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2021)
<헤어질 결심>(2021, 감독: 박찬욱)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핵심 전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 암호의 이해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의 핵심 장면 포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엘리오와 올리버의 로맨스로 반짝였던 이탈리아의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다. 하누카 날 결혼 소식을 들고 전화를 건 올리버에게 엘리오는 속삭인다, “엘리오-” 올리버는 답한다, “올리버-”. 사랑의 암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기억하고 응답한 것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서로를 보지 못한 채 몇 년이 지났을 때, 마리안느는 전시회에 걸린 엘로이즈의 초상화 속에서 자신의 누드 스케치가 그려진 ‘28쪽’을 발견한다. 그들 역시 사랑의 암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서래가 “바다에 버려요, 깊은 곳에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라고 했을 때, 해준은 ‘왜 딴소리를 하냐’고 간절하게 외쳤다. 그는 서래의 마지막 암호를 알아듣지 못했고, 녹음된 자신의 고백을 복습하며 뒤늦게 깨달았다. 엘리오와 올리버,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사랑 이야기가 물리적으로 떨어진 채로 암호가 통했기에 아름답게 완성됐다면, 서래와 해준의 사랑은 닿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했기에 영화적으로 완벽한 결말을 맞이했다.
끝까지 알아듣지 못했거나 서래의 말처럼 해준의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라, 암호의 이해에 돌이킬 수 없는 시차가 발생해 영원히 어긋났기에 이들의 사랑은 더욱 안타깝다. 이렇게 적으니 해준에게 너무 가혹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서래의 결심은 이미 해변에 꽂아 놓은 나무 막대처럼 서 있었을 테지만, 해준이 기억했다면 그것을 넘어뜨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소한 어긋남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소용돌이를 이루는 이야기… 해준이 내뱉은 망각의 대사는 수조를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 같은 것이었을 테다.
둘, 죽음의 청록
제목의 색부터가 청록이다. 생명의 상징인 원색의 초록이 아닌 푸른빛이 도는 녹색. 기도수의 시체가 보일 무렵의 화면 역시 푸르스름하다. 청록은 죽음의 색, 서래의 주위엔 늘 청록이, 죽음의 암시가 맴돈다. 거실 벽지에 바다가 가득한 것을 보고 처음엔, ‘인자하지 않은’(지혜로운) 서래가 바다를 두른 채 그 집에서의 매일을 견딘 것이라 짐작했었다. 양동이와 원피스 역시 바다의 색으로 여겼는데, 돌이켜 보니 그건 펜타닌 알약의 색이기도 했다. 바다 역시 죽음이 어른거리는 공간, 서래가 스스로 묻힌 곳은 이미 계획된 위치였다.
이포에서 해준은 다들 청색으로 보는 서래의 원피스를 녹색으로 본다. 해준이 현재 서래를 바로 보지 못한다는 뜻일까, 혹은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뜻일까. 해준이 자신을 속여 넘기는 류의 인간이었더라면 끝까지 녹색이라 우겼거나 남들을 따라 청색으로 받아들였겠지만, 그는 결국 ‘청록’이라는 정확한 이름을 찾아 말한다. ‘녹색으로 보였다 파랑으로 보였다 하는’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진실의 성질을 은유하는 듯도 했다. 그러하니, 작품은 차라리 걸리적거리는 요소들을 삭제하고 두 사람의 주관적 진실/진심에 집중하기를 택한 것일까.
셋, 똑바로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
‘죽은 자가 갔던 길’을 올랐던 해준은 증거를 발견한 후 수사를 위해 ‘서래가 갔던 길’을 오른다. 해준은 서래에게 증거를 넘기며 자신이 상황을 똑바로 보지 못해 자부심을 잃었다 여겼지만, 정방향에서는 보이지 않는 종류의 진실도 있다. 그가 수완이 보낸 문서를, ‘프로패셔널하지 않게’ 서래에게 전달한 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기에, 거기 담긴 서래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제 손으로 죽인 어머니의 유골과 함께 바다를 건넜던, 목숨을 걸고 가파른 산에 올라 남편을 밀 수 밖에 없었던 서래. 그는 법을 어기고 사람을 죽여도 꼿꼿하다. 어떤 진실은 안개 사이에서만 제대로 보인다는 것을 서래는 알고 있었다, 똑바를 수 없는 존재로 살아 왔으므로. 해준이 제 품위가 자부심에서 온다 했던가, 서래의 꼿꼿함은 그것을 앎에서, 그 깊은 슬픔과 지혜에서 나온다.
작품 초반 해준은 정안에게 사건을 설명할 때, ‘늙은 남편을 두고 중국인 아내가 죽은 사건’이라고 기도수와 송서래의 위치를 바꾸어 말한 바 있었다. 무의식중에 누가 누구를 살해했건 ‘진짜’ 피해자는 송서래임을 짐작했던 것이 아닐까. 폰을 바다에 버리라는 말은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한편으론 서래의 상황에 설득됐기에 한 말이기도 하다. 해준은 법의 ‘똑바른’ 방식대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린 것이다. 따지고 들어가면 이것은 붕괴된 해준의 잘못도 붕괴‘시킨’ 서래의 잘못도 아닌, 단일한 한국인들과 그들이 만들거나 구멍 낸 시스템의 잘못이지 않은가.
