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않인 Aug 08. 2022

남의 예술로 채우기

의식의 흐름적 글쓰기는 즐겁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 찰리 카우프만)

<엘비스>(2022, 바즈 루어만)


* 위 작품들의 구체적 장면 포함.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제시 버클리를 써 볼 생각으로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봤다. <로스트 도터>와 캐릭터에서 겹치는 부분도 찾았고, 배우 고유의 표정도 발견했고, 아직 보지 않은 <멘>과 엮어서 쓸만하지 않을까 싶은 점도 보였는데… 결국 안 쓰기로 했다. 영화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예상 밖이었다. 엉엉 울었는데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멘이고 글이고 다 포기하고 멍해져서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서사는 아니었지만 뭔지 알 것 같았다. 해석을 위해 파헤치지 않고 그저 그대로 두고 싶은 작품이었다. 감정적으로 녹초가 되는 관람경험이어서 다시 시도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도 <케빈에 대하여>(2011) 재관람에 매번 실패하는 사람이다. 아 그런데 그건 다른 이유로 그냥 영원히 못 보는 작품이 되어 버릴 수도 있겠다, <월플라워>(2012)도. 속상한데, 가장 속상한 건 유에스게이를 영원히 못 듣게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뭐 나중엔 그가 그렇지 않았던 시기의 작품…이라는 까닭으로 찾게 될지도. 의식의 흐름을 따라왔더니 글이 새서 정말로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는 내용이 됐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나온다. 끝도 없이 쏟아지니 피곤해서 그냥 끝내려…다가도 멈칫 하게 된다. 이제 정말 노코멘트 하고 뭐가 됐든 사건의 끝을 잠자코 기다려야겠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속 제시 버클리의 대사 중에: 우리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봐, 사람들은 자신을 거짓으로 채우는 거야- 대강 그런 게 있었는데, 그거 듣고 맞다 그거 나다 그리고 이 영화도 그 중 하나가 될 거다-란 생각을 약간 자조하듯 했다. 물론.. 픽션은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이지만 늘 거짓인 것은 아니고,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지만 자조는 take back 하지 않을 것이다. take back이 뭐더라. 영어 별로 잘하지도 못하는데 영어로 된 콘텐츠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가끔, 떠오른 영어 표현이 한국어로는 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 take back은 취소구나. 너 그 말 취소해 그럴 때 쓰는 거지.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



그래서 오늘은 엘비스로 채웠다.


다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이용했던 자를 화자로 두고 그의 독백과 모순되는 것들을 화면에 보여주다 분명한 사실관계 서술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그러나 영화는 신문기사가 아니지. 바즈 루어만은 황제를 제대로 기리겠다는 듯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맥시멈으로 활용한다. 이 요소들을 쏟아부어 이 정도의 균형을 유지한 것만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 내가 쓸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아닐까. 엘비스 프레슬리는 내게 있어,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좋아하는 스타’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바이오픽에 대한 평가는 영화평론가보다 그의 음악과 삶을 아는 팬이 더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둘 다 아니니… 오스틴 버틀러 얘기나 좀 해볼까 싶다.


처음엔 거리를 두고 엘비스를 서서히 내면을 조명하고, 마무리를 엘비스 프레슬리의 실제 공연 영상으로 한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머릿속에 진짜 엘비스를 남기는 것이 연출 의도였을 것이다. 이로써 앞의 장면들이 발산했던 모든 에너지가  푸티지로 수렴하게 되고, 사실상 오스틴 버틀러가 연기한 캐릭터는 잊힌다. 그런데 그가 잊힐  있었던 것은 이미 일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스타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로서 좋은 기회인 만큼 리스크가 굉장한 일일 테다. 절대적으로 잘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자신의 퍼포먼스를 비교하고 평가할 날카로운 입들이 평소의 두 배는 될 것이다. 전기 영화라도 감독 스타일에 따라 배우에게 연기법의 자유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바이오픽은… 선택권이 없었으리란 짐작이 든다. 오스틴 버틀러는 ‘킹이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도 아니고 그를 잘 모르기 때문에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반응을 보면 꽤나 잘 재현했나 보더라. 그저 <엘비스>라는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면…. 이 정도면 영화가 배우 덕을 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수많은 공연의 현란한 연출과 정교한 편집, 의상과 미술 모두 물론 훌륭했지만, 황제의 포스가 가장 와닿았던 장면에는 그런 효과가 거의 없었다: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 첫째 날 밤, 카터가 ‘내일 캐롤을 부르지 않으면 너를 떠나겠다’며 협박하자, 엘비스가 별 표정 없이 들릴 듯 말 듯 흠, 이라고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때, 아 저 인간은 오스틴 버틀러가 아니구나, 킹 엘비스로구나,라는 느낌이 퍼뜩 왔던 거다. 물론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다. 아무튼 오스틴의 엘비스는 ‘내가’ 글에 쓸 연기는 아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인데, 메소드 연기는 베이지컬리 그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내가’ 딱히 덧붙일 말이 생기지는 않더라는 것. 그리고 다른 얘긴데, 이런 연기를 보면 배우가 좀 걱정되더라. 오스틴 버틀러.. 괜찮니..? (차기작 기다릴게)


