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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y 27. 2022

비상식의 영역에서

<우연과 상상>(2021)



<우연과 상상>(2021,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연과 상상> Seg.1: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초반, 촬영 크루가 사진을 살피고 있을 때 지나가기를 머뭇거리는 행인이 배경에 포착된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없으나 행인은 크루가 형성한 공간을 침범하기를 주저한다. 이처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자주 임의적이다. 구분하는 벽이 투명한가, 문이 열려 있는가 따위의 여부로 연결되거나 분리되기도 한다. 실물의 장치 없이도 나뉠 수 있고, <브라이트 스타>(2009) 속 페니 브론과 존 키츠처럼 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있을 수도 있다. 만원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동떨어져’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길 건너편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순간 그들의 공간은 이어진다.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 있는 메이코와 츠구미가 있는 ‘장소’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들은 내내 동일한 ‘공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공간의 쓰임새는 공식적이거나 암묵적인 약속으로 정해진다. 쓰임이 고정된 공간이라도 구성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며, 그 범위는 그것을 공유하는 이들에 의해 지정될 수 있다. 이동수단인 택시는 츠구미와 메이코의 내밀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츠구미가 동승을 제안하고 메이코가 받아들인 것은 대화의 신청과 수락으로 보이기도 한다. 카메라는 운전자의 존재를 먼저 의식하는데, 그는 <지상의 밤>(1991) 속 택시운전사들처럼 대화의 상대방 자리를 노리지 못하고 배경에 머무른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뒷좌석을 그들만의 공간으로 분리하기 때문이다. 메이코가 카즈아키의 허락 없이 사무실에 들어온 것 역시 대화를 신청하는 행위, 방금 전까지 업무를 하는 곳이었던 사무실은 사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변한다.


설정된 공간 안에서 인물들의 위치는 심리를 반영하는데, 나란한 위치가 늘 ‘동등한’ 대화가 이루어짐을 뜻하지는 않는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츠구미와 메이코는 자세나 자리를 바꾸기 힘들고, 츠구미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메이코는 솔직한 마음을 숨긴 채 들어야만 한다. Seg.2: “문은 열어둔 채로”, 버스 안에서 나오의 옆자리로 이동한 사사키는 ‘가면’을 벗는다. 나오는 안쪽 좌석에 갇혀 있는 상황, 사사키의 진심은 일방적이다. 그렇다면 나오-세가와, Seg.3: “다시 한번”의 나츠코-아야의 경우처럼, ‘이동의 자유가 있는 두 사람이 양쪽의 의지로 나란히 위치하는 순간, 비대칭적 긴장이 풀리고 진심이 공유된다’가 이 세계의 법칙인 걸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 순간은 깨지거나 변질되기 쉽다. 카즈아키와 메이코가 책상에 나란히 기대어 대화할 때 찰나의 진심이 감지되지만, 메이코는 금방 몸을 돌려 의심하고 질문한다. 이 세계는 불변의 공식에 끼워 맞출 수 없다.


<우연과 상상>(2021). 왓챠피디아.


영화에서 프레임과 컷을 구성하는 작업에는, 공간의 범위와 쓰임을 정하는 모양과 유사한 데가 있다. 프레임은 영화가 관객과 공유하기로 정한 임의적 공간, 그것을 짜고 컷을 구성함으로써 연출자는 ‘관객과 무엇을 나눌 것인가’를 택한다. Seg.1의 택시 시퀀스, 말을 잇는 츠구미의 얼굴만 클로즈업하는 경우 그의 솔직한 설렘이, 반응하는 메이코만을 클로즈업하는 경우 그의 묘한 불쾌감이, 두 사람을 대칭으로 잡는 경우 그 사이의 까닭 모를 위화감이 감지된다. 이후 카메라는 차에서 내린 츠구미를 따라가지 않고 홀로 남은 메이코의 ‘진짜 표정’을 담으며 ‘주인공’을 택한다. 에피소드의 마무리, 프레임에 포착되는 범위가 공사중인 건물들인가/푸른 하늘인가에 따라, 목격한 관객의 정서는 달라진다. 메이코가 말하든 말하지 않든 그와 카즈아키 사이에 있었던 일은 변하지 않지만, 츠구미가 보는 화면이 ‘푸른 하늘’만인가, 그 밑에 있는 것들까지인가,가 달라질 것이다.