기도수와 임호신, 이 단일한 남자들이 서래가 중국인이 아니었대도 그와 결혼했을까. 첫 번째 남편은 서래에게 ‘도움’을 준 후 낙인을 찍고 제 소유물로 만들었다. 두 번째 남편은 그를 이용해 중국인 인맥을 만들고 제 ‘사업’에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문자 속 ‘쭝국놈’이라는 단어는 그의 무의식적 혐오를 드러낸다.) ‘사랑이 아닌 이유로 결혼한 남편’, 해준이 이포에서 서래를 취조하던 중 한 말이다. 서래는 그들에게 있어 ‘사랑이 아닌 이유로 결혼한 아내’였을 수 있다.(그들이 이것을 사랑이라 말했다면 거짓이거나 착각이다. 소유욕이나 통제욕은 사랑이 아니다.)
넷, 해준의 시선과 상상
해준이 스스로를 ‘깨끗하다’ 말할 때 ‘깔끔한 남자’ 기도수가 떠올랐다. 이주임을 보고 손가락 마디를 꺾는 동작은 대놓고 임호신의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용의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수완을 질책하기도 했던 해준은, 이들과 다르다. 장률의 영화들: ‘한국인이거나 조선족인 것은 다만 우연이 아닌가’에 대해 내내 이야기하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박해일은 중국어로 시를 낭송하는 장윤영이었다. 공자의 후손인 공윤희가 등장하는 <경주>에서는 상대가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자 바로잡지 않고 그저 중국어로 답하는 최현이었다. 현을 연기했던 박해일이 해준을 연기한 것은 우연일까. 해준은 현처럼 경계에 있는 자는 아니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감수성을 지녔다. 처음부터 그는 서래를 온전히 서래로 보았다. 잠복 중에 바로 옆에서 서래를 관찰하는 판타지적 연출이 있듯- 수사중에도 여자/‘미인’/외국인/중국인 등의 필터를 거친 오브젝트로 보지 않고 한 인간으로 대했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를 이미 실패하고 있다는 표현일 수 있겠으나, 그랬기에 해준이 ‘진짜’ 서래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후미산에서는 서래 대신 그의 외조부와 모친의 재를 뿌린다, 한국인으로서 대신 사죄라도 하듯.
후미산 시퀀스를 해준의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일로 받아들였다. 실은 조금 헷갈렸는데, “여긴 눈 안 왔어?”라는 대사를 듣고 환영으로 해석했다가, 또 그렇다기엔 대화나 소품이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렇지만 역시 환영이지 않을까란 결론에 가까워졌다. (후미산 재판에 관한 정보는 수사중에 알아봤을 가능성이 있고, 없어진 펜타닌 역시 예감일 수 있다.)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그건 해준이 착각했던 제 진심과 오독했던 서래의 진심에 가까워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이다, ‘서래는 왜 이포에 왔는가’,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재와 함께 사는 그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쩌고 싶은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눈을 감으면 그대가 계속 떠올랐고, 그대와 마주쳤을 때 문득 다시 사는 것 같았다’는 건 서래의 추측이 아니라 해준의 고백, “서래씨는 몸이 꼿꼿해요….그게 서래씨에 관해 많은 걸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는 서래에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 서래가 핸드폰을 건네며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부분은 해준의 가정이 아닐까, ‘만약 그 증거가 지금 내게 돌아온다면’이라는. 또, 질문들이 뒤따랐을 것이다, ‘나는 재수사를 해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서래를 체포해 이 관계를 끝내고 자부심을 회복하고 싶은가?’라는.
다섯, 서래의 목소리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을 두 번째 관람했을 때, 첫 관람 때보다 조금 더 먼저 울기 시작했었다. 양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간 채 보기 시작해서였다. 마찬가지로 <헤어질 결심>을 두 번째로 관람했을 때, 조금 더 먼저 울기 시작했다. 자꾸 서래의 마음이 들려서였다. 까마귀를 가져다 놓은 고양이처럼 피냄새를 힘들어하는 해준을 위해 수영장을 청소한 서래. 그 까마귀를 묻어주었듯 자신을 흙에 묻은 서래. 살인자나 피해자로 정의되길 거부하고 다만 지독하게 사랑하는 여자가 되기로 한 서래.