<데드 돈 다이>(2019). 맨 오른쪽 오스틴 버틀러임 (왠지 놀려먹기)
<엘비스>(2022)
<엘비스>(2022)



스타와 스타와 스타와…


영화를 보는 사이사이 <벨벳 골드마인>(1998)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어서 벨벳 골드마인 보고 싶다는 생각과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엘비스가 몹시도 궁금하다는 생각에 조금 산만해졌는데(조나단은 포크 글램록 발라드 펑크 다 가능한 자란 말이다…)… 취향은 어쩔 수 없는 거다. <벨벳 골드마인>은 데이빗 보위 바이오픽이라기보단 약간.. 브라이언 슬레이드라는 평행우주의 다른 에일리언 스타에 관한 영화라고 할까….. 몇 년 전에 조나단 글에도 썼지만- 보위 승인을 못 받아서 이름이나 심볼, 곡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좀 더 맘대로 나가면서 오히려 자유롭고 매력적인 영화가 나왔다는 생각. 나는 이 영화를 본 후 데이빗 보위에 관심을 갖고 숭배하게 된 케이스라 둘을 별개로 좋아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팬인 채로 봤다면 화냈을지도..) 아무튼 이런 분야에서 토드 헤인즈 따라갈 스토리텔러는 없지 않을까. <아임 낫 데어>(2007)를 보셨나요 여러분? 밥딜런의 곡이 흐르는 밥딜런 전기 영화인데 플롯을 그따위로 짜겠다는 아이디어가 머리에서 나오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너무 최고 아니냐고요… <작은 아씨들>(2019)을 본 직후에 좋아하는 고전들을 죄다 그레타 거윅 앞에 갖다 놓고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어 달라고 조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약간 그런 거다. 뮤지션 리스트 만들어서 토드 헤인즈에게 보내고 싶다.


아무튼 오늘 받은 에이쓰리 포스터 들고 귀가하면서 애플뮤직으로 엘비스 사운드트랙을 계속 돌렸는데, ‘그때완 다른 세상’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아 글리터 잔뜩 뿌린 브라이언 슬레이드 전신 딱 박힌 에이쓰리 포스터 가지고 싶다. 스트리밍으로 비너스 인 퍼즈 곡 듣고 싶다. 그나마 작품 속에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공연한 몇 곡은 (절판된)사운드트랙 앨범에도 없어서 오로지 영화 안에서만 들을 수 있다. 새삼 든 생각 중 하나가 그때의 스타는 지금의 스타와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 것. 지금은 구십년대 너바나 엠티비 언플러그드 영상이고 칠십년대 데이빗 보위 토크쇼 영상이고 뭐고 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 내가 몇십 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뮤지션 덕질을 어쩌고 있었을까.. 티비 방송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을까? 용감하게 미국으로 날아가서 콘서트 투어 막 하고 머천다이즈 막 샀을까…(사실 지금도 미국 콘서트 투어는 하고…만 싶다.)


이쯤에서 뜬금없고 뒤늦게 어째서 내가 엘비스를 봤는지 적어보도록 하겠다. 궁금했던 작품이긴 했으나, 어렴풋하지만 <위대한 개츠비>(2013)가 좀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서(한창 피츠제럴드에 돌아 있을 때여서 비뚤어진 마음으로 봤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관람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마음먹은 경로는 이랬다: 모네스킨 신곡에 ‘If I Can Dream’ 커버가 떠서 들었다. -> 엘비스 사운드트랙 전체 앨범을 듣게 됐다. -> 오스틴 버틀러의 커버를 들었다. -> 이 사람 뭐지…? 봐야겠어… 대충 그랬던 거다. 오스틴 버틀러의 싱잉에 놀라지 않았다면 극장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if I can dream이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곡이라 오스틴 버틀러가 부르길래 (이것도… 별거였다) 모네스킨 커버는 언제 나오나 기다렸는데 엔딩크레딧 마지막에 짠 하고 나왔다. 보기 전에 한 백 번 듣고 갔는데 영화관에서 들으니까 또 너무 좋더라. 다미아노 데이비스 너 목소리 천재. 에이미 와인하우스 커버를 해도 들어줄만한 목소리의 소유자다. 모네스킨 백 투 블랙 커버영상 볼 때가 됐나보다.


<벨벳 골드마인>(1998) 옛 포스터들과 디비디 커버들. 그때 한국에서 이완 맥그리거만 유명했나 봄.
<엘비스>(2022) 포스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