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에서 미니애폴리스 좋아하기
글을 쓰는 동안 덕심과 함께 길이가 넘쳐버릴 조짐이 보인다면 라이브 비디오 시청을 자제한다. 세인트 빈센트 글을 쓸 때 그랬다. 분장과 연기, 변주를 즐기는 그의 공연 영상을 샅샅이 살피면 별개의 글이 한 편 더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과연 라이브는 음원이나 뮤직비디오와는 또다른 세계다. 관객이 없는 스튜디오나 베드룸 라이브 영상도 포함된다. 멘트조차 거의 않고 음원과 흡사한 공연을 선보이는 뮤지션이라 해도 그렇다. 공간의 크기나 특징, 객석의 분위기, 여러 곡을 부른다면 곡의 순서도.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설정 역시. 2020년 The NBHD 롤라팔루자 공연을 예로 들면- 다른 맴버들이 스튜디오에 모여 마스크를 쓴 채 연주하는 동안 제시 루더포드는 홀로 방에서 노래를 불렀고, 영상에는 두 공간이 번갈아 편집돼 등장했다.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제시 루더포드의 묘한 존재감 탓인지 나름의 에스테틱이 있었다고 할까.
글이 또 새 서론이 길어졌다. 뭐… 애초에 새기 위한 글이었나. 결국 날마다 새로워지는 The Cactus Blossoms에 대한 덕심을 조금 더 풀어보려는 속셈이었다. 한창 글을 쓸 무렵 세인트 빈센트 때완 조금 다른 까닭으로 라이브 관람을 자제했었다. 지금은 고삐가 풀렸다. 이동할 때는 음원을 듣고, 집에서는 시디를 틀고(그렇다 드디어 시디 플레이어를 샀다), 틈날 때마다 라이브 영상을 하나씩 꺼내 보고 있다. 이들은 기타 연주와 노래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스타일인데, 단독 공연 비디오를 풀로 보면 또 나름 귀여운 멘트 같은 게 끼어 있다. 한동안은 2집 발매 직전 필라델피아 단독 공연 비디오에 푹 빠져 있었다. 어떤 분이 친절하게도 음질과 화질이 상당히 괜찮은 한시간 반짜리 영상을 찍어 올려 주었다.
커버를 포함한 모든 퍼포먼스와 그 사이의 별로 타이트하지 않은 멘트와 공연자들끼리 무언가를 조율하거나 웃음을 주고받는 모먼트와 기타 등등의 여백 모두가 보물과도 같았다. 몇 곡 보고 뒤로 돌려서 또 보고 하다가 다 보는 데 며칠이 걸렸다. 신곡과 옛곡, 커버가 적절히 섞이며 공연이 이어졌다. 라이브의 묘미 중 하나가 커버나 미공개 트랙을 들을 수 있다는 거 아니겠는가. 칵투스 블라썸즈는 2집에 수록될 곡들을 아낌없이 들려줬다. “맞아 우리 곧 앨범 나올 거야, 언젠진 모르겠지만~”이라며 티징도 좀 하고.
두 사람의 기반은 미니애폴리스, 인터뷰에서 인디 뮤지션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는 그곳의 음악적 환경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사실 미니애폴리스는 이들의 인터뷰나 멘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애정과 함께. 이번에도 어김없이 언급됐다. 잭 토리 이어 느긋한 투로 말하길, “우리가 투어를 하는 건 오로지 눈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야~”. 그렇단다. 물론 농담이겠다. 아무튼 각지를 돌며 신나게 공연을 해도 결국 미니애폴리스로 돌아갈 거라고 고백하는 느낌이다.
