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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Jun 08. 2022

양이 남긴 선율

<애프터 양>(2021)



<애프터 양(After Yang)>(2021, 감독: 코고나다)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전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괄호] 속 문장들은 저스틴 H. 민의 연기에 관한 본인의 글에서 옮긴 것입니다.



<애프터 양>은 양이 ‘고장난’ 이후의 이야기, 양이 남긴 메모리를 중심으로 그가 함께한 인간들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서서히 풀어간다. 대상인 양은 그 과정에서 자주 작품의 카메라로 작동하고, 관객은 제이크와 함께 양의 입장이 되어 그가 겪고 느낀 바를 돌이키고 살피게 된다. 그렇게 화면에는 양의 기억과 양에 관한 기억이 흐른다. 대개 양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은 메모리 조각에서는 그의 존재가, 양을 회상하는 씬에서는 그의 부재가 느껴진다.


중국에서 태어난 미카의 헤리티지를 이어주기 위해 제이크와 키라가 ‘구입’한 테크노 사피엔스인 양은, 학교에서 인종차별적 질문을 듣고 온 미카에게 접목된 나무를 보여주며 그가 자신과 가족, 문화적 유산의 연결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히 정보(“차이니즈 펀 팩트”) 습득이 아닌 기억이 되게 하는 방법이다. 그건 프로그래밍 된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무엇이 아시아인일 수 있게 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을 거친 결과물이었을까. 이외에도 ‘아시아적인 것’을 나타내려는 흔적은 작품 곳곳에서 느껴진다. 키라와 제이크가 ‘대충 예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위해 ‘아시아적 디자인’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진지한 태도로 (+어쩌면 미카를 위해 더욱) 공부해 생활화했음이 소품과 의상, 일상에 자연히 묻어난다. 한국계 배우인 저스틴 H. 민과 인도네시아계 배우인 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가 모두 중국계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은 아마 코고나다 감독의 의도다. (참고: 저스틴 H. 민 [씨네21] 인터뷰)


작품에는 ‘인간적인 것’에 대한 고민 역시 흐른다.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편집된 패밀리 댄스 배틀, 춤추는 가족들 사이에는 이후 등장할 인물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 중 몇은 클론, 양은 테크노 사피엔스, 다른 이들도 누가 인간이고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다. 그 여부가 중요치 않음을 미카는 느끼고 있었고, 어려서부터 봐 온 양이 가족의 일원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의 부모는 그렇지 않았다. 양이 ‘고장난’ 직후 키라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 했고, 제이크는 ‘들인 돈이 얼만데..’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들은 양을 상냥하게 대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들이 그를 분명한 용도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러나 기억을 돌아보며 양이 단지 ‘필요’한 것 뿐 아니라 의미있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고, “양이 저렇게 전시되는 거 싫어.”라고 서로에게 털어놓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양은 인간과 같다’는 뜻이 되지는 않는다. 작품은 ‘아시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섬세하게 던지며, 하나로 수렴하는 답을 내리지 않았다. 관객은 만족스러운 정답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극장을 나서서도 이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애프터 양>(2021). 왓챠피디아.


영화의 시작은 나란히 서 있는 제이크와 키라, 미카의 모습이었다. 세 사람은 어서 와 함께 자리할 것을 재촉하고, 잠깐 기다려 달라는 양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화면에 비친 상은 ‘낡은 카메라’에 비친 것, 그리고 양의 눈에 비친 것과 동일하다. 어쩌면 작품은 시작부터 양을 카메라의 위치에 놓았던 것이다. 이후 제이크는 양의 기억 속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 포함해 양이 저장한 ‘one moment’에서 비롯된 제이크와 키라의 회상 시퀀스에서, 컷들은 앵글과 사운드 방향을 달리하며 쪼개진다. 인물들을 담는 각도, 화자의 표정이나 말투가 바뀌며 같은 순간이 반복되기도 하고, 소리가 깔끔하게 뻗었다가 인물들을 맴돌며 밀접해지기도 한다. 기억을 불러내며 생기는 오차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기억 정보는 카메라가 찍은 것과 달리 정확하지 않다. 일이 일어난 시점으로부터의 시간적 거리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현재의 기분이나 상대방에 대한 정서와 같은 주관 역시 반영되어 매번 조금씩 다른 형태로 떠오를 테다.