<우연과 상상>을 보는 동안 ‘이 영화는 공간과 프레임이 구성된다는 점을 관객이 알아차리기를 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에서 설명한 Seg.1의 마무리나 빠른 줌 인에 프레임과 카메라의 흔적이 있다. 정면을 응시하며 메시지를 던지는 메이코와 세가와의 숏조차 관객이 자신을 작품 속 인물과 동일시하도록 돕는 장치로 작용하기보단, 인물이 스크린의 경계를 침범하여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Seg.2, 오프닝을 비롯해 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행위가 강조될 때마다 공간의 상대성이 인식된다. ‘열린 문’을 고집하는 세가와는 문을 걸어 잠근다 하여 방 안(혹은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없는 일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픽션 필름에서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간 것들은 때로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Seg.1의 결말에서 작품은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이어 편집해 넣었다. 구분한 방법은 분리된 컷이 아닌 프레임의 재구성, 줌 인을 통해 손에 얼굴을 묻은 메이코만을 잡음으로써 주변의 시공간을 리셋하고, 줌 아웃과 함께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한다. Seg.3에서 두 번째 ‘연극’이 시작될 때 역시 줌 인으로 주변이 삭제되는데, 이 컷들에서 카메라는 존재를 감추기는커녕 움직임을 전시한다. 이를 통해 프레임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새삼 와닿게 하고, 오히려 그것에서 벗어난 이후 인물들의 행방과 또다른 만약what if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우연과 상상>(2021). 왓챠피디아.


절대의 영역에서 끌려나와 가시화된 것들은 ‘변할’ 가능성을 지닌다. <우연과 상상>은 공간과 프레임이 구성되듯 일상의 법칙과 상식 역시 구성되는 것이며, 그것을 깨는 곳에 ‘진짜’가 있음을 넌지시 일깨운다. 스토리텔러의 분신으로 보이기도 하는 세가와의 표현을 빌려-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유와 행동’ 혹은 ‘그에 대한 재능을 지닌 인물’들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세계에 늘 있었다. <아사코>(2018)를 예로 들면, 료헤이가 상식을 유지하며 진실을 두려워하는 쪽이었다면 아사코는 자꾸 ‘유혹에 넘어가며’ 솔직해지는 자였다. <우연과 상상>에서는 메이코와 나오, 나츠코와 아야가 주로 그러하다. 물론 픽션 속에는 대개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하마구치 류스케의 ‘그들’은 조금 다르다. 현실의 일상과 흡사한 ‘세계’, 그들의 ‘이상 행동’은 상식의 잣대로 판단하기 쉬운 종류의 것들이다. 그러나 작품은 재단하지 않고 궁금해하며, 더 나아가 화자가 누구인가와는 별개로 이러한 사유와 행동을 이상ideal으로 상상한다.


Seg.1의 사무실, 카즈아키는 ‘확실히 모르면서 왜 왔냐’고 묻지만, 메이코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중이다. 자꾸 자세와 위치를 바꾸며 고정된 프레임에 담기기를 거부했던 것은, 스스로도 알아채거나 붙잡아두기 힘든 ‘진짜 감정’의 성질을 은유하는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그는 말보다는 ‘리듬’을 늘어놓으며 점점 진심을 찾아가고, 상대의 진심 또한 이끌어낸다. 처음에는 경계하며 마음을 열기를 거부하던 카즈아키는 직원이 돌아왔을 때는 그들의 순간이 깨지는 기분을 느꼈을 테다. ‘그날’ 그의 진심은 거기에 있었다. 대화 도중 문을 열고 나가는 행위는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당신과 연결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시, 혹은 재연결의 선택을 상대의 손에 넘기는 제스처다. 앞서 메이코는 나가려는 카즈아키를 막았지만 메이코를 따라가려던 카즈아키는 직원의 ‘안 된다’는 말에 단념한다. 그는 자주 상식에 걸려 찰나의 진심을 붙잡지 못하는 이고, 츠구미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Seg.2의 세가와와 사사키는 어떨까. 언뜻 결혼한 나오와 어페어를 유지하는 사사키가 ‘비상식’에 해당하는 듯하나, 오히려 매사를 그럴듯하게 넘기려 하는, 나오에게 ‘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것은 네 탓’이라고 말하는, ‘소설을 읽지 않음에도 편집자가 된’ 그가 ‘상식적’ 인간이다. 그는 세가와가 ‘융통성이 없어’ 제 앞길을 막았다(기성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여겨 복수를 계획한다. 그것을 따르던 나오는 세가와와 진심을 나누고 마음을 돌리는데, 우연이 낳은 실수 탓에 결과적으로 사사키의 부탁을 들어준 셈이 된다. 세가와나 나오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미움을 사는, 그러나 존재를 바꿀 수는 없는’ 이들이다. 세가와가 기성의 세계에서 쫓겨난 것은 그의 묘사를 읽고 “변태 아니야?”라고 했던 사사키나, 그 부분을 문제 삼았던 심사위원과 같은 ‘상식’적인 자들이 특정 표현을 ‘음담패설’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일 테다. 그들에겐 대화에 담긴 ‘진짜 감정’을 읽어낼 의지나 ‘재능’이 없다. 세가와는 자신이 ‘유혹을 받았다면 금방 넘어갔을 것’이라 했다. 언뜻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듯한 말이지만, 앞서 그는 ‘유혹에 잘 넘어가는’ 나오의 ‘재능’을 긍정한 바 있었다. 그가 말하는 유혹은 ‘취직이 된 학생에게 적당히 졸업학점을 줘 버리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열린 문은 유혹의 초대, 달리 보면 나오는 세가와에게 유혹을 건네, 비상식을 응원하고 상상했던 그가 그것을 직접 실현하도록 도운 존재다.


