈가 화면 속의 서로를 응시하는, 마침내 만나서 서로를 바라보는, 미묘한 순간들.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 분명히 맴도는 공기를 작품은 포착해낸다. 슬로모션과 클로즈업, 빛의 조절과 같은 기술이 쓰인 그 화면들은, 인물이 느낀 바를 그대로 드러내기에 오히려 리얼하다.
<파리, 13구>는 예상치 못한 보물을 찾아낸 기분을 선사하는 영화다. 정의하지 않으려 애썼기에 와닿는다. 섹스와 대화와 눈빛, 내용에는 별 의미가 없는 대사의 리듬, 주고받는 터치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수단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순간들. <파리, 13구>의 주인공은 어쩌면 파리 13구, 그곳의 연인들 사이를 떠도는 매초의 감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