Mississippi를 일찌감치 끝내 버리곤 (선인장꽃 형제는 글로벌하게 유명해지리라. 미시시피는 이들의 크립이요 스멜스 라잌 틴 스피릿이 될 것이며….) 마지막 곡으로 Please Don’t Call Me Crazy를 소개했다. 신곡을 막곡으로 넣다니, 거참 대담하고 완벽한 선택이 아닌가. 곡을 쓰신 미스터 잭 토리는 기타로 자꾸 첫음을 튕기다 말다 하더니만, “내가 음을 어쩌고 저쩌고 했구만~” 이라고 종알거리곤 또 태연히 시작해 순조롭게 아니 훌륭하게 공연을 마쳤다. 그렇게 인사하고 퇴장하는가 싶더니 별로 빼지도 않고 다시 냉큼 올라와 두 곡을 더 부르는 거다. Powder Blue와 Traveler’s Paradise. 마지막 이후의 마지막,으로 Traveler’s Paradise는 탁월했다. “Goodbye, sure it’s good to know ya. I’m so thankful for ya.”로 시작되는 가사는 꼭 그날 공연을 끝까지 지킨 관객에게 건네는 인사인 듯했다. 메인 보컬이 아닐 때도 화음을 넣느라 휴식을 취할 타이밍이 없었을 목에서 들려오는 미세하게 위태로운 음은- 현장에 있던 관객에게 오히려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또 요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라이브 영상들을 자꾸만 본다. 10년 혹은 9년 전의 ‘Pickathon Pumphouse Sessions’ 시리즈다. Happy Man 이나 Change Your Ways or Die 의 얼리 버전 같은 것도 들을 수 있다. 2020년에 나온 음원 Happy Man은 상당히 담백하고 깔끔한데, 이 버전, 그러니까 ‘Happy Man on a Gloomy Day’는 좀 더 끈적하고 예스럽다. 발음도 리듬도 늘이고 튕기고… 박자를 딱딱 맞추기보단 악기 연주에 보컬을 대강 ‘얹는’ 느낌… 아무튼 그렇다.
이 형제는 공연을 하는 도중이나 끝난 직후에 서로 눈을 맞추며 웃기를 자주 한다. 악기 세션들과도.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라이브를 클로즈업하니 그 모습이 더욱 잘 보인다. 어쩌면 십 년을 덜 살았을 때라 웃음이 더 많았던 걸까? 글쎄, 최근 라이브를 살피면 결코 웃음이 없진 않다. 그보단 세월이 흐르며 입꼬리를 컨트롤하는 능력이 향상 된 게 아닐까, 특히 잭 토리의 경우. 오래된 비디오일수록 그가 미소를 짓는다…기보단 기분이 좋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수줍게 씩 웃어버리는 순간이 더 자주 목격된다. 페이지 버컴은 그런 동생이 노래에 집중할 때 인자한 미소를 띄우곤 한다.
어떤 곡을 부른 사람이 쓰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곡도 그도 더 좋아지는 편이다. 그렇게 누군가 만들고 부른 곡들에 빠지고 나면, 그가 커버한 곡들도 다 좋아지고 만다. Alton and Jimmy의 No More Crying the Blues 원곡을 듣고 바로 칵투스 블라썸즈 커버를 들으면… 두 배로 좋다. 요 펌프하우스 세션스 영상엔 커버곡들도 꽤나 있는데, 그것들도 참 별거다. 요새 자주 보는 영상은 Crazy Arms 커버다.
칵투스 블라썸즈 팬인 채로 새로운 작업물 소식을 듣는 기분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알게 되었다. 신곡은 아니고 밥 딜런 커버. 네 곡으로 구성된 EP가 곧 나오는데, Tell Me That It Isn’t True가 9월 13일에 미리 공개됐었다. 아 밥 딜런이라니. 너무 당연하면서도 황홀한 선택 아니냔 말이다, 밥 딜런이라니…! 그날, 나는 여한이 없는데 여한이 잔뜩 있는 기분이 되었었다. 무슨 말인지 설명하면 구차해지니 대강 알아들어 줬으면 좋겠다.
….까지 적으니 애플 뮤직에서 나머지 세 곡이 방금 공개되었다고 알려준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으니 이 지버리시를 다듬어 올리고 나서 본격적인 리스닝을 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론 ‘Went to See the Gypsy’가 특히 기대된다.