<우연과 상상>(2021). 왓챠피디아.


일상 속에서 비상식을 실현할 계기를 제공하는 장치는 ‘우연’, 이는 주된 변수이나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작가가 배치한 운명의 바퀴에 얹혀 굴러가는 인물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결론은 오독으로 보인다. 오히려 선택권이 없는 건 작가일 수도 있다.(‘말이 원하는 것을 따른다’던 세가와와 같은) Seg.1, 카페 시퀀스, 작품은 ‘하나의 결말’이라는 상식을 깨고 메이코의 선택에 따른 두 가지 경우를 모두 편집해 넣었다. 첫 번째 경우가 상상에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 ‘무엇이 상상이고 실제인가’는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이는 메이코가 창작자/전지자가 정한 운명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우연 사이의 선택을 통해 제 운명을 만들어 간다는 암시가 아닐까. 두 번째 경우를 ‘솔직함을 포기하고 상식에 굴복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달리 보면 ‘카즈아키가 아닌 츠구미를 선택하는’ 결말이다. 메이코가 카즈아키를 찾아간 것, 츠구미에게 사실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기로 한 것, 나오가 세가와에게 진실을 말하고, 5년 후 사사키에게 명함을 건넨 것, 그리고 나츠코와 아야가 어긋난 우연을 재구성한 행위들 모두 그들의 결정이다. 인물들은 우연에 휘둘리는 듯 보이지만 결국 선택을 통해 변수를 만들고, 비상식에 도달하기도 한다.


메이코는 진심을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의 공유는 대개 우연과 선택이 이끌어낸 비상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 ‘순간’은 다른 우연으로 깨지고, Seg.1과 2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결말을 택하지만 상대의 결정이나 상황 탓으로 ‘순간’에 다시 가닿을 수는 없게 된다. 그러나 카메라는 프레임과 공간의 자유를 선사하는 방식으로 ‘비상식적인’ 자들을 긍정하고 존중한다. 메이코는 진심을 드러낼 준비가 될 때까지 자꾸 움직이며 ‘고정된 프레임에 담기기를 거부했다’고 설명한 바 있고, 작품은 마지막에 그의 손에 프레임을 ‘넘겼’다. 세가와와 나오는 프레임에서 스스로 벗어나면서 퇴장했다.


Seg.3, 나츠코와 아야의 ‘순간’ 역시 케이의 귀가로 깨지지만, 이들이 담기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이후 계단이 보이는 숏, 나츠코가 프레임에 들어왔다가 나가고 아야 역시 뒤따라 프레임을 벗어난다. 앞 두 에피소드와 달리 카메라는 전철역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이어 담는다. 인물이 아직 ‘퇴장할 때가 되지 않았다’는 의사를 표했기 때문, 아야가 배웅을 제안함으로써 그들의 순간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츠코와 아야는 ‘깨진 마법’, 아니 애초에 ‘마법이 아니었던 것’을, ‘마법보다 불확실한 찰나의 진심을 공유하는 순간’으로 재구성했다. 에피소드 초반, 다른 방향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갈 때 두 사람은 동떨어져 있었다. 나츠코가 상대를 인식하면서 그들의 공간은 이어졌고, 집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역으로 갈 때까지 그것은 넓어지거나 좁아지기는 해도 분리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작품이 끝날 때까지 둘은 공간을 공유한다. 우연으로 시작되었고 또다른 우연들이 영향을 미쳤으나 그 사이, 나츠코가 필사적으로 아야에게 다가가거나 아야가 집으로 초대하고 역까지 배웅하기를 제안하는 등, 상대와 형성한 공간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지속됐다.


<우연과 상상>(2021). 왓챠피디아.


이 ‘세계’에는 불변의 공식이 아닌 불확실한 감정과 우연이 있다. 다만 <우연과 상상>은 오헨리식으로 운명을 좌우하기보단, 우연을 던져 놓고 선택을 관찰한다. 그 여정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의 공간을 잇거나 분리하고, 연출자는 종종 가시화되는 프레임을 통해 ‘관객을 누구와 어떻게 이을 것인가’를 정한다. 그들의 선택이 상식을 벗어나는 방향일수록 결과는 ‘진짜’에 가깝다.


아야와 나츠코는 역에서 헤어졌다가 ‘재회’한다. ‘순간’을 나눈 그들은 물리적으로 멀어지더라도 언제든 연결될 가능성을 지닌다, “마음에 있는 같은 구멍으로 너와 내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던 나츠코의 말처럼. 타인을 연기하며 상대방이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도운 그들이 장식한 마무리는, 상식에서 먼 곳에서 내보인 찰나의 진심에 대한 긍정으로 보인다. 인물들이 끝까지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려는 의지를 보였듯, 작품은 그 ‘녹색 광선’(에릭 로메르)의 순간을 프레임에 포착함으로써 관객에게 닿으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우연과 상상>(2021). 왓챠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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