그 회상에서는 양에 대한 그들의 애정과 관심이 비친다. ‘그때 양의 기분이 어땠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와 같은 물음들이. 카메라가 양을 비추지 않아도 그들과 관객은 카메라인 양이 비춘 것들을 통해 그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저장된 정보가 아닌 그가 택한 순간들, 소중히 여긴 것들에 대해. 그러나 끝까지, 다는 알 수 없다. 인간형 안드로이드이지만 클론 정도로 ‘인간적일’ 것을 기대하고 만들어진 것은 아닌-양은 특이하고 미스터리한 존재, 인간은 말 그대로 그를 ‘열어볼’ 수 있지만 그가 ‘진짜 무엇인지’는 모른다. 작품은 양이 ‘인간적이었다’거나 ‘인간이 되고 싶었다’고 쉽게 결론짓지 않았다. 정의하기를 조심스러워하며 모르는 그대로 두었다.


<애프터 양>(2021). 왓챠피디아.


‘리퍼 후 수면 모드이면서 전원이 켜져 있었다’는 양은 ‘리셋’된 게 아니라 이전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채로 미카의 가족에게 왔다. 첫 가족이 양을 ‘무엇으로 여겼는지’는 작품이 보여준 클립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느낄 수 있는 건, 양이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또 기억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집, 분할된 거울 속에서 흔들리는 양의 얼굴은 ‘고장난 듯’ 우울하다. 홀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행복하냐는 제이크의 물음에 양은, “그런 건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다. 키라에게는 “끝에 아무 것도 없어도 괜찮을 거 같다”고 말한 후, “아마 저는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나 봐요.”라고 덧붙인다. ‘인간적인’ 것의 불가능을 표현하는 입력된 답변인 듯도 한 각각의 대사를 말할 때, 양의 정서는 달라 보인다. 후자의 것은 전자의 상황에서 제이크와 이후의 대화를 이어가다 “생각의 끈을 놓쳤다.”고 머뭇거릴 때의 것과 유사하다. 무언가를 ‘느껴버렸을 때’의 정서였을까. 미카가 ‘오빠도 나처럼 우리 가족이 아니냐’고 했을 때 양의 얼굴엔 그늘이 비쳤다. 양은 무조건적 본딩으로 엮인 것이 아니라 기대되는 역할이 분명한, 또 인간이 아닌- 자신을 그들과 동일선상에 놓지는 않았다. 에이다도 말했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것’에 힘들어했다기보단 나름대로 위치와 관계를 고민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인간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그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일지도.


<애프터 양>(2021). 왓챠피디아.


기억을 선택할 수 있다면, 행복하고 예쁜 것들만 남겨놓게 될까. 양의 메모리, 특히 ‘알파’에 저장된 조각들은 그렇지만은 않다. 양이 행복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양은 그 당시의 정서가 무엇이었든 소중한 이들의 순간을 담았다. 그는 에이다에게 그녀의 ‘오리진’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지 않았고, 그저 현재를 메모리에 담았다. 그가 택한 기억 중에는 (아마도 미카가 ‘오빠 미워’라는 말을 한 직후에) “그런 뜻 아닌 거 알아.”라는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미카의 얼굴도 있다. [양의 기억들이 화면에 흐를 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까닭 중 하나는, 거기 관계로 자신을 채우려는 욕심이 전혀 비치지 않아서다. 상대방이/세상이 거기 있다는 자체에 만족하고 있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는 그것으로 족했던 것이다. 소중한 그대들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으로. 카메라가 되었다가 끝에 사라지는 것으로. 내내 미츠키가 노래했듯 “나는 그저 선율처럼 되고 싶다I wanna be just like a melody” 생각했을까. [어쩌면 양은 행복하다, ‘이제 됐다 여겨 무의식적으로 동작을 멈추었는지도 모른다. ‘모른다 적었듯 확신할  없는 문장이지만, 저스틴 민이 간직한 결들이 상상을 도왔다. 모호한 그대로 완전한, “표현할 말이 없다.” 차의 맛과 닮은 연기였다.]


양이 홀로 에이다를 기억했듯 미카, 제이크, 키라, 그리고 에이다는 양을 기억할 것이다. 양은 그렇게 기억으로/에서 존재할 테다. <애프터 양>은 스스로 ‘낡은 카메라’가 되었던 양을 남은 이들이 떠나보내는 과정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그려냈다. [양은 그의 메모리 조각들처럼 -‘단순한 멜로디’처럼, <애프터 양>의 우주에 흩어져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애프터 양>(2021). 왓챠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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