이야기는 해준의 입장에서 시작한다. 부산에서 작품은 그가 없는 곳의 서래를 의도적으로 의미심장하고 모호하게 담는다. 방수밴드 위에 향수를 뿌리거나 우는 척 하는 모습, ‘오빠 PC방’을 검색해 해준을 추적하는 모습…. 처음에는 서래의 표면만 보게 되었고, 그의 진심을 의심했다, 이포에서 해준이 그랬듯. 이포에서는 해준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녹음하는 장면 등이 등장하지만, 해준이 모든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서래의 목소리가 완전히는 들리지 않는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 돌이키면, 그리고 이미 한 번 겪은 채로 다시 서래를 만나면, 비로소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려온다. 해준이 “저 두 눈이 봤을 범인을 꼭 잡아야겠다고 결심해요”라고 했을 때처럼, 진심을 드러낼 수 없을 때 서래는 가짜를 연기하는 대신 애매하게 웃었다. 해준을 향한 눈빛과 말에 거짓은 없었다. 진실이 아닌 것은 서에서 하는 남편들의 죽음에 관한 진술만인데, 그 순간들에도 서래의 눈은 진짜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헤어질 결심>은, 두 번은 봐야 하는 영화다. 해준의 입장에서 바라봤던 것들을 서래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간 상태로 보아야 하므로.
여섯, 언어와 자각의 시차
서래가 해준의 녹음을 들으며 미소짓고 또 눈물을 흘렸듯 해준도 서래의 녹음을 읽으며 미소짓고 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는 서래의 독백을 이해하기 위해 번역을 먼저 맡겨야 했다. 해준의 말은 서래에게 바로 가닿는 반면 서래의 말이 해준에게 가닿는 데엔 이같은 시차가 종종 생긴다. 한국어가 ‘부족한’ 채로 한국에서 사는 중국인 서래, 그는 달리 보면 자신이 택한 순간에 언어의 간극을 만들 수 있는 이다. 대개는 한국어로 말하고, 때로는 중국어로 말한 후 번역기를 돌린다. 전자에서 해준은 서래의 소리에 몰입해야 하고, 후자에서는 말이 제게 닿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언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 상대와 자신의 진심을 알아채는 시차가 해준에겐 있고 서래에겐 없다.
‘로맨스릴러’나 ‘멜로수사극’이라는 장르가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까닭은, 관객이 느끼는 긴장이 양가적이어서다. 해준의 정서도 그랬고, 그에 이입한 관객에게 전염되었다. ‘내가 당신을 지켜보는 까닭은 일 때문인가 아니면 원해서인가’, ‘당신을 자꾸 보게 만드는 이것은 의심인가 관심인가’. ‘내가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는 원인은 살인 사건인가, 재회한 당신인가’. 서래를 향한 해준의 눈빛은 처음부터 미묘한 경계에 있었다.
붕괴를 고백하는 순간 해준은 말한다,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서래와의 일이 제 자부심과 품위를 어그러뜨려 저답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고 자신과 상대를 모두 원망했을 테다. 그러나 서래는 어쩌면 해준을 가장 편안하게/저답게 만들어 주는 존재, 늘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를 재울 수 있는 단일한 사람이다. 해준은 십 몇 년을 함께한 정안보다 서래와 있을 때 더 편해 보이는데, 그건 그가 정안에게 맞추듯 서래가 그에게 맞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애초에 ‘같은 종’이어서다. 13개월이 흘러 사랑의 감정을 복습하고서야 이 인연의 귀함을 제대로 느낀 남자. 그는 마지막 순간에야 제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완전히 알게 된다. 서래는 처음부터 알았고, 어찌 보면 내내 ‘정직하게’ 행동했다.
엔딩의 여운이 밀려들어와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았던 까닭은, 해준이 신발끈을 묶어서다. 그 얼굴에 간절한 희망이, 비로소 자각한 자의 결심이 비쳤기 때문이다. [‘서래’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 했지만 해준은 깨달은 사랑과 함께 기꺼이 무너지고 깨어지길 택함으로써 스스로를 다시, 다른 형태로 쌓아올린 듯 했다…..엔딩은 서래와 함께 꽉 닫혀 버렸는데 해준은 홀로 열려 있다. 그 풍부하게 열린 얼굴에는 그들의 역사와 사랑이 가득 소용돌이쳤고, 아직 완전히 찾아오지 않은 이별이 어른거렸다. : (박해일 글에서 옮김)]
현장에서 인공눈물을 넣곤 했듯, 해준은 서래를 찾기 전 인공눈물을 넣는다. 서래는 해준을 영원히 사랑하며 헤어지기로, 그의 미결사건이 되기로 했다. 해준은 시작한 줄도 몰랐던 제 사랑은 끝난 적 역시 없음을, 서래의 결심이 완성된 이후에야 자각했다. 작품은 신발끈을 묶은 해준이 서래를 구해내 사건을 해결하도록 허락하지 않고 서래의 결심을 존중했다. 그렇게 서래가 묻힌 곳을 관객은 알고 해준은 모르는 채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제 1화자는 해준이지만 엔딩크레딧에 가장 먼저 올라오는 이름은 박해일이 아닌 탕웨이,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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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전문가는 전 세계에 잔뜩 있을 테고 훌륭한 해석도 많이들 쓰셨을 터이므로…. 그저 서래와 해준의 마음을 띄엄띄엄 짐작해 보았다. 처음 본 날 적은 주저리에, 두 사람이 숨소리를 맞추는 씬을 <스토커>나 <아가씨>의 씬과 동일선상에 놓았던 것을 후회한다. 모든 장면의 두근거림에는 슬픔이 섞여 있음을 깨달았다. 야한 것은 없다, 모조